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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제자에서 청년 대법제자로

글/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엄마, 외할머니,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는 1996~1997년에 잇따라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법(大法)을 널리 전하니, 소문을 들은 자는 찾고, 얻은 자는 기뻐하는바, 수련자가 날로 많아져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1]와 같았습니다. 외할머니는 대법 수련 후 선천성 뇌혈관협착증, 증조할머니는 고혈압, 증조할아버지는 피부병이 모두 좋아졌습니다.

저는 2000년에 태어났는데, 엄마는 저를 임신했을 때부터 바쁜 생활 속에서 법 공부와 연공을 했으므로, 사실 저는 엄마 뱃속에서 법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저를 임신했을 때 믿기 힘든 사건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임신 4개월 될 무렵, 초음파 검사에서 태아 머리에 종양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의사는 엄마에게 “태아를 계속 지킬 것인지, 잘 생각해 보라.”라고 말했고, “아이가 태어나도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성장한다는 보장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이 사실을 알게 된 친지들은 모두 아이를 유산시키라고 권하면서 “만약 태어난 아이가 정상이 아니면 어쩌겠느냐? ……. 하지만 엄마는 외할머니와 상의한 후 아이를 출산하기로 했습니다.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는데, 어찌 수련자로서 살생할 수 있는가? 아이가 어떠하든 모두 귀중한 생명이기 때문에 출산하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모두 연분으로 온 것인데, 만약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도 인연으로 갚아야 할 빚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엄마는 마음을 내려놓고 착실히 법 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6개월 정도에서 초음파 검사를 했을 때 태아의 종양이 약간 작아졌으며, 7개월이 되어서 태아의 종양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의사들은 속인의 의학으로 설명하기를 ‘흡수 현상’이라고 했지만, 엄마와 외할머니는 사부님께서 해결해주셨다는 걸 알고 있었고, 사부님께 큰 감사를 드렸습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저는 출생 후 어른들과 함께 늘 사부님 설법 비디오와 사부님 설법녹음을 들었습니다. 겨우 한 살이 넘었을 때, 어느 날 저녁 우유를 먹고 자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사부님 설법 비디오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베개에 기댄 채 우유병을 입에 물고 비디오를 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보기에 비디오를 보기에는 자세가 좀 불편하겠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제가 머리를 돌려 똑바로 누워 천장을 쳐다보면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우유를 먹었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할 때, 외할머니가, 사부님께서 영상을 천장에 투영시켜 보여주신 것이라고 말하면서 저에게 “사부님은 어디에 계셔?” 하고 묻자, 우유병을 물고 천장을 가리켰다고 합니다.

저는 6세 전에 천목이 열려,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 천목으로 본 ‘파룬 도형’은 모두 회전했는데, 정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모두 돌았습니다. 후에 주위의 많은 어른은 파룬(法輪)이 도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가부좌하고 정공을 할 때 가끔 사부님께서 저의 옆에 앉으셔서 저를 보며 웃으셨는데, 사부님께서 격려해 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또 정공 중에 몇 번씩 검은 물질이 다리에서 아래로 내려가 마지막에 완전히 발에서 빠져나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발정념할 때는 마치 캐릭터 괴물 같은 얼굴형에 사지가 있지만, 몸체가 없는 것 같은 검은 물체들이, 흰 물체와 싸웠는데, 흰 물체가 검을 물체를 곤두박질치게 하는 장면을 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있어서 무엇을 그리고 싶으면 종이에다 바로 그릴 수 있었으므로, 별도로 다시 그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제가 본대로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한 후, 곧바로 작은 병아리가 벌레를 잡아먹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다음 “옆에는 또 고층 건물이 있는데 건물이 몇 층인지 까먹었네. 제가 다시 볼게요!” 말한 후 눈을 크게 뜨고 한동안 어리둥절하다가 “아, 9층이네!”라고 말한 후 병아리 그림 옆에 9층 건물을 그려 넣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제가 전생에 아마 화가였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곳은 작은 고장이었으므로 저에 대한 평은 “총명하고, 예쁘고, 예의 바른 어린이”로 유명했습니다. 모두가 칭찬하는 말은 선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도 누구와 충돌하거나 다투지 않았습니다. 만약 다른 아이들이 제 장난감을 갖고 놀면, 대범하게 갖고 놀라고 양보했으며, 마음 같아서는 집에 있는 장난감을 전부 꺼내 놓고 놀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만약 장난감을 돌려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았고, 그에게 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할 때, 막 걸음마를 시작한 동생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함께 하게 하자, 친구들이 귀찮다고 했습니다. 저는 “같이 놀자. 얼마나 불쌍하냐!”라고 말했습니다. 저희 고장의 노인들은 모두 저를 ‘인의동자(仁義孩子)’라고 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지혜를 열어주셨기 때문에 저는 무엇이든 빨리 배웠는데, 글자도 빨리 알 수 있었으며, 한 번 외운 것은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교과서를 익숙하게 읽지 못할 때, 저는 이미 유창하게 책과 신문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일이지만, 사람들은 제가 일찍이 한 글자도 틀림없이 어른들처럼 한 사람이 한 단락씩 읽는 단체 법 공부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다른 친구들은 겨우 교과서 이외 책을 읽을 때, 저는 번체자 원본의 ‘삼국연의(三國演義)’를 읽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대략 삼국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 학년이 높아지면서 특히 중학교 입학 후, 공부에 대한 긴박감이 생기고 숙제도 점점 많아짐에 따라 법 공부와 연공에 점점 태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학교 숙제와 공부에 집중했어도 오히려 성적은 떨어졌습니다. 비록 여러 번 자신의 수련 상태를 반성했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돌파하지 못했으므로 실제적인 변화는 없었습니다. 마치 악순환에 빠져든 것처럼 법 공부도 못하고 수련이 부족할수록 공부는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이쪽 속인의 표현에서 수학, 물리, 화학 등 이과 과목이 힘들어지고, 숙제하는 것이 느려지면서 스스로 자신의 한가한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줄곧 자신을 어린 대법제자로 여기며,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면서 일을 했고, 진정한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초기의 우등생에서 중간 정도로 떨어졌으므로 명문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은 엄두도 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순리에 따른다.’라는 마음을 유지하면서 집착하지 않았고, ‘어린 제자에게 사부님의 배치가 있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두 번의 모의고사는 모두 원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이 정도의 점수로는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모의고사가 끝난 후, 고등학교 입시까지는 2주일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학교에서는 거의 숙제를 내지 않아, 각자 자신의 정황에 따라 자습을 하게 됩니다. 보통 선생님들의 경험으로 볼 때, 이 시기 학생들의 실력은 거의 이미 정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적이 크게 향상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 시간에 학교에서 돌아와 곧바로 법 공부와 연공을 했고, 이어서 발정념을 했을 뿐 교과서는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지원은 8개 학교를 지원할 수 있었지만, 엄마가 집과 가장 가까운 명문 고등학교 3곳만 지원하라고 해서, 엄마 말대로, 거리가 먼 곳의 명문 학교와 가까운 중급 학교에는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지원신청서를 본 담임선생님은, 제가 이 명문 학교에는 합격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너는 고등학교에 갈 생각이 없구나!”하고, 엄마와 특별 진학상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입시 체육 과목은 40점 만점인데, 체육은 잘하는 편이라고는 해도 만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턱걸이는 13개를 해야 10점 만점인데, 저의 최고 기록은 9개지만, 보통 8개 정도이고, 1000m 달리기는 9점이 최고 기록인데, 지난번 체력 모의 테스트 때는 갑자기 배가 아파 참여하지 못해 알 수 없는 일이라 이 역시 불리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시험에서는 턱걸이 13개로 만점을 받았고, 1000m 달리기에서도 3분 20초의 기록으로 만점을 받았는데, 전반부 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사람은 저를 포함해서 단 2명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했지만, 저와 저희 가족은 사부님께서 도와주셨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입시시험에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입시시험이 끝난 후 느낌이 괜찮았습니다. 국어는 마침 준비했던 것과 비슷한 문제가 나와 무난히 작문에 응용할 수 있었으며, 영어도 평소 제가 자신하고 있던 문제들이 나와 시험을 잘 치른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성적이 발표됐을 때 제가 지금까지 받아보지 못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모의고사 시험 때보다 무려 1천여 명을 앞질렀습니다. 최종합격자 명단에 제 이름이 올라 있었는데, 집에서 가장 가까운 명문 고등학교에 합격했습니다. 만약 체육에서 만점을 받지 못했다면 합격하지 못했을 겁니다. 사부님께서는 항상 무기력에 빠졌던 어린 제자를 보호해 주셨으므로 그 감사한 마음을 무슨 말로도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은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모든 생활이 학습상태였습니다. 어떤 학기에는 9개 과목과 예체능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저는 이과와 완전히 구분된 후에도 물리, 화학, 생물 등 몇 개의 이과 과목을 버리지 못했고, 여전히 구세력(舊勢力)이 강화한 속인의 굴레에 얽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성적과 미래 방향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았으며, 신사신법하면서 사부님의 배치만 받겠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나면 법 공부, 연공, 발정념을 했습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정진하지 않는 어린 제자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셨고, 수능시험에서 예체능 학과와 문과 두 과목은 운 좋게 잘 치러, 제가 원하는 이상적인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저의 경험에 의하면 아무리 일과 공부가 바쁘더라도 자신을 대법제자로 여기며, 대법을 확고하게 믿으며 일사 일념을 잘 파악해야 하고, 시간을 짜내 세 가지 일을 잘한다면, 사부님께서는 어느 제자라도 포기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법 노정은 이미 최후의 단계에 도달했지만, 매 사람은 모두 속인 사회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만약 집착심을 놓지 않는다면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바쁘게 살면서 세 가지 일을 소홀히 하게 되면 수련환경은 점점 나빠질 것입니다.

대학 생활이 곧 시작됩니다. 어린 제자였던 저는 이미 만 18세 된 청년 대법제자로 성장했습니다. 전에 법 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은 엄마의 일깨움과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홀로 가족을 떠나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원래 수련은 자기 일입니다! 저는 최근 ‘대학 생활은 어떻게 지내야 하고, 어떻게 대학의 큰 염색 항아리에서 오염되지 않고, 어떻게 세 가지 일을 잘해서 정법 노정을 따라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신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두 손으로 허스(雙手合十)하며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사부를 모시다(拜師)’

 

원문발표: 2019년 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4/380781.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9/2/17/1758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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