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黑龍江)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4년 초, 우리 지역 협조인은 나에게 현지에서 박해당해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의 상황을 조사하는 데 참여하라고 했다.
이 항목을 하면서 사부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마침내 10여 년 전에 베이징에서 악인에게 학대당해 사망한 한 수련생(이전에 줄곧 이 수련생의 이름과 주소를 몰랐음)의 가족을 찾았고 이 수련생의 상황을 알게 됐다. 이 사건부터 책임감과 사명감이 절로 생겼다. 그리하여 현지에서 박해당해 사망한 수련생의 모든 사건을 조사해 정리하고 밍후이왕에 보내기로 했다. 이후에 또 일부분 불법 징역형, 불법 노동교화를 당한 수련생 및 현지 구치소에서 심하게 박해당한 수련생의 사건을 조사하고 정리해 밍후이왕에 보냈다.
2016년 말, 또 현지 큰 악마의 우두머리에 이용당해 파룬궁을 박해하는 데 참여해 업보를 당한 사건을 모아 정리했다. 그리고 또 외지 수련생의 방법대로 현지 18년간 파룬궁 수련생 박해 총론을 정리했다.
내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각종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밍후이왕 자료관에서 현지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당한 상황을 내려받고 수련생에게 직접 박해당한 경험을 써내라고 하기도 했다. 쓸 줄 모르거나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수련생에 대해 수련생이 구술하고 내가 기록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후에 시간을 절약하고 수련생의 서술 맥락을 끊지 않기 위해, 또한 수련생 본인의 언어습관과 말투를 보장하기 위해 녹음한 후 다시 녹음기에서 수련생이 말한 것을 기록하고 정리했다.
사부님의 설법 중 박해를 폭로하는 것은 사악을 억제하고 박해를 저지하는 것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원고를 정리할 때 아주 열심히 했고 되도록 정확히 정리했다. 어떤 때 한 원고를 정리하기 위해 많은 수련생에 관한 자료를 참고하고 두세 번 수정하고 되도록 완벽하게 했다. 박해를 폭로하는 글을 쓰는 것은 박해를 폭로하기 위해 박해를 폭로하는 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대법의 아름다움(즉 수련생이 법을 얻으므로 받은 혜택)을 먼저 쓰고 강렬한 비교가 되어 글에서 대법이 좋고 중국공산당이 사악하다는 것을 체현하게 했다.
원고를 정리하는 중 점차 딱딱하고 지루한 글쓰기 방법을 바꿨다. 세인이 보기 좋게 하려고 통속화, 인정화, 이야기화 시켰고 수련생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수련 경험과 박해 상황을 서술했다. 동시에 글을 쓸 때 당(黨) 문화의 글씨 법과 용법, 단어를 피하고자 ‘9평’과 ‘해체 당 문화’를 공부해야 했다.
다음은 이 항목에 대한 체득이다.
1. 법 공부를 잘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은 이 항목을 잘하는 근본적인 보증이다
법 공부를 잘 하지 않고 자신을 잘 수련하지 않으며 사부님의 도움이 없다면 심성이 제고되지 않고 쉽게 자아를 실증하는 틀에 빠지기 쉽고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한동안 원고를 정리하려고 급히 서두르는 바람에 집안일도 하지 않았다. 집안일이 모두 아내(수련생) 한 사람이 하게 되자 그녀는 날 원망했다. 나는 안으로 찾지 않고 그녀가 날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심성이 다 제고해 올라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본업에도 영향을 줬다. 이후에 법 공부를 통해 내가 잘못했고 자신의 항목이 중요하다고 집안일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도 수련생이므로 세 가지 일을 해야 하고 사부님께서 배치해 주신 길을 걸어야 하는데 어찌 집안일을 다 아내 혼자서 하라고 하겠는가? 이후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능동적으로 집안일을 담당했다. 아내는 아주 기뻐했고 내가 하는 항목을 아주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되도록 내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2. 강한 정념을 유지해야만 이 항목을 견지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다
일찍이 2003년에 ‘현지의 민중을 향해 현지의 사악을 폭로하자-사부님 평어’가 발표된 후 우리 지역 협조인은 이 일을 중시했고 현지 수련생의 박해 상황을 수집했으나 모두 총괄해 통계표 방식으로 밍후이왕에 보냈을 뿐 수련생이 박해당한 사건의 원고를 보존하지 않았고 다 없앴다. 이것은 아주 아쉬운 일이다. 당시 박해가 아주 심했기에 사악의 수중에 들어가면 보존한 수련생과 원고를 제공한 수련생이 박해를 받을까 봐 누구도 감히 보존하지 못했다. 이후에 이 항목을 하던 어떤 수련생은 현지를 떠났고 어떤 수련생은 박해당해 사망했으며, 어떤 수련생은 협조하는 일을 그만뒀고 어떤 수련생은 이 항목을 하기 싫어했다. 그리하여 이후에 이 항목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역사의 배치로 내 책임이 됐다. 나는 신사신법하고 강한 정념을 유지하며 이 항목을 했다. 어떤 때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러면 잠시 수중의 일을 내려놓고 발정념을 했다. 바른길을 걷고 있고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므로 누구도 날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지금까지 해왔다.
3. 안전문제는 반드시 중시해야 한다
비록 사부님의 보호가 있지만, 사람의 이 면에서 아직도 주의해야 한다. 사부님의 설법을 배우는 것을 통해 특히 사부님의 ‘밍후이왕(明慧網) 10주년 법회에서의 설법’과 수련생의 체득 교류문장을 보고 수련생을 위해 자신을 위해 안전을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이 항목을 함에 있어서 조용히 폐쇄적이고 수구(修口)를 했다. 되도록 관계가 없는 사람(수련생을 포함)이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게 했고 동시에 자료를 보존하는 법기에 비밀번호를 설치하고 보존했다. 자신과 다른 수련생을 위해 책임졌다.
이 항목을 하는데 고생도 있고 기쁨도 있지만, 고생이란 표현이 적합하다. 어떤 때 상의할 수련생을 찾으려고 해도 어려움을 느끼고 때로는 하기 싫은 생각도 생긴다. 매일 거의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어야 하기에 나중에는 컴퓨터도 켜기 싫어했다. 그러나 이것은 내 책임이고 사명이며 약속한 서약이고 사부님께서 하시라는 일이고 지고무상의 영광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다시 열심히 하게 됐다. 밍후이왕에 발표된 박해를 폭로하는 문장을 볼 때마다 ‘이것은 얼마나 많은 수련생의 심혈일까. 이깟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몇 년간 박해를 폭로하는 항목을 하는 외에 일부 수련생을 도와 장쩌민 고소와 ‘5.13’ 원고모집 및 대륙 법회 교류의 원고 등을 정리해주기도 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가 없었다면 오늘까지 살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까지 걸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부님의 구도가 없었다면 나의 모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이후의 길이 아직 얼마나 길든 최후 정법의 길을 바르게 잘 걷겠다.
이상 법에 부합되지 않은 곳이 있으면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원문발표: 2019년 3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3/28/3835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