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국 공산당의 박해로 중국의 대다수 수련생은 그리 부유하지 못해, 수련생들 간에 돈을 좀 빌려서 절박한 상황에 대응하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수련생은 성실하고 신용을 지켜 돈을 빌리면 금방 갚지만, 어떤 사람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전혀 수련인의 생각과 행위가 아닌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수련생이 출소한 후,장사를 좀 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한 수련생은 그가 몹시 어렵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2만 위안(한화 약 3백30만 원)을 빌려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돈은 내가 필요 없으니, 당신에게 주겠어요.” 돈을 빌린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죠. 빌린 것은 곧 빌린 것인데, 어떻게 안 갚을 수 있겠어요?” 돈을 갚을 때, 비록 수련생이 거듭 필요 없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빌린 수련생은 더욱 돈을 상대방에게 되돌려주었습니다.
또 한 수련생은 출소한 후,장사하고 싶었지만, 수중에는 밑천이 없었습니다. 한 노수련생이 듣게 된 후, 20만 위안(한화 약 3천3백만 원)을 꺼내어 그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이 돈은 내가 놔두고 있어도 그대로 있는 돈이니, 당신이 가져가서 밑천으로 사용해요. 돈을 벌면 내게 갚고, 돈을 벌지 못하면 필요 없어요.” 돈을 빌린 수련생은 차용증을 써주려고 하자 노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이러지 말아요. 속인이 차용증을 써줘도 저는 안 빌려줘요.” 2년 후, 돈을 빌린 수련생이 돈을 갚을 때, 노수련생이 말했습니다. “듣자 하니, 당신은 장사가 그다지 잘되지 않는다는데, 돈을 우선은 당신에게 놔두고, 내게 갚을 필요 없어요.” 돈을 빌린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2년이라고 말했으면 2년이죠. 이건 신의(信義)입니다!”
나중에 이 일을 다른(여)수련생이 알게 되어, 이 노수련생에게 돈을 빌렸습니다. 이 노수련생은 ‘모두 수련생이고, 어려움이 없다면 누가 입을 열겠는가?’라고 생각하여 집에 남은 20여만 위안(한화 약 3천3백만 원)을 이 수련생에게 빌려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돈을 빌린 수련생은 또 노수련생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모자라요. 30만 위안(한화 약 5천60만 원)을 더 빌리고 싶어요. 당신이 나를 도와 마련해줘요. 내가 이자를 줄게요.” 노수련생이 물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빌려서 뭐하려고요?” 돈을 빌린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바른 일이에요.” 노수련생은 바른 일이라는 말을 듣고 더 묻지 않고, 여동생으로부터 또 30여만 위안을 빌렸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이 돈은 한 번 나간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십여 년 동안, 돈을 빌린 수련생은 아직도 갚지 않았습니다. 노수련생의 매부는 수련하지 않으며, 자식이 결혼하여 집을 사게 되어 돈이 필요할 때, 돈을 빌려줬다가 여러 차례 받으려고 해도 못 받았다는 말을 듣고 부부가 몹시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매부는 원래 대법을 매우 지지했는데,이 일로 대법에 듣기 거북한 말을 많이 했습니다. 노수련생이 괴로워하며 말했습니다. “나중에서야 나는 알게 됐어요. 내 돈을 빌린 수련생이 여기저기서 수련생들의 돈을 빌렸고, 듣기로는 200여만 위안(한화 약 3억3천만 원)의 빚을 졌다고 해요. 또 다른 사람에게는 ‘누가 그더러 내게 빌려주라고 했어?’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이게 어디 수련하는 사람이 하는 말 같은가요?”
현지에는 수련생들 사이에서 돈을 빌리는 것으로 유명한 몇몇 수련생이 있습니다. 돈을 빌리면 자발적으로 갚지 않고,다급해지면 다시 돌려막기를 합니다. 어떤 이는 돈을 빌릴 때 매우 좋게 말했다가, 날짜가 되면 갚지 않습니다. 그다음 더 빌리고,또 갚지 않고, 이어서 더 빌립니다. 어떤 이는 빌려 간 돈을 요구할 때면 숨어서 만나지 않고, 심지어 듣기 거북한 말을 합니다. 또 어떤 수련생은 한 수련생으로부터 2만 위안(한화 약 3백30만 원)을 빌리면서 일주일이면 갚는다고 말했으나, 일주일 뒤에 갚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이 빌려 간 돈을 요구하자, 돈을 빌린 수련생은 “일주일이 되어 내가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당신은 안 받았어요. 지금은 돈이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전화가 안 왔는데요? 당신은 분명 내게 전화를 걸지 않았어요.” 돈을 빌린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돈이 없어요. 나는 대법 일을 했어요. 당신이 찬조한 것으로 해요.”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나와 무슨 상관인가요? 당신은 내 돈을 갚아야죠.” “돈 없어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노수련생은 집으로 돌아와 이 일을 아내와 이야기했습니다. 아내는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라서,몹시 화를 내며 돈을 빌린 사람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3일 이내에 당신은 반드시 돈을 내게 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법정에서 만나요.” 돈을 빌린 사람은 일이 커지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돈을 갚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제자 사이도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한다. 모두 대법제자이니 당신 것이 바로 내 것이라는데, 어디 이런 논법이 있는가? (모두 웃음)그것이 될 말인가? 하나의 독립적인 생명을 놓고 말하자면, 당신은 바로 당신이고, 그는 바로 그다.”[1]
또 한 수련생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50여만 위안(한화 약 8천4백만 원)을 빌렸습니다. 그의 아내도 수련하고, 두 사람은 모두 병업의 교란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전에 그는 내게 몇만 위안(한화 약 몇백만 원)을 빌린 적이 있었고, 저는 그의 생활이 어려운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돈을 안 받을게요.” 그러나나중에 보니,제가 돈을 안 받겠다고 말하자, 그는 끝도 없이 빌렸으며, 전후로 제게 십여만 위안(한화 약 천여만 원)을 빚졌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는 이 돈으로 일부 법에 있지 않은 일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어떤 수련생은 사오(邪悟)하여, 사부님께서 현지로 오시려고 하니, 사부님께 집을 지어드려야 한다고 하자, 그는 뒤에서 많은 자금을 후원했습니다. 이 일로 그의 가족들은 대법과 수련생에 대해 매우 적대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생활이 어려웠고, 또 병업 상태에 처해 있었지만 저는 분명하게 그와 이야기했습니다. “당신은 내게 빌린 돈을 갚아야 해요. 능력이 없는 것은 능력이 없는 것이고, 이 돈은 갚아야 해요.” 당시에 저는 바르게 걷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결과가 있는 것이므로, 저는 사람의 마음으로 이 일을 대할 수 없으며, 수련인은 대법에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수련생은 소위 사부님께 집을 지어드리는 일에 참여하여 돈을 펑펑 썼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그가 천목이 열린 수련생에게 물건을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제게 빌려 간 돈을 저는 되돌려 받지 말아야 할까요? 받지 않는다면 저 역시 한패가 되는 게 아닐까요? 구세력은 저마저도 함께 박해하지 않을까요?
저는 사부님의 한 단락의 법을 그에게 말해주어 듣게 하였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그에게 찬조해주고 자금을 대줄 때는, 그가 무엇을 하는지 당신은 반드시 알아야 하며,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비록 그에게 돈을 줬을 뿐이지만, 당신은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을 지지한 것과 같으므로 당신도 잘못했다. 따라서 구세력은 당신이 속아 넘어간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그것은 당신이 한무리이며 당신이 그를 지지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일들에 대해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2]
저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린 몇몇 수련생과 서로 의견을 나누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바르게 걷지 않아서 이렇게 많은 돈을 빚진 것 아닌가요? 자신을 찾아봐요. 바르게 걸었다면 이 상태가 아니겠지요. 이렇게 많은 빚을 지고, 가부좌를 틀고 발정념을 하면 입정할 수 있겠어요? 법 공부를 하면 마음에 들어오겠어요?” 수련생은 “바르지 못할 것이 없어요. 조금 지나치게 썼을 뿐이죠.”라고 단번에 부정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지의 수련생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런 돈을 빌린 수련생은 늘 천목이 열린 한 수련생과 왕래하면서, 예를 들면, 대법 항목이라고 말하며 외지에 수련생이 오픈한 회사에 투자하는 일부 법에 있지 않은 일을 했습니다. 그 외에, 사부님께서 현지에 오시려고 한다고 말하면서, 선후로 두 차례나 사부님께 집을 지어드리고, 인테리어를 해드리면서 사부님께서 자신의 ‘성심(誠心)’을 보시지 못할까 봐 두려워 돈을 펑펑 썼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세력에 의해 약점을 잡혀, 방법을 바꾸어 경제적으로 박해를 당해,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습니다.
몇 년 동안 잠잠해지다가 또 한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라마가 현지로 오려고 하며, 그를 추살(追殺)하려는 사람이 있어서 수련생에게 보호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이 라마가 말했습니다. “나는 재산이 있어요. 당신들이 빚진 그만한 돈은 아무것도 아니니, 그때 가서 내가 당신들을 도와 갚을게요.” 수련생은 라마가 재산이 있다는 말을 듣고, 집을 세를 내줬고, 또 컴퓨터,세탁기 등 가전을 샀습니다. 1년 동안 살면서 10여만 위안(한화 약 1천6백만 원)을 쓰고 마지막에는 가서는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 일은 명백히 수련생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사부님의 보호가 있는데 어떻게 추살을 당할 수 있을까요? 대법제자를 제외하고,이 세상에는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수련하는 사람은 인간 세상의 일에 상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세력은 당신을 단칼에 베고 또 당신을 비웃습니다.
수련생은 돈을 많이 빚지면 압력이 커져 항상 자신을 가두고 수련생과 만나지 않습니다. 걸어 나오지 않을수록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것은 사실 구세력이 오랜 세월 동안 수련생에게 배치해 놓은 풀 수 없는 매듭이며, 이 방법으로 당신을 망치려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을 고정적으로 보지만, 신은 일을 고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돈을 빌린 수련생이 마음속으로 걱정하고, 어쩔 수 없어 하며 조급해할수록, 눈앞의 상태를 더 돌파할 수 없으며, 편파적인 인식과 사오한 상태로 빠지기 쉽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발정념을 할 때 말합니다. “구세력의 이런 경제적 박해를 인정하지 않으며, 대법제자에게 재원이 끊임없이 굴러들어오게 한다.” 이게 무슨 발정념인가요? 발정념을 할수록 더 나빠질 수밖에 없고, 주머니에 돈이 더 없어질 뿐입니다.
돈을 빚지면 빚을 갚아야 하는 이것은 천리(天理)이며, 사부님께서는 이 방면의 법을 매우 많이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단락의 법은 저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어떤 수련생이 받지 않겠다, 내가 당신에게 준 것이라고 했다면 그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것은 준 것으로서, 이 빚지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3], 이 단락의 법을 읽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의 내재적인 함의를 체득하여 깨달은 적이 있을까? 구우주의 생명이 마지막 일보에 이르렀을 때, 인간 세상에 있는 생명이든 인간 세상에 없는 생명이든, 어느 누가 많은 빚을 지지 않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거대한 감당으로 중생의 원한 맺힌 인연을 선하게 풀어주셨고, 각 중생에게 가장 좋은 기연을 개척해주셨으며,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주신 것은 제자가 영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의 이 단락의 법에는 제자가 돈을 빚진 수련생들을 선해하라는 것을 일깨워 주시는 내재적인 함의가 있고,돈을 빌려준 수련생에게도 위덕을 수립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양측의 경지에 본질적인 제고와 승화가 없다면, 사부님의 이 단락의 법을 실천할 수 없으며, 경지가 일체를 증명하고, 경지가 일체를 결정합니다.
20여 년 동안의 비바람 속에서 수련생마다 수련하여 닦아낸 선한 마음은 모두 매우 큽니다. 우리에게는 적이 없으며, 심지어 우리는 때리는 악인에 대해서도 미워하지 않는데, 하물며, 수련생이 빌려 간 그만한 돈 때문에 항상 마음에 담아 둘까요? 다만, 마음이 좀 내키지 않아, 돈을 빌려 간 수련생에게 원망이 있을 뿐입니다. 돈을 빌린 수련생이 사리에 밝고 성실하며,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애초에 돈을 빌리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그 돈을 무엇에 썼는지? 애초에 어떻게 생각했는지? 추악한 일을 폭로하고, 특히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구세력의 경제 박해를 해체하는 과정이며, 당신은 가슴을 펴고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정법은 최후에 이르렀고, 아무도 돈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그 마음이 수련생의 인정을 받았는지지, 반드시 당신의 돈을 받고야 말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박해가 일어난 이 몇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사악에 ‘삼서(三書)’를 썼고, 심지어 사부님과 대법을 비방했습니까? 그런데도 사부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으며, 우리에게 재차 기회를 주시고 계십니다. 돈을 빌린 수련생이 성실하게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사실,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잘 알고 있기에), 잘못을 고치려는 마음이 있으며, 진정하게 앞으로 걸어가고 싶다면, 분발하고 정진하여 진수 제자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저는 아무도 당신을 곤란하게 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약간의 얕은 깨달음으로,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들께서 비평해주시고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5년 뉴욕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7-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3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3/30/3845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