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청년 대법제자가 부처의 은혜에 푹 빠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 어려서 법을 얻어 부처의 은혜에 푹 빠지다

나는 1988년생 청년 대법제자로 어려서부터 가족을 따라 수련했다. 31년의 인생에서 다행히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하에 20년을 보냈다. 그때는 어려서 글을 많이 알지 못했고 수련이 무엇인지 몰랐다. 단지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가족을 따라 진(鎮)에 있는 연공 장소에 가서 연공하고 가부좌하였으며, 가족을 따라 현성(縣城)에 가서 사존의 설법 동영상을 보았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1999년 ‘7·20’ 이후 언니는 베이징에 여러 차례 가서 청원하며 조사정법(助師正法)했다. 19년 동안 불법 노동교화 처분을 세 차례 받고 1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했으며, 지금도 광둥성(廣東省) 여자 감옥에 감금되어 있다. 당시 나는 나이가 어렸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속인)의 압력으로 그때부터 대법을 이탈해 점차 속인 속에 섞여들었다.

2. 대학교 3학년 때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다

나는 속인과 섞이면서 정말 속인과 같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성격은 더욱 내성적으로 변했다. 대학교에 다닌 후 많은 서적을 읽었다. 철학, 심지어 일부 종교 책도 읽었다. 그러나 나는 시종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몰랐고 왜 사는지 몰랐다. 마음은 매우 괴로웠고 생활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런 내면의 고통과 삶이 고달팠으며, 늘 우울하였고 즐겁지 않았다.

나는 2011년 대학교 3학년 때의 어느 날 갑자기 ‘전법륜(轉法輪)’이 보고 싶었다. 그냥 보고 싶었고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보고 싶었다. 어렸을 때 언니가 읽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10여 년이 지났기에 까맣게 잊은 상태였다. 그저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轉法輪)’이 있다는 것만 기억났다. 그날 생각이 나자 즉시 어머니(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아직도 ‘전법륜(轉法輪)’이 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있다고 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운 좋게 법을 얻었던 나는 10여 년간 길을 잃은 후 다시 대법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전법륜(轉法輪)’을 청해 학교에 가지고 돌아온 후 2, 3일밖에 보지 않았는데도 심신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을 느꼈다. 잠을 잘 잤고, 정신이 맑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졌으며, 이해능력도 아주 좋아졌다. 정말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으며, 심신이 건강하고 명랑하고 낙관적이었다. 공부는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고, 3학년 때 전공 직함 시험과 영어 6급 시험을 쉽게 통과했다.

이런 거대한 변화를 맞아, 사존에 대한 감격은 언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고 표현할 단어가 없다. 늘 눈물이 온 얼굴을 적신다. 오직 정진, 정진, 더 정진해야만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간혹 넓은 캠퍼스를 걸으며 이렇게 많은 젊고 유망하고 재능이 넘치는 학자가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에 속은 것을 생각하니 정말로 그들에게 ‘파룬궁(法輪功)은 좋다!’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3.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좋은 직장을 찾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직장을 찾았다. 일체가 우연인 것 같지만, 나는 이 일체는 절대로 우연이 아니며 사존의 배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훗날 발생한 일이 이 일체를 증명해주었다.

그때 나는 실습을 막 마쳤고 졸업을 반년 앞두고 있었다. 나는 매우 우연한 기회에 채용 사이트에서 공립 고등학교의 한 행정 부서에 지원했다. 채용 자격 조건은 대학원생 또는 중급 직함 이상이었다. 나는 졸업하지 않은 본과생이기에 채용 자격 조건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학교는 내게 필기시험에 응하라는 통지가 왔다. 필기시험을 본 4명 중 나만 졸업하지 않은 본과생이었다. 그러나 나는 태연했으며 순리에 따랐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의 채용 자격 조건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1개월 후 내 예상과 달리 학교는 나를 채용했다. 합격 전화를 받은 순간 나는 온 얼굴에 눈물이 가득했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의 보호와 배치라는 것을 알았다. 필기시험을 보러 갈 때 이 학교는 교외에 있었다. 학교에는 산과 물이 있고 환경도 좋았다. 나는 학교의 산과 물을 보면서 ‘이 호수에서 가부좌하고 연공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존께서는 이렇게 내 염원을 실현해 주셨다. 나는 많은 동급생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얻었다. 다른 동급생은 일자리를 구하느라 고생하고 있고 또 어떤 동급생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나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일자리를 찾았다. 이것은 모두 사존의 보살핌 덕분이다.

4. 업무를 보면서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다

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했다. 나는 한 대법제자는 속인 중의 일체를 모두 잘해야 하며 바르게 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이런 잘하는 것과 바른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대법이 대법제자에게 가져다준 좋은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이 이 일반 사회와 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대하는 말과 행동을 포함해서다. 그러므로 나는 업무 중에서 시시각각 타인을 고려하고 선하게 대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업무를 잘하여 지도자, 동료와 화목하게 지냈다. 그들은 나, 이 젊은 아가씨가 다른 젊은이와 같지 않고, 성격이 온화하고 선량하며 명예와 이익을 담담하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나는 본업을 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대법제자는 지혜가 있기에 자신의 지혜로 법을 실증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2015년, 나는 성(省)의 과학연구 프로젝트를 신청해 수많은 행정사업 단위 프로젝트에서 1등으로 입상했다. 학교의 많은 교수와 부교수가 이번 시합에 응하였지만, 누구도 입상하지 못했다. 2016년, 나는 또 성(省)의 한 과학연구 프로젝트에서 입상하고 또 학교급 과학연구 프로젝트에서 입상하였다. 2016년에 나는 또 985 대학교의 대학원생에 합격하였다. 상사와 동료 모두 사무실의 가장 젊은 직원인 내가 의외로 대단하다고 감탄한다. 사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존께서 내게 이 일체를 주셨다는 것을 정말 알려주고 싶다.

5. 조사정법의 길에서 사존께서 3일간 점화해주시다

나는 대법에 새롭게 돌아온 후 이 일체를 얻었으나, 조사정법을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비할 바 없이 괴로웠고 조급해졌다. 줄곧 혼자 수련하고 신변에 수련생이 없기에 종래로 진상 자료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지만, 자료점을 만들고 싶었다. 2016년 7월 18일 여름방학 때 진상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린터를 샀다. 그런데 사는 과정이 매우 기이했다. 판매자가 프린터를 메고 그녀 가게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차고에서 차를 몰고 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30분 동안 몇 번이나 그곳을 지나갔지만,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해주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교란이 왜 이렇게 많을까?’라고 생각했다.

7월 19일, 나는 부모님과 함께 감옥으로 언니를 면회하러 갔다. 내가 언니에게 먼저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언니가 내게 한 첫마디는 ‘너는 먼저 자료를 배포하지 말라’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내가 내일 자료 배포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나는 또 교란이라고 여겼다. 나는 면회가 끝난 후 부모님을 오빠 집으로 바래다 드렸다.

밤에 차를 몰고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와 가벼운 접촉 사고를 냈다. 보험회사가 처리를 끝내기를 기다리자 밤 11시가 조금 넘었다. 원래 한 시간 걸리던 고속도로였으나, 그날 밤에는 거의 두 시간을 운전하고도 학교로 돌아오지 못했다. 마치 끝없는 고속도로처럼 끝이 없는 듯이 운전했다. 사존께서 다시 한번 나를 점화해주셨으나, 나는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교란으로 간주했다.

겨우 학교에 도착하고 문을 열려 하자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 찾았지만, 찾지 못했고 문도 열지 못했으며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결국, 호텔에 가서 하룻밤 묵었다.

7월 20일 아침, 열쇠 업자를 불러 문을 땄다. 그다음 인쇄한 자료를 들고 학교 홍보대에 비치했다.

사존께서 자비롭게 세 차례나 점화해주셨으나, 깨닫지 못했다. 사존께서는 이미 일을 하려는 마음, 이지적이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했으며 기본적인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내 마음을 보셨던 것이었다. 학교 보안 요원은 악의적으로 나를 고발했다.

학교서기는 책상을 두드리며 사악한 현지 610을 불러왔다. 그들은 내 거처를 불법 수색하고 현지 구치소에 나를 29일간 감금했다. 이 29일 동안 시시각각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느꼈다. 이 기회에 감금된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다. 단 한 사람이라도 진상을 안다면 나는 이 마귀 소굴에 헛되게 오지 않았다. 제자가 잘못하고도 사존의 자비로운 점화를 깨닫지 못해 이렇게 큰 손실을 가져왔다.

6. 정정당당하게 법을 실증하고, 악인은 응보를 받다

마귀 소굴에서 나온 후 개학이 임박한 시점에 학교 인사처의 지도자들은 내게 자발적으로 사직하라고 제안했으나, 나와 우리 가족은 그들의 의견을 부정했다. 첫째, 나는 어떤 잘못도 없고, 내게는 신앙의 자유가 있으며, 학교의 공공질서를 파괴한 적도 없다. 학교의 나쁜 사람이 나를 해쳐 불법으로 29일간 감금되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아직 책임을 묻지 않았다. 둘째. 나는 자발적으로 사직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학교에서 해고한다면 우리는 법정에서 만나야 할 것이다. 감금된 기간에 부서의 지도자와 동료들은 내 처지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으며 동정했다. 그 때문에 부서의 지도자는 개학하기 하루 전에 내게 출근하라고 했다. 동료들은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나를 대했다.

나는 이전에 두려움 때문에 그들에게 내가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한다고 정정당당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비록 있어서는 안 될 손실을 보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단번에 대법 진상을 알게 되었고, 중국공산당은 나처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을 박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책상을 두드리며 나를 610에 넘긴 학교의 제일 높은 상사인 공산당위원회 서기는 2017년 12월, 아무런 조짐도 없이 허울뿐인 사악한 중국공산당 간부학교로 전근되어 관직이 몇 단계 강등되었다. 동료들은 ‘누구에게 밉보인 것이 아닌가?’ 하는 등 의논이 분분했다.

7. 자신을 잘 수련해 가족 관계가 좋아지다

29일간 불법으로 감금되어 있다가 나온 후 가족의 태도에는 큰 변화가 나타나 대법 진상을 더욱 명백히 알게 되었으며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했다. 나는 내 약혼자(대법 수련을 하지 않는다)에게 줄곧 진상을 알렸는데, 그도 중국공산당이 가한 이번 박해는 그 죄악이 하늘에 사무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간혹 내게 대법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내가 연공하고 법공부하면 그는 더는 교란하지 않고 지지한다.

그는 2016년 이후 지금까지 복을 많이 받았다. 짧은 2년 만에 자산이 500만 위안(한화 약 8억 4,500만 원)에 이르렀다. 이는 이제 갓 서른 살을 넘긴, 경제적 배경이 전혀 없이 시골에서 온 그에게는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 자신도 이것은 대법이 그에게 준 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때문에 그는 내 수련을 지지한다. 그는 또 내게 40만 위안(6,759만 원)짜리 차를 사 주며 이 차로 출퇴근하게 했다. 그는 내가 이 차로 출퇴근하며 학교의 지도자와 동료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생활이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우리 대법제자는 속인 중의 재산과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또 과시하려는 마음이 없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박해하에서, 수천수만의 대법제자는 합법적으로 얻은 직장과 소득원, 가정 등을 중공 악당에 의해 잃었다.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가 박해받아 의지할 곳 없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가? 속인은 중공 악당의 박해에 속아 대법제자 대다수가 생활이 빈곤하고 매우 불행하다고 잘못 알고 있다. 사실 대법제자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사부님이 있는 사람이다.

이상은 수련에서 얻은 개인의 일부 체험이다. 부당한 곳은 수련생이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9년 3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3/1/383326.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