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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들어 중생을 위한 이야기를 하자

‘513’ 원고모집을 맞이하며 쓴 글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일 년에 한 번 있는 ‘513 원고모집’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밍후이왕의 ‘2019년 세계 파룬따파(法輪大法)의 날 원고모집 통지’에는 이런 한 단락 말이 있습니다. “현재, 사회에서 특히 중공 통치하의 중국 사회에서, 관리들이 탐오 부패하고, 사회의 기풍이 날로 나빠졌으며, 환경이 오염되었다. 사람들의 심신도 모두 침식을 당했지만, 그래도 불안 속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파룬따파 속에서 수련하여 혜택을 본 우리는 대법의 아름다움을 각계 민중들과 공유하고 그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게 하며, 중공의 거짓말에서 벗어나게 하고 진선인의 복과 이득을 얻게 할 책임이 있다.”

이 단락 내용을 보고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생동감 있는 좋은 문장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작용이 큽니다. 수련자가 사회 각 방면에서 보여준 높은 경지의 행동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는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그들 주위의 익숙한 생활과 사소한 일에서 대법을 수련하는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보게 합니다. 이 혼탁한 세상 속에서 맑게 흐르는 물을 보게 되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로부터 대법 수련으로 들어서 생명의 영원한 복을 얻는 사람도 있습니다.

2019년 5월이면 저의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은 25년이 됩니다. 이 25년 세월 동안 평화로웠던 시기에도, 박해가 발생한 시기에도 수많은 장소에서 사람들이 대법 수련자가 들려주는 수련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았고, 수련자가 본인의 높은 경지의 행동을 쓴 감동적인 이야기를 써내어 중생구도에 큰 작용을 일으킨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동료수련생들과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시기 수련자의 수련 이야기가 대법을 널리 전하고,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한 데 일으킨 작용을 교류하고자 합니다.

1. 그해에, 수련자의 이야기를 듣고 대법 수련에 들어서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1995년 전후 우리 현지에서는 많은 홍법(洪法)팀을 구성했습니다. 법을 얻은 후 저는 현지 몇몇 젊은 수련생과 홍법팀을 구성했고, 우리는 텔레비전을 차에 싣고 대법이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가서 법을 알렸습니다.

한 번은 백 리 길 밖의 한 마을로 홍법 하러 갔습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해서 보니 이 마을은 작지 않은 마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을 입구에 몇십 미터나 되는 튼튼한 큰 나무 기둥 하나가 그곳에 놓여있었고, 큰 기둥 꼭대기에는 커다란 확성기 4개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달려있었습니다. 당시 감탄하여 “와, 이렇게 큰 확성기가 울리면 사방 몇십 리도 다 들리겠지?”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촌장님 집을 찾아갔고, 촌장님 아내분이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촌장님은 감기에 걸려 열이 났고, 옷을 입은 채로 솜이불을 덮고 온돌에 누워있었습니다. 우리가 방에 들어서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온돌 한쪽에 이불을 쌓아놓은 곳에 몸을 기댔습니다.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눈 후 우리는 촌장님에게 우리 자신의 이야기와 직접 보고 들은 다른 대법제자의 대법 수련 이야기를 했습니다. 불치병이 완쾌된 이야기, 청렴결백하게 공무를 집행한 이야기, 시부모님에게 효도한 이야기……

듣고 듣다가 촌장님은 솜이불을 제치고 몸도 곧게 하고 앉으셨습니다. 또 듣다가 촌장님은 흥분하며 손을 비비셨고, 마치 모든 세포가 뛰어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관현의 파룬궁수련생들이 다투어 현물세(公糧)를 바치고 품질 검사가 면제된 이야기를 들은 후 촌장님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잘 됐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도 파룬궁을 연마하여 이후 길을 내면,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 집마다 다니며 재촉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우리가 온 뜻을 말하고 마을에서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여주고 무료로 파룬궁을 가르치고 싶다고 하자 촌장님은 연속 “좋습니다.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저녁에 파룬궁 설법 영상을 보여주려고 텔레비전을 가지고 왔습니다.”하고 말하자 촌장님은 도울 사람을 찾아서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와서 보고 싶은 사람은 오게 하라고 했습니다.

촌장님은 두말없이 앞으로 엎드려 머리를 아랫목의 가장자리에 놓이게 하고 아랫목 가로 널빤지 위에 무언가를 누르고 길게 소리를 뽑아내어 외쳤습니다.

“마을의 남녀노소 여러분,파룬궁이 왔습니다-파룬궁이 왔습니다-오늘 저녁, 마을위원회에서 비디오를 방영합니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무료로 공을 가르쳐줍니다. 배우고 싶은 분은 와서 배우세요.

휴대용 의자나 나무걸상을 가지고 오세요. 오실 수 있는 분은 모두 오세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지금 전국에서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촌장님의 이 갑작스러운 행동에 저는 깜짝 놀랐고,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창밖에서 울린 목소리가 창문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저는 문득 마을 입구에 걸려있던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달린 큰 확성기가 생각났습니다. “허, 촌장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는 큰 확성기의 방송기기 마이크를 그의 집 아랫목에 설치했습니다……

그날 저녁 많은 사람이 왔고, 마을위원회의 큰 방에 다 들어올 수 없어 할 수 없이 텔레비전을 마당으로 옮겼습니다.

우리는 마을사람에게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보여주고 다섯 가지 공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9일 후 사부님의 설법 영상 상영은 끝이 났습니다.

십 일째 되는 날은 마침 일요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정대로 진 정부의 대광장에서 ‘대법홍전(洪傳) 수련심득교류회’를 열었고, 시의 각 계층의 십여 명의 수련생을 청하여 그들 자신의 수련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병을 제거하고 건강해져 구사일생한 이야기, 자신이 어떻게 시부모님을 학대하여 시어머니를 공경하며 모신 이야기, 자신이 직장에서 어떻게 청렴결백하게 공무를 집행한 이야기, 파경을 맞았던 부부가 어떻게 재결합한 이야기, 부자가 되어 혼외정사에서 정상적인 가정으로 돌아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넓은 광장은 매우 큰데 새까맣게 사람들로 가득 찼으며, 광장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서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전거를 밀며 잠시 길을 지나가던 사람과 아이를 데리고 안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몇 개 큰 확성기를 각각 몇 그루의 큰 나무에 걸어 소리가 아주 멀리까지 퍼졌습니다. 광장의 많은 사람이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몇 년 후 그 ‘대법홍전 수련심득교류회’에서 수련자의 이야기를 듣고 수련에 들어선 수련생은 당시 광경을 말하면서 여전히 감동되어 울먹였습니다. 당시 그 장면은 정말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그 후 잇따라 법공부 장소, 연공장을 하나하나 세웠습니다

그런 후에 각 홍법팀은 다른 곳에 가서 사람들에게 사부님 설법 영상을 보여주고, 연공 동작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십 일째 되는 날 ‘대법홍전 수련심득교류회’에서 수련생들은 계속 본인의 수련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후 법을 얻어 수련한 수련생은 또 이렇게 다른 곳에 가서 계속 사람들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고 마음으로 전해져 파룬따파는 따뜻한 봄바람처럼 온 중국 대지에 널리 전해졌습니다.

한 작은 현에서는 1996년에 십여 명이 파룬궁을 수련했고, 1997년 말에 이르러서는 매일 아침 각 연공장으로 가서 수련한 파룬궁수련생이 4만여 명이 되었습니다(인원수 출처: 연공장에서 사부님의 신경문을 청한 수량으로 계산했음).

2.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에서 대법 수련으로 들어선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해에 우리 현지에서 ‘수련심득교류회’를 열었습니다. 보도소는 많은 수련생의 수련심득교류문장을 받았습니다. 문장마다 다른 각도에서 대법을 수련한 후 심신이 변화된 수련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그러나 저도 아쉬운 현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수련생들이 수련 중에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각 방면에서 매우 잘하고 감동적입니다. 문장 서술에서는 개괄적으로 통상 몇 마디로 많은 전형적인 세부 내용을 서술했습니다. 그러나 흔히 이런 세부 내용이 가장 생동감 있고 감동적이며, 법을 전하는 가장 좋은 이야기로 수련인이 비학비수(比學比修) 할 수 있도록 하는 생동감 있는 사례입니다.

저는 이렇게 좋은 사례에서 그 세부 사항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원화라고 부르는 수련생은 시어머니를 돌보면서 심성을 제고한 수련 과정을 썼습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반신불수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기억 상실증에 걸렸습니다. 문장의 대략적인 내용은 시어머니가 반신마비가 되어 침대에 있었는데 아들딸 몇몇은 모두 더럽다고 싫어했고, 이치를 말해도 통하지 않으니 어머니를 돌보면서 힘들어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기에 아무도 시어머니를 집에 모셔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사부님의 요구대로 먼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자발적으로 시어머니를 집에 모셔왔지만, 어머니는 그녀에게 많은 시련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계속 자신을 수련했고, 대법의 법리대로 자신을 수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승화되어 자신의 수련 환경인 과정 전체를 간단하게 썼습니다.

이 과정에 수련생은 심성 제고 방면에서 분명 많은 깨달음과 감동적인 행동이 있을 것이며, 수련생을 도와 이런 생생한 세부 이야기를 발굴하도록 도와야 법회에서 홍법과 수련을 촉진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때 수련심득교류는 홍전과 연관되기에 대법제자의 심득교류회는 사람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집회이기도 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수련하지 않는 많은 친척, 친구를 초청했고, 고향의 마을 사람들이 와서 수련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원화 씨를 찾아가 그녀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돌본 과정을 말했습니다. 그중 몇 가지 전형적인 세부 내용은 이렇습니다. 원화 씨 근처에는 수십 명의 법공부 소그룹이 있었습니다. 시간은 매일 저녁 7시 반에서 9시까지였습니다. 그녀는 이 단체 법공부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매번 늦었습니다. 하루는 법 공부를 한 후 교류 시간에 그녀에게 의견을 제기한 수련생이 있었습니다. “원화 씨는 출근도 하지 않는데 왜 일찍 오지 않아요? 법 공부는 될 수 있는 대로 늦지 않도록 해주세요.”

원화 씨는 듣고 눈물을 글썽였고, 억울함을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말하는 중에 시어머니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원망했고, 그녀 남편이 텔레비전만 보고 저녁에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녀는 때때로 스스로 시어머니를 모셔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번거로움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시어머니에게는 그렇게 많은 아들딸이 있는데 등등.

수련생들은 듣고 법리에서 본인의 심득 인식을 교류하고 원망하지 말고 후회하지 말아야 하며 착실한 수련을 통해 심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그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 본인의 수련 환경을 개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수련생들은 의논하여 문과 가까운 위치를 원화 씨에게 남겨주어 원화 씨가 늦게 오더라도 수련생들의 법공부에 영향 주지 않고 편리하게 드나들게 하자고 했습니다.

원화 씨는 성격이 온화하여 속삭이듯 시어머니를 돌본 과정을 말했습니다.

“우리 시어머니는 기억 상실증에 걸렸지만, 이상하게도 먹는 것과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전혀 기억을 잃지 않았어요. 이 법공부를 말하자면 제시간에 단체 법공부에 참여하기 위해 저는 매일 아침 일찍 온 가족의 저녁밥을 다 지어놓고 시어머니에게 한 술씩 떠먹이고, 시어머니 침대시트와 기저귀를 모두 새것으로 교체하여 깔끔하게 했어요. 또 시어머니에게 대변을 볼 것인지 여러 번 물었고, 대변을 볼 것 같으면 일찍 저에게 알려달라고 말했어요.

시어머니는 머리를 흔들며 성가시다는 듯이 배에 대변이 없다고 말했어요.

제가 방석을 가지고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시어머니가 “원화야, 나 대변을 봤어. 가지 마. 빨리 치워줘.”하고 소리치셨어요.

그때 저는 정말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었어요. 방법이 없어 다시 치워드렸죠. 하지만 시어머니의 그 흡족해하시며 옹졸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저는 화가 욱하고 치밀었지만 제가 화를 내기 전, 순간적으로 큼직한 ‘인(忍)’자가 눈가에 나타났어요. 저는 애써 울분을 참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깨끗하게 치워드렸지요. 그런 다음 억울한 눈물을 흘리며 법공부 장소로 갔어요.

매일 저녁, 다 이러했어요. 마치 영화를 방영하는 것처럼 그 장면이 매일 반복됐어요. 저는 속으로 몹시 화가 났지만, 자신에게 ‘시어머니를 생각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하고, 자비로운 마음과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건 아직 그나마 괜찮은 것이랍니다. 제일 속상한 것은 시어머니는 제 앞에서는 좋은 말을 하다가 다른 사람이 오면 저의 잘못을 들추어 나무라셨어요. 한 번은 주민센터 주임이 한 무리 사람을 데리고 방문 왔을 때 시어머니는 콧물, 눈물을 흘리며 이 며느리가 어떠어떠하게 밥을 주지 않고 학대하며 좋은 것은 자기가 먹는다고 말했어요. 정말 그 마음을 건드려 견디기 어려웠어요.

어떤 때는 도저히 견디지 못해 이렇게 힘들여서 해도 좋은 소리도 듣지 못하는데 하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매일 저녁 사부님의 설법을 배우면, 이 시점에서 마치 제약을 받는 것처럼 저의 그 ‘하지 말자’라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제약이 가해졌어요.

후에 시누이는 시어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 밥을 배불리 먹이지 않고, 학대한다고 한 말을 듣고 시어머니를 한바탕 심하게 나무라고는 저를 위로해 주었어요. “형님, 마음에 두지 마세요. 엄마는 노망이 들었어요. 우리 형제자매들은 누구나 형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며느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요.”

제가 매번 속으로 화를 내고, 심성을 지키지 못할 때면 그 후에 속으로 정말 후회했어요. ‘자신이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이 고비를 왜 잘 넘기지 못할까?’를 생각해 보니 명을 구하는 마음, 보답을 받으려는 마음이 다 있었습니다.

이런 나날이 반년이 지나자 저의 마음은 차츰 평온해지고, 온화해졌으며, 시어머니를 싫어하지도 않았고,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도 없어져 마치 친정엄마에게 하는 것과 같았어요. 시어머니의 변화도 적지 않아 저에게 속마음을 말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어느 날 저녁이 되어 시어머니는 저에게 대변을 보겠다고 말하면서 이후에는 좀 일찍 대변을 보고 자네가 제때에 사람들과 파룬궁을 배우게 하겠다고 말했어요. “이전에 내가 대변을 참았던 것은 저녁에 네가 나를 데리고 있게 하려는 것이었어. 나는 네가 나의 곁에서 도와주는 것이 좋아.”

저는 듣고 나서 당시 떨어지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마음속으로 계속 말했어요.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를 격려해주시는 것임을 압니다.

제 남편에 관해 얘기하자면 처음에는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반대했고, 제가 그의 어머니를 이렇게 잘 돌보는 것을 보고 점차 반대하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저의 수련을 지지하지는 않았어요.

어느 날 남편은 저와 함께 동료수련생 집에 가서 사부님의 해외 설법 한 권을 청했습니다. 남편은 수련생 집 거실에 사부님의 법상(法像)과 ‘논어’ ‘진선인(眞善忍)’, ‘파룬상전(法輪常轉)’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문을 나선 후 저에게 물었어요. “우리 집에는 왜 사부님의 사진을 걸지 않았어?” 저는 “나는 당연히 사부님의 법상을 신청하고 싶지요. 그런데 당신이 좋아하지 않을까 봐 신청하지 않았어요. 내가 억지로 집에 신청했다가 당신이 화내고 좋지 않은 말을 하여 당신에게 큰 업을 짓게 할 수 없어요.”하고 진심으로 말했어요. 잘 수련하고 빨리 심성을 제고하여 하루빨리 사부님의 법상을 집으로 청해오겠어요.

저는 저의 심성 제고가 너무 늦어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남편이 완전히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며칠 지나 제가 밖에 나가 일을 본 후 오후에 집에 돌아와 문을 열어보니 남편이 공구를 치우고 있었어요. 거실 벽에 가지런히 사부님의 법상과 ‘논어’, ‘진선인(眞善忍)’, ‘파룬상전(法輪常轉)’ 사진이 걸려있었어요. 당시 저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남편이 말했어요. 남편이 큰누나 집에 가서 청하여 친구의 도움을 얻어 액자를 만들었다고 하면서 마음에 드는지 물었어요.

저는 마음이 정말 기뻤어요. 사부님께서 제가 진정으로 심성이 제고된 것을 보시고 저를 격려해주신 거예요.”

원화 씨는 매우 상세하게 말했고, 본인이 심성을 제고한 과정도 교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쓸 줄 모른다면서 글 쓰는 능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원화 씨를 격려하며 말했습니다. “너무 잘 이야기하셨어요. 감동적이었어요. 이렇게 원화 씨가 말한 이런 말을 순서대로 쓰면 됩니다.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 수련 이야기는 사람의 글쓰기 능력과 글쓰기 기교가 필요 없어요. 원화 씨는 본인이 수련 중에서 잘한 일, 인상이 가장 깊었던 일을 말하듯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쓰면 되고 매우 좋아요. 이런 이야기를 수련생들이 들으면 비학비수(比學比修)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들으면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고, 수련자가 어떻게 진선인의 표준으로 도덕이 고상한 사람으로 되는지를 알게 됩니다.”

원화 씨는 이렇게 본인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다른 수련생들도 본인의 이야기를 다시 썼습니다.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가 열린 날 시 영화관에는 사람들이 꽉 찼고, 무대 양쪽과 인도에도 바닥에 청중들이 앉아있었으며, 바깥 홀에도 거의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교류회가 끝난 후 저와 수련생은 함께 극장을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셋째 삼촌, 셋째 숙모와 자녀도 와있었습니다. 셋째 삼촌은 절박하게 저에게 ‘전법륜(轉法輪)’을 요청했습니다.

이전에 저와 어머니는 그들에게 대법을 소개했고, 셋째 삼촌은 지금 아직 젊기에 승진하는 관건이 되는 시기라며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으니 정력을 분산하고 싶지 않다며 다른 취미를 가질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수련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셋째 삼촌은 약간 흥분한 듯 보였습니다. 원래 그들 온 가족은 오늘 동물원에 가기로 했고, 영화관을 지날 때 밖에 많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무슨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줄로 알고 들어가 본 것입니다. 극장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꽉 차 있는 것을 보고 무슨 큰 대회를 여는가 보다 하고는 막 돌아서는데 한 스탭이 그들에게 파룬궁 수련심득교류회라고 알려주며 이야기가 대단히 재미있고 훌륭하다며 셋째 삼촌에게 들어가 듣는 것을 환영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즉시 들어가 뒷자리의 몇 사람과 몇 마디 말하더니 그 몇 사람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 주었습니다.

자리까지 양보해 주어 셋째 삼촌과 숙모도 마다하기 미안해서 앉아 들어 보았던 것입니다. 마침 현지에 군대를 주둔시킨 대대장의 수련체험 교류였고, 그 대대장 수련생의 고향은 농촌이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고 명리를 다투지 않고 각 방면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했는지를 말했습니다. 그가 소재한 부대의 많은 사람은 그의 변화를 보고 대법 수련으로 들어섰습니다…… 셋째 삼촌은 다른 수련 이야기에 대한 느낌도 말했고, 원화 씨의 이야기도 말했습니다. 삼촌의 격동된 마음은 제가 법을 얻었을 때의 광경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이렇게 셋째 삼촌의 온 가족은 파룬궁을 수련하게 됐습니다.

그 세월 속에서 많은 생명이 이렇게 수련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대법과 인연을 맺어 대법 수련으로 들어서 자신의 아름답고 영원한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3. 이야기를 듣고, 톈안먼(天安門)광장으로 가다

수련자의 높은 경지가 보여준 훌륭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우리 수련자 자신에 대한 비학비수(比學比修)의 감화력도 거대합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발동했습니다. 박해가 가장 참혹했던 기간에 파룬궁수련생들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고, 톈안먼광장으로 가서 현수막을 펼치고 연공을 했습니다. 그것은 천상(天象)의 변화 아래 필연적인 역사적 과정입니다. 걸어 나올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매 수련자 앞에 직면한 검증이었습니다.

그날 삼촌과 숙모는 제가 집에 없는 것을 발견하고 몹시 초조해하며, 곳곳을 다니며 저를 찾았습니다. 사촌 언니는 말했습니다. “이렇게 찾다가 어떻게 찾을 수 있겠어요? 내가 양씨 아주머니댁에 가서 물어볼게요. 징얼이 이전에 나를 데리고 갔었어요.”

양씨 아주머니는 우리 현지의 보도원이며, 이전에 저는 사촌언니를 데리고 양씨 아주머니댁에 갔었습니다.

사촌언니가 온 뜻을 알고 양씨 아주머니는 웃으며 사촌언니에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징얼 씨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많은 수련생이 이곳에 있어요. 창춘 대법제자가 왔어요. 그들은 방금 베이징에 청원을 다녀와서 많은 신기한 이야기를 하여, 지금 수련생들에게 들려주고 있었어요. 모모 씨도 들으세요.”

창춘 수련생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 고향으로 몇천 리 길을 왔습니다. 그들의 정법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들이 베이징 톈안먼으로 가서 법을 실증한 신기한 경험과 감동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후에 사촌언니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수련인들이 베이징에 간 과정은 너무 신기해. 그 대법제자는 돈 한 푼 가져오지 않고 걸어서 베이징에 갔는데, 길에서 배가 고프면 철로변에 만두가 놓여있었고, 비가 올 것 같으면 큰바람에 큰 비닐주머니가 날아와 그를 덮어주었대. 햇빛이 너무 강해 휴식하려고 생각하면 앞에 작은 숲이 나타났다고 하는 데 정말 이렇게 신기한가? 너희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베이징으로 가는지를 나는 지금 알았어. 너희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처럼 수련하지 않는 사람도 모두 즉시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고 싶어지는구나.”

저는 사촌언니에게 말했습니다. “바로 그날 저녁 방안 가득 모인 동료수련생들은 이야기를 들은 후, 모두 베이징으로 갔어요. 어떤 수련생은 집에도 가지 않고 바로 베이징으로 갔고, 나도 그날 저녁에 베이징으로 갔어요. 그날 다른 교류장소에서 수련생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베이징으로 갔던 것입니다.”

후에 610주임은 말했습니다. “그날 저녁, 시 구역에서 베이징으로 간 파룬궁수련생은 4, 5백 명은 됩니다.”

밍후이 편집부 문장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평범함 속에 신기(神奇)함으로 충만하고, 고난 속에서 아름다움으로 충만하고, 억만 개 소소함이 호한(浩瀚)으로 모이며, 짧은 오늘로 장구한 미래를 창조하는 한 단락 역사였다.”

“우리는 펜을 들고,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과 견증을 조금이나마 기록하여, 진실한 역사를 후세사람들에게 남겨주자.”

 

원문발표: 2019년 3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3/16/3839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