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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인식’에 대한 재 담론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다시 펜을 들다

지금껏 나는 자신의 필력에 자신이 없었으며 늘 언어표현에서 연관성이 없거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여겨 수련 후 밍후이왕에서 ‘양분’을 섭취만 했을 뿐 글을 쓰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어느 날 가부좌할 때 갑자기 머릿속에 그 당시 주변 수련생들이 대규모로 법에서 이탈한 사건이 나타나면서 글을 쓰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단지 이 생각만으로도 갑자기 이미 잘 쓴 글 한 편이 머릿속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 가부좌가 끝난 후 자신의 필력을 조금 의심하면서 컴퓨터를 켜고 얼마를 쓸 수 있으면 거기까지 쓰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뜻밖에 이때 ‘머릿속’에 그 문장이 한 구절씩 나타나 거의 멈추지 않고 단숨에 글을 완성했다.

그 후로도 늘 일부 수련에서 깨달음이 있었으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고 필력이 부족하다는 생각과 수련에서 정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써낸 글이 속인식의 인생에 대한 깨달음같은 것일 것 같은 걱정이 앞섰고, 그렇게 되면 자신과 수련생의 시간(인터넷에 접속하는 수련생과 밍후이왕에서 글을 선택하는 수련생의 시간)을 낭비할 것이라고 여겨졌다. 이렇게 또 몇 년이 흘렀다. 최근 한 수련생과 교류할 때 자신이 병업 고비를 넘긴 일을 말하게 됐다. 그는 무심코 나에게 이것을 마땅히 글로 써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즉시 자신이 잘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며칠 후, 예전에 한 수련생이 나에게 자신이 말하고 싶은 깨달음을 녹음하여 한 글자씩 타자하면 글이 된다고 말하던 조언이 생각났다. 나는 다시 용기를 얻어 컴퓨터를 켰다. 뜻밖에 이번에도 단숨에 글을 써냈다. 이는 나에게 매우 큰 신심을 줬기 때문에 밍후이왕에 관심을 두고 있는 수련생에게 말해주고 싶다. “펜을 들어 자신의 수련에서의 깨달음을 적으세요.” 만약 법에 있다면 써낸 글이 대다수 사람에게 이로울 것이며 밍후이왕에 게재되면 정체로 승화하는 적극적인 촉진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만약 사람 마음이 너무 많았다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반드시 일부를 발견해 적어도 당신은 자신을 더욱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어 안으로 찾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기타 유사한 잘못된 인식

직장의 일로 지금은 거의 수련생들과 접촉하지 않고, 수련생과 교류할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 때문에 매회 ‘밍후이주간’은 내가 매우 중시하는 일종 교류방식이며 매 편의 글을 놓치지 않고 읽으면서 동수의 사유방식과 선념(善念)으로 자신과 비춰보고 차이점을 찾는다.

그날 막 ‘밍후이주간’의 한 편의 글을 읽었다. 오늘 아침 6시 발정념 후 그 ‘머릿속’의 글이 또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일요일이라 원래는 안일한 생각으로 다시 휴식하려 했으나 그 한 편의 글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아예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밍후이주간’ 그 한 편의 글에서 병업 고비이든 심성 고비이든 당사자인 수련생은 마땅히 이 잘못된 인식을 명확히 분별하여 잘못된 인식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또 기타 일부 정황에서 역시 사람의 표면으로 흘러 잘못된 인식에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몇 년 전 한 쌍의 남녀 수련생이 결혼했다. 원래 주변의 수련생들도 이 일로 즐거워해야 했을 법했으나 얼마 후 쌍방으로부터 여의치 않은 말들이 들렸다. 사실 그들로부터 내가 들었다면 역시 내가 수련해야 할 부분이 있으며 나는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했으나 그때 나는 안으로 찾을 줄 몰랐다. 나는 그들과 친하지 않았으므로 이 말을 듣고도 나는 여전히 견해를 발표하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지 몇 년 됐으나 그 수련생 집에 다른 모순이 지금도 끊임없다는 말이 들렸다. 그래서 이 글에서 주로 주변의 수련생이 어떻게 해야 ‘잘못된 인식’에서 분명해질 수 있는지 교류하려 한다.

수련생마다 주변에 알고 지내는 수련생이 있고 성격이 서로 맞아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서로 교류할 때 친구와 동수의 관계를 쉽게 뒤섞을 수 있다. 어떤 일에서 당사자인 수련생이 자신이 직면한 고비를 이야기할 때 비록 제고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으나 매우 약하며 대부분은 여전히 상대방의 이해를 바라고 자신이 어떻게 어려운지를 말하려 하는 것으로 그 일에서 실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교류가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에 나의 주변에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가정에서의 수련환경이 매우 좋지 않고 그녀도 확실히 매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마 그녀의 마음이 약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에게도 문제가 많았다. 이를 보게 된 수련생은 단지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상태를 취했고 그녀에게 조금의 제안도 줄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 그녀에게 어떤 제안을 하기만 하면 수련생들이 자신이 처한 환경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할 것 같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처지에서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겼으며 그녀의 사상에 압력을 강화하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점차 수련생들은 단지 그녀를 ‘이해’하는 태도를 보였고 마치 기타의 것은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 때문에 그녀는 다년간 같은 마난에서 뛰쳐나오기 매우 어려웠고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나도 전에 여러 차례 그녀와 교류해봤으나 그녀의 ‘취약한 마음’을 발견한 후 단지 생활에서 할 수 있는 가사에서 조금의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그녀의 수련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녀와의 몇 번의 교류에서 매번 그녀의 사유방식에 따라 그를 ‘이해’하지 못하자 점차 그녀는 의도적으로 나와 멀리했으며 나중에 그녀와 접촉할 수 있는 수련생이 단지 2~3명이었다. 모두 그녀의 ‘하소연’을 들어줄 수 있고 그녀에게 묘안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기점은 원래부터 잘못됐다. 사실 모든 어려움과 쉽지 않은 일은 신과 연결해주는 사다리가 아니겠는가?주변 수련생의 애초의 목적은 역시 좋은 것이며 수련생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이었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까? 우선 수련생의 ‘하소연’을 들어줘야 한다. (이는 원래 틀리지는 않은데, 다만 주요하게 기점을 봐야 한다) 들은 후 ‘하소연’하는 그의 관점에서 그를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수련생도 매우 착실한 수련의 기초가 없어 단지 친구와 같은 사람 사이의 정으로 그녀를 동정했고 혹은 각종 사람의 방법을 생각해 그 수련생에게 방법을 알려줬다. 비록 때론 수련생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며, 혹은 착실히 수련해야 한다는 말로 일깨워주지만, 도움을 주려는 수련생 자신도 구체적인 일에서 뛰쳐나오지 못해, 또 깊이 속인의 잘못된 인식에 빠졌으나 그런 줄을 모르기에 천상에서 신과 신 사이의 그런 순정(純淨)한 관계가 없었다.

나는 단지 수련생 모두 매우 선량하며 타인에 대해 매우 잘 이해한다고 말할 뿐이다. 특히 위에서 나에게 글을 쓰도록 일깨워준 그 수련생은 사람 중에서 매우 선량하며 가정에서 선행으로 가족의 인정을 받았으며 가정 수련환경을 매우 잘 개척했다. 이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수련생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기점은 마난에 처한 수련생 자신이 안으로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고, 그 전에 자신이 이 일에서 자신의 일사 일념에 주의하고 안으로 찾고, 동수에 대한 정을 버려야 하는데 나는 이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변의 수련생에게서 이러한 것을 매우 적게 보았으며 대다수는 모두 사람의 일 표면에 빠져 모순의 한 편에서 이해하고 있어 결과는 마치 당 문화의 ‘줄서기’와 같아 주변의 수련생이 두 팀으로 나뉘어 각자 모순의 쌍방에서 어느 한쪽으로만 이해했다. 이렇게 원래는 한 가정의 모순과 잘못된 인식이었으나 많은 수련생이 이 잘못된 인식에 끌려들어갔고 이때 마가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는 또 아마 현재 우리 지역에서 정체로 법을 실증하는 형세가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한 하나의 원인이 아닌가?

수련생들이 모두 냉정하게 생각해보길 바란다. 현재는 반드시 이런 유의 사람 중에서뛰쳐나와야 한다. 나는 계속 이러한 입장이다. 만약 자신이 아직 착실한 수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또 이 과정에서 일사 일념에서 안으로 찾아 자신을 제고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도우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이 잘못된 인식의 범위를 확대하지 않을 수 있다. 병업 고비나 심성 고비에 처한 수련생이 나타났을 때 찾아가는 수련생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찾아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오히려 난에 처한 수련생이 더욱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지 못하는 경우를 여러 번 목격했다. 게다가 찾아가는 대다수 수련생은 각자가 또 각종 사람 마음과 관념을 지니고 난에 처한 수련생에게 관심을 두기에 사람의 방법으로 난에 처한 수련생에게 해결 방법을 건의해, 원래 마음을 조용히 하고 안으로 찾기를 힘들어하는 수련생에게 무의식중에 또 잘못된 인식에 빠지게 하며 그의 사상업력이 더욱 중하게, 관념이 더욱 많게 한다. 이런 상태로 찾아가는 수련생은 이때 동수의 ‘하소연’을 더는 들어주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찾아간 수련생 자신이 관념을 바꿔야 하는데 또 이런 ‘사상 쓰레기’를 추가해 자신이 더욱 입정하여 법공부하고 제고하기 어려워진다. 만약 들었다면 또 수구에 주의하길 바란다. 절대로 더는 더욱 많은 사람을 끌어들여 이 일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수련생마다 사상과 언어는 모두 에너지가 있기에 아직 사실의 전 면모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허튼 평을 할 수 있으며 이는 자신과 정체에 또 좋을 수 있겠는가? 그건 또 다른 수련생을 교란하는 게 아니겠는가?

우리는 수련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착실한 수련을 중히 여겨야 한다! 우리는 현재 마땅히 어떻게 하면 빠르게 제고하고 멈추지 않는 정진을 할 수 있을지만을 고민해야 하지, 무슨 시간이 있어 정신을 자신 혹은 타인의 가정 모순에 사용하고 그것에 따라 마음을 움직이고 정을 움직이겠는가? 절대로 타인과 자신을 그릇되게 하는 그런 ‘잘못된 인식’으로 뚫고 들어가지 말자!

 

원문발표: 2019년 4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24/3854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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