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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서 자신을 바로잡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 전 꿈을 꾸었다. 꿈에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며 빗으로 끊임없이 머리를 빗었다. 머릿결이 매우 깨끗하고 정결했으며 한 올 한 올 매우 뚜렷하게 보였다. 딸아이가 계속 말했다. “엄마, 더 빗어야 해요.” 나는 또 빗었다…… 꿈에 처음에는 매우 힘들게 빗었고 나중에 빗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지만 딸아이가 더 빗으라고 일깨워주었다.

나는 어린 딸을 데리고 법공부한다. 사부님의 법에서 표현 한 마디가 다르면 딸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한 마디씩 물었는데 처음에는 좀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차 한 구절씩 딸에게 표면의 뜻을 해석해주면서 늘 속으로 놀랐다. 왜냐하면 이 법 구절이 원래 이 뜻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다르게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전까지 여태껏 지금처럼 진지하게 사부님의 설법을 공부한 적이 없었다. 보통은 법공부를 끝내고 전체적으로 대강의 뜻을 알 뿐이었다. 이 한동안 이렇게 법공부하면서 법리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아 수련상태에 매우 큰 변화가 생겼다. 몇 가지 사례를 들겠다.

1. 구세력을 부정하고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는 기초 위에, 법에서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잡다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으려면 우선 구세력을 확실히 알고 어떻게 구세력을 부정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 방면에 대해 나는 최근 발표한 ‘구세력을 부정하고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다’라는 문장에서 적었으므로 여기서 더는 상세히 서술하지 않겠다.

사례를 들겠다. 진상을 알리러 나갈 때 마음속에 미세한 두려움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지나쳐버리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찾는다. 찾아보니 붙잡히는 것을 두려워하고 박해를 두려워했다. 붙잡히고 박해당하는 일은 구세력의 배치이므로 확고하게 부정하고, 아울러 나에게 붙잡히고 박해당한다는 염두를 주입한 배후의 구세력을 깨끗이 청리하고 해체한다. 두려워하는 자체는 집착심이며 나는 확고하게 그것을 배척한다.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아니며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나는 이 두려워하는 집착심을 갖지 않겠다. 그럼 나는 왜 자신이 붙잡힌다고 걱정하는가? 여전히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것으로 사부님께서 바로 나의 신변에서 나를 보호하고 계심을 믿지 않는 것이니 나는 곧 자신의 신사신법 정념을 강화한다.

2. 자신이 구하는 마음을 품고 법공부했음을 인식하다

법공부할 때 나는 또 자신이 장기적으로 의식하지 못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것도 수련인으로서 가장 엄중한 문제이다. 바로 구하는 마음을 품고 법을 공부하는 일이다.

나는 자신이 법공부하는 마음자세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그리고 다년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법공부할 때 심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돌이켜봤다. 처음에 법공부는 깨끗한 심태로 공부했으나 법공부하는 과정에서 많은 좋지 않은 물질이 모두 해체되고, 사상업과 집착심이 심지어 법공부를 함과 동시에 소실되는 것을 발견했으며, 오직 법공부를 하면 이런 좋지 않은 물질을 없앨 수 있다는 일종 관념이 형성됐다. 그 후로 이런 목적을 지니고 법을 공부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이 구하는 마음 때문에 법공부하는 심태가 완고하게 변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이런 경험이 있는 동시에 또한 인생의 관념이 형성되었고 경험은 또 실천 중에서 관념으로 하여금 완고(頑固)하게 변하도록 하였다.”[1] 나는 사람 중에서 형성된 이런 경험을 법공부에도 가져왔다. ‘법공부를 하면 좋지 않은 것을 없앨 수 있다’ 이 관념 역시 이렇게 형성된 것으로 이후의 실천 중에서 완고하게 변했다. 이 점을 인식한 뒤로 나는 의식적으로 바르지 않은 이 관념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심태는 이미 10여년 지속돼 법공부를 하려고 생각만 하면 법에 대해 불경한 이 순수하지 않은 염두를 움직였다. 때문에 매번 배척하거나 이런 마음을 버려야 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법공부하는 심태가 많이 깨끗해졌다. 이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일종 순수한 심태로 한 글자씩 읽으며 매 구절에서 법의 뜻을 명백하게 보아내고 다시 외우자, 나에게 있어서 매 구절이 아주 생소한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문득 원래 이 구절의 법은 이 뜻이었구나, 아, 그럼 내게 문제가 있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제1강을 10여 페이지 외웠을 즈음 수련상태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내가 모종의 목적을 품고 법공부할 때 실제로는 그 목적 있는 마음이 진정한 자아를 가로막아 법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법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인식했다. 내가 이 마음을 버렸을 때, 자신이 우주 대법으로 육성된 하나의 보잘 것 없는 생명으로 여겨졌고, 나라는 이 생명은 반드시 무조건적으로 법에 동화하고 법에 따라 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구우주가 나쁘게 변했다고 말씀하신 것은 사실은 우리가 나쁘게 변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구우주의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반드시 무조건적으로 자신과 자신이 대표하는 우주체계가 사부님의 정법 중에서 갱신되고 동화되게 해야지, 이런 수치스러운 개인 목적을 품고 이렇게 위대한 한 부의 우주대법을 공부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런 것을 인식하고 순수하게 법공부를 한 뒤로 나는 진정으로 직접 법 속에 녹아들어 배울 수 있었다. 이때 나는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하여 전에 수련해도 인식하지 못했던 그런 각종 집착심의 뿌리를 끊임없이 인식했다.

전에 나는 일에 부딪혀서야 자신의 집착을 인식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질투심, 고려하는 마음 등인데, 안으로 찾는 과정에서 단지 어떤 마음이 표현되어 나온 집착을 부분적으로 찾을 수 있었을 뿐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의 뿌리를 캐낼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번에 같은 일이 나타날 때 또 집착에 이끌려 같은 착오를 범해 매우 번뇌에 쌓였다. 현재 진아(眞我)가 법공부를 하면서 생긴 가장 큰 개변이라면 내가 어느 것이 진아인지 분별해 낼 때 한 집착의 뿌리부터 표면까지 전반적인 표현을 인식할 수 있어서 수련이 쉬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능히 집착의 뿌리에서부터 그것을 깨끗이 제거할 수 있었다. 이로써 그런 집착의 본질에서 안부터 밖에 이르기까지 닦아버릴 수 있었다. 전에는 단지 표현상에서 통제할 수 있었고 밖에서부터 안으로 찾았기에 어떻게 해봐도 자기 생명의 본질을 개변할 수 없었다.

내가 내심에서 명백해지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진아가 법공부 하는 것인지, 어떻게 진아를 분별해내 자신을 수련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갑자기 구세력이 아무것도 아님을 발견했다. 더는 그렇게 많은 마음을 써서 구세력을 부정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조사정법(助師正法)의 일원으로 변했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걸었으며 법으로 자신을 지도해 구세력을 타파하고 중생을 구도(救度)했다. 나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박해당하는 개념(전에 그렇게 많았던)과 어떻게 박해를 해체할 것인지 하는 마음이 없었다. 나는 사부님의 뒤를 따라 우주의 높은 곳에 서서 구우주의 일체를 해체하여 중생을 이끌고 새로운 우주로 돌아가게 됐다.

전에 사람들이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하면 나도 모르게 떨렸고 마음속에서 감히 머리를 들 수 없는 느낌이 있었지만, 지금은 우주 중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빛나는 일체가 나의 전반 심신에 넘쳐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3. 진상을 알리는 심태에서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잡다

진상 알리기는 원래 자비롭게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나 나는 오히려 이기적인 기점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돌아온 후 일부 수련생은 자신이 최근에 상태가 좋지 않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가 최근 수련상태가 매우 좋고 매우 정진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를 자신에게 비춰 자신의 사상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구하는 마음을 품고 법공부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와 수련생은 역시 구하는 마음을 품고 진상을 알렸다. 자신이 다년간 진상 알릴 때의 심태를 돌이켜보면 처음 1, 2년은 마음자세가 깨끗하고 자비로웠다. 그러나 진상을 알리고 자신이 제고가 매우 큰 것을 발견하면 마음을 움직였는데, 진상을 잘 알려야만 자신이 제고할 수 있다는 관념이 생겼다. 그래서 이후의 진상 알리기를 모두 개인의 제고를 위한 이런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자신의 사상 중에 바르지 않은 요소를 깨끗이 제거한 후 이기적인 염두가 튀어나오면 나는 자신에게 알려준다. ‘나는 대법에서 수련된 사심없는 생명이며 나는 중생을 구하기 위해 진상을 알린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사람을 제도함에 조건을 논하지 않고, 대가를 논하지 않으며, 보수를 바라지 않고, 명예 또한 바라지 않아”[2] 이것이 바로 각자(覺者)가 우리에게 보여준 본보기이다.

자신의 바르지 않은 염두를 청리하고 바로잡은 후 진상을 알렸을 때, 정말로 중생을 구도하려는 마음이 내심에서 우러나온 것을 발견했으며 중생에 대해 자비로운 마음이 나왔다.

4. 법에서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잡아 가정의 마난에서 걸어나오다

나는 10년을 가정폭력이라는 마난에 처해있었다. 남편은 작은 일로 나를 구타하며 폭력을 일삼았다. 10년간 남편의 욕설과 구타에 직면해 비록 겉으로는 참았지만 마음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일종 원한과 대항하는 정서가 생겼고 가끔 걱정이 앞섰다. 그 결과 남편이 때릴수록 더욱 걱정됐고 갈수록 원한이 쌓이고 대항했다. 그러자 남편이 갈수록 심하게 때려서 나중에는 일종 풀 수 없는 극한의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었을 때 자신의 이런 걱정은 남편이 때리는 행위로 산생된 두려워하는 마음임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이 마음을 배척하는 동시에 더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고, 포용하고 이해하며 자비롭게 남편을 대했다. 그 결과 10년의 가정폭력이 모르는 사이에 해체됐다.

이로 미루어보면 많은 수련생이 검은 소굴에서 박해를 해체할 수 있을지 여부, 혹은 박해가 가중되는 것도 아마 나와 같은 원인으로 조성됐을 것 같다.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해 움직이는 생각이 진선인(眞善忍)에 부합하지 않고 오히려 악한 염두라면 갈수록 심해지고 박해가 가중된다.

5. 수련에서 자신을 바로잡아 근본적인 수련상태를 확실히 알다

이렇게 진지하게 한구절 씩 법공부를 할 수 있은 후 자신의 많은 집착을 뿌리부터 인식할 수 있어, 어느 집착심이 아직 매우 깊고 매우 완고한지 인식할 수 있었다. 자신이 집착에 통제돼서 표면상의 행위가 어떻게 되는지, 구세력이 또 어떻게 이 집착의 틈을 타고 자신을 마난에 처하게 하는지를 보았다. 나는 청성하게 이지적으로 변했고 능히 본질에서 표상까지를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

지금 느끼는 것인데, 수련인에게 있어서 매우 관건적인 한 가지는 자신의 진실한 수련상태를 똑똑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어느 면에서 수련이 매우 부족한지도 능히 평온한 심태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전에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해 구실을 찾아 자신의 부족한 점을 회피할까 봐 걱정했다. 지금은 능히 자신의 가장 완고한 집착심에 대해 공력을 들여 닦을 수 있고 착실하게 한걸음씩 제고할 수 있다.

6. 매일이 모두 다르며, 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전에는 매일 하던 대로 법공부, 진상 알리기, 발정념을 했다. 스스로는 매우 정진한다고 여겼지만 제고는 느렸다.

법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바로잡은 후 진정으로 청성해졌다. 수련인에게 있어서 매일이 모두 완전히 다르다. 매일 움직이는 마음이 다르고 그것을 의식한 후 즉시 안으로 찾아 그때 어찌하여 마음을 움직였는지, 마음을 움직인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보면 마음을 닦는 면에서 자연히 매일 다르다. 진상을 알리는 면에서 마주하는 중생이 다르고, 중생이 받아들이는 능력에 입각해 알리는 진상내용도 더는 천편일률적이지 않으며, 처한 환경이 다름에 따라 진상을 알리는 방식도 다르다.

개인의 수련에서 작은 깨달음으로서, 부족한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 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2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2/19/3828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