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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기를 가로막는 ‘담장’을 제거하다

안으로 찾은 작은 깨달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여태껏 어떻게 안으로 찾는지 몰랐다. 안으로 찾으려면 스스로 설치한 그 ‘최저선’을 허물어야 했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여기에는 두 개 방면의 뜻이 있다. 하나는 법의 요구에 따라 ‘부득불’ 안으로 찾을 때 후천적으로 마음에 설치한 담장이 있는바 아무리 찾아도 담장 밖에서 찾은 것으로, 어떻게 해도 근본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 깨달았다고 생각하며 마치 수련에서 임무를 다한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행위와 심태를 조절하여 자신과 일에서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해내지 못했고, 심지어 다년간 돌파하지 못했으며 억울하고 이해가 안 된다는 마음이 생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양보는 ‘최저선’이 있고 자신의 잘못도 하한선이 있었다.

우리 가정의 일을 예로 들겠다. 나와 어머니는 1999년 전에 법을 얻었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어머니는 젊어서 아주 예뻤으며 가정에서 외동으로 효심이 많았다. 그 시대의 본과생이었던 어머니는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보려고 농촌에 내려갔고 그때 아버지와 결혼했다. 아버지의 가정환경, 외모, 흉금, 학식과 소양은 어머니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수련 후 아버지의 궤도를 벗어나는 일과 폭력, 책임감 없는 모습을 계속 참아냈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이러한 면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난폭한 성격과 어머니의 정의감을 물려받았다. 심지어 아버지를 무척 싫어했고 그의 극한에 다다른 허위와 이기적인 모습, 억지를 쓰는 모습, 스스로 존중받지 못하는 행동은 더욱 싫어했다. 가정의 분위기는 수십 년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억압적이었고 모순이 조화롭게 풀리지 않았다.

‘이치대로 말하면 어머니는 보도원으로서 수련을 잘했다고 할 수 있으며 아버지에게도 양보했고, 나도 늘 집에 있지 않는데 가정환경이 왜 잘 돌파되지 않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서야 깨달았는바 나와 어머니는 모두 잘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수련생인 어머니에 대해 말하겠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옳고 그름에 관해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여겼다. 어머니도 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말하기도 했다.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1],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2]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해냈으나, 수련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해낸 것이었다. ‘당신이 억지를 부려도 나는 수련인이므로 나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할 것이다. 당신과 견식을 같이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는 사실 뼛속에서 여전히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억지를 부리는 것은 상대방이고 결점이 있는 것도 상대방이라고 여겨 여전히 뿌리를 찾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설치한 ‘담장’ 밖에서 에돌고 있었으며 수련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화를 참았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는 습관적으로 양보하고 더는 억울함을 표현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폭행을 피하기 위해 연습하였으며, 아버지의 무리한요구를 모두들어주면서 자각하지 못했다. 겉보기에는 수련을 아주 잘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했으며 가정 모순은 여전히 일촉즉발이었다.

나에 대해 말해보자. 나는 이런 가정에서 성장했기에 속인의 ‘행복’과는 인연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있는 것이 부러웠다. 대부분의 성장 과정에서아버지는 없는 것과 같은 존재였고, 어머니는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었으며 ‘정’과 집착을 닦아버리기 위해 내게 주는 ‘모성애’와 관심은 매우 적었다. 다른 집의 어머니는 자녀의 기분과 음식, 옷에 관심을 두고 있었으나, 내 어머니는 여태껏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속인 중에서 빼어나기를 바라면서 또 신이 되고 부처가 되기를 바랐고, 내가 결혼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내가 법 공부하는 것 외에는 취미를 갖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늘 큰 도리로만 교육했다. 이로 인하여 한 발은 불문(佛門)에, 한 발은 세상에 두고 있는 나는 심한 억압을 느꼈다. 나는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그들이 자녀를 키워 노년을 대비하기 위한 존재가 되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급여를 나와 어머니가 모르게 했고 늘 우리에게서 돈을 가져가려 했다. 나는 내 얇은 어깨에 짊어져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느낌이었으며, 늘 억울하고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무척 대견하게 여겼다. 사악에 의해 불법적인 구금을 당한 후 중점 본과대학에 입학해 명문대학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부모에게 효도했고, 방값이 비싸도 전혀 부모님의 돈을 쓸 생각이 없었으며, 모든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해 부모에게 부담을 드리지 않았다. 아버지는정말내게 해주는것 없이 오직 내 효도만 바랐다. 나는 모든 마음을 쏟았으나, 늘 원망을 들었다. 나는나보다 더 잘하는 젊은이는 없다고 여겼다. 이는 나의 극한이며 나는 단지 이 정도까지만 감당할 수 있었다.

이런 고통은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올해 들어 나는 ‘수련인의 가정환경이 어찌하여 이런 모습일까? 화목할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나 많은 고통을 받고 나서야 마침내 깨달았다. 사실 나와 어머니는 내려놓지 못했다.

나는 겉으로는 효도하는 모습이었으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아버지를 얕보았으며 내게는 ‘최저선’이 있었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진실하지 못하며, 이기적이고 궤도를 벗어난 아버지를 존경할 가치가 있을까? 나는 지원과 사랑을 받지 못했고 그들이 수십 년 동안 나를 돌보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마음속에 후천적으로 형성된 ‘자아’의 담장이 있었고 부모님을 평가하는 나름대로의 표준이 있었다. 이 표준은 속인의 표준보다 훨씬 좋아 보이나, 수련의 표준은 오직 법이다. 법은 수련인에게 상대방이(수련생이든 속인이든)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평가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부모님이 이 정도까지 했으나, 나는 그 정도까지 했으니 아주 좋다. 나는 그들의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그들보다 훨씬 잘했다……’ 여전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원망하는 마음이었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3] 수련은 자신을 닦는 것으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잘하고 잘못하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안으로 찾으니 찾아야 할 것이 모두 자신의 문제였으며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다년간 화를 참고 삼키며 내가 불평하는 것을 묵인했다. 나도 이렇게 불평하는 것으로 어머니를 보호했다.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어째서 늘 아버지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여겼을까? 속인의 도덕관으로 보면 아버지는 확실히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우리도 마음에 걸림이 없게 해내지는 못했다. 아버지에게 양보하면 안 된단 말인가? 어째서 속으로 이 화를 삼키지 못할까?’

이런 것을 인식한 후에는 아버지가 다시 어머니를 무리하게 대할 때 오히려 아버지가 정말 아이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무슨 화를 낸단 말인가? 심지어는 그가 무척 가련했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어머니를 위해 불평할 때 어머니도 곁에서 우물쭈물(마음속으로 적합하지 않음을 알고 있음) 몇 마디 보충했는데, 나는 갑자기 다년간 줄곧 어머니를 지키려 했던 마음이 옳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어머니는 말할 때 홍위병이 보고하는 것 같아 ‘여자다운 맛’이 없었으며, 가정생활에 아주 잘 대처했다. 어머니는 아마 이 한을 수십 년간 진정으로 내려놓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와 교류했더니 언제나 반박했다. 나는 이후에 어머니와 함께 법 공부를 많이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상은 옅은 깨달음이다. 글로 적어 자신을 바로잡는 채찍으로 삼고 싶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사: ‘홍음 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경지(境界)’

 

원문발표: 2019년 5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15/3873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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