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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배우고 법을 얻은 절실한 체득

글/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일부 수련생과 교류한 후에 나는 많은 수련생이 매일 적잖게 법공부하지만 ‘법을 배워도 법을 얻지 못하는’ 상태에 처한 것을 발견하였다. 나 자신도 장기간 이러한 상태에 처했다가 훗날에야 다소 돌파했다. 그래서 나의 경험을 써내는바, 수련생들에게 좀 도움이 되길 바란다.

법공부할 때 마음은 반드시 순수해야 한다. 우리가 무위의 상태로 법공부할 때, 단지 한 마음으로 법을 배우고 대법에 동화되려 하며, 다른 무엇도 원하지 않고 추구하지 않아야 법공부하는 과정 중에 법의 배후에 있는 층층의 불, 도, 신(佛, 道, 神)이 당신이 어느 한 층차에 부합한 것을 보고 자연히 그 한 층차의 법리를 당신에게 펼쳐 보여줄 것이다.

사부님께서 티베트에 가서 법을 구한 예를 하나 들어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이런 목적을 품고 티베트에 가서 공(功)을 배우는데, 다른 사람을 사부로 모시고 장밀(藏密)을 배워 장래에 기공사가 되어 이름을 날리고, 돈을 벌려 한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진정하게 진수를 전해 받은 활불(活佛) 라마는 모두 아주 강한 공능이 있어, 공을 배우려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아낼 수 있다. 그가 무엇을 하러 왔는가는 그 마음을 한번 보기만 하면 곧 안다: 여기에 와서 이것을 배우고, 나가서 기공사가 되어 돈을 벌고 이름을 날리며, 이 문(門)의 부처수련 방법을 파괴하려고 하는구나. 이처럼 엄숙한 부처수련 법문을, 당신으로 하여금 무슨 기공사가 되어 명리를 좇아 함부로 파괴하게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무슨 동기인가? 그러므로 아예 그에게 전하지 않아 진수를 전해 받을 수 없다.”[1]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전법륜’ 책의 매 글자의 배후는 모두 불, 도, 신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 만약 법을 배울 때, 심태가 불순하거나 단지 표면에 머물러 있고, 임무를 완성하는 식으로 법공부하면, 배후의 불, 도, 신은 공을 배우는 사람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무엇을 하러 온 것인지 한눈에 보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심태로 법을 배우면 배후 층층의 불, 도, 신은 또 어떻게 우리에게 법리를 깨닫게 해주겠는가?

이 층의 법리를 명백하게 깨닫고서 나는 법공부할 때 최대한 자신의 머릿속을 비우고 모든 정신을 보아야 할 법에 놓았다. 보거나 읽어야 할 매 글자를 모두 자신의 주원신이 분명하고 명명백백하게 보고 읽었으며, 매 글자를 한 글자 한 글자 힘껏 머릿속에 깊이 넣었다. 법을 읽으면서 때로는 책의 매 글자가 마치 새로운 것 같음을 발견했고, 책 내용은 예전에 매우 많이 본 적이 있지만 마치 예전에 읽어본 적이 없는 느낌이었다. 가끔 한 구절을 읽고 나서 드는 의문은 계속 읽어나가면 사존께서 뒷 내용에 해답을 주신 것을 발견한다. 곧 이렇게 끊임없이 법을 읽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법리가 펼쳐져 나왔다.

여기에서 하나의 예를 들겠다.

나는 장기간 어떤 일에 집착하여 줄곧 놓지 못했고, 항상 참지 못하고 머리로 그 일을 생각했다. 특히, 이 일을 언급하기만 하면 사상은 이것에 점거당했다. 훗날 더는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발정념으로 깨끗이 제거하기 시작했고, 법공부하며 안을 향해 찾았다. 하지만 당시에 법에 대한 이해가 비교적 낮았고(수련한 10여 년간 줄곧 다른 사람이 끌어줘야 수련하는 상태였다), 더욱이 구세력이 그 속에서 많은 교란을 가강했다. 그리고 자신이 예전에 진 빚(훗날 꿈에서 빚을 받으러 온 사람을 보았다), 각종 복잡한 요소가 한 데 뒤섞여 자신이 줄곧 이것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시에 발정념하고 안을 향해 찾아 매번 일부 집착을 찾았을 때는 좀 좋아졌다가 나중에는 또 나빠졌다. 시종 문제의 근본에 닿지 못하거나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곳을 찾지 못한 느낌이었다.

하루는 ‘전법륜’ 제5강 ‘개광(開光)’을 배우다 사부님의 말씀을 보았다. “부처에게 절하는 사람이 만약 돈을 구하는 것이라면, 불상에 대고 절을 하거나, 관음보살상이나 여래불상에 대고 말한다: 제가 돈을 좀 벌게 도와주십시오. 허 참, 완정(完整)한 의념(意念)이 형성되어 나온다. 그가 불상에 대고 내보냈으므로 단번에 이 불상에 올라간다. 다른 공간에서 이 몸체는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는데, 이 몸에 오르면 이 불상은 곧 대뇌가 있게 되며, 사상이 있게 되지만, 오히려 신체는 없다. 다른 사람도 가서 절을 하는데, 절을 하고 절을 하여 그것에게 일정한 에너지를 줄 것이다. 특히 연공(煉功)하는 사람은 더욱 위험한데, 절을 하기만 하면 점차적으로 그것에게 에너지를 주어 그것은 곧 유형(有形)적인 신체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 유형적인 신체는 다른 공간에서 형성된다. 형성된 후, 그것은 다른 공간 속에 있으며 그것은 우주 중의 조그마한 이치를 알 수 있으므로 그것은 사람을 위해 일을 좀 할 수 있다. 이리하여 그것도 조그마한 공이 자랄 수 있지만, 그것이 사람을 돕는 데에는 조건이 있고 대가가 있다. 다른 공간에서 그것은 행동이 자유로우며, 속인을 자유자재로 통제한다. 이 유형적인 신체는 불상의 형상과 똑같은데, 빌어서 나온 것은 가짜 관음보살, 가짜 여래부처로서, 사람이 빌어서 온 것이며 생김새가 불상과 같고 부처의 형상이다.”[1]

나는 갑자기 자신이 장기간 집착심으로 항상 이 일을 생각하면, 완정한 의념 하나가 형성되어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현재 우리 인체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발견한바, 우리 사람의 의념(意念), 사람의 대뇌 사유는 일종의 물질을 생성할 수 있다. 우리는 아주 높은 층차 중에서 그것이 확실히 일종의 물질임을 보았지만, 이 물질은 오히려 우리가 현재 연구하여 발견한 것처럼 뇌파 형식이 아니라, 완정(完整)한 대뇌형식이다.”[1]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완정한 하나의 대뇌형식이 형성된 것과 같지 않은가. 책에서 드신 예는 사람이 불상에 대고 내보낸 의념이고, 현실에서 나의 의념은 나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이다. 내가 이 일을 계속 집착하면 그것에게 계속 에너지를 주고, 그것으로 하여금 단지 하나의 ‘완정한 대뇌형식’에서 점점 하나의 ‘유형적인 신체’를 형성해내게 하는 것이 아닌가? 더욱 두려운 것은 이 ‘유형적인 신체’와 나 자신의 형상은 같은 모습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내가 아니라 ‘가짜 나(假我)’라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그러므로 당신이 본 관음보살은 관음보살인가? 당신이 본 부처는 부처인가? 말하기가 아주 어렵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까지 보고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물었다. 내가 본 것은 나인가?

그렇다. 자신이 줄곧 이 ‘가짜 나’를 의식하지 못하고 똑똑히 알지 못해, 집착할 당시에 수련생이 그 집착하는 사상은 ‘나’가 생각한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어도 나는 분별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다. 보기에는 내가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오히려 ‘가짜 나’가 내게 집착이 있음을 빌미로 반대로 나 자신을 주재하고 내게 생각하게 하여 이 집착을 가중하였다. 그것은 매우 은폐되어 있어 나는 깨닫지 못하고 ‘나’가 문제를 사고하고 있다고 여겼다. 이는 ‘서유기’의 ‘삼타백골정’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당승이 안목이 좁아 보고도 분별하지 못하자 손오공이 그에게 그것은 사람이 아니고 요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자기가 본 것은 분명 세 사람의 목숨이라고 했다. 수련하면서 우리가 사악의 농간을 분명히 간파하려면 손오공과 같은 ‘화안금정’을 구비해야 한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2]고 알려주셨다.

사부님께서 일찍이 우리에게 ‘법무정법’을 말씀해주셨다.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에서 개공개오(開功開悟)한 후, 단번에 여래 이 층차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그는 49년간 내내 법을 전하는 중에도 자신을 끊임없이 제고(提高)했다. 그가 매 층차를 제고할 때마다 돌이켜보면 방금 자신이 말한 법이 모두 맞지 않았다. 다시 제고한 후에 그는 말한 법이 또 맞지 않음을 발견했다. 그가 또 제고한 다음에, 그는 방금 말한 법이 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49년간 내내, 그는 모두 이렇게 끊임없이 승화했으며, 매 층차를 제고한 뒤마다, 그가 이전에 말한 법이 모두 인식상에서 매우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또 매 층차의 법은 모두 법의 매 층차 중의 체현(體現)이며, 매 층차에는 모두 법이 있지만, 모두 우주 중의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발견했다. 한 층 높은 층차의 법은 한 층 낮은 층차의 법에 비해 우주의 특성에 더 접근했기 때문에 그는 법무정법(法無定法)이라고 했다.”[1]

나는 우리가 수련하면서, 법리 중에서 끊임없이 제고, 승화할 때가 바로 ‘법무정법’과 매우 유사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전법륜’ 중 한 구절의 표층 함의로 그 집착 혹은 사악을 부술 수 있다. 하지만 구세력도 층층에 안배해 놓았으므로, 그것의 더 높은 한 층의 모략을 똑똑히 인식하려면 끊임없이 법에서 승화하여 더 높은 층차의 법으로 더 높은 한 층의 사악을 부수어야 한다. 구세력이 한 층 더 높은 안배를 하면 한 층 더 높은 법으로 그 한 층의 사악을 부수어야 한다.

그러므로 법을 배우고 법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존께서는 “고층차 중의 법을 모르고서는 수련할 수 없으며”[1]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만약 수련할 심층의 법을 얻지 못하고, 법에 대한 이해가 줄곧 표면에 머물러 있으면, 이것은 우리의 제고를 크게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장기간 한 상태에 포위당해 걸어 나오지 못할 때, 안을 향해 찾고 발정념도 하지만 오히려 거둔 효과가 크지 않다면 자신의 법공부가 어떠한지를 좀 반성해보는 것이 좋다. 법을 배우고 정말로 법을 얻었는지 말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깨달으며, 덧붙여 끊임없이 안을 향해 찾고 심성을 수련할 때, 층차도 곧 올라간다. 더 높은 한 층차에 오른 후에 사존께서는 ‘전법륜’ 책 배후의 불, 도, 신으로 하여금 더 높은 한 층의 법리를 우리에게 보여줘 깨닫게 하신다. 이때, 우리는 한 층 더 높은 법리로 자신의 수련을 지도해야 한다. 층차가 더 제고되면 사존께서는 우리가 법공부할 때 또 더 높은 층차의 법리를 개시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그러면 더 높은 법리에 따라 수련하고 안을 향해 찾아야 우리의 층차도 계속해서 올라간다. 바로 이렇게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안을 향해 찾으며, 끊임없이 법을 얻고 더 안을 향해 닦으면, 우리의 층차는 끊임없이 돌파된다.

사존께서 “법은 이 한 층까지만 말할 수 있을 뿐이며, 더욱 높은 것은 당신 자신에 의거해 수련해야만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문제를 제출함에 제출할수록 더욱 구체적인데, 만약 생활 중의 문제를 모두 나에게 해답하라고 한다면, 당신 자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당신은 자신이 수련해야 하고 자신이 깨달아야 하는데, 모두 내가 말한다면 당신이 수련할 것이 없다.”[1]라고 말씀하셨다.

여기까지 쓰다 나는 나를 포함한 많은 수련생이 마난 앞에서 모두 사존의 도움을 구한다는 것이 생각났는데, 이는 당연히 잘못이 없다. 하지만 여기까지 쓰고 생각해보니 우리는 모두 천상의 주, 천상의 왕이었고, 모두 큰 능력이 있다. 만약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런 끊임없이 법을 배우고 법을 얻으며, 끊임없이 안을 향해 찾음에 따른다면, 우리의 층차는 비약적으로 제고될 것이며, 그러면 우리는 법에서 생겨 난 지혜로 사악의 각종 농간을 간파할 수 있고, 법에서 생겨 난 능력으로 층층의 사악 요소와 외래의 교란을 간파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나는 줄곧 대법제자의 능력이 대단히 크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좀처럼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을 볼 수 없게 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정념의 작용 하에서, 당신 신변의 일체와 당신 자신에 모두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데, 당신은 여태껏 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3]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마땅히 우리 자신이 법의 역량으로 그러한 사악의 수법을 간파하고, 우리가 법의 능력으로 그 모든 사악을 부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하의식으로 사부님께 청하고 사부님께 의지하고 사부님께 하시게 했다. 사부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가 마난에서 오직 법에 있고 마음이 제 위치에 있는 것을 보시고 우리를 대신해 이 모든 것을 하셨다. 그런데 큰 능력을 구비한 우리는 왜 거듭 사부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가?

대법제자들이 모두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할 수 있고, 끊임없이 법을 배우고 법을 얻으며 안을 향해 닦을 때면 법의 역량으로 층층의 사악을 제거할 수 있고, 법에서 정체제고, 정체승화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큰 지혜가 생기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으며, 더 큰 능력이 생겨 더 많은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고 조사정법을 더 잘할 수 있다. 또한, 진정으로 사존을 더 기쁘게 안심시켜드리며 심려를 덜 끼쳐드릴 수 있다.

사부님께서 “반드시 법 공부를 잘해야 하며, 그것은 당신들이 귀위(歸位)하는 근본적인 보장이다. (뭇 제자 박수) 그것은 사부가 마음 내키는 대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다. 사부가 당신들에게 말해 주는 것은 우주의 법이다. 방금 한 말은 바로 여러분에게 알려주고자 함인데, 절대 수련을 느슨히 하지 말고, 절대 법 공부를 느슨히 하지 말며, 반드시 참답고 참답게 해야 한다. 이전에 잘 배우지 못했다면, 오늘 사부가 또 한 번 당신에게 말해 주었으니, 당신이 돌아간 후 반드시 참답고 참답게 책을 보고 수련해야 하며, 사상이 다른 데 가 있어서는 안 된다.”[4]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층차에 한계가 있기에 이 글이 단지 미숙한 의견으로 고견을 끌어내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길 바랄 뿐이고, 장기간 ‘법을 배워도 법을 얻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일부 수련생들이 이 상태를 돌파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진정으로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법에서 승화해야, 진정으로 사존을 더 기쁘게 안심시켜드리고 심려를 덜 끼쳐드릴 수 있다.

자신의 층차에서 인식한 법리는 한계가 있으므로 정확하지 못한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기 바랍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2-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干擾)’
[3]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20년 설법’
[4]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원문발표: 2019년 4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4/4/3847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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