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가정의 균형을 잘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는 사람마다 인식이 다 다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족은, 당신이 수련할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 가장 좋으며, 그가 수련할 수 없더라도 당신 또한 그가 구도 받을 생명이 되게 해야 하며, 최저한 하나의 좋은 사람으로 되게 해야만, 그가 비로소 복을 받을 수 있다.”[1] 사존의 가르침을 대조하여 몇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고, 수련생들과 함께 서로 교류하고자 합니다.
아내는 1998년 12월에 법을 얻었고, 저는 1999년 1월부터 대법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 3월, 저는 아내와 외지에서 갓 한 살이 넘은 외손자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딸과 사위는 모두 외지에서 일하고, 출근도 해야 해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고, 외손자의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는 생활이 어려운 데다가 또 속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대법 수련에 들어온 딸은 아이를 우리 부부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아이는 작고 야윈 데다가 자주 아파 사람을 몹시 지치게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이 일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고,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자!’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마 이 아이가 우리와 이런 인연이 있어서 돌봐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외손자가 네 살이 되던 해, 우리는 아이에게 법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사부님의 ‘홍음’을 외웠고, 다섯 살 때 진정하게 수련으로 걸어 들어와 우리와 함께 법 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외손자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비교적 큰 병업관을 넘겼습니다. 사나흘 동안 고열이 가라앉지 않고, 종일 혼수상태에 빠져 몸이 화끈거리는 데다 사위는 속인이라 아이를 보러 오기 위한 가족 방문 휴가를 이틀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내와 다른 한 수련생과 함께 아이를 둘러싸고 법 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하며, 집착심을 찾으면서 꼬박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아내와 수많은 사람 마음을 찾아냈습니다. 정이 무거워, 우리가 외손자에게 연공을 가르치는 것을 아이의 아빠가 알고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고, 또 아이가 병업관을 넘기는 모습을 보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아이를 병원으로 보내면 이번 수련의 관을 넘어 병을 없애는 기회를 놓치게 될까 봐 두려웠지만, 또 아이에게 위험이 나타날까 봐 두려운 등등, 이것을 두려워하고, 저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한가득하였습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수련자가 사람과 신으로 구별되는 증거(見證)이자 수련자와 속인의 구별이며 또한 수련자가 제거해야 할 최대의 사람 마음(人心)이다.”[2] 집착을 찾았고, 심성이 제 위치로 돌아왔으며, 법에서도 아이의 표현은 우리 어른의 제고를 돕는다는 것을 인식하여, 아이의 병업관은 잘 넘겼습니다. 사위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평소처럼 활력이 넘쳤습니다. 우리는 정말 마음속 깊이 사존께서 저와 아내에게 또 한 차례 정의 그물을 뚫고 나와 두려운 마음을 닦아 없애도록 특별히 마음 써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외손자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모든 학생은 ‘6.1’ 이전에 모두 소년선봉대에 가입하고 붉은 넥타이를 착용해야 한다고 통지했습니다. 저는 아내와 다른 수련생과 논의했는데 이 수련생은 “우리는 일단 형식적으로 가입해봐요. 그다음 다시 탈퇴성명을 하면 돼요. 혼자서만 소년선봉대에 가입하지 않는 것은 아이에게도 압력이에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와 아내는 직접 외손자의 의견은 어떤지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외손자는 아주 명쾌하게 “저는 결코 소년선봉대에 가입하지 않겠어요. 저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요. 저는 꼬마 대법제자거든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튿날 점심 무렵, 아내는 직접 학교에 가서 외손자의 담임선생님을 만나 외손자가 소년선봉대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를 이야기했고, 선생님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 ‘삼퇴’ 시켰습니다. 반 전체에서 외손자만 소년선봉대에 가입하지 않았고, 초등학교 졸업 전 학부형 회의에서 담임선생님은 외손자를 칭찬하며 말했습니다. “그는 소년선봉대원은 아니지만, 품행과 학업이 모두 우수하여 ‘3호 학생[三好學生, 지(智)·덕(德)·체(體)를 겸비한 학생]’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외손자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반 전체에서 혼자만 공산주의 청년단원이 아니었으며, 평온하게 수련의 길을 걸었습니다.
외손자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내가 진상을 알리다가 박해를 당하여, 저는 외손자를 데리고 파출소에 찾아가 석방을 요구하자, 경찰관은 저를 향해 큰 소리로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당신들이 수련(파룬궁)을 가르치다니, 정말 못 말려!”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우리는 그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요. 나쁜 일을 외손자에게 강제로 하게 할 수 있겠어요? 이 공법은 백 가지 이로움만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경찰관은 입을 벌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아내가 노동교화를 당하는 동안, 저는 외손자와 두 번 노동교화소를 방문했습니다. 외손자는 매우 강인했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떠날 때는 또 할머니를 향해 작은 손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박해를 당하는 기간 사위는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딸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다그쳤습니다. 처음에는 딸에게 무릎을 꿇고 울고 불며 소란을 피우다가, 그다음에는 칼을 들고 딸을 살해하려고 했고, 또 자살과 이혼도 하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외손자를 데려가겠다며 전화로 저에게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며 말끝마다 욕을 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화내지 말며, 안으로 찾고, 발정념을 하면서 원망하지도 증오하지도 말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사위는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사존의 요구에 따라 행하면서 저와 외손자의 이 인연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부님을 굳게 믿으면서 대법 수련을 확고히 했습니다. 저 혼자 이 집을 지탱하면서, 외손자와 함께 법 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며, 수련을 확고히 하겠다는 소망 하나로 사악의 각종 교란을 견디면서 걸어 지나왔습니다. 사위의 태도도 바뀌었습니다. 그는 직접 노동교화소를 한 번 찾아가 제 아내를 면회했습니다. 저에게서 대법의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보았고,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의 흉금과 선량함을 목격하고 그도 대법을 인정하여 ‘삼퇴’를 했습니다. 밖에 나가서 차와 배, 비행기를 타면서 지갑에는 항상 대법 진상 호신부를 지니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제 아들은 1999년 대학교 겨울방학 때 집에 돌아왔다가 우리 두 노부부가 연공하는 모습을 보고 대법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며느리와 알게 되었을 때, 아들의 장인은 사악한 공산당의 거짓 선전의 영향을 받아 대법을 인정하지 않았고, 며느리도 진상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아들의 장인은 몸에 병이 많았고, 집에는 관음상을 공양했는데 일 년 내내 향을 피워도 건강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사돈댁의 이런 상황을 듣고, 우리 두 부부는 이 사돈댁은 사부님께서 배치해 주신 것으로, 우리가 하나의 수련하는 작은 정체를 이루도록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먼저 장인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고, 장모가 관음상을 떠나보내도록 도왔으며, ‘전법륜’을 모셔와 그녀에게 연공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지 2개월이 되었을 때, 안사돈은 온 얼굴이 불그레해졌고, 모든 병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아들은 또 자기 아내와 장인을 설득하여, 며느리네 가족 모두가 연이어 대법 수련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다음 해에 며느리는 딸을 낳았습니다. 우리의 손녀는 한 살 때, 갑자기 어느 날 보통 사람이 폐렴에 걸린 것처럼 숨을 크게 내쉬었고, 몸은 열이 났고, 기침과 구토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밤중에 또 헛소리까지 하여 너무 무서웠습니다. 안사돈은 전화를 걸어와 자신은 자신이 없으니 빨리 와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다섯 명의 대법제자는 한결같이 ‘마음을 끝까지 내려놓고 신사신법하며 사부님께서 계시니 일체는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인은 아이가 괴로워하는 상태를 차마 보지 못하고 아래층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저는 아내와 안사돈, 아들, 며느리와 함께 30분 법 공부를 하고, 30분 발정념을 했으며, 다시 반 시간 법 공부를 하고, 다시 반 시간 발정념을 하였습니다. 밤에는 집으로 돌아와 외손자를 돌봤고, 아내는 계속 법 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하면서 안으로 찾았습니다. 날이 밝아왔습니다. 손녀는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고, 숨을 몰아쉬지 않았으며, 열도 내렸습니다. 목을 좀 말라 했을 뿐 모든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손녀가 웃자, 온 가족이 모두 웃었습니다. 한차례의 사람 마음을 없애고, 집착을 없애는 생사고험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사존의 호탕하신 불은(佛恩)을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손녀는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아들과 며느리는 일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들 세 식구가 점심이면 우리 집으로 와서 밥을 먹곤 했습니다. 아들의 직장과 손녀의 학교는 우리 집에서 매우 가까워 바쁠 때면 우리도 아이를 데려다줍니다. 이런 일에 대해 어떤 수련생은 견해를 제기했고, 우리가 정이 너무 무겁다고 말했습니다. 하루 동안 세 가지 일을 하기에도 이렇게 바쁜데, 아들, 딸에게 밥을 해줘야 하는 것은 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수련 과정에서 정을 끊어내려 해도 끊어내기 어려운데, 당신들은 또 안으로 파고들기까지 하네요.”라며 말했습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기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해,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이 마음은 곧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 자선지심(慈善之心)이고 자비(慈悲)이다. 정(情)은 속인 중의 것으로서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3] 사존의 설법을 대조해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이 가정이 속인의 일반적인 가정이 아닌, 대법제자로 구성된 작은 정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인간 세상으로 온 것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조사 정법 하기 위한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다른 역할을 하면서 역사적인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 것은 무사무아(無私無我)이며, 가정의 균형을 이루는 것 역시 수련의 일부분입니다. 손녀가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이미 6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가족 다섯 식구는 줄곧 함께 식사합니다. 그리하여 아들네 집에 많은 채소를 사야 하는 것과 식사 준비 시간을 많이 절약해주었습니다. 며느리도 자주 집으로 먹을 것을 사 오고, 연말이면 또 우리에게 식비를 주지만 우리는 사양합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식비를 드리는 게 아니에요. 후원금이에요. 잘 챙겨주셔서 감사드려요.”라고 했습니다. 속인 가정에서 고부 사이는 잘 지내기 어렵고 심지어 매우 딱딱하기까지 하지만 우리 집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며느리는 자주 동료, 학부형 또는 친정, 친척에게 뒤에서 몰래 시어머니가 선량하고 성실하며 무엇을 하든지 말끔하게 처리한다며 자주 칭송하며 말했습니다. “시아버지의 요리는 맛있어요.” 손녀도 자랑스러워하며 할아버지의 ‘네 가지 뛰어난 요리’와 할머니가 만든 칼국수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해마다 명절 때마다, 특히 어버이날이면 며느리는 우리 노부부에게 생화나 선물을 주며, 가족 분위기가 화기애애합니다.
손녀가 1학년일 때, 며느리는 직접 학교에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딸이 소년선봉대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여 밝혔습니다. 지난해 9월, 입학한 손녀는 벌써 6학년이 되었습니다. ‘소년선봉대’ 관련 활동에서, 선생님은 모두 자발적으로 손녀를 참여시키지 않았고, 손녀 역시 아무런 압력 없이 낙관적인 태도로 발전하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매우 조화로운 가족 수련환경을 개척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사존의 대법제자입니다.
수련생은 우리 집, 아들 집, 안사돈 댁에 가서 법 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며 진상 자료 및 대법 관련 일을 하는 것은 어떤 시간에도 모두 안전하고, 원활합니다. 우리의 친척과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대법 진상을 알고 모두 ‘삼퇴’하였습니다.
우리는 매일 오전에 단체법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나가서 진상을 알립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집안 친척들은 일반적으로 전 세계 발정념 시간 및 오전에 우리에게 전화를 걸거나 일 처리를 부탁하지 않습니다. 친척과 친구 모두 우리의 파룬따파 수련을 이해하고 지지합니다.
20년간 비바람 속에서, 우리는 법에서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고, 대법의 지혜로 화목한 가정을 개척했습니다. 마음속에 법이 있으니, 발아래에 길이 있었으며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고려하니 아무것도 지체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대법을 얻게 하였고, 중생이 진상을 깨닫게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바로 사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당신이 심정적으로 맑을 때, 마음이 넓고 낙관적일 때, 당신은 주위환경 역시 같지 않은 것을 발견할 것이다.”[4]
가정의 균형을 잘 이루어 우리의 마음속에 행복이 가득해진 것은 이 만고의 고덕대법이 우리에게 준 지혜입니다. 우리는 정체 제고에서 자비롭고 위대한 큰 힘을 깊이 느꼈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설법 10-맨해튼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법학습을 잘하면 사람 마음을 제거하기 어렵지 않다’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09년 워싱턴 D.C 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3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3/16/3839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