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올해 명절, 나와 수련생은 법공부 후 저녁을 먹고 설거지할 때, ‘경추병’ 증상이 나타났다. 느낌에 목뼈가 아프고 어깨관절이 시큰둥하고 머리가 무거웠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수련 전 병원에서 찍은 목뼈 사진은 전체가 구부러졌고 정상 방향과 반대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병에 관련된 법이 떠올랐다. “그러나 검은 기는 병을 조성하는 근본 원인이 아니며, 더욱 깊은 한 공간 중에 그런 영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내보낸 이 장(場)이다.”[1] “무슨 요추추간판탈출증, 골질증식도 당신이 그것을 떼어버리고 그 장(場)을 쳐서 내보내면 당신은 즉시 나아지는 것을 발견한다. 당신이 다시 X선 사진을 찍어보면 아무런 골질증식도 없는데,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그것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다.”[1]
지금 나타난 경추병 증상을 나는 어떻게 정확하게 인식해야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전에 이곳에 영체가 있었는데 사부님께서 이미 청리해 주셨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 여기의 공산 사령이든 아니면 구세력이든 아니면 무엇이든 모두 청리한다! 나의 어떤 한 층차 공간에 사악한 것, 악한 것, 법에 부합되지 않는 영체가 존재하는 것을 모두 청리한다! 이 생각은 간단하고 확고하다. 곧 나의 불편한 증상이 약해졌고 사라졌다. 지금까지 불편한 적이 없고 나중에도 절대 있을 수 없다. 사령은 나의 정념을 보고, 죽으려고 감히 오겠는가?
이번에 내 생각이 바르다고 인식했고 잘했다고 생각했다. 대법의 신기함과 정념의 위력을 느꼈고 대법에 대한 나의 확고함과 신심이 더욱 높아졌다. 내가 이상 쓴 것은 모두 그때 생각과 한 행동을 환원한 것이다. 나중에 나와 주변 수련생과 이 일을 교류할 때 나의 일부 반성과 안으로 찾는 것을 촉진하였다.
불편한 증상이 나타난 그 시각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선택을 한 것이 관건이고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그 시각 사부님께서 보고 계시고 구세력도 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정념으로 인식하는가를 보시고, 그것을 가지는가, 그것을 부정하는가를 보시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당신이 병이 없다는 것을 믿는가를 보신다. 당신이 믿으면 사부님께서 즉시 당신을 위해 교란을 청리해 주신다. 동시에 구세력도 보고 있고 구세력은 당신이 그것은 인정하는가를 보고 있고, 그것을 변칙적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배척하지 않는가를 보고, 겉으로 그것은 모두 가상이라고 말하거나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거나 하면 그것은 그곳에 존재할 수 있다.
어떤 수련자는 흔히 사부님을 보고 있다. 어떤 불편한 증상이 모두 사라져야 나는 병이 없다는 것을 믿고 비로소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를 정화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흔히 불편한 증상이 있으면 좀 흔들린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왜 병업 교란을 타파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교란을 배척하지 못하고 심지어 생명을 잃어버리는가? 그것은 완전히 자기 생각과 인식에 따라 결정된다. 왜냐하면, 인식과 믿음 정도가 다르기에 흔히 결과도 다르다.
그러나 정확한 인식과 생각이 있으려면 착실하게 수련해야 하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법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병에 관한 법을 이해하고 깨달아야 한다. 사람이 왜 병이 있는가? 사람은 왜 그것을 병이라고 하는가? 수련자는 왜 병이 없는가? 병이 생긴 원인은 무엇인가? 병의 진상은 무엇인가? 지금 몸에서 반영되는 각종 불편함을 어떻게 보는가? 왜 가상이라고 하는가? 자신의 어느 사상이 이런 가상 교란을 불러왔는가? 등 문제를 알아야 한다. 겉으로 부정할 줄 알고, 가상과 진정으로 법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청리하는 힘이 다르다.
나는 계속 반성했다. 이전에 나는 스스로 제고하는 많은 기회를 놓쳤다. 이전에 간혹 목뼈가 ‘재발’할 때 나도 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오히려 재빨리 누워 휴식했다. 남편에게 목뼈를 만져달라고 하고 혹은 아이에게 목뼈를 두드려 달라고 했다. 이것은 약을 먹는 것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모두 사람의 방법을 사용한 것이고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으로 정념에 자신이 없고 진지하게 대하지 못한 것이고, 자신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고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다른 공간의 사악을 자양한 것이다. 그에게 나의 공간에 존재하는 기회를 준 것이다. 나를 경계로 삼아 진심으로 수련생을 일깨워주려 한다. 어떤 작은 병업 가상도 예를 들면 기침, 열이 나고 다리, 발, 위 등이 불편하면 버티면 지나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안으로 찾는 동시에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청리해야 한다. 때로 작은 불편함은 버티면 지나가지만, 그것은 사람의 방법으로 한 것이다. 큰 병업 가상이 나타나면 더욱 넘기기 어렵다. 개인 체득으로 보면 작은 불편한 증상도 정념으로 대할 때 대법의 신기함을 느낄 수 있고, 그리하여 대법에 대한 신념과 자기의 신념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이와 반대로는, 우리는 제고하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고 법에 대한 신념에 영향을 준다. 대법에 대한 강대한 믿음은 바로 매일 조금씩 직접 체험한 것에서 온 것이다.
나는 계속 안으로 찾았다. 법에서 나는 어떤 병이든지 모두 업력윤보의 결과라는 것을 알았고 사부님께서 나에게 병의 근원을 청리해 주셨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금 나타난 교란은 나의 어느 정확하지 않은 생각이 교란을 일으켰는가? 그것은 왜 나를 교란할 수 있는가? 나의 어느 생각이 법에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니 사상 속의 압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어려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무슨 일이든 우려하고 걱정하고 나쁜 대로 생각한다. 어릴 때 공부에 대한 압력으로 만약 공부를 잘하지 못해 시험을 잘 치지 못하면 죽을 만큼 괴로웠다. 수련을 견지하기에 99년 이후에 몇 년간 큰 압력을 감당해야 했고 학업을 잃었고 자유를 잃었다. 부정적 사유가 심해 무형의 압력이 내 어깨를 눌렀다. 사유도 모두 물질이다. 나는 자신에게 천 근 되는 큰 산으로 누르고 있었다. 나는 압력을 인정했다. 다른 공간의 사령은 틈을 탈 기회가 있지 않은가? 목뼈와 어깨는 편안할 수 있는가? 소극적이고 비관하고 열등감 있고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안정감이 없는 생각을 모두 청리했다. 후천의 미혹에서 형성된 관념은 모두 청리했다! 나는 주불(主佛)의 제자다. 나는 사부님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감당하셔야 할 그 부분의 업력을 감당할 수 있다. 10할의 업력에서 나는 1할 혹은 2할만을 감당하고 있다. 나는 두려울 거 뭐 있나? 사부님의 보호와 법리의 점오가 있는데 두려울 거 뭐 있나? 어떤 두려움도 없고 공포, 우려, 용감, 강인, 적극 모든 것은 좋은 일이다. 지금까지 나는 끊임없이 바르지 않는 사상을 청리하고 반드시 그것을 청리했다!
나는 계속 안으로 찾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안으로 찾아 관념을 정념으로 바꾸고 밖으로 사악한 구세력의 모든 것을 청리했다! 풀리지 않는 문제에 부딪힐 때, 시련 중일 때 우리는 사고할 것이 많다. 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 이야기가 생각났다. 양은 이리에게 잡아먹혔다. 어디에 구멍이 있는가를 봐야 하고 동시에 이리를 소멸해야 한다. 구멍을 막지 않고 이리만 소멸하면 한 마리 이리를 죽이면 다른 승냥이가 나타난다. 구멍만 막고 이리를 소멸하지 않으면 이리는 다른 집의 양을 먹을 것이고 이리는 아직 존재할 것이다. 마치 우리 수련처럼 수련에서 누락을 찾고 법에 책임지고 바른 모든 것을 지키고 악한 모든 것을 청리해야 한다. 우리는 누락을 닦아버려야 하고 사악을 청리해야 한다. 두 방면 중 어느 한 방면에 잘하지 못하면 모두 문제가 생긴다. 각 방면의 교란과 박해에서 우리는 어디에 문제가 생겼나를 봐야 근본에서 철저히 교란을 제거할 수 있다.
나는 계속 안으로 찾았다. 내가 사악한 생명과 자신의 정확하지 않은 사상을 청리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왜 내가 아닌가? 진정한 자신은 어떤 것인가? 나는 몇 년 전에 이런 한 단계에 있는 것이 생각났다. 안으로 찾는 중 나는 자신의 각종 좋지 않고 나쁘고 더러운 것을 보았다. 나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약간의 좋은 점도 없어 좀 슬펐다. 내가 수련생을 본 각종 부족함과 각종 나쁜 것도 포함한다. 나는 수련생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고 싫어하는 생각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강도 있게 안으로 찾았다. 나는 이런 사상이 완전히 진실한 내가 아닌 것을 법리로 인식했다. 그런 후천적으로 형성되고 오염된 마치 변기통에 떨어진 것처럼 몸에 변이 묻어 있지만, 그것은 당신이 아니다. 그것을 깨끗이 씻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나쁜 사상과 대립되게 된다. 쉽게 청리할 수 있고 확고할 수 있다. 내가 이런 모든 나쁜 사상이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 나는 뛰어나온 기분이다. 루산(廬山)에서 뛰어나와 루산을 보는 느낌이다. 자연히 나는 수련생 몸에서 반영되어 나오는 부족함과 집착심은 그의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수련생의 부족함과 집착심을 보면 반대로 자신이 이런 부족한 점이 있는가를 보는 외에 나는 수련생에게 그것은 당신이 아니라고 명확히 알려준다. 동시에 수련생을 도와 정념으로 청리해 준다. 수련생 사이에 모든 간격은 사라진다. 동시에 나는 이렇게 속인을 대한다. 그들이 미혹되어 각성하지 못하는 것이 가련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연히 마음이 넓어진다. 자비심은 자연히 나온다. 그들은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고 정에 미혹되어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다. 진정한 나는 어떤 모양인가? 나는 사부님의 설법이 생각났다. “우주공간은 본래 선량한 것이고, 眞(쩐)ㆍ善(싼)ㆍ忍(런),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사람이 태어나서는 우주와 동성(同性)이었다.”[1] 진아(眞我)는 완전히 우주 특성에 부합되고 부합되지 않는 모든 것은 모두 진정한 자신이 아니다. 나는 진선인에 부합되는 것만이 자신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면 모든 집착심, 관념, 삼계 중의 정은 모두 자아가 아니고 그것을 인정하면 안 된다. 이런 패물은 내가 잘 수련하지 않았을 때 나의 공간장에 잠깐 존재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관념이 정념으로 변하면 근본적으로 패물을 청리할 수 있고 법에 가장 부합되고 가장 진실하고 깨끗한 주의식이 나오고 신체의 사상을 지배한다. 정념을 확고히 하고 사부님을 확고하게 믿어야 비로소 본성이 나올 수 있다!
이어 나는 또 하나의 문제를 생각했다. 문제를 생각할 때 출발점이 자기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발정념을 하면 내 생각에 효과는 그리 좋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정념이 아니기에 법의 위력이 없다. 나는 법을 지키기 위해,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법을 지키기 위해, 바른 것을 지키기 위해 발한 염두는 법을 파괴하는 모든 것을 청리하고 수련자를 교란하는 모든 사악을 청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대법의 힘이 있다. 이 사악이 어디에 있든지 나의 공간장, 수련생의 공간장, 속인의 공간장, 아니면 악경의 공간장이든 반드시 모두 청리해야 한다! 사악을 제거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다! 목적은 법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발점과 목적은 근본적인 문제다. 나는 역사상의 수련자가 왜 수련해 삼계를 벗어나지 못했는지 알게 됐다. 왜냐하면, 그들은 위대한 정법 시대와 기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리 수련해도 ‘나는 수련한다. 나는 원만한다. 나는 수련하고 있다.’ 이런 목적이 있는 출발점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수련해도 ‘사(私)’에서 배회하고 있다. 단지 대법, 정법 수련만이 비로소 기회가 있다. 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생명이고 법을 지키는 출발점과 목적이 동시에 자신을 ‘사(私)’인 것에서 끌어냈다. 원만을 위한 것이 아닌데 오히려 원만을 성취하고, 원만을 위한 것인데 오히려 ‘사(私)’에서 걸어 나갈 수 없고 이로 원만할 수 없다. 무슨 일이든 모두 목적과 출발점이 있다. 단지 수련자가 자신에게 묻고 자신이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상 나의 깨달음이고 수련생에게 계발이 됐으면 한다. 왜냐하면, 수련생의 문장, 언어는 모두 나에게 계발을 주었다. 수련생에게 감사한다. 수련생이 법을 사부로 모시기를 바란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법리를 점오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매번 나는 의혹과 알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면 사부님께서 곁에서 문제를 답해주시는 것 같다. 내가 보는 모든 것, 어떤 일을 들어도 속으로 작은 파동이 있다. 여기에 사부님께서 나에게 점오해 주시고 시시각각 안으로 찾게 알려주신 것이다. 느낌에 사부님께선 내 곁에 계시는 듯하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4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26/3855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