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러시아 대법제자
[밍후이왕] 요즘 수련생들의 교류에서 법공부 때 계속 잡념이 들고 졸린 현상이 나타난다는 말을 들었다. 얼마 전 혼자 집에서 ‘전법륜’을 외울 때도 이런 상태가 나타났는데 결국 몽롱해져 한동안 정신이 났다가 한동안 몽롱한 것이, 아주 애를 써서야 겨우 조금 배울 수 있었다.
나중에 스스로 안을 향해서 이유를 찾아봤고 사부님께서 점화도 해주셨다. 머릿속에 화면 한 폭이 나타났다. ‘서유기’의 한 단락이었다. 손오공이 신통(神通)을 써서 수많은 벌레를 만들어냈다. 이 한 무더기 벌레는 사람의 머리를 향해 날아가더니 그 주위에서 춤추듯 날았고, 그 사람은 어지러워하며 바닥에 쓰러져 쿨쿨 잠들었다.
우리는 속인의 공간에서 일체가 진실하게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일체는 다른 공간에서 모두 진실하게 발생하고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은, 구세력은 감히 직접 하지 못하며 그런 형상이 있는 큰 생명들도 감히 하지 못한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어떤 것들인가? 모두 벌레 같은 것들이고 세균 등 난잡한 것들인데, 모두 이런 것들이다. 발정념은 대단히 유용하다!”[1]
새해 연휴 때 집에서 쉬는데 한번은 소파에 누워 일어나기가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때 남편이 오더니 “뭐해? 빨리 일어나!”라고 말했다. 마음속으로는 옳다는 것을 알지만 일어나지 못했고 머릿속이 몽롱하고 몸이 무겁고 정념이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이 모습을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마침 발정념 시간이 되자 내 옆에 앉아서 발정념했다. 곧이어 그의 강대한 공이 건너오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나는 주위의 안개 같은 물질이 깨끗이 없어지는 것을 보았다. 두뇌가 청성해지고 게으른 상태가 사라졌고 정념이 돌아왔다!
안일심을 간파하고 정념으로 깨끗이 제거하다
게으르고 안일한 생각이 나타날 때, 그 진실한 상황은 이미 사악에게 교란당한 것이다. 즉시 정념을 단호히 하고 그것에 이끌리지 말며 발정념해서 그것을 깨끗이 제거해야만 손실을 면할 수 있다. 말은 쉽지만 하는 것은 진짜 어렵다! 몇천 년 동안 사람의 뼛속에서부터 형성된 관념은 습관적으로 편안하려 하고, 게으르고 안일하려는 집착심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간파하지 못한다면 정말 제거하기 어렵다. 나는 끊임없이 수련하면서 게으름과 안일함이 실재적인 물질이라는 것을 차츰 발견했다. 이런 물질이 건너올 때 우리의 진정한 자아 주왠선(主元神)은 즉시 흐리멍덩해져서 자기 몸과 두뇌를 통제하기 싫어한다. 속인 공간에서의 표현은 바로 그 순간 아무것도 하기 싫고 쉬고 싶거나 잠자고 싶고 다 잊어버리는데, 버티지 못하면 쿨쿨 잠을 잔다.
만약 자기 사상을 자세히 관찰한다면, 곳곳마다 안일심의 그림자가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모순에 부딪혔을 때 바로 안을 향해 찾을 수 없는 것은 안일심이 작용한 것일 수 있다. 집착심을 발견하고도 노력해 닦지 않고 미루고 미루는데, 그 속에는 게으른 마음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명백히 말하면, 오로지 사상 속에 정진하는 수련이 없다면, 특히 현재는, 사람을 구하는 긴박감에 처하지 않은 것도 안일심이다. “이렇게 오래 수련했는데 분명 어느 정도 층차가 있겠지.” 또는 “법을 실증하는 일을 이렇게 많이 했는데 지금은 좀 쉬어야지. 아무것도 아니다.” 만약 이런 생각이 있어서 구실을 찾아 자기 수련을 느슨히 하는 것은 사실 이미 층차가 떨어지는 언저리에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들이 지금까지 아직도 정법제자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현재의 마난(魔難)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없으며 인간 세상의 안일(安逸)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이끌려 사오(邪悟)할 것이다. 사부는 떨어져 내려간 그러한 사람들을 줄곧 아주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수가 이런 마음에 이끌려 망가진 것이다.”[2]
나는 발견했다. 이렇게 수련에 느슨한 심태가 생기면 사악이 틈을 타서 안일함과 게으른 마음을 확대하여, 갈수록 정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후과는 아주 심각하다. 아울러 게으름과 안일한 마(魔)의 최대 방패가 바로 색욕심(色欲心)이다. 느슨한 상태에서는 색마가 틈타 들어가고, 교란당한 뒤에 층차가 떨어지는데, 간담을 서늘케 한다! 구세력의 교란을 돌파함에 있어 잠시도 느슨히 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의 수련인은 일생을 다 소모해야만 비로소 끝까지 걸을 수 있는 길에서도 감히 한 시각도 태만하지 못했다. 대법이 구도한 생명의 과위를 성취하려는 대법제자는 수련 중에서 또 가장 편리한 수련법문이 있는데 이런 법을 실증하는 수련의 가장 위대한 영예가 일순간에 지나가는 짧은 수련시간 내에 어찌 더욱 정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3] 어느 날 연공하는 데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법이 즉시 머릿속에 들어왔고, ‘한 시각[一刻]’이라는 단어에 깊이 진감되었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에 대한 표준이다. 늘 한 시각도수련을 느슨히 할 수 없다!
안일함에 교란당한 이런 상태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시시각각 자기를 잘 수련하는 것 외에도 사악의 교란을 제거해야 한다. 이는 구세력이 설치한 거대한 함정이고, 대법제자가 한 걸음 한 걸음 훼멸로 걸어가게 하는 것임을 간파해야 한다. 표면적으로, 그것들은 대법제자의 제고를 위한 것이라는 깃발을 내세워 대법제자의 수련에 마난과 고험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법 전에, 구세력은 이 수천만의 멀고도 먼 우주체계의 매 한 체계의 최저층(最低層) 부분을 우리가 존재하는 중심(中心) 우주체계의 삼계 속으로 모두 비집고 밀어 넣었다. 표현상으로는 그것들이 정법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동시에 정법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법을 빌어 그것들의 사적(私的)인 목적에 도달하려 한 것이다.”[4] 구세력의 이런 심태는 속인의 교활한 심태와 아주 흡사하지만, 그것들은 또 고층생명이기에 그것들이 표현해낸 것은 또 위선(偽善)적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화상(和尙)이 그것을 모시면 그것이 곧 화상을 단속한다: 당신이 나를 모시지 않는가? 당신은 명명백백하게 나를 모시고 있구나! 좋다. 당신은 수련하려고 하지 않는가? 내가 당신을 책임지며,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수련하게 해 주겠다. 그것이 당신을 안배하는데, 그러면 당신이 수련 성취했다 해도 수련되어 어디로 갈 것인가? 그것이 안배해 수련한 것은 위의 어느 법문도 받아주지 않는다. 그것이 안배한 것이므로 당신은 장래에 그것의 관할에 속하게 된다.”[5] 사람 마음을 찾아내고 분발해서 정진하고 발정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구세력의 일체 배치와 교란을 배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늘 발정념하면서 조용하지 못하고 잡념이 너무 많으며 발정념 시간이 그다지 길지 않으면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의 사상은 불안정한 것으로 사람의 대뇌는 다만 하나의 가공 공장에 불과하며, 각종 정보가 모두 사람의 대뇌를 통하여 표현되고 반영되며 이 사람을 교란하는데, 사람의 사상 내원은 극히 복잡한 것이다.”[6] 그럼 우리가 발정념할 때의 잡념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천목으로는 보이지 않지만,발정념 때 다른 공간의 정사대전(正邪大戰)에서 사악도 반항할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 표현은 바로 머릿속에 각종 염두가 나타나게 하고 자기 통제가 안 된다. 아울러 다른 공간에서 볼 때 그것들은 전문적으로 대법제자의 약점을 찾고 법리 인식이 부족한 곳을 찾아 손을 쓴다. 예를 들어 일부 사람의 색욕심이 제거되지 않으면 머릿속에 이 방면의 내용을 생각나게 한다. 자기는 자기가 생각한다고 여기지만 사실 사악이 배후에서 대뇌를 통제하고 있다. 그것들은 아무 연고 없이 무슨 화면이 나타나게 할 수 없고 이 세간의 미혹에 부합되어야 하니, 당신 이 일생의 기억을 이용하고 당신이 겪은 것, 본 것, 들은 일들을 이용해서 당신을 교란한다.
만약 원망심이 있으면 타인과의 모순, 쟁투 등의 장면을 들춰낸다. 자기가 득의양양해하는 것을 발견했다면 배후에 어떤 과시심을 제거하지 않고 있는지 봐야 하는데, 마가 틈을 탄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발정념 때 위로 들춰 나오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보고 그것을 더듬어 내려가면 자기의 사람 마음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다. 정념을 단호히 하면 생각날 것이다. “아, 나는 발정념 중이다. 허튼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바로 사상을 다시 끌어온다.
얼마 전 한 차례 발정념하다 발견했다. 사악이 가장 쓰기 좋은 수단 중 하나가 안일심을 이용해 대법제자를 교란하는 것이다. 얼마 전 집에서 발정념하고 있었고 저녁 7시 정각부터 이미 40여 분을 입장하고 발정념하고 있는데, 입정하면서 힘이 강대했다. 비록 보지는 못하지만 나는 아주 많은 사악을 제거하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꼈다. 이때 머릿속에 염두가 나타났다. 이렇게 오랜 시간 발정념했으니 휴식이 필요하다. 다른 공간의 신체도 지칠 것이다. 순간 확실히 미혹이 나타났는데 내가 다른 공간을 보지 못하니 그냥 멈출까 하고 생각했다. 갑자기 “원만을 이룰 때까지 정진하라(奮力精進,直至圓滿)”[7]에서 “분발하다(奮力)”의 두 글자가 깊이 나를 격려(인도)했다. 나는 또 한 번 정념을 단호히 했고 멈추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안일심에 이끌려 행동하지 않는 것을 보시고 마침내 더 깊은 답안을 펼쳐보여 주셨다.
파룬(法輪)은 늘 돌고 멈추지 않으며 끊임없이 에너지를 연화해준다. 따라서 내가 느낀 피곤함은 그 순간에 사악이 연화해낸 가상이고 법에 대해 인식이 부족한 부분을 이용해 나를 교란한 것이다. 아울러 이는 그것들이 최후에 하는 짓이다. 내가 이 관(關)을 돌파하자 발정념의 질과 시간에서 또 아주 크게 향상했고 더 깊고 긴 시간 입정했으며 역량도 더 강했다.
가상을 간파하고 법학습을 강화하다
이런 ‘피곤’의 가상은 속인의 공간에서 늘 대법제자를 박해한다. 일부 수련생은 진짜로 속임수에 걸려들었다! 수련생들이 종종 “일이 피곤하다!”라고 말하는데 그런 후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서 쉬어야 한다. 무슨 법공부 연공이고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또 한 가지 현상은 대법 행사에 참여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몸이 무겁고 피곤함을 느끼는 것이다. 가사를 할 때 가끔은 아무 일도 하기 싫고 쉬고 싶거나, 일을 해도 효율이 떨어지고 늘 딴짓을 한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음식을 먹으려 하고 먹으면서 일한다. 사상을 집중하지 못해서 법공부하면 졸리고 연공하면 졸리고 발정념해도 졸린다. 당신이 눕기만 하면 사악은 이제 됐다며 신나게 당신을 넘어뜨린다. 그러나 우리의 내심 깊은 데서는 쉬고 나서는 아주 후회되고 고통스럽다.
일부 수련생도 돌파하려고 시도했고 한두 번 발정념 했지만, 실질적인 변화가 없자 포기했다. 이때 발정념하는 의지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사부님의 ‘정진요지2-정념의 작용’ 경문을 여러 번 보고 마지막 한 단락을 외우는 것은 내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사부님의 신경문을 많이 보고 정법시기의 수련이 어떠한지를 똑똑히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천목으로 볼 수 없는 수련생들은 다른 공간의 진상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얼마 견지하지를 못하는데 이때는 오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전법륜’ 제7강의 ‘병 치료 문제’ 소제목의 법을 외우자 발정념에 대한 인식이 더 뚜렷해지는 제고가 있었다. 내 층차의 인식으로는, 사부님께서 이 소제목에서 어떻게 병을 치료하는지 말씀하셨는데, 바로 대법제자에게 어떻게 사악을 제거하는지 가르쳐주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쉽사리 속인의 마음이 나타난다는 것을 명확히 말씀하셨다. 이로 인한 문제에 관해, 나중에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심지어 보지 못하는 수련생들에게 다른 공간에서 발생하는 과정을 펼쳐 보여주셨다.
사심을 제거하고 정체에 협력하다
한번은 집에서 문장을 번역하는데 한 단어가 어떻게 번역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당시 항목 수련생들이 함께 발정념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나는 정해진 시간에 마쳐야 해서 함께 발정념하지 않았다. 수련생들이 발정념하자 나는 즉시 지혜가 생겼고 좀 전에 머리를 쥐어짜도 나오지 않던 단어가 간단히 떠올랐다. 나는 수련생들의 발정념이 나를 도왔고, 나를 억제하던 공간장의 사악을 제거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니 발정념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직접 업무효율을 높이는데, 말로 진상을 알릴 때도 이런 양상이다. 두 사람이 협력을 잘 하면 한 사람이 발정념하고 한 사람은 진상을 알리는데, 수련생의 지혜가 많아져 더 유창하게 진상을 알릴 수 있다.
중국에 있지 않다고 해서 발정념을 소홀히 해도 되는 것이 아닌데, 일부 수련생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박해하지 않았는데?” 이는 법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조성된 것이고, 배후에는 또 사심이 하나 숨어있다. 그는 단지 개인 수련에서 출발했고 조사정법의 기점에서 사고하지 않았다. 중국 수련생들이 아직도 엄중한 박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이번 박해가 얼마나 많은 세인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그들이 대표하는 배후의 거대한 생명군이 대법에 구도될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수련생들은 사실 자기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청성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신체상의 병업 표현, 업무상의 곤란과 번거로움, 경제적 결핍, 가정 및 동료 간의 모순 모두가 사악한 요소들의 수작이다! 사실 사악은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수시로 우리의 틈을 타려고 기회를 보며 시도 때도 없이 우리와 대치하고 있다.
심성을 지키고 끝까지 견지하다
몇 년 전 꿈에서, 사악이 멀지 않은 데서 나를 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들은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공간에서 나는 힘이 장사였고 그 큰 힘은 나의 신통이었다.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그것들을 눌러서 납작하게 할 수 있었다. 내가 어디로 가든 그것들이 따라왔고 내가 천천히 걸으면 그것들은 조금 거리를 두고 나를 천천히 따라왔는데, 나는 그것들을 갖고 놀고 있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나의 힘장사 신통이 사라졌다. 나를 뒤따라오던 사악은 처음에는 감히 움직이지 않다가 내가 신통이 없는 상태를 확인하고는 단번에 달려와서 나를 잡았다. 나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뛰었다. 꿈에서 깨어나 깨달았다. 자기가 심성을 지키지 못하면 다른 공간의 능력이 사라지며 사악은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매 한차례 고험 중의 사람 마음, 매 한차례 마난(魔難)에서의 정념부족, 수련인의 매 한 가지 집착심은 모두 그것들에게 틀어 잡히는데, 그것들은 그것을 당신을 끌어내리고 당신을 수련하는 대법제자의 대오(隊伍)에서 떨어뜨리는 꼬투리로 삼는다.”[1]
사실 위에서 인용한 사부님 경문 중에 나오는 벌레와 세균 따위의 난잡한 것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우리 몸을 향해 덮치는데 당신이 시시각각 정념을 지키는지를 본다. 밖이건 집이건, 업무 중이건 가사 중이건, 대낮이건 저녁이건 가리지 않는다. 내가 청리하는 과정에 그것들은 수량이무척 많았고 가끔은청리한 후 두세 시간이면 또 왔으며 심지어는 청리하고 손을 내려놓자 또 왔다.
발정념하기 싫을 때일수록 머릿속이 더 지저분할 때인데 더욱 발정념해야 하며, 머릿속이 난잡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 발정념해서 사악을 철저히 제거해야 한다. 가끔 몇십 분 가끔은 심지어 몇 시간 발정념해야 한다. 발정념 시간의 장단은 다른 공간의 전쟁 상황이 어떠한지에 달렸다. 비록 보지 못하지만 느낄 수 있고 당신이 알게 할 수도 있는데, 아울러 매일 견지해야 한다. ‘두 번 발정념하면 족하다’는 마음 상태 역시 안일함과 게으름이다.
이 최후의 시각에 나타난 대법제자에 대한 이런 교란을, 나는 바로 대법제자들이 수련에 정진하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우리가 수련해 온 길에서 성과가 없게 하고, 노력이 물거품이 되게 하는데, 최종 목적은 대법제자를 훼멸하고 우리의 수련 층차를 제한하려는 것이다.
적절치 못한 곳은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허스(合十).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정법시기 대법제자’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정념(正念)의 작용’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5-2005년 맨해튼국제법회 설법’
[7]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깨달음(悟)’
원문발표: 2019년 4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16/3841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