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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깨끗이 제거해 주인공 역할을 잘하다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주 정법의 최후 단계에, 현재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는 긴박한 시각에 큰 범위로 끊임없이 붙잡히거나 병업 현상, 세상을 떠나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또 사람을 구하는 핸드폰 카드가 저애를 받고, 빅데이터, 감시카메라 설치 등등 현상으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데 일정한 교란을 조성했다. 어려움과 교란에 마주해 많은 대법제자에게 힘이 마음을 따라주지 못하거나 어쩔 수 없어 하는 상태가 나타났다. 게다가 발정념의 위력이 예전보다 뚜렷이 못해졌다.

2015년 장쩌민 고소에 참여한 수련생이 박해당할 때 경찰들은 뒤에서 이런 사람들은 붙잡아도 소용이 없어 “타협하지 않잖아”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1999년 ‘7.20’ 때 그렇게 확고한 대법제자들이 앞사람이 쓰러지면 뒷사람이 따라가며 정념이 충족해 그 기세를 당할 수 없었던 인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장쩌민 고소에 참여한 수련생들은 무리한 박해에 마주해 정념이 부족한 상태를 표현해 박해자마저 매우 놀랄 지경이었다. “원래 이렇게 쉬웠군!” 어떤 이는 조금만 겁을 주면 즉시 타협했다.

마찬가지로 박해 형세로 인해 정념이 애초에 비해 차이가 있다. 여기에는 당사자가 법에서 제고할 요소가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대법제자가 개인수련과 정법수련의 관계를 바로잡지 못해서다. 구세력이 배치한 그것들의 일종 소극적인 사유 논리가 일정한 부정적인 작용을 일으키고 있음을 똑똑히 분별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박해, 교란을 당할 때 자신이 잘하지 못했다고 여긴 후 사악의 박해를 받아들이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그 스스로 제고하지 않으면 누구도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첫 반응이 정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수련에 누락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극적인 생각 자체가 구세력이 배치한 논리로서 이미 사악의 박해에 대한 종용과 묵인이다. 우주정법의 역사적 무대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인공 역할을 확립해주셨고 구세력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깨끗이 제거하라고 하셨으며 사악은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대법제자와 중생은 사부님께서 선택하고 구하시는 생명으로서 어떠한 생명도 참견이나 참여할 자격이 없다.

대법제자가 존재하는 진정한 가치는 조사정법(助師正法),구도중생(救度衆生)이며, 우리 정법시기 대법제자 수련의 주제다. 대법제자가 이 시기에 마주한 어떠한 번거로움과 교란 등에서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법에 대한 영향과 구도중생에 대한 영향이며,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는 동시에 엄숙하게 구세력이 이 일을 이용해 정법을 교란하려는 술책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그 때문에 구세력은 대법제자가 개인 수련과 정법 수련의 관계를 바로잡지 못하는 틈을 타고 있다. 애초에 우리의 정념이 족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조사정법 의식이 매우 강했고 구세력을 부정하는 의식도 매우 강했기 때문이다. 정법의 요구에 맞았기에 대법이 대법제자에게 산을 쪼갤 수 있는 정념을 부여했다. 정념은 법에서 온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의 길에 구세력의 교란 요소가 존재하면서 시시각각 수련에 따라 표현되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사부님께서 배치한 대법 수련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구세력이 배치한 길이다. 우리가 구세력의 배치와 구우주 생명상태에 빠져 문제를 보지 않을 때 진정으로 조사정법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정법 중에서 일체 중생을 구도하려 하시나 구세력은 중생이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범죄를 이용해 그것이 업신여기는 생명을 도태시키려 한다. 만약 우리가 구세력이 요구하는 이 일체 밖에서, 자비로운 구도의 입장에서, 사부님의 정법 기점 요구에 선다면 우리는 문제의 실질을 볼 수 있으며 미혹을 타파해 나올 수 있다.

수련의 본질에서 볼 때 중생은 모두 대법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며 대법제자와 그들의 관계는 구도와 구도 받는 관계이지 박해와 박해당하는 관계가 아니다. 대법제자는 인간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 역할을 잘해야 하며 늘 자신을 박해당하는 역할에 있게 하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자발적으로 출격해 사악을 해체하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많은 수련생은 늘 자신을 착실히 수련할 줄 모르며 일에 마주하면 곧 밖으로 본다.개인의 기점에 서서 자신을 수련해 구우주의 사(私)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다. 구세력은 부정적인 사유를 통제해 수련인의 두뇌에 반영하는데 그것들은 극히 미세하고 은폐적이라 우리가 그것을 홀시하거나 부정적인 사유가 쌓이는 것을 묵인하고 허용하는데 이른다. 한 번의 부주의로 수련상태가 급속도로 미끄러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법제자로서 구세력의 사유의 틀에서 뛰쳐나와 반드시 정념으로 문제를 보고 심성제고를 위주로 하며 일에 마주해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야 하고 자신을 언제나 정체(整體) 중에 놓아야 한다. 시시각각 자신은 조사정법을 하는 대법제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는 동시에 자신의 법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청리해야 한다. 사부님을 도와 세간에서 행하며 삼계 내의 사악을 제거하고 뿌리째 없앨 때 늘 ‘법을 스승으로 모신다(以法爲師)’를 명심해야 한다. 또 마주한 일과 자신의 사상 염두를 법으로 가늠해야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념을 유지할 수 있고 걸음마다 잘 걸을 수 있다.

정법은 이미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다. 큰 범위로 박해, 병업 현상이 나타나는 일은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배치한 빅데이터, 감시카메라 등 일체 감시체계가 나타나게 된 배후 자체가 사악한 것으로 반드시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이 때문에 대법제자는 철저히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깨끗이 제거해야만 이번의 역사 무대 최후 단계에서 주인공 역할을 잘할 수 있다. 사악을 모조리 제거함은 조사정법,중생구도를 위함이다. 조건이 되면 발정념 횟수, 발정념 시간을 늘려 자발적으로 사악을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정체적으로 협조를 잘해 강대한 정념으로 우리의 법 실증과 중생구도 배후의체포, 병업, 각종 감시설비 등 교란을 일으킨 일체 생명과 요소를 철저히 깨끗이 제거하자. 이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고 누락된 것이 없도록 하자. 구세력 최후의 사악한 잔당이 전부 소멸될 때까지 하자.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다시 배워 우리가 공동으로 최후의 한 단계에 이른 정법의 길을 잘 걸을 수 있는 지도로 삼자.

무엇이 진정한 선(善)인가◎사부님 평어

정법과 수련

이 글은 정법(正法)과 수련의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아주 명백히 이야기하였다. 대법제자는 법을 바로잡음(正法)에 있어서 과거의 개인수련과는 다른 것이다. 무리한 상해(傷害)에 직면하거나, 대법에 대한 박해에 직면하거나, 우리에게 강제로 주어진 불공평(不公)에 직면하였을 때에는, 예전의 개인수련처럼 그렇게 대하거나 천편일률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대법제자는 현재 정법(正法)시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개인의 집착과 잘못에 의하여 나타난 문제가 아니라면, 그것은 반드시 사악이 교란하거나 나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수련 중에 있으며 아직도 최후의 속인의 마음이 있다. 문제가 나타날 때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의 잘못 여부를 검사해야 한다. 만약 나타난 것이 교란과 파괴라면, 구체적인 문제를 처리할 때 표면적인 사람에 대하여 가급적 평화(平和)롭고 자비선량(慈善)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악이 사람을 이용할 때, 늘 인간 자체는 똑똑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비록 그렇지만 이용된 사람은 늘 사상이 좋지 못한 인간이나 혹은 좋지 못한 사상을 나타내는 인간이다). 다른 공간의 사악의 교란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숙하게 정념(正念)으로써 제거해버려야 한다.

 

원문발표: 2019년 3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지적 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3/8/3835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