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아들이 법을 얻은 전후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1년의 수련 중 사존께서 나를 위해 얼마나 감당하셨는지 모른다. 나를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 하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베푸심과 가호가 있었기에 나는 가정의 시련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고 신으로 수련 성취하는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었다. 사부님에 대한 감사가 너무 많아 어디에서부터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최근 2년간 나와 아들 사이의 심성 마찰과 아들이 법을 얻은 전후에 심경의 변화다. 법리에 맞지 않는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1. 아들과의 간격과 마찰

2014년 1월 6일 남편과 이혼하고 5만 위안(약 8백만 원)의 빚까지 있었다. 통장에는 몇천 위안(약 몇십만 원)밖에 없었다. 이혼한 후 살 집이 없어서(당시 아들은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외지에 일하러 갔음) 친정에 가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130제곱미터(50평형)가 넘는 큰 집에서 살다가 졸지에 1/3도 안 되는 집으로 들어와 저녁에 소파에서 자려니 자신도 모르게 서글펐다.

어려운 시기에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加持)와 수련생의 도움으로 내 수련환경은 조금씩 바로잡혔고 매일 법공부를 하고 연공해 안정적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주위의 일체를 대할 수 있었다. 나는 완전히 환골탈태했다.

2016년 7월 말, 아들이 갑자기 베이징에서 사직하고 돌아와 다른 직장을 찾겠다고 했다. 그런데 주택이 문제가 됐다.(이혼한 후 전 남편은 새로운 가정이 생겼고 아들은 줄곧 아버지와 왕래가 없었음) 친정은 집이 너무 작아 아들이 들어오자 매우 비좁아 내가 연공하고 법공부를 하는 데 불편했다. 아들은 본성은 나쁘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소통하기 싫어했고 매우 냉담했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집에 돌아오지 않았기에 더욱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다. 아들과 말하면 마치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속으로 뭘 생각하는지 모른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한 번도 부모에게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들이 베이징에서 돌아온 후 비록 한 집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예전처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와 말도 별로 하지 않았으며 이후의 계획에 대해 더욱 말이 없었다. 아들이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저녁 무렵, 나는 아들과 소통을 시도했다. “지금 우리 둘이 모두 외가에 살고 있는데 매우 불편하구나. 네 아버지와 이혼한 지도 3년이 되어 가는데 이 기간에 밖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두 몫의 월급을 탔어. 절약해서 돈을 좀 모았는데 좀 큰 중고 주택을 살 수 있단다. 하지만 리모델링 비용이 좀 부족해.” 아들은 휴대폰을 갖고 놀면서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삽시간에 내 마음은 매우 서글펐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아들이 조용히 말했다. “제게 7만 위안(약 1300만 원)의 저금이 있어요. 계좌를 주시면 이체해드릴게요. 어떻게 쓰셔도 상관없어요.” 그리고 다시 말이 없었다.

아들의 큰돈을 받고 만감이 교차했다. 중요한 고비에 아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들은 2009년 9월에 베이징에서 전문학교에 다니고 졸업한 후 현지에서 직업을 구한 후 집으로 돈 한 푼 보내지 않았고 집에서 돈 한 푼 가져가지도 않았다. 해마다 집에 한 번 들르는데 바쁘게 오갔다. 스스로 집에 전화하는 일이 없었고 매번 전화를 걸면 늘 귀찮아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요?” 그리고 내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기 일쑤였는데 기본적인 예의조차 모른다. 나는 늘 아들과 전생에서 무슨 인연이 있었을까 생각했는데 갑자기 아들이 돈을 이렇게 많이 주니 이런 심정은 가히 상상이 갈 것이다.

뒤이어 단번에 들떴고 속인의 마음이 모두 올라왔다. 아들이 돌아오자 의지할 곳이 생긴 것 같았고 번듯한 직장을 구해 돈을 좀 많이 벌어 집을 사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장 좋기는 좀 큰 회사에 취직해 날 먹여주고 재워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아무튼 아들이 남보다 뛰어나길 바랐고 조상을 빛내고 나도 기를 폈으면 좋겠다는 등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와 아들 사이의 간격은 아들이 돈을 주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다. 반대로 아들은 더는 나를 아는 체 하지 않았다. 매일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휴대폰을 갖고 놀며 늦잠을 자면서 직장을 알아보러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말을 못하게 했다.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말해 봐도 말만 하면 화를 냈다. 나는 혼자 안팎으로 바빴다. 어머니도 돌봐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며 밖에서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다. 하는 일 없이 한가한 아들을 보면 마음 속 스트레스가 매우 심했고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하지만 자신은 수련인임을 생각하고 참고 화를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매우 괴로웠다. 아들이 나가서 일을 하기만 바랐다. 하다못해 막노동을 해도 마음이 조금 편해질 것 같았다. 아들이 계속 이런다면 집을 사기는 고사하고 밥을 먹는 것도 문제가 된다. 나는 매일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저녁에 잠도 잘 못 잤다. 아! 내 팔자는 왜 이렇게 고생스러울까! 50여 세에 이혼한데다가 집도 없고 아들은 또 성취욕이 없구나. 늘 아들과 잘 소통해볼 생각을 하지만 아들은 내 생각을 존중하지 않았다.

어느 날 차분하고 부드럽게 아들에게 말했다. “밖에 사람을 모집하는 데가 많은 데 왜 지원하지 않냐?” “안 해!” 나는 이어서 말했다. “네 아버지 직장에서도 직원을 모집하던데 가서 신청만 하면 거의 채용될 수 있는데……” 아들이 반문했다. “무엇 때문에 아버지 직장에 가야 해요? 내가 아버지 직장에 가서 뭘 해요?” 나는 단번에 언성을 높였다. “내가 계속 너를 먹여 살릴 순 없잖아! 나가서 아무 일이나 좀 찾아서 해. 일당을 하든지 막노동을 하든지 집에서 빈둥거리지 마!” 아들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난 어머니의 것을 먹고 입고 쓸래! 어쩔 건데?!”

이와 비슷한 상황이 몇 번이나 발생했는데 서로 간에 수습이 안 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깨닫지 못했다. 안으로 찾을 줄도 모르고 더욱더 심하게 기회만 있으며 아들과 이치를 따졌다. 그러다 한 번은 아들의 마성이 폭발했다. 집안의 물건을 마구 집어 던지고 냉장고도 넘어뜨렸는데 그 안에 있던 반찬과 그릇이 온 바닥에 굴렀다. 이를 본 어머니께서 나에게 욕을 하셨다. “너네 몽땅 꺼져, 내 집에 있지 마!” 이후에 둘째 언니가 어머니를 보러 왔다가 이 상황을 보고 끼어들어 어머니 편에 서서 나를 호되게 나무랐다. 모두 내가 아들을 잘 가르치지 못했다고 했다. 한 동안 집안이 소란스럽고 불안했다.

욕을 먹은 나는 단번에 깨어나 홀연 조용해졌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찌된 일이지? 수련인으로서 옳은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으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아들이 이렇게 된 데는 모두 자신의 집착심이 촉성한 것이 아닌가? 며칠 조용한 날을 지냈다고 환희심이 생기다니, 자신이 이미 매우 잘 수련했다고 생각하는가?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싶은가? 전철을 다시 밟아 새로운 고난을 만들고 싶은가?

2. 내가 변하자 아들이 변하고 환경도 변하다

그 후, 겉으로는 아들과 다투지 않았지만 아들을 향한 정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했다. 밤이 깊을 때 자신의 수련 노정을 돌이켜보면 자신이 경험한 난은 모두 착실히 수련하지 않고 정에 집착해 구세력이 빈틈을 타서 조성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전 남편과 늘 다투었는데 지금은 집도 하나 없다. 아들에게 가정의 따뜻함과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하지 못했고 매일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워 아들의 잘못을 지적했다. 늘 아들의 운명을 좌우하려 했다. 나는 왜 수련인답게 자비롭게 아들을 대하지 못하고 오히려 속인처럼 아들이 냉담하고 불효하다고 원망했는가? 아들이 짜증이 안 나겠는가? 사실 이러한 것은 모두 아들에 대한 정의 집착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오로지 법공부를 잘하고 착실하게 수련해 세 가지 일을 잘해야만 자신의 마음의 매듭을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고 조금씩 안으로 찾고 집착을 발견하면 제거하면서 법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승화했다.

사부님께서 법 속에서 말씀하셨다. “수련은 곧 이 마난(魔難) 중에서 수련해야 하며, 당신이 칠정육욕을 끊어버릴 수 있는가 없는가, 담담히 여길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이 그런 것들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수련해 내지 못한다. 어떤 일이든지 모두 인연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사람은 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바로 사람에게는 정(情)이 있으며, 사람은 바로 이 정을 위해서 산다. 육친정ㆍ남녀지정ㆍ부모지정ㆍ감정ㆍ우정, 매사에 정분(情份)을 중시하며, 곳곳마다 이 정을 떠날 수 없다.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사랑과 미움, 전반 인류사회의 모든 것이 전부 이 정(情)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또 이런 정황을 보게 된다: 한 사람이 태어날(降生) 때, 특정한 공간 중에는 그의 일생의 존재형식이 모두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생명이 어느 한 부분에 와서는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모두 그 속에 있다. 누가 그의 일생을 안배하는가? 아주 분명한데, 바로 더욱 고급적인 생명이 이런 일을 한다. 예를 들어 말하면, 우리가 속인사회 중에서 그가 출생한 후, 이 집에 그가 있고, 학교에 그가 있으며, 또는 성장하여 직장에 그가 있어, 그의 일을 통해 사회와 다방면으로 연계를 맺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전반 사회의 구성은 모두 이렇게 배치가 잘 된 것이다.”[1]

사부님의 법 속에서 깊이 깨달았다. 자신에게 생겨난 이러한 명리심, 이기심, 안일심, 원망심, 불평은 전부 아들에 대한 정에서 오는 것으로, 모든 정에 대한 집착을 내려놔야만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할 수 있고 공성원만(功成圓滿)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여전히 사람의 생각을 고수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 고비를 넘을 수 없다. 법 속에서 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사회 사이에 모두 인연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의 일생은 모두 다 정해놓은 것이 아닌가? 나는 무엇 때문에 속인과 마찬가지로 아들의 일체를 배치하는 데에 집착하는가? 이는 분명히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단번에 깨달았다. 아들이 무엇 때문에 나를 거들떠보지 않는지. 사실 모두 내 집착심을 겨냥해서 온 것이다.

이때부터 아들이 어떻게 나를 무시해도 나는 화내지 않았다. 매일 아들은 내 거울과 같았다. 나는 자신의 부족한 점만 찾고 자신을 닦았다. 오로지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아들을 개변할 수 있다. 서서히 아들에게 매우 많은 장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아들은 매우 진실했다. 호언장담을 안 하고 술 담배를 하지 않으며 매우 절약했다. 외할머니에게도 잘했다.

내가 바뀜에 따라 아들과의 긴장했던 관계도 차츰 완화됐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 하에 2016년 말에 만족스러운 주택을 살 수 있었다. 새집을 리모델링한 후 2017년 설 임박에 나와 아들은 드디어 새집에 들어갔다. 아들이 가장 기뻐했다. 그 기간에 아들은 늘 청소에 바빴고 웃음도 늘었다. 새집 인테리어에 5천 위안(약 90만 원)이 부족했다. 아들은 나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서 돈을 빌리지 마세요. 제게 5천 위안이 더 있으니 가져다 쓰세요!”

아들은 여전히 나와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간격은 많이 사라졌다. 이때도 아들에게 직장을 알아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설을 쇠고 얼마 안 되어, 즉 2017년 2월 말에 아들이 갑자기 직장을 찾았다고 전화를 했다. 현지의 5성급 호텔에 취직했는데 먹여주고 재워주며 대우도 괜찮았다. 3월 1일에 정식 출근이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마음이 매우 평온했다. 격동하거나 흥분하지 않았지만 눈물이 솟았다. 애를 써서야 눈물을 통제할 수 있었다. 아들은 백수로 집에서 7개월을 지냈다. 7개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나는 감개무량했다. 그 속에서 제고해 올라올 수 있었는데 그럼 좋은 일이 된 것이 아닌가?

3. 아들이 법을 얻다

사부님께서 ‘2016년 뉴욕법회 설법’ 중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이 나이를 계산해 보니, 내가 법을 전할 때부터 현재까지, 25세 전후의 이런 젊은이들인데, 정말 아직도 많은 사람이 구도 받지 못했다. 모두 신이 온 것이며, 그들은 지상에 내려와, 전 세계 각지에 분산되어 있다. 어떤 이는 사람이 되려 했으나 되지 못했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의 몸이 없었기에, 동물이 되고 식물이 되었다. 왜 오늘날의 사회는 이 동식물 보호에 대한 요구가 그렇게 높은 것인지, 이 몇 년 동안, 모두 원인이 있으며, 신이 배치하고 이끌고 있는 것으로, 이런 일을 똑똑히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지만, 모두 간단하지 않다.”[2]

매번 사부님의 이 단락의 법을 읽거나 생각나면 내 마음은 매우 무겁다. 왜냐하면 아들은 1991년에 태어났는데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대법을 얻기 위해 온 것이다. 아들은 비록 내 대법수련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가 진상을 얼마나 알아서가 아니다. 다만 나에 대해 관심이 없는 데에 습관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일도 물어보지 못하게 한다. 매우 부끄럽지만, 우리 사이가 화목하지 못하기에 아들에게 진상을 알릴 기회가 아예 없었다. 나는 매일 사람을 구한다. 사람을 구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지만 자신의 아들조차 진상을 모르는데 어떻게 말이 되는가? 그리하여 이 일에 관해 수련생과 교류했다. 많은 수련생이 나에게 아들을 향해 발정념하고 가정 관계를 잘 평형시키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나는 매일 발정념을 해 배후에서 아들이 진상을 아는 것을 방해하는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깨끗이 청리했다. 어떤 때는 아들을 이끌어 NTD TV를 보게 하고 일부 속인이 성심껏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해서 복을 받은 예를 들어 주었다. 기회만 있으면 아들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아들은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낙심하지 않고 계속 할 일들을 했다.

2017년 설 명절이 지난 후 뚜렷한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한 학교에 등록하러 갔는데 한 책상 위에 이미 작성해 놓은 서류가 있었다. 그 속에서 한 장을 꺼내보니 아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고 개인 신상이 쓰여 있었다. 꿈 속에서도 생각했다. 아들과 한 학교에 다닌단 말인가? 잠시 후 깨어났다. 이 꿈은 무엇을 알려주려는 것이지? 반나절이 지나도 알 수 없었지만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 번도 아들이 법을 얻어 수련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시 가장 큰 소원은 아들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내심에서 내 수련을 지지하고 ‘전법륜’을 한 번 통독하면 매우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그리하여 이 꿈을 꾸었을 때에도 아들이 나와 한 학교에 다니는 것은 사실 동일한 대법을 수련한다는, 즉 아들이 법을 얻으려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 꿈을 꾼 이튿날 아들은 일자리를 찾았고 나는 이 꿈은 아들이 좋게 변해 직장을 다닐 것임을 알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아들은 직장을 다니고 또 새집에 들어 자신만의 방이 생기자 기분도 좋아졌다. 어떤 때는 업무 중의 일부 일도 나와 말하곤 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나는 자연히 아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처음에는 별로 듣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며칠에 한 번씩 NTD TV도 보고 어떤 때는 파룬궁의 일부 일도 물어보곤 했다. 하지만 아들의 변화가 가장 큰 것은 2018년 말 어느 저녁이었다. 그날 아들은 거실에서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갑자기 나와 말하기 좋아했다. 직장의 일부 상황을 말하고 자신의 일부 생각도 말했다. 그날 우리는 매우 많은 말을 했다. 이전에 아들은 한 번도 자발적으로 나와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물어봐야 대답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섯 마디를 넘기지 않았다. 이때 화제를 다시 파룬궁으로 돌리고 사부님의 ‘2016년 뉴욕법회 설법’의 일부 내용을 들려주었다. 아들은 감회가 깊었다. 듣기 좋아하는 것을 보고 “곧 설인데 금년에는 션윈을 보거라. 중앙방송의 특별프로그램을 보지 말렴”이라고 말했다. 아들은 “좋아요!”라고 대답했다.

아들은 그믐날 션윈 공연을 보고 나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예의도 바르고 예전처럼 냉담하지도 않았으며 나와의 간격도 거의 사라졌다. 내 두 언니도 아들이 변했다고 말했다.

2018년 5월 10일 저녁, 거실에서 사부님의 광저우 설법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서재에서 컴퓨터로 회계 과목을 배우던 아들이 갑자기 거실 소파에 엎드려 휴대폰으로 수업을 받다가 갑자기 물었다. “연공은 반드시 매일 해야 하나요?” “원칙은 매일 하는데 특수 상황은 예외란다. 아니면 너도 와서 사부님의 설법 동영상을 보렴. 보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된단다.” 아들이 말했다. “그럼 내일 어머니와 함께 봐요!”

5월 10일부터 아들과 매일 사부님의 광저우 설법 동영상을 1강씩 보았다. 9일 후 또 3일을 이용해 ‘전법륜’을 한 번 보고 아들에게 말했다. “내일은 5월 22일 음력으로 4월 초 8일인데 사부님의 생일이야. 너는 이날부터 정식으로 대법을 수련하렴!” 아들은 두말없이 승낙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연공을 끝내고 아들과 함께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 이날부터 아들은 매일 퇴근한 후 ‘전법륜’ 한 강을 배웠다. 그리고 사부님의 연공 동영상을 따라 5장 공법을 배웠다. 며칠이 지나자 연공 동작을 거의 다 배웠다.

이렇게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배운 지 며칠 지난 후 아들에게 아침 연공을 하게 하려는데 5월 25일 어머니가 갑자기 위독해지셨다(어머니는 노인성 치매에 걸린 지 거의 1년이 되었음). 이날 저녁 아들과 언니, 형부와 함께 어머니를 30km 떨어진 시골에 모셔갔다. 모든 배치가 끝나자 형부가 나에게 말했다. “이 몇 년 동안 어머니를 모시느라 고생했네. 시골에 이 많은 사람이 묵을 수 없으니 자네는 아들과 먼저 차를 타고 돌아가게. 오늘 저녁은 나와 자네 언니가 어머니를 돌볼게.”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밤 12시 발정념 시간이었다. 이튿날 아침 7시 연공과 발정념을 끝내자 언니와 형부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머니께서 이미 세상을 뜨셨고 장례는 시골에서 치르기로 했다. 5월 26일 나와 아들은 집과 시골을 오갔다. 길이 멀고 차편이 불편해 저녁 6시 이후에는 버스가 없었고 택시도 매우 적었다. 다행인 것은 그날 저녁 어렵게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해 법공부하고 밤 12시 발정념을 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생각했다. 아들이 금방 법을 얻었는데 만약 잘 이끌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수련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하여 정중하게 아들에게 말했다. “수련은 매우 엄숙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건성으로 하면 안 돼. 요 며칠은 너에 대한 시험이기도 해. 만약 정말로 수련하려면 반드시 확고하게 수련하고 견지해야 해! 요 며칠 우리는 법공부와 연공에 지장을 줘서도 안 되고 또 속인 사회에 부합해 효자도 되어야 해.”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나요?” 아들이 물었다. 나는 말했다. “사부님께 요청을 드리자꾸나. 우리에게 마음만 있으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를 해주실 거야.”

이틀 후 우리집에 외지에서 장례식에 참가한 친척 몇 명이 왔다. 거실에도 사람이 있어서 나와 아들은 법공부와 연공이 모두 불편했다. 그리하여 아들과 함께 서재에서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며 사부님께 향을 올렸다. 그 며칠 아무리 바빠도 제때에 집에 돌아와 아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하고 나서 잤다. 이렇게 사부님의 교묘한 배치 하에 그 며칠 법공부와 연공에 지장이 없었다. 바로 이런 견지가 있었기에 아들이 평온하고 순조롭게 대법 수련에 들어올 수 있었다.

4. 아들이 수련한 후 심신의 변화

6월 초에 아들은 기본상 속인의 게임을 끊어버렸고 속인의 텔레비전을 안 보며 속인의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았다. 휴대폰 게임을 하지 않고 출근하든 집에서 쉬던 매일 아침 3시 50분에 나와 함께 아침 연공을 한다. 비록 결가부좌는 아직 할 수 없지만 5장 공법을 단번에 다 배웠다. 발정념을 끝내고 함께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 각 지역 설법을 배우고 7시쯤에 출근한다. 직장에 가서도 동료들에게 진상을 알리려 시도했다. 아들은 사이가 비교적 좋은 동료에게 삼퇴를 권하기 위해 새 노트북에 ‘9평공산당’, ‘위화(僞火)’, ‘풍우천지행(風雨天地行)’,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등 진상 동영상을 넣어서 동료에게 빌려주었다. 동료는 동영상을 보고 나서 감동했고 공청단과 소선대(공산당의 관련 조직)에서 탈퇴했다. 매일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면 아들은 ‘전법륜’을 1~2강 배우고 시간이 있으면 나와 수련체험을 교류한다. 그리고 발정념하고 잔다. 매일 이러했다.

아들은 수련한 지 얼마 안 되어 대법 속에서 매우 많은 것을 얻었다. 이전에 위장이 불편하고 기침을 잘했는데 모두 사라졌다. 누렇던 얼굴도 불그레해졌다. 대법은 아들에게 건강한 신체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되는 이치도 배우게 했다. 이전에 사람을 본체만체 하고 이기적이고 냉담했으며 집에 손님이 오는 것을 싫어했고 손님을 보고 인사도 할 줄 몰랐다. 가족을 배려할 줄 몰라 설이나 명절 때 내가 크고 작은 보따리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도 못 본 것처럼 도와주지 않았다. 지금은 늘 웃음을 머금고 손님이 오면 자발적으로 인사하고 내가 집으로 물건을 사오는 줄 알면 아무리 멀어도 가서 들어다 주었다.

아들은 이미 10년 넘게 어머니라 부르지 않았고 우리 둘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들은 어머니라 부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듣는 소리에 매우 기쁘고 위안이 됐다.

오늘까지(주: 본문은 2018년 9월에 완성했다) 아들은 4개월을 수련했다. 앞 전 시기에 여러 가지 교란이 매우 커서 법공부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고 게다가 강렬한 쟁투심과 색욕심이 있어서 아침 연공 때에도 조용해지지 않아 아들은 매우 고민했다. 하지만 사부님의 가지 하에 아들은 ‘홍음’과 ‘논어’ 외우기를 견지했다. 어느 날 저녁 아들은 ‘논어’를 연속 열 몇 번 외웠다. 갑자기 ‘전법륜’ 책 속의 사부님의 법상(法像)이 금빛으로 번쩍이더니 붉은색, 푸른색, 녹색, 금색, 오색이 영롱했다. 이어서 사부님께서 열 몇 가지 수인(手印) 동작을 하셨고 잠시 후 사라지셨다. 아들은 생각했다. ‘저에게 한 번만 더 보여주십시오!’ 그러자 사부님은 또 아들에게 한 번 더 보여주셨다. 삽시간에 아들은 놀람과 기쁨으로 가득 찼고 이때부터 수련의 길에서 다시 신심이 생겼다.

사존께서 나와 아들에게 주신 일체에 감사드립니다. 오로지 정진하고 착실하게 수련해야만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4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13/383813.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