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경축 5.13] 한 바링허우와 그녀의 시어머니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바링허우(80后·중국에서 1가구 1자녀 정책을 실시한 후인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이르는 말) 이 어휘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책임, 감당인가요, 아니면 돈을 숭배하고 이기적이며 냉담한 세대? 아마 대부분 노인들 눈에는 긍정적인 인상보다 부정적인 인상이 더 많을 것입니다.

제가 바로 ‘바링허우’입니다. 우리 이 세대가 출생할 때는 마침 ‘생육계획’을 좇던 시기라 동년배 중에는 외동의 비율이 매우 높았습니다. 저는 비록 외동은 아니지만, 더 제멋대로였습니다. 제 기억에 어려서 설을 쇨 때였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저는 사촌 여동생이 예쁜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것을 보고는저도 목도리를 매야 사진을 찍겠다고 했는데, 목도리가 없어 울고불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자 친척 중 누구의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결국 목도리를 두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털모자를 쓰고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이 흑백사진은 지금도 고향집 액자에 걸려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 어릴 때의 모습입니다.

훗날, 저는 자라서 직업을 갖고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말하자면 마치 한 가지 임무를 완성하는 것과 같았고, 마음속으로는 전통적인 결혼관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결혼하면 시부모님은 한 가족이 된다거나 시부모님도 자기의 부모가 된다는 것들 말이죠. 저는 ‘그들까지 친부모로 여겨야 해?’라며 이런 견해를 아주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반드시 노년까지 함께 살 거라는 보장도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같이 살 수 있으면 살고 아니면 이혼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직업이 있고 저축해 둔 돈도 있으며 버는 돈도 그보다 적지 않은데, 평소 집안일은 제가 더 많이 하면서 저더러 그의 말을 들으라 하니 정말 해낼 수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저는 정말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겉으로는 평화로웠지만, 속으로는 개성이 엄청나게 강하고 자아도 매우 강했습니다.

훗날 아이가 생겨 양육을 위해 우리는 시부모님 댁으로 옮겨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으며, 5년이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성격이 강해서 무슨 일이든 반드시 당신 뜻대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어머니와 다툼을 우려해 갓 결혼해 아이가 없던 몇 년간은 시어머니와 최대한 적게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인내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는데, 그때 저는 수련을 갓 시작해 심성이 아직 너무 낮았고, 일단 다툼이 발생하면 제가 잘 파악하지 못할까 봐 애써 회피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생겨 더는 회피하려 해도 회피할 수 없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세대, 다른 관념, 다른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이 함께 있고 갓 출생한 아이까지 있으니, 그 갈등이 방류된 홍수처럼 밀려왔습니다.

시어머니에게 물은 낭비해서는 안 되고, 절대 마음대로 많이 써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세수를 할 때도 수도꼭지를 열어 놓고 콸콸 흐르는 물에 씻어서는 안 되고, 대야에 물을 받아서 써야 했습니다. 물도 많이 받으면 안 되고 조금만 받게 했습니다. 목욕할 때도 샤워기를 써서 물을 낭비하면 안 되고, 물이 타일에 튀면 타일 수명이 줄어든다고 큰 대야에 물을 받아 목욕하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시댁에 왔을 때는 제가 물을 쓰기만 하면 시어머니께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화장실 문 앞에서 저를 지켜보셨습니다. 저는 너무 불편해 겨우 물 좀 쓰는 것 가지고 그런다, 정말 쩨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기에 어떤 일이든 대법으로 가늠해야 했습니다. 대법은 우리에게 쩐, 싼, 런(眞, 善, 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일에 부딪히면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저는 물을 절약하는 것은 옳은 일인데, 어찌 시어머니를 탓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주의하지 않아 수자원을 너무 많이 낭비했지만, 이 점을 인식하고서는 물을 쓸 때 주의를 많이 기울였습니다.

시어머니는 깨끗한 것을 좋아하셔서 옷이나 침구 등이 더렵혀지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약간의 때만 봐도 가슴이 꽉 막힌다고 하셨습니다. 막 시댁으로 왔던 그 날, 곧 설이라 이불 겉감을 빨아야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세탁기로 빨면 깨끗하게 빨리지 않는다며 손으로 빨아야 하고, 일생을 이렇게 빨았다고 하셨습니다. 시트가 낡아 보이기는 했지만 갓 사 온 것처럼 깨끗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지금은 나이가 너무 많아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하셨고, 그래서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빨래판으로 온 식구의 침대 시트를 다 빨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체력적인 일을 해본 적이 없어 거의 오전 내내 빨래를 하고 녹초가 되었습니다. 빨래를 끝내고방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주방에서 화풀이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알고 보니 시어머니께서 제가 게으르고 일을 대충해서 깨끗하게 빨지 않았다고 저를 욕하시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화가 폭발해 시어머니와 논쟁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생각해 참았습니다. 저는 ‘내가 대법을 수련해서 그렇지 만약 수련하지 않았다면 어머니와 대판 싸웠을 거예요’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화를 참았습니다.

이러한 일이 아주 많았고, 저도 서서히 자신을 바로 잡으며 최대한 시어머니의 요구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문제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됐고, 제가 어떻게 해도 시어머니는 다 틀렸다고 하셨습니다. 아이에게 옷을 많이 입히건 적게 입히건, 밥을 많이 먹이건 적게 먹이건, 다 틀렸다고 하셨고, 아이의 수면 자세가 잘못되었고,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놀면 감기에 걸린다거나, 아이에게 간식을 많이 먹이면 점심에 밥을 안 먹는다고 하셨다가, 간식을 안 주니 아이를 굶긴다고 하셨습니다…….

때로 마음이 너무 답답하면 아이를 데리고 저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당신을 피하는 것을 아시고는 더 화를 내시며 정말로 저를 욕하며 밖으로 쫓아내셨습니다. 저는 때로 ‘됐다. 참지 않겠다. 한바탕 크게 싸우고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시어머니와 논쟁을 하고 싶었는데 논쟁하기만 하면 더 화를 내시며 제게 트집을 잡는다고 하셨습니다. 때로는 ‘내가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근거로 나를 이렇게 대하시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견디기 힘들어 우리 집으로 돌아가 엉엉 울었습니다…….

매번 참지 못하고 곧 폭발하려 할 때면 사부님의 법이 항상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1] 사부님께서는 또 제자에게 모순에 부딪히면 안을 향해 찾아야 하는데, 바로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찾고, 속인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대법 법리에 끊임없이 깨끗이 씻기면서 천천히 저는 시어머니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개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용량이 확대되어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문제를 사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연로하셔서 건강도 좋지 않으신 데다 성깔까지 있으신데, 또 아이까지 돌보고 밥도 하시고, 각종 집안일도 하시느라 정말로 피곤하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저는 그분을 많이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변하자 시어머니도 변하셔서 매일 허허 웃으십니다. 매번 시어머니를 모시고 거리를 나서면 사람들은 우리가 모녀 사이인 줄 압니다. 우리는 목욕탕도 같이같니다. 우리 이 지역에는 등의 때를 미는 습관이 있어 돈을 지불하면 밀어주는데, 시어머니는 때를 잘 안 미시고 돈 낭비라고 생각하셔서 우리 둘이 서로 등을 밀어줍니다.

한 번은 시어머니의 등을 세심하게 밀어드렸는데, 목욕탕 직원이 “매번 같이 자주 오시던데, 딸이에요 손녀에요?”라고 물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며느리에요”라고 하시자 그 직원이 놀라며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했기에 이렇게 좋은 며느리를 뒀어요 그래?”라며 놀랐습니다. 시어머니는 “우리는 같이 살아요. 나는 성깔이 안 좋은데, 며느리가 잘 받아줘요”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셨습니다. 그 직원은 “지금 며느리들은 목욕은커녕 노인네들 하고 말도 안 해요!”라며 저를 매우 칭찬했습니다.

당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저는 마음속으로 기쁘지도 않았고, 오히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대법의 요구와는 거리가 아직 멀고도 멉니다. 대법제자 중에는 시어머니께 원한을 품지 않고 전심전력으로, 심지어는 덕으로 원한을 갚은 예가 실로 너무 많습니다. 저는 아직 많이 모자랍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대법 중에서 수련하며 전통으로 회귀하는 이 길 위에서 저는 갈수록 더 나아질 것임을요.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何爲忍)’

 

원문발표: 2019년 5월 15일
문장분류: 경축 513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15/386079.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