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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에는 지름길이 없다

글/ 허난 대법제자

[밍후이왕] 법을 얻은 그해, 나는 갓 만 29살이었고 아주 젊었다. 지금까지 수련한지 벌써 20년이 됐다. 정말 시간이 너무 빠르다! 비틀비틀 곤두박질하며 걸어왔고 많은 일을 했었다. 베이징에 세 번 가서 법을 실증한 적도 있었고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려 불법 구류, 노동교양을 받은 적도 있었고 잘못 깨달아 굽은 길을 걸은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후에 수련생의 도움과 사부님의 점오(點悟)하에 다시 대법 속으로 걸어왔다. 이후에 또 현지에서 협조인과 기술을 배우고 자료점을 설립하고 거창하게 일들을 했다.

1. 일하는 것은 수련이 아니다

그때 나는 아주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다. 늘 낮에는 바삐 뛰어다녔고 저녁에는 밤늦게까지 일했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아가 갈수록 부풀어올라왔다. 일하는 마음, 과시심, 쟁투심,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 갈수록 강해졌으며 수련생 사이의 갈등도 갈수록 커졌다. 할 일이 아주 많기 때문에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도 할 수 없었으며 동시에 수련생과도 잘 협조할 수 없었고 원망과 불평이 갈수록 심해졌다. 한동안 사부님께서 꿈에서 ‘대단히 불평한다’라고 점화해주셨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는지 몰라 고민했다.

한 방면으로 대법제자로서 사명이 있는 것이고 마땅히 자신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속으로 잘 알고 있다. 다른 한 방면으로 법공부가 부족하고 착실하게 수련하고 안으로 찾을 줄 몰라 많은 집착심을 없애지 못했고 심성이 진정으로 제고되지 못했기에 수련생 간의 갈등, 의견충돌이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일부 근본적인 집착과 아주 깊이 숨겨져 있던 것들도 폭로됐다. 한동안 수련생들이 내게 의견이 있는 것 같아 수련생들에게 혼쭐이 난 느낌이 들었다. 내 수련상태는 갈수록 나빠져 힘들고 게으르고 원망이 하늘을 치솟는 것 같았다. 장쩌민 고소 후에 또 사악의 교란, 박해를 받아 두려움이 더욱 심해졌다.

계속 앞으로 걸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몸이 무겁고 아무리 애써 노력해도 힘이 생기지 않았다. 자신의 수련 상태에 대해서도 걱정하고 있었고 어떤 때 심지어 ‘됐다, 어디까지 수련할 수 있으면 거기까지 수련하자’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2. ‘방할(棒喝)’을 받다

우리 지역에 한 젊은 수련생이 있는데 나이가 거의 내 아랫사람 나이였다. 이 수련생은 심성을 닦는데 비교적 중시했고 이후에 법을 실증하는 일들도 용감하게 담당했다. 이전에도 다른 수련생이 내 앞에서 그녀가 어떠어떠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수련생과 몇 번 접촉한 적이 있다. 이 수련생은 안으로 찾고 심성을 닦는데 신경을 많이 쓰지만 말을 아주 날카롭게 하고 성격도 비교적 날카로운 그런 사람이다. 당시 나는 아직 윗사람이라는 체면을 차리느라 근본적으로 이 수련생과 깊이 교류할 수 없었고 더욱이 자신 마음의 곤혹과 문제를 말하고 수련생에게 분석해주지 못했으며 심지어 배척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었다. 마음속으로 ‘그녀가 아직 나이도 많지 않은데 얼마나 높이 깨달을 수 있겠는가, 당시 법을 실증하고 걸어 나온 사람 중에 그녀를 보지 못했는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한번은 우연한 기회에 사부님께서는 이 수련생과 만나게 배치해주셨다. 내가 의기소침해 막막하고 곤혹스럽다고 하자 뜻밖에 이 수련생은 아주 엄격하게 날 혼내줬고 언어가 신랄했으며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엔 나는 전혀 수련하지 않았고 전혀 수련할 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당신은 수련한지 20여 년이 됐지만 다만 속인 중의 좋은 사람일 뿐입니다!”라고 그 수련생은 여러 번 말했다.

이 엄숙한 말들은 내 가슴을 쿡쿡 찔렀지만 아주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않은가? 여태껏 수련생간의 갈등이든 가정생활 중의 갈등이든 전혀 자신을 연공인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다른 의견이 있는 수련생을 포용할 수 없고 비평과 질책을 모두 흠잡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원망하고 불만스러워했다. 가정생활 중 자신을 위주로 했고 심성을 건드리는 일이 있으면 남편 앞에서 노발대발했고 시어머니와 시누이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으며 깊이 마음에 기억해두고 늘 불평했다. 어디 수련생 같았는가. 안으로 찾고 심성을 제고할 기회를 몇 번이나 놓쳤는가! 어찌 이렇게도 집착하고 깨닫지 못하는가? 깨달음이 너무 좋지 않다. 설마 일하는 것으로 수련을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사부님께서 “이 마음을 닦지 않으면 누구도 올라가지 못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 지신은 왜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할 수 없는 것인가? 엄중하게 말한다면 이것은 가짜 수련이다!

집으로 돌아온 후 한바탕 울었다. 그야말로 고통스러웠고 정말로 후회했다! 정말로 몇 년 동안 귀한 시간을 헛되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사부님께 죄송스러웠다. 난 어찌 이렇게도 둔한가? 자신을 잘 수련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 수련생도 잘 이끌지 못했구나. 이것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닌가?

3. 심성을 제고하는 방면에서 착실하게 공을 들이다

수련에는 지름길이 없다. 낭비한 시간과 기회가 너무 많았다는 것을 의식했다. 자신을 수련해야겠다. 다시는 빈둥빈둥 수련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하나씩 잡고 수련해야겠다.

예를 들어 쟁투심이다. 나의 쟁투심은 너무나 심했다. 수련생간에 늘 옥신각신했고 자신의 의견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체(整體)의 각도에서 생각한 것이고 상대방의 의견은 단편적이라고 생각했으며, 어떤 때는상대방이이해하지 못하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관건 문제는 이후에 한참 속으로 끙끙거려야 했고 심지어 불만과 원망이 생겼다. 나중에 이것은 강렬한 쟁투심과 자아를 실증하려는 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신이 볼 때 세간에서 한 수련인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며, 수련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가가 비로소 중요한 것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사부님께서도 여러 번 하늘의 신도 상의하고 협조할 일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어떤 심태(心態)인가? 바로 관용(寬容)인바, 매우 홍대(洪大)한 관용으로서, 다른 생명을 용납할 수 있고 진정으로 입장을 바꾸어서 다른 생명을 생각한다.”[3] 나는 왜 다른 사람을 용납할 용량이 없는가?

자신의 의견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과 쟁론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한 노년 수련생은 줄곧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늘 나에 대한 의견이 아주 많았다. 내 눈에는 이 수련생에게 당문화가 심하고 두려움이 심하며 자아에 아주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무엇을 상의해도 의견은 언제나 반대였다. 한번은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 수련생은 다른 한 수련생 앞에서 내게 크게 화를 냈다. 내가 해명할수록 그를 더욱 화나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더는 해명하지 않기로 했다. 이 수련생의 말을 듣다가 갑자기 이건 수련생이 날 도와서 제고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그깟 사람의 의견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나는 진작부터 고자세를 취했구나! 처음으로 아주 조용하게 수련생의 지적을 다 들었다. 이후로 이 수련생은 나에 대한 태도가 크게 변했다.

한번은 몇 명 수련생과 함께 어떤 일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입을 열기만 하면 이 노년 수련생은 바로 내가 말하지 못하게 강하게 막았고 다른 수련생이 말하게 했다. 그러나 매번 수련생이 다 말한 후에 말했고 내 차례가 됐다고 생각하고 말했는데 이 노년 수련생은 갑자기 화를 내며 말하지 못하게 했다. 연속 몇 번이었다. 그리하여 바로 입을 다물고 마음속으로 ‘어찌 이렇게도 머리가 나쁜가?’하고 자신을 비웃었다. 이후에 다른 수련생이 내게 이 노년 수련생도 당시 그렇게 날 대한 것은 도가 넘었다고 미안해했다고 했다. 이후에 이 노년 수련생과 협력하고 협조해도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망심, 이 원망하는 마음은 너무 심했다. 이전에 시댁에서 억울함을 많이 당했기에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시누이 3명과의 원망을 다 풀지 못했다. 젊었을 때 그들이 날 괴롭힌 일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미웠다. 둘째 시누이의 강한 태도와 포악한 말들을 생각하기만 하면 내려놓을 수 없었고 어떤 때 생각하면서 화가 나서 이를 갈기도 했다. 나도 조급해하고 있었다. ‘어찌 거꾸로 문제를 볼 수 없는가, 일이 발생하기만 하면 격해지는가. 안 된다, 이 원망심을 없애야 한다!’ 한번은 가정모임에서 둘째 시누이는 갑자기 날 향해 선하지 않은 말을 했다. 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뺨을 갈기고 얼굴을 때리겠다고 했다. 이것은 많은 친척들 앞에서 한 말이다! 예전 같았더라면 벌써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날은 아주 조용했다.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게 통제했고 이것은 심성 고비를 넘기는 것이며 이것은 체면을 차리는 마음을 없애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구(修口) 문제도 있다. 직설적인 성격이라 돌려 말할 줄 모르고 일이 있으면 참지 못하며 직설적으로 말하기 좋아했다. 스스로 이것은 장점이고 빙 돌리지 않아 ‘진(眞)’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수련생도 나의 이 성격을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에서 곤두박질했다.몇 년 전, 한 수련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또 수구하지 않고 수련생 간에 말을 흉내 내 이 수련생과 가족 수련생 사이에 큰 갈등이 생기게 만들었기에 이 수련생이 날 아주 미워하게 됐다. 처음에 문제의 엄중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사실은 자신을 정시하고 싶지 않고 덮어 감추고 체면을 차렸기 때문이다. 이 수련생이 납치된 후에야 속으로 아주 괴로웠고 수련생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이 수련생이 나왔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수련생은 또 내게 불만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날 만나기 싫어했다. 나는 아주 갑작스럽다고 느꼈다! 내가 이미 아주 조심스레 말했고 또 마음속으로부터 이 수련생을 친절하게 대했다(사실 수련생간의 정이 깊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혀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데, 왜 또 날 원망하는가? 또 다른 수련생은 내게 그 수련생이 날 죽도록 미워한다고 알려줬다! 난 정말로 이해되지 않아 억울하고 화가 났다. 이후에 이것은 서로 다른 관념으로 생긴 갈등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직설적인 성격이라 스스로 정상적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그녀가 듣기에는 아주 심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을 위해 생각하지 않았구나. 이 직설적인 배후에 사실 자아가 하나 있다. 왜 억울하고 후회하고 있는가?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모두 심성 문제구나! 그리고 질투심과 남이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도 잘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아주 완고한 색욕심이 있다. 이런 것들은 시간을 다그쳐 정진하고 없애야 하는 것이다.

4. 법공부를 중시하다

법공부를 중시하는 문제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중 몇 번이나 신신당부하셨는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중시하지 못했다. 이전에 언제나 대법의 일이 바쁘다는 등 핑계로 법공부를 중시하지 않았다. 이후에 상태가 갈수록 나빠졌고 법공부를 해도 그리 큰 작용이 없는 것 같았다. 마음속에 언제나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것 같았고 각종 모순도법공부를 한 강의 다 해도 없앨 수 없는 것 같았다. 사실 이것은 이미 아주 엄중하게 신사신법(信師信法)하지 않는 것이고 이미 아주 위험했다.

몇 년 전에 한 수련생이 출국하면 사부님을 뵐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사부님께 드릴 말씀이 있냐고 물었다.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정말로 사부님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몰랐다. 잘하지 못해 사부님께 죄송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저녁에 꿈에서 두 수련생이 ‘전법륜(轉法輪)’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가 봤더니 책에 사부님의 모습이 가득한 것을 봤다! 속으로 집으로 돌아가 책을 많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깨어난 후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중시하지 않았다. 이후에 또 위챗으로 놀기 시작했고 더욱 나빠졌다. 머리는 납을 부어 넣은 것처럼 언제나 무거웠다.

작년 여름방학에 가장 좋기는 방학기간에 ‘전법륜’을 전부 외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방학이 절반 지나갔는데도 우물쭈물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법공부에서 돌파가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법을 외우다 말다 하면서 3번을 외운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나도 법을 외울 수 있다는 과시심이 많았기에 다른 사람보다 빨리 외우는 것을 비교했지 진정으로 수련을 지도하기 위해 외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법 암기의 효과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이번에 이전의 기초가 있었기에 법을 외워도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개학하기 전에 다 외우려고 시간을 빠듯하게 잡았다. 어떤 때 오전에 외우고 오후에 외우고 저녁에도 외웠다. 이번에는 한 소절씩 외웠다. 어떤 때 한 강을 연이어 외웠고 좀 걸리는 데가 있으면 책을 펼치고 한 번 다시 보고 기억력을 강화했다. 이렇게 강한 밀도로 법공부를 한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법공부를 통해 진정으로 법을 많이 배우면 너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20여 일간 이렇게 매일 시간을 짜내 법을 외웠다. 시간이 아주 빨리 지나간 것 같았다. 법을 외우는 것을 통해 법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고 비로소 사부님께서 왜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강조하시는지 알게 됐다. 사부님께서 “나는 나의 능력을 이 대법 속에 주입했다. 당신이 배우기만 하면 당신은 개변되고 배우기만 하면 당신은 제고될 것이며, 당신이 끝까지 배우기만 하면 당신은 원만을 이룰 수 있다.(박수)”[4]라고 말씀하셨다. 이전에 자신의 깨달음이 정말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상한 것은 이전에 어떻게 잘 수련했다고 생각했을까?

제2강 마지막까지 외웠을 때 사부님의 “매 학습반마다 언제나 100분의 5, 100분의 10의 사람이 따라오지 못한다.”[1]라는 설법을 봤다. 이전에 언제나 그것은 사부님께 병을 봐달라고 하는 깨달음이 좋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바로 이 100분의 5, 100분의 10의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제8강의 “누가 연공(煉功)하면 바로 그가 공(功)을 얻는다”[1]라는 소절까지 외웠을 때 사부님께서 “이렇게 좋은 공법을 우리는 오늘날 당신에게 내놓았고, 나는 이미 당신에게 받쳐 주었으며, 당신의 집 문 앞까지 갖다 주었다. 이제는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다. 만약 당신이 행할 수 있으면 당신은 곧 수련하고; 만약 당신이 행할 수 없고, 만약 당신이 수련할 수 없다면, 그럼 당신은 이후부터 다시는 수련할 생각을 하지 말라.”[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만약 잘 수련하지 않으면 정말로 사부님께 죄송한 것이다! 이것은 만고의 기연이다!

한동안 법을 외우는 것을 강화했더니 싫증나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무슨 일에 부딪히면 바로 사부님의 법 중 말씀이 생각났고 자연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분명히 무슨 마음을 없애야 하는지 알지만 여전히 해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전보다 법에 있는 시간이 무척 많아졌다.

그리고 속으로 넘길 수 없는 매듭이나 집착심은 법을 외우는 것을 견지하는 중 점차 담담하게 봤고 마음을 넓게 갖게 됐다. ‘그깟 일인데 뭐, 됐다’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은 마치 용기(容器)와도 같아 법을 많이 담으면, 특히 이는 우주대법이라, 그는 사람에게 정념이 있게 하며 사람에게 정면(正面)작용을 일으키게 하는데 틀림없이 이러하다.”[5]

최근에 해외 한 수련생이 쓴 ‘법공부와 법을 외운 약간의 체득’이란 교류문장을 보고 감동이 많았다. 이때 이 문장을 보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수련생은 법공부를 아주 중시했다. 특히 수련생의 법을 외운 체득은 내가 법을 외우고 계속 외우겠다는 결심을 크게 강화하는 촉진 작용을 했다. 이 수련생은 계속 법을 외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공을 들여 쉽게 틀리는 곳을 정리해 비교했다. 법을 외우자 수련생이 법에 용해되어 있는 시간이 속인에 빠져있는 시간보다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법공부 시간도 훨씬 증가됐고 쪼개진 많은 시간으로 법공부를 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깨어나자마자 법을 외울 수가 있다고 했다. 수련생은 ‘법을 외우는 상태가 좋을 때 쉬는 시간이 있고 머리를 쓸 필요가 없을 때면 바로 머릿속으로 자동적으로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때의 마음의 상태도 좋고 법에 용해되어있는 즐거움을 체득할 수 있다!’라고 했다. 수련생의 방법에 큰 격려를 받았다. 말하고 싶은 것은 법을 외우면 정말로 좋으므로 나도 줄곧 법을 외우겠다는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10-맨해튼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미국동부법회설법’
[5]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원문발표: 2019년 3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3/28/3831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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