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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의 뿌리를 파내다-질투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주변의 여러 수련생이 원한심을 제거하지 못하여 여러 가지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나고 심지어 병업상태가 나타난 것을 보았는데 내가 근래에 원한심과 질투심을 제거한 경험을 써내어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사람에게 원한심이 생겼을 때, 처음부터 아무 연고 없이 원한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모두 한가지 전제가 있다. 사람들 속에서 남들이 자신에게 잘못한 합리적인 이유, 예를 들어, 나는 그를 그렇게 잘 대해주었는데 그는 오히려 이렇게 나를 대하고 있다. 나는 이 일에서 그렇게 많이 헌신했는데 그의 반응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나는 그에게 잘못한 일이 없는데 그는 오히려 나를 이렇게 대한다. 그가 한 그 일들이 나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다 등등이며 이로써 원한이 생긴다.

원한심이 일어났을 때 수련인으로서 역시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원한심을 닦아내려고 하며 이런 좋지 못한 사상을 억제하려고 한다. 법공부와 발정념을 통해 원한심은 확실히 적지 않게 제거되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또 튀어나오고 자신에 대한 남의 불공평을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또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또 원한이 일어나며 이렇게 반복된다. 사실 나는 이것이 아직 수련의 착실함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원한의 뿌리인 질투를 진정으로 파내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이 질투를 말할 때면 늘 마음이 좁은 일종의 표현으로 여겨지고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여 질투심이 일어날 때 늘 모두 쟁투심, 불만, 원한심으로 덮어버리기에 실질을 파내지 못하여 수련자는 장기간 한 개의 상태에서 나오지 못하게 된다.

나는 초기에 질투심에 대해 인식이 아주 옅었고 남이 나보다 강하면 질투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질투는 쉽게 발견한다.

나는 최근에 ‘전법륜-질투심’을 외울 때 사존께서는 나에게 한가지 법리를 알게 해 주셨다. 질투심의 한가지 선명한 표현은 바로 마음이 평형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사존께서는 ‘질투심’에서 6번이나 “마음이 평형을 잡지 못한다.”를 말씀하셨다. 그 전에 나도 질투심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최근에 자신의 상태를 결합하여 나는 나의 문제의 엄중성을 의식하게 되었고 나는 문득 아주 놀랐다. “질투심 이 문제는 아주 엄중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우리가 수련하여 원만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에 연관되기 때문이다.”[1] “여기에 한 가지 규정이 있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 여러분은 아마 과거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대업왕생(帶業往生)을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겠지만,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방면에서는 좀 부족하더라도 조그마한 것은 대업왕생하여 다시 수련하는, 그것은 될 수 있지만,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고는 절대 안 된다.”[1] 이는 기타 마음과 다르고 이는 원만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직접 연관된다!

사존께서는 법 속에서 악자(惡者), 선자(善者), 각자(覺者) 세 가지 경지를 말씀하셨다. 사존께서는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2]고 명확히 지적하셨다. 전에는 사존의 이 한마디에 대해서 아주 중시했었고 매번 모순에 부딪혔을 때 특히 남들과 분쟁이 발생했을 때 나는 이 한마디 말로 자신을 지도했고 마음을 조정했으며 최대한 자신의 내심을 평화로움에 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나는 최근에 또 ‘질투심’을 외울 때, 질투심의 선명한 표현이 바로 “마음이 평형을 잡지 못한다”를 인식했을 때 나는 단번에 마음이 탁 틔었다. 나는 내가 평소에 각종 화를 내는 근원이 모두 “마음이 평형을 잡지 못한다”와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 자신의 각종 사심이 만족을 얻지 못함으로써 화가 나고 불평을 부린다. 이어서 원망하고 불만을 느끼고 쟁투하는 등이다. 이런 마음은 이전에 질투심과 연결하기 매우 어려웠는데 “마음이 평형을 잡지 못한다”는 단번에 평소 아주 많은 나의 좋지 못한 집착심을 질투심과 연결하여 주었고 마치 나를 맹렬하게 때려주는 것 같았다.

아침에 나는 식사를 마친 후 두유를 그릇에 담아 두면 딸애가 마실 때 식을까 봐 걱정되어 두유를 두유기에 넣어 놓았다. 그러나 딸애는 마신 후 두유기를 물에 불려 놓았다. 두유기를 닦으면서 나는 마음이 평형을 잡지 못했다. “내가 너에게 다 만들어주었는데 너는 설거지도 하지 않는구나.” 비록 입으로는 말하지 않고 참았지만,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 나는 마음이 평형을 잡지 못함에 깜짝 놀랐다. 이것이 질투구나. 만약 아래로 발전해나가면 그것은 원망이고 가능하게 싸우게 되고 이어서 원한이 생긴다.

점심때 나는 남편과 같이 밥상에 앉아 식사하려는데 내가 앉기도 전에 그는 나에게 고추를 가져오라고 하여 나는 고추를 가져갔고 그는 또 나에게 식초를 가져오라고 했다. 이때 나는 마음이 평형을 잡지 못했고 마음속으로 “내가 밥까지 다 했는데 당신은 또 사람에게 심부름을 시키는가”라고 투덜거렸다. 나는 앉아서 말하지 않고 밥만 먹었고 남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비록 싸우지 않고 참았지만 필경 마음이 평형을 잡지 못했고 숨은 화를 냈고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므로 한사코 참는 것은 안 되고 먼저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내가 반드시 그에게 식초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당시 마음이 평형을 잃지 않았다면, 이런 표현일 것인데 웃으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제가 조금 지쳤는데 당신이 가져와요.”

이렇게 보면 질투심은 생활 곳곳에서 모두 체현되는 것이다. 내가 만약 평소에 이런 작은 일도 넘어가지 못한다면 큰일은 더욱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근데 나는 진짜로 작은 일도 착실하게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에 나는 저축한 돈으로 친정어머니에게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사드렸다. 그러나 나의 남동생은 조금도 표시가 없었고 나는 이로 인해 마음속으로 투덜거렸고 마음이 평형을 잡지 못했고 또 돈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1] 나는 진짜로 이러하다는 것을 느끼는데 평소에 자신이 이익에 대해 비교적 담담하게 본다고 느꼈는데 지금 질투심을 제거하지 않아 이익의 마음도 아주 취약하게 변해 계산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남동생에 대해 일부 불만이 생기자 가정에서도 마찰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어머니도 남동생에 대해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자신의 이런 상태가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는데 평형을 잡지 못하는 이 마음을 누를 수 없었고 아주 고뇌했다. 나는 매번 관을 넘지 못할 때 모두 법공부를 하면서 넘어왔기 때문에 급히 앉아서 법공부를 했다. 그 당시 나는 ‘전법륜-누가 연공(煉功)하면 바로 그가 공(功)을 얻는다’를 외우고 있었고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속인은 속인사회에 미혹되어 현실이익 앞에서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1] 나는 내가 속인이 아니기에 미혹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마음은 단번에 평화로워졌다.

그러나 이틀 지나서 이 마음은 또 올라왔고 나는 또 “그는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여기고 사람들과 관계를 바로잡으며, 心性(씬씽)을 지키고, 끊임없이 心性(씬씽)을 제고해 속인의 각종 이익의 유혹에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1]를 외웠다. 나는 남동생과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연공인이고 그는 속인이고 높은 곳에 서서 보아야 하고 우리는 자비와 구도의 관계인데 그와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더니 나의 마음은 또 평화로워졌다.

그러나 이틀 지나서 이 마음이 또 올라왔고 나는 또 법을 외웠다. 내가 이익이란 이 이상한 틀에서 뛰쳐나오지 못했을 때 사존께서는 다른 한 각도에서 나는 깨우쳐 주셨고 나는 나의 사유가 사존의 한 점 한 점의 인도하에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이 한 가지 일에서 내가 생생세세 고생한 것과 비기면 아무것도 아님을 느꼈다. 그러나 남동생은 생활의 압력 때문에 비로소 이렇게 되었는데 나는 갑자기 그가 아주 가련하다고 느껴졌다.

됐다. 이 한 개 관, 이 한 개 난, 이 한 개의 마음 매듭도 풀렸다. 나의 사유도 내가 알고 있는 일부 법리와 연결되었다. 사실 누가 우리 마음이 평형을 잡지 못하게 하더라도 모두 우리에게 자신의 단점을 발견하게 하기 위함이고 우리의 수련을 위한 것이고 이로써 우리를 성취시키는 계단이지만, 그들이 이 속에서의 표현은 오히려 이기적이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선의 높은 경지에 도달했을 때 진짜로 아무 원한이 없을 때 그들은 아주 가련하다고 느껴지게 된다. 우리를 단련시키는 이런 중생에게 마땅히 감사드려야 한다.

최근에 나는 깨달은 것이 있는데 평소에 나의 마음 씀씀이가 아주 작고, 걸핏하면 작은 일 때문에 불만이 생기고 투덜거리는데 사실 모두 질투심이 장난치는 것이었다.

다시 지금 형세를 보면 질투가 트랜드가 되어 아주 유행되는 한마디가 ‘부러움, 질투, 한’이다. 속인들도 이런 사유의 연쇄반응을 모두 의식하고 있고 질투는 이미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가끔 두 사람이 함께 있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투덜거리기 시작하는데 평소에 걸핏하면 화를 내는 수련생들은 자신의 내심을 한번 자세히 찾아보아야 한다. 마음이 평형을 잡지 못하여 잇달아 눈에 거슬리게 되고 깔보게 되며 원망하고 쟁투하며 억울하고 이어서 원한이 생기는 것이 아닌지, 각성해야 한다. “오늘 내가 연공인(煉功人)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렇게 잘못을 고집하여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도달하려고 하는 목적은 더욱 높은 층차의 수련으로서, 질투심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단독으로 내놓고 말한다.”[1]

질투심에는 또 한 가지 표현이 있는데, 수련생 사이에 모두 수련인이기 때문에 속인과 비기면 기타 집착심은 모두 비교적 옅다. 매 개인은 자신의 수련층차에서 또 다소 깨달음이 있고 다른 수련생이 어느 방면에서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은 것을 보았을 때 깔보고 불만족해 하고 기 싸움을 한다. 수련생 사이에 질투심으로 조성된 간격이 수시로 발생하는데 질투심은 또 수련자의 심태가 장기간 평화로움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여 정체적 힘이 내부적 소모에서 쇠약해진다. 하여 가끔은 쟁투심이 일어날 때 마음을 검사해 보아야 하는데, 불만족하는 지를 찾아보아야 하는데 사실은 여전히 질투이다. 평소에 모두 이런 심태를 다른 집착심으로 귀납하여 중시하지 않으면 어물쩍 넘어가게 된다. 물론 만약 평소에 쟁투심 등에 대해 착실하게 수련했다면 질투심은 상응하게 가볍다.

진짜로 일사일념을 잡고 작은 일에서부터 행하여 좋지 못한 사유, 습관이 어물쩍 넘어가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단지 나의 이 한 층차에서의 깨달음으로 적절치 못한 곳은 수련생들이 시정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지’

 

원문발표: 2019년 5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3/3858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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