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집 아이 수련생은 1999년 7월에 태어났습니다. 당시 사악이 대법을 미친 듯이 박해할 때, 저는 아내 수련생과 함께 그 힘든 나날들을 지나왔습니다.
갖은 고생을 다 했지만 우리는 열등감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정정당당하게 살며 수련인이 해야 할 일을 했고 꼬마수련생도 점차 성장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아이에게 ‘홍음(洪吟)’을 외우게 하고 매일 잠들기 전에 사부님의 설법을 들려주었습니다. 항상 밝게 자랐고 대학 갈 때 며칠 차이로 나이가 부족해 가지 못했지만, 우리는 사람을 찾아 일찍 들어가게 하지 않고, 규정에 따라 1년 기다렸다가 갔습니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병에 자주 걸려, 매년 섣달 그믐날 저녁이면 반드시 열이 났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도 어리고 부모님도 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 약을 쓴 적이 있지만, 약이 잘 넘어가지 않았고 알레르기 체질이라 링거 맞기도 곤란했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자꾸 병에 걸려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이 아이는 대법 소제자다. 법에 따라 해야 한다.’ 한번은 열이 39도까지 올라가서 아내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자신을 대법 소제자로 여겨, 이것을 병업관으로 생각하고 정념으로 지나갈 수 있겠니?” 아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네, 할 수 있어요.” 그리하여 아내는 밤새 발정념을 했고, 아이도 정념이 있어 이튿날에 다 나았습니다. 나중에 또 몇 번의 병업관이 있었지만, 모두 아이와 우리의 정념 하에 지나갔습니다. 지금 아이는 병업관이 아주 적습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소선대에 가입하지 말라고 하고 붉은 넥타이도 매지 말라고 했습니다. 선생님께 우리는 부처님을 믿으니 정치 조직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말하니 선생님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번을 서는 학생이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아이는 발정념을 했는데 주번 학생이 더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집안 어르신이 학교에서 압력을 받을까 봐 두려워했고, 아이 마음에 그늘이 생길까 봐 두려워했지만, 우리는 이렇게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견지했고 이 관도 넘어갔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는 중학교로 갔고 다른 학부모들은 사람을 찾아 좋은 반에 아이를 넣었습니다. 우리는 대법의 심성 요구대로 사람을 찾지 않아 좋지 못한 반에 들어갔으나, 담임선생님은 사람이 아주 좋았습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단에도 가입하지 말라고 했고 선생님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입시 전, 아이는 갑자기 공부를 싫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가기 싫어했고 어떻게 법리에서 교류하고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한 달 넘게 학교를 가지 않았고, 몸이 아파 집에서 쉰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조급해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곧 체육 시험이 있는데, 성적이 없으면 고등학교 가는데 영향이 큽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재수하려는 줄 알았지만 아이는 시험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다리가 아파 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고 훈련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때 신판 ‘논어(論語)’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신 ‘논어’를 외우게 했습니다. 기적적으로 아이는 정신을 차렸고 상태도 좋아졌습니다. 하루의 시간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습니다. 잠깐의 적응 훈련 후 저는 운전해 아이를 체육시험장으로 데려갔습니다. 줄넘기를 포함해 1000m 달리기를 아이는 합격했습니다. 아이의 허약한 뒷모습이 1000m를 뛰며 커브를 돌아올 때 잰걸음으로 빠른 속도로 뛰는 것을 보고, 저는 눈물이 흘러나왔고 사부님께서 소제자의 성장을 위해 마음 쓰신 것에 감사드렸습니다.
중학교 졸업 시험을 볼 때가 되었는데 아이가 한 달 넘게 수업에 빠져 성적이 심하게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학원을 찾아 못한 공부를 보충하고 매일 저녁 법공부를 견지했습니다. 시험 보는 날 저는 운전해서 아이를 바래다주며 ‘논어’를 함께 외우며 갔습니다. 아이는 기분이 좋았고 매일 시험을 보고 돌아올 때 차가 마치 나는 것 같았고 순조롭게 시험을 마쳤습니다. 성적이 나왔는데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우리는 새로 지은 학교에 원서를 넣고 예전의 이름 있는 학교에는 원서를 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많은 학생이 그 학교에 가기를 원해 점수가 급속도로 올라갔고, 아이의 점수는 조금 더 나와 마침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전의 이름 있던 학교는 그때부터 몰락했습니다. 많은 친구가 학교 선택을 잘했다며 부러워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의 배치이고 아이도 대법에 대해 더욱 견정해졌습니다. 나중에 기회를 찾아 전화로 중학교 담임선생님께 진상을 알리고 삼퇴시켰고 중학교를 순조롭게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 3년은 확실히 고생이었습니다. 아이가 수학을 잘하지 못해 방해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법공부, 연공을 견지했습니다. 수업이 아무리 바빠도, 공부가 아무리 늦게 끝나도 ‘광저우설법(廣州講法)’ 녹음을 한 단락 듣고, 동공을 연마했습니다. 시간은 짧았으나 아이는 견지해냈습니다. 수학 성적이 떨어지면 계속 과외를 받았고, 과외선생 부부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도 시켰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정치를 가르쳤는데 매우 적극적이었고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질이 좋지 않아 학생을 나무라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고, 매우 듣기 싫은 말을 해 아이들이 싫어했습니다. 우리도 친구를 찾아 좋은 반에 넣어주고 싶었으나, 연공인은 자연스러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내려놓지 못해 선물은 하지 않고, 아는 사람과 함께 식사하며 인사를 했는데(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틈을 타고 싶었음), 그 결과 제일 좋지 않은 반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일념을 움직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사람은 각자 운명이 있습니다. 좋은 반이든 나쁜 반이든 사부님의 배치야말로 가장 좋은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가장 좋지 않은 것을 가장 좋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번은 선생님의 아이가 병이 나, 의사인 나와 아내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나는 이 좋은 기회를 잡아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시켰습니다. 그리고 수업할 때 대법을 모함하는 내용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녀는 다 받아들였습니다. 악당의 주입을 가득 당한 정치 선생님도 생각밖에 구도되었습니다.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아이는 발정념을 했는데, 생각지 못한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성격이 좋아져, 학생들에게도 자애롭게 대하며 더는 끝없이 소리 지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학습 성적도 올라갔습니다. 대학 입학시험에서 전반 학생이 초상적으로 발휘해 전례 없는 좋은 성적을 얻었고, 선생님도 새로운 고등학교 1학년 중점반으로 전근되어 담임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좋은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삼퇴는 선생님과 반 학생들에게 좋은 운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는 담임선생님과 과외선생님께 감사 깃발을 드려 감사함을 표시했습니다.
아이의 성적도 정상으로 나와 제가 줄곧 진상 전화를 하던 남방의 모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도 항상 가고 싶어 하던 대학이었습니다. 점수는 대학의 커트라인 점수와 똑같아 1점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생활이 시작되어 아이는 처음으로 독립생활을 해 모든 것에 신선해 했습니다. 대학은 작은 사회라 우리는 아이에게 자신의 역할을 잊지 말고, 대법 이 중심선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사회는 큰 염색 항아리여서 자신을 장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어려서부터 대법을 배워 우리와 공동언어가 있고, 현대 학생의 그런 반항이 없어 컴퓨터와 핸드폰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문제에 부딪히면 대법으로 잘잘못을 가늠할 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 제자와 많이 소통하고 법에서 많이 교류할 것이고, 아이가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계속 자신을 잘 수련하기를 희망합니다. 사부님께서 아이를 지켜주고 계시고 우리도 지켜주고 계십니다. 우리 가족은 반드시 각자가 할 일을 잘해 사부님께 합격한 답안지를 바치겠습니다.
원문발표: 2019년 2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2/14/3803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