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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을 제거한 수련 체험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현지 수련생이 음식에 대한 집착 방면에서 법에 있지 않은 것을 보았기에 여러분과 교류하고, 내가 이 방면의 집착을 제거한 체험을 말하고자 한다. 적절하지 못한 곳은 자비로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나는 수련 중에서 다음의 몇 개 단계를 지나왔다.

첫 번째 단계: 수련 초기에 자신은 수련인이기에 어떤 음식에 집착하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기만 하면 이 마음은 즉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어느 날 어머니가 가족 모두에게 츙궈탕(瓊鍋糖)을 나누어 주었다. 매우 고소하고 달콤했다. 거의 다 먹어 갈 즈음에 ‘나는 수련했는데 이것을 먹기 좋아하면 집착심이 아닌가? 이런 마음은 없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어머니가 또 한 개씩 나누어 주었다. 먹으니, 마치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았다. 매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단계: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당신은 그것을 꼭 먹고 싶다고 하지만, 진정하게 수련하여 그 마음을 마땅히 제거해야 할 때는, 당신은 먹을 수 없고, 당신이 먹어도 원래의 맛이 아니며, 무슨 맛인지 모를 수도 있다.”[1]라고 말씀하셨다. 전에 나는 유차(油茶: 미숫가루의 일종)를 매우 즐겨 마셨는데 하루 세 번을 마셔도 괜찮았다. 어느 날 갑자기 유차가 뜨물 맛으로 변해 더는 마시지 않았다. 그 후에는 잼을 즐겨 먹어 한 병 한 병 사들였다. 맨 나중에 산 한 병은 변질한 곰팡내가 나서 더는 먹지 않았다. 한동안은 참깨죽을 잘 먹었다. 그런데 참깨죽을 사러 갔다가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익숙한 길을 두 번씩이나 잃어버리고는 어찌 된 일인지 스스로 깨닫고 더는 사지 않았다. 전에는 기름에 튀긴 음식도 매우 즐겨 먹었다. 한번은 단번에 유탸오(油條)를 많이 먹고 온종일 속이 불편했다. 그 후 기름에 튀긴 음식을 보면 속이 불편해 자연스럽게 이 마음을 제거했다.

세 번째 단계: 적극적으로 끊다.

어떤 식품, 예를 들면 아이스크림과 크림 케이크는 즐겨 먹었지만, 줄곧 맛이 변하지 않았다. 나는 적극적으로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은 주식이 아니라 집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줄곧 우유부단하였으며 내려놓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광저우설법’ 녹음을 들을 때 적극적으로 통제하여 이 식품들을 먹지 않았다. 서서히 이 마음도 제거해버렸다. 지금 가끔 가족이 모여 이러한 식품을 먹으면 나도 같이 먹는다. 하지만 이미 욕망이 없어졌고 맛있다는 느낌도 없어졌다. 물론 이 과정은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의지력을 강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실 수련의 많은 방면에서 생사를 내려놓는 마음가짐으로 이런 고비를 대할 때 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을 체험했다. 이 일보까지 왔을 때 기본적으로 모든 음식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했다. 그 후 반복되긴 했지만, 매우 담담해졌다.

네 번째 단계: 음식을 가리는 마음을 제거하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육식하지 않는 사람에 속했다. 그래서 내 그릇에 고기가 있으면 골라내고 먹지 않았다. 어머니 집에 묵고 있을 때 수련하지 않는 어머니는 영양을 보충해 주려고 늘 내 그릇에 고기를 넣어 주었으나, 나는 골라내고 먹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화를 내며 나무랐다. 나는 “어머니는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잖아요. 이담에는 내 그릇에 고기를 넣지 말아요.”라고 했다. 어머니는 화를 냈다. “고기를 좀 먹는 게 어때서!” 수련인은 모순을 만나면 안을 향해 찾는다. 사부님께서는 “남들이 무엇을 주면 바로 그것을 먹었는데,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음식을 가릴 수 없었으며, 주는 음식 중에는 고기가 있을 수 있었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떤 음식을 안 먹는 것도 집착심이며 이것 역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에게 고기는 넘기기가 매우 어렵다. 살코기는 괜찮은데 기름진 고기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집착을 내려놓기 위해 이후에는 골라내지 않고 어물어물 삼켰다. 그리고 짠지나 절인 무 종류도 집에서 만들면 먹었다. 먹으니 그리 맛없지도 않았다.

다섯 번째 단계: 밥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다.

비록 어떠한 식품에도 집착하지 않았지만, 식사 시간이 올 때마다 먹고 싶고 배고픈 느낌이 있었다. 혼자 집에 있어도, 그리 배고프지 않아도 뭔가를 먹어야 했다. 이 역시 집착심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먹고 싶고 배고픈 느낌이 먹을 것을 장만하러 가도록 하기에 본연의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수련생이 “당신이 배가 고프다고 생각될 때는 진짜로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당신 몸속에 굶은 용이 한 마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배가 고프기에 뭘 먹고 싶어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한번은 내가 뭘 하고 있었던지 생각나지 않지만, 나 혼자 집에 있었다. 점심때가 다가오자 또 음식이 먹고 싶었고,배고픈 느낌이 들었다. 이때 수련생의 말이 생각나면서 배고픈 느낌이 즉시 사라졌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수련 전에 한 편의 문장을 보았던 생각이 났다. 한 사람이 실험했다. 비슷한 두 팀의 사람 중, 한 팀은 커튼을 열어놓은 방 안에서 활동하게 하고 휴대폰을 소지하게 했다. 다른 한 팀은 검은 커튼을 친 방 안에서 활동하게 하고 햇빛을 보지 못하게 했다. 전등은 있지만, 시계와 휴대폰은 없었다. 실험 결과 커튼을 열어놓은 방 안의 사람은 식사 시간이 되자 밥을 달라고 했으나, 어두운 방 안의 사람은 시간을 모르기에 끼니때가 여러 번 지나가도 밥을 먹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이는 배고픈 느낌은 사람의 사상과 관련이 있는데 바로 습관적인 사유임을 설명한다. 나는 밥에 대한 일종의 습관적인 집착이라고 생각한다. 배고픈 느낌은 여러 가지 식욕과 관련이 있음을 체험했다.

한때 또 한 가지 상태가 나타났다. 바로 배고픈 느낌이 들었다. 저녁 7시에 밥을 먹었는데 아침에 연공할 때 배가 고팠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밥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배가 텅 빈 느낌이었다. 밥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다면 밥을 먹지 않았다고 여길 수 있었다. 나는 ‘식욕’이 나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옆에 과자, 땅콩, 우유와 기타 식품이 있었지만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고 싶지 않았다. 정상적인 상태에 따라 밥을 먹었다.

여기서 말한 것은 식‘욕(欲)’으로서,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하는 ‘욕망’이지 정상적인 식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식욕에 대한 집착 제거에 관한 문장을 써내고 싶었지만, 사부님께서 이 방면에서 특별히 강조하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기에 써낼 필요성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수련생이 이 방면에서 속인과 같이 다양한 핑계로 먹고 마시는 데에 집착하는 것을 보고는 써내어 일깨워 주고자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9년 5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6/3860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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