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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있는 당문화(黨文化) 요소–‘의심’을 제거하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동창이 운영하는 인삼·녹용 가게에 가서 동생에게 술에 담글 인삼을 사주려고 했다. 가기 전 남편은 처리를 거친 인삼은 절대 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왜냐하면, 업자들이 인삼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인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편에게 인삼을 선물한 한 지인이 알려준 것인데 나도 그 말을 기억했다. 선입견을 품고 있어서 판매되는 인삼은 틀림없이 처리를 거친 것으로 생각하는 이것은 이미 관념으로 형성되었지만, 자신은 그 당시에 인식하지 못했다.

가게에 도착하자 동창은 나를 따뜻이 맞아주며 어떤 인삼이 필요한지 물었고 나는 술에 담글 인삼인데 동생에게 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이것은 네가 나에게 좋은 것을 주어야 한다, 우리 가족이 사용한다는 뜻이었다), 사실 여기에는 이미 동창생이 나에게 좋은 것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봐 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동창이 술에 담글만한 인삼을 골라 주었는데, 나는 도리어 그런 처리한 것 말고 좋은 것을 달라고 하였다. 동창은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이것은 모두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을 하면서 뭔가 부적절하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고 동창의 태도도 평소와 마찬가지였다. 인삼을 잘 골라 넣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이 일을 말했는데, 남편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며 마치 동창이 파는 물건에 좋지 않은 것이 있다는 뜻이 아니냐고 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정말 형편없이 했다는 것을 인식했다. 원래 동창은 나를 속이지 않을 거라고 믿고 사러 간 건데,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고 친구를 불신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의심이 아닌가? 동창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리고 그에게 진상을 이야기했었고 그는 내가 대법을 수련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데 이것은 대법에 먹칠한 것이 아닌가? 보여준 것은 오히려 속인보다 못했다. 게다가 동창 앞에서 대놓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일함에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우리 중학교 동급생들은 모두 나를 높게 보았다. 왜냐하면, 나는 전에 반에서 성적이 아주 좋았고, 또 지금은 직장과 가정환경이 모두 좋기에 그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했고 그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우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얼마나 체면이 깎였는가! 속으로 다음에는 그의 집에 물건을 사러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나는 스스로 괜찮다고 느꼈고 가는 길에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기에 기분이 매우 좋았었다. 왜냐하면, 근래에 대면해서 진상을 알리는 일을 그다지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기분으로 동창의 가게에 갔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이런 기쁨이 주는 비이성적인,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 채, 집착심이 작용하고 집착심이 나오는 대로 연기를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든 것이다.

동창을 불신하는 것은-의심, 손해를 볼까 두려워하는 것은-이익지심, 그 후 또 동창이 나에 대한 인상이 나빠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은-명리심, 이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과 자신이 이전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의심이 이번에 표현되어 나왔고 또한 이렇게 강했다.

이 일은 또 나에게 다른 한 가지 일을 생각나게 하였다. 인삼을 사러 가기 며칠 전, 나는 일 보려고 밖에 나가던 중 근방에서 식사할 곳을 찾는 남자 셋을 만났다. 그들은 이 아파트단지의 어느 집에 실내장식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우리 아파트에 있는 한 조선족 음식점을 소개해줬다. 우리는 함께 밖으로 걸어갔고 내가 직접 그들에게 방향을 가리키며 그 식당 음식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 음식점은 아주 맛있게 잘하지만, 가격은 높다고 했다.

내가 아주 적극적으로 소개해서인지 그중 한 명이 “이 식당은 친척이 운영하는 것이죠?”라고 말하자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평온하게 “저도 늘 이 집에 가서 반찬을 산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감사하다고 하고 그 식당으로 갔다. 이때 속으로 생각했다. ‘참 불쌍하구나, 사악한 당(邪黨)에 주입되어 좋은 마음으로 가깝고 맛있는 식당을 소개해 주는데도 오히려 이렇게 말하다니, 의심이 너무 많구나. 이것이 바로 사악한 당이 말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을 타도하자.’라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그때 자신을 전혀 보지 않았다. 사실 그들의 표현은 한 면의 거울이었다. 그때 바로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해주신 것으로 의심을 버릴 때가 되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기회를 놓쳤다.

이제서야 사부님 말씀을 깨닫게 되었다. “한 수련자가 부딪히는 일체는 모두 당신들의 수련, 원만에 관련된 것으로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다.”[1] 이번 일은 의심이 내 앞에 철저히 드러나게 한 것이었고 사부님께서는 또 우리에게 수련 중에서 보기에는 무질서하게 보이는 것이 실제로 아주 질서정연하다는 법을 말씀하셨는데 내가 오랫동안 숨겨왔던 이 의심을 제거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인식하였다면 높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기 때문이다. “매 차례 제고는 바로 자신이 증오(證悟)한 과위가 승화하는 것이다.”[2] 이렇게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일이었구나!

실제로 돌이켜 보면 의심의 표현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지만, 결코 중시한 적이 없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내가 없는 동안 아버지를 돌볼 때 정성을 다한 것인지 의심했고, 그가 요리 할 때 이것도 깨끗하지 못한 것 같고 저것도 깔끔하지 못한 것 같았는데 이것은 모두 의심의 표현이 아닌가? 다만 자신이 이런 것들에 있어서 종래로 자신을 닦은 적이 없었고 그것들을 내버려 두었기에 자기 공간장에 이렇게 오래 쌓아둔 것이다.

사실 의심의 위험성은 매우 큰데, 사람에게 의심을 사게 하고 자신감이 없으며 속이 좁게 만든다. 정정당당하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하며 의심이 많은 것은 바로 이익이 손실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데 자사자리(自私自利)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 수련인의 요구와 정반대가 아닌가? 우리는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따라서 의심은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精進要旨二)-대법은 원용(圓容)하다’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길(路)’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去掉最后的執着)’

 

원문발표: 2019년 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5/3749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