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가 정리
[밍후이왕] “나는 법(法)을 전하고 공(功)을 전하는 모든 과정 중에서, 사회에 대해 책임지고 수련생에 대해 책임짐에 따라 거둔 효과가 좋았으며,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도 비교적 좋았다.”이는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전법륜(轉法輪)’ 제1강 첫 부분에서 하신 말씀이시다. 리(李)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고 또한 그렇게 실천하셨다.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널리 전해진 곳곳마다 수련생들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심신에 혜택을 받았으며, 인심은 진정으로 선량해지고, 가정의 화목과 사회의 안정을 가져왔다.
산재 장애인이 대법을 수련하여 구사일생하다
왕중쓰(汪中仕) 씨는 올해 66세로 쓰촨원촨(四川汶川)현 사람이다.
왕중쓰 씨는 원래 산재 장애인이었다. 1991년 1월, 공장에서 용광로 항아리를 수리했는데 그는 항아리 안에서 일하다가 예상치 못하게 항아리 내부의 폐자재가 떨어지면서 머리, 허리에 타박상을 입었는데 진단결과 늑골골절, 뇌진탕으로 판정됐다. 산재 후, 직장에서는 그에게 최저 임금 대우를 해 주고, 매월 겨우 몇십 위안을 지급했다. 만약 정상적으로 출근하고 장려금과 각종 보조금을 합하면 월수입이 7, 8백 위안이다. 그의 가정경제는 갑자기 어려워졌고 아이도 학교에 다니고 있어 생활은 단번에 곤경에 빠졌다.
그는 곳곳으로 다니면서 병을 보였지만 효과가 없었고 마지막에 공장 의무실에서 약을 받아 몸조리할 수밖에 없었다. 장기적으로 약을 먹었기에 그의 기억력은 쇠퇴해졌고 비정상적이었다. 심각한 장애 후유증은 치료될 희망이 없었고 또한 머리에 심한 마른버짐, 항문 출혈을 동반했으나 돈이 없어 치료하지 못하고 약이 없어 치료를 못 했다. 마지막에 그는 정말로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997년 1월에 공장은 생산중단을 선포했다. 왕중쓰 씨의 원래 아주 어려웠던 처지는 설상가상으로 최저 월급대우와 약물치료 대우마저 전부 사라졌다. 아들은 중학교를 마치자 학업을 그만두고 타지에 가서 수습공으로 일하며 스스로 살아갔고 아내는 원래 공장의 가족 직원이었는데 공장을 떠나 막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멀쩡하던 한 가정이 뿔뿔이 흩어지고 왕중쓰 씨 한 사람이 남아서 자생자멸(自生自滅) 했다.
아주 행운인 것은 1998년 그는 파룬궁을 수련했다. 그때부터 그의 심신에 환골탈태의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병이 사라졌고 몸은 병이 없이 가벼웠으며 그의 얼굴색은 더는 창백하고 누렇지 않았다. 그는 기분이 상쾌하고 정력이 왕성해 생명의 활력이 넘치게 변했다. 죽음을 기다리던 한 신체장애인이 그렇게 죽음에서 살아났다! 원래 공장이 생산을 중단한 후에 왕중쓰 씨는 최저 생활보장도 없어졌고 막일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어 개인기업에서 광재 (광석을 제련한 후에 남은 찌꺼기) 찌꺼기 등을 청소하고 보수도 없이 밥을 얻어먹었다. 현재 그는 몸이 좋아져서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 생활상황이 많이 개선됐다!
파룬따파도 그의 마음을 정화했고 그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좋은 사람이 되게 요구했다. 직장 및 근무자의 어려운 점을 이해하고 더 산재생활비, 의료비를 직장에 요구해 난처하게 하지 않았고 자신의 가장 선량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했다. 그의 심신은 파룬따파를 수련하여 구사일생하여 어둠 속에서 광명을 찾았다!
인생 슬럼프에 빠졌을 때 행운으로 대법을 만나다
페이페이(裴斐)여사는 올해 54세로 지린성 지린시 화진 방직유한책임회사 관리직이었다.
1987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페이페이는 지린성 화진 방직 유한책임회사(원 마진 방직공장)에 배치되어 보통 관리자가 되었다. 80년대의 대학생들을 사람들이 몹시 부러워했다. 그러나 페이페이 여사의 젊었던 시절은 평탄하지 않았다. 4년 일하고 일에 성과가 있을 무렵 그녀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처음엔 알 수 없는 복통을 동반한 요통이 점점 갈수록 심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몇 차례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고 하는 수 없이 복부 개복수술을 받고 맹장을 떼어냈다. 그러나 마취할 때 척수신경을 건드릴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때부터 허리가 아파서 펼 수 없었고 수술 부위가 유착되고 몸은 회복되지 않았다. 후에 그녀는 심장병, 인후염, 관절염, 저혈압, 메니에르증후군 등 질병에 걸렸다. 정말로 “원래의 병이 낫지 않았는데 새로운 병에 걸렸다.” 그렇게 8년을 앓았다. 그 당시 그녀는 몸이 허약하여 잠깐 앉는 것도 힘들어서 반은 눕거나 엎드리고 있었고 1kg의 물건도 들지 못했다.
병이 있으니 많은 진료를 받았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오직 방법이 있다면 그녀는 가서 시도해보았고 곳곳으로 다니면서 병을 보였으며 또 무당, 기공사에게도 병을 보였으나 반죽음이 되도록 괴로움을 당했지만, 나중에는 모두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 당시의 페이페이 여사는 정말로 근심, 걱정이 태산 같았고 의기소침했으며 원래 내성적인 그녀는 마음의 병까지 더해져서 종일 눈물이 마르지 않았으며 하루가 일 년 같았다. 만약 엄마의 명과 페이페이 여사를 함께 묶어놓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벌써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병으로 그녀는 가정을 이루지 못했고 직장 숙소에서 지냈으며 하루가 멀다고 출근할 수 없었으며 상사는 또 사람을 보내 가보게 했다. 동료들은 그녀에게 ‘갯버들(약골)(胎胎歪歪大雞崽子 -갯버들 잎이 일찍 떨어지는 데서 허약한 몸을 비유)’이라는 별명을 지어줬고 아프다 하면 안 되었고 누가 봐도 걱정이 됐다.
1996년 가을, 32세의 그녀는 온몸에 병이 있어 대부분 시간을 침대에 누워 지냈고 자신의 옷도 스스로 빨지 못했으며 물 한 주전자도 들 수 없었는데 심장병, 협심증이 특별히 심했다. 그때 그녀에게 자궁근종이 발견되어 출근할 수 없어 집에서 요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바로 기공이 한창이었고 그녀도 전에 적지 않게 기공을 했지만, 몸은 오히려 호전되지 않았다. 마침 선생님 한 분이 그녀의 집에 와서 파룬따파를 알렸고 그녀는 그 당시 병가로 모친의 집에서 지냈다. 몇 번의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설법 동영상 반에 참가했다. 9일 강의를 다 듣고 나서 아주 감동했다. 그녀는 종래로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많은 도리를 알게 되었다. ‘사람은 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사람은 무엇을 하나 모두 자신에게 한다. 선악에 응보가 있는 것은 천리(天理)다.’ 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은 확 트였고 좋은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수련하면서 그녀는 인생에서 얻지 못했던 답들을 대법 수련 중에서 찾게 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좋은 법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비할 데 없는 행운이라며 성심으로 배우고 연공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서서히 건강을 회복했다. 심장병, 인후염, 저혈압, 경추염, 관절염, 요통, 복통, 신경쇠약, 메니에르증후군 등 병들이 모두 더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녀는 진정으로 병이 없이 온몸이 가벼운 행복을 느끼게 되었고 얼마나 기쁜지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녀는 모순에 부딪혔을 때 “한 발짝 물러서면 더 넓은 세상이다.”를 많이 용인(容忍)했다. 그녀는 명리에 대해 담담하게 보았고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전의 암담하고 처참한 나날들은 다시 오지 않았고 그녀는 생활에 활기가 넘치고 홀가분하고 즐거웠으며 지치지 않았다.
파룬따파는 또 그녀가 벗어날 수 없었던 가정모순에서 벗어나게 했다. 다년간 왕래하지 않았던 부친, 고모와도 사이가 회복되었으며 그들에 대한 원망도 내려놓게 했다.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그녀는 절대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파룬따파가 그녀를 바꾸게 했고 그녀가 몸소 느낀 것을 친한 친구들에게 알려주어 아주 많은 사람도 이득을 보았다.
희귀 난치병에 걸려 죽기를 기다리다가 행운으로 대법을 만나 새 삶을 얻다
둥수란(董淑蘭) 여사는 올해 70세로 지린(吉林)시 사람이다.
1996년 4월, 바로 만물이 소생하고 꽃이 피는 따뜻한 초봄, 사람들이 모두 문밖에 나와 봄날의 아름다운 기를 느낄 때였다. 금방 48세가 된 가련한 둥수란 여사는 오히려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자신의 생명이 마지막이라고 한탄했고 네 딸을 두고 가야 한다는 마음에 몰래 눈물을 흘렸다. 지난 몇 년간을 되돌아보니 살기 위해 각지의 큰 병원에 갔었던 정경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는 폐결핵, 흉막농증, 담결석, 신장결석, 목등뼈, 유리성 신장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수술해서 좌측 갈비뼈를 5개나 제거했다. 세계적으로도 희소병인 ‘악망’에 걸렸는데 이는 골수에 그물 모양의 세포가 악화하는데 악성 종양, 백혈병보다 더 심한 병이다. 전문가와 교수한테 보이고 각 지역의 큰 병원에 보였으나 현대병원에서는 근본 치료할 수 없었다. 지린시 부속병원에서는 천진 혈액연구소를 소개해줬고 국가에서는 그녀의 병을 연구하는 대상으로 삼았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많은 병원비를 빚져 집에서는 수의까지 준비했다. 그녀는 절망 속에서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둥수란 여사는 어떤 사람의 소개로 파룬따파를 행운으로 수련할 수 있게 되었다. ‘전법륜’을 한번 보고 나서 그녀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왔고 무엇 때문에 병에 걸리는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마음을 수련하여 선을 향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사람이 되는 진정한 목적이 반본귀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법 공부와 연공을 통해 그녀의 마음은 하루하루 밝아졌고 몸도 하루하루 좋아졌다. 한 달도 채 안 되어 오랫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던 10여 가지 질병이 모두 사라졌다! 그녀는 일해도 힘이 나고 길을 걸어도 온몸이 가벼웠으며 계단을 아무리 높이 올라도 지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병이 없어 몸이 가벼운 오묘한 느낌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녀는 내심으로부터 그녀에게 제2의 생명을 주신 대법 사부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남편은 그녀의 변화를 보고 아주 기뻐하면서 보는 사람에게 모두 “아내가 변했어요, 몸이 좋아졌어요, 성격도 좋아졌어요, 파룬궁은 정말로 좋아요!”라고 말했다. 남편도 그때부터 대법 수련에 들어섰고 몸이 건강해졌으며 마음도 상쾌해졌으며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엄마의 변화를 보고 세 딸도 연속으로 대법에 들어섰다. 한 가족 다섯 식구가 함께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마음을 수련하여 선을 향하고 좋은 사람이 되었고 그때부터 가정은 온화하고 상화로웠으며 행복했다.
이웃과 친한 친구들은 그녀의 변화를 보고 모두 파룬궁이 정말로 신기하다고 말하면서 연이어 10여 명이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슬프고 고생스럽던 시골 아주머니가 역경에서 걸어 나와 신생을 얻다
장위안화 씨는 48세로 쓰촨루저우시 나시구 사람이다.
장위안화 씨는 시골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하고 빈혈이 있었으며 늘 머리가 어지럽고 아팠으며 호흡곤란이 있었지만,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해 고질병이 되었다. 결혼 후, 그녀는 또 위염, 위통, 십이지장염, 흉강 통증, 복통 등 질병이 더해졌다. 그녀의 배꼽에서는 늘 고름이 흘렀다. 이뿐만 아니라 한번은 그녀가 과일을 따다가 나무에서 떨어져 오른 다리를 다쳤는데 넓적다리관절이 탈골되어 다리 길이가 10cm나 길어졌다. 돈이 없어 28일 동안 집에 있다가 통증을 도저히 참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 병원에 가서 아는 사람을 찾아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인대를 잘못 건드리는 의료사고가 나서 2급 장애가 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돈이 없어 계속 치료받지 못했고 또 담당자를 찾아 책임을 물을 수 없기에 일요일 주치의가 없는 틈을 타서 두 오빠가 몰래 집으로 데려왔다.
시댁에서는 그녀가 그렇게 되자 받아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오빠는 그녀와 세 살 된 딸을 친정으로 데려왔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 년 가까이 누워 지냈고 그녀의 엄마는 매일 그녀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약재를 찾아 치료해주었다. 아버지와 오빠는 그녀를 부축하여 오르내리게 하면서 정성껏 간호했다. 일 년 후 그녀는 쌍지팡이를 짚고 어렵게 한발씩 내디딜 수 있게 되어서야 남편은 그녀를 시댁으로 데려갔다.
비록 쌍지팡이를 짚고 걷지만, 다리 통증은 견디기 힘들었고 생활은 자립할 수 없었으며 농사일은 더욱 하기 힘들어서 생활은 아주 곤란했다. 그녀는 가정의 짐이 되었고 남편은 늘 그녀를 욕하면서 이혼하자고 했다. 두 번이나 이혼 절차를 밟자고 약속했는데 모두 폭우가 크게 내려 무산되었다. 그 당시 사악한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해 두 번째 아기를 낳을 수 없었는데 만약에 아기를 낳으면 집에 있는 소, 돼지, 곡물을 가져가거나 집을 허물어버렸다. 그녀는 딸을 낳았는데 남편은 독자였기에 시댁 식구들은 대를 끊었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멸시했다. 가정모순으로 그녀는 극도로 고통스러워 죽기보다 못했다. 그녀는 몇 번이나 벽에 머리를 박아 죽으려고 했지만, 머리를 박고 기절했다가 또 살아났다.
그녀가 막다른 길에서 인생의 절망에 빠져있을 때 파룬궁에 대해 들었다. 그 당시 아주 많은 사람이 모두 파룬궁이 아주 신기하다고 했고 병원에서 치료 못 하는 아주 많은 난치병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나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생명의 마지막 희망을 파룬궁에 맡겼고 마음이 좋은 사람을 모셔다 공법을 배웠다.
정말로 예상을 초월하는 신기함이었다! 병원에서도 방법이 없던 온몸의 고질병들이 돈 한 푼도 쓰지 않고 파룬궁을 수련하자 모두 사라졌다. 그녀의 몸은 신속하게 건강을 회복했다. 그녀는 쌍지팡이를 버렸다. 비록 조금 쩔뚝거렸지만, 그녀는 한 가정의 가사 일을 모두 할 수 있었고 80여 세의 시아버지를 돌볼 수 있었으며 농사도 지을 수 있었다. 2급 장애가 있던 그녀는 55킬로나 되는 물통을 지고 밭에 물을 댈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은 사람들에게 불가사의하게 여겨졌다. 그녀는 다섯 식구 몫의 밭을 일구는 외에 다른 사람이 버린 황무지 10평을 더 일구었다. 남편은 타지에 가서 노동일을 했기에 그녀는 가정의 주 노동력이었으며 집 안팎의 일을 혼자 다 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재배하고 키우며 눈코 뜰 새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건강한 몸을 가지게 되었고 가정생활도 정상이 되었다. 파룬궁을 수련한 10여 년 이래 그녀는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다. 바로 위대한 파룬따파가 그녀의 생명을 다시 만들어주었고 전에 파탄에 이른 가정을 구해주었으니 온 가족이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부부의 행운인 사연
남편 룽팅판(龍庭璠)씨는 위 엔징뭔(原荊門)시 둥광 전기공장의 직원이다. 아내 저우핑(周萍) 씨는 후베이성 징뭔(荊門)시 공상 은행 원펑 지점의 직원이다.
파룬궁을 배우기 전에 그들 부부의 건강은 모두 안 좋았다. 룽팅판 씨는 공장에서 뇌관을 소각하는 사고 중에서 몸에 중상을 입었다. 비록 생명은 건졌지만, 몸에 장애를 입었다. 국가 감정은 1등 4급 장애로 판정됐고 오랫동안 내외의 상처에 시달리고 있었다. 뇌관이 여러 개 동시에 폭파하면서 구리 조각들, 돌, 먼지가 몸속과 모공을 막아서 정상적으로 땀을 배출하지 못했다. 특히 여름에 피부가 가려워서 견디기 힘들었고 농창이 끊이지 않아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관지가 손상되었는데 봉합할 수 없어 늘 피가 멎지 않았고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공장에서도 그를 위해 돈을 적지 않게 썼다. 그들은 상하이, 베이징에 가서 전문교수한테 진료를 받았으나 모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주 많은 민간요법을 했고 아주 많이 멀리 가서 진료를 받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만성기관지염, 부비동염, 만성 인후염, 빈혈, 류머티즘성 관절염,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며 늘 숨을 잘 쉴 수 없었으며 또 엄중한 신장염도 앓고 있었다. 현지의 유명한 의사는 그가 40세에 마비가 된다고 말했다. 그 당시 그는 30여 세였고 곳곳으로 다니면서 의사를 보여 월급보다 지출이 더 많았다. 그 당시 그들 부부는 하루가 1년 같았고 언제 그런 생활이 끝날지 몰랐다.
바로 그들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절망하고 있을 때 파룬궁이 징만 지역에 전해왔다. 1996년 5월 부부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몸은 아주 빨리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다년간 그들을 괴롭혔던 질병이 없어졌다. 두 사람은 정신이 상쾌하고 병이 없이 온몸이 가벼운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가족들은 대단히 기뻐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더는 약 한 알 먹지 않았고 직장의 돈 한 푼도 의료비로 쓰지 않았다.
공장장은 큰 회의에서 룽팅판 씨는 산재여서 의료비를 청구해야 하는데 한 푼도 청구하지 않았다고 표창했다. 어떤 사람들은 몇만 위안씩 청구했는데 그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나서 공장을 위해 거액의 의료비를 절약했다. 건강을 회복한 후의 룽팅판 씨는 또 주동적으로 출근하기를 요구했고 받는 월급에 미안하지 않도록 착실히 일했다.
그리고 저우핑 씨가 근무하는 은행에서는 연말 총 결 회의에서 전 은행에서 4명만 의료비를 청구하지 않았는데 그 4명은 모두 파룬궁 수련생이라고 상사는 말했다. 그들은 몸이 건강할 뿐만 아니라 마음도 승화되어 생활 속에서나 근무 중에서나 모두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모순이 생기면 자신에게서 찾았으며 매사에 타인을 위해 생각했다. 그 당시 저우핑 씨의 일은 주로 사업주와 개인 사업주들과 왕래했기에 작은 선물들이 끊이지 않았고 설이나 명절 때면 그 기업과 개인들은 모두 돈과 선물을 보내왔다. 전에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지만, 파룬궁을 수련하고 나서는 모든 선물을 받지 않고 일에 최선을 다했으며 곳곳에서 고객을 위해 생각했다. 그 당시 일반적으로 우수한 품질서비스 점검을 하였는데 그녀의 서비스 품질과 근무 태도에 대해 고객들은 모두 아주 만족했고 상사와 동료들의 충분한 인정을 받았다.
많은 사실은 파룬궁이 나라와 국민에게 유익하고 백 가지 이로움이 있고 한 가지 나쁜 점도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만약 사람마다 모두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된다면 반드시 사람들의 신체 소질과 도덕 수양이 신속하게 승화될 것이다.
파룬궁은 파룬따파라고도 한다. 상승의 불가 수련대법이고 1992년 리훙쯔 사부님께서 전하셨으며 우주의 최고특성 ‘진선인(眞善忍)’을 원칙으로 사람을 지도하여 수련한다. 간단하고 우아한 다섯 가지 공법을 동반하고 수련인이 최단시간 내에 심신의 정화에 도달하게 하며 도덕이 다시 승화할 수 있게 한다. 1999년에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에 중국 정부 기관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중국에서 일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20년 동안 전면적으로 박해했지만, 파룬궁은 중국공산당에 의해 타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전 세계 백여 개 나라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다. 파룬따파의 주요 서적 ‘전법륜’은 39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공개적으로 발행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 주요 국가에 모두 파룬궁 연공장이 있어 파룬궁 수련생들이 단체 연공 하는 모습과 파룬궁을 널리 알리는 아름다운 정경을 볼 수 있다.
원문발표: 2019년 2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한 이야기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2/23/3829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