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여러 해 동안 주변 많은 수련생이 휴대폰 안전에 주의하지 않고 개의치 않는 것을 발견했다. 밍후이왕에서 반복적으로 휴대폰 안전에 대해 강조했고 주로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우리에게 휴대폰 안전을 중시하라고 하셨기에 주의하지 않는 수련생을 눈여겨보게 됐다. 그러나 안전 방면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간단한 방비 조치만 하여 실제는 작용하지 못했다. 또한 이 현상은 비교적 보편적이고 또 어떤 수련생은 아직도 중시하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대비하고 있다.
법과 수련생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이런 행동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때문에 밍후이를 통해 말하려 한다. 여기서 누구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고 수련생들의 주의를 불러일으켜 손해를 줄이려는 것이다.
층차에 제한이 있어 법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은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휴대폰 안전 혹은 수련생들의 인식이 제대로 되지 못한 부분을 종합한 원인은 아래 몇 가지 방면이다.
1. 사람 마음이 안전에 주의하는 것을 방해하다
1) 자신이 도청당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어떤 수련생들은 자신이 휴대폰 혹은 전화로 다른 수련생들과 연락할 때 어떤 말이나 다 하는데 아무 일도 없었고 자신의 휴대폰은 도청당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도청당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또 그렇게 말한 수련생에게 두려움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대로 하고 아무 말이나 다 한다.
내 주변에서 발생한 사례로 감시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 한다. 앞서 우리 지역의 수련생 A는 휴대폰 안전에 주의하지 않고 필요한 소모품, 설비 등을 직접 휴대폰, 전화로 수련생과 가족들에게 말했는데 이후에 A는 불법 납치됐고 사악은 즉시소모품이 있는 곳으로 가서 물건을 전부 몰수해 손실이 아주 컸으며 A도 아주 중한 형을 선고받았다. 함께 협력하는 수련생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A가 수련을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A는 소모품의 겉 포장지까지도 모두 이용했고 낭비하지 않았는데 왜 박해를 당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A가 휴대폰 안전에 주의하지 않아서 생긴 일(당연히 이것은 표면적인 원인 중 하나임)이라고 생각했다. A와 직접 통화하면서 소모품을 구매했던 B에게 말했더니 B는 그럴 수 없다면서 만약 그렇다면 자기는 왜 아무 일이 없냐고 했다. 몇 년 후에 수련생 B의 친척 수련생 C가 세상을 떠나서(C는 박해 초에 사악의 주요 감시 대상이었음) B는 속인 친척들에게 후사를 처리하라고 통지했다. 그러나 친척들은 길에서 경찰로부터 더 많은 사람을 오지 못하게 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때야 수련생 B는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자신의 휴대폰이 도청당한다는 사실을 믿게 됐다.
통상 잔혹한 박해는 사람들에게 공포심과 경계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감시 박해는 사람들에게 홀시하고 경계심을 느슨하게 하여 사악이 빈틈을 타게 할 수 있다. 때문에 감각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안전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대해서는 안 되며 사악의 무료정보원이 되어서는 더욱더 안 된다!
이 일은 B가 사악의 사악한 정도와 수단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다. 수련생 본인은 이러한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다른 수련생들이 알려줄 때 믿지 않았고 휴대폰 안전조치를 하라고 할 때 하지 않았다. 그러니 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성한 손실은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
그러면 B처럼 휴대폰 안전문제를 주의하지 않는 수련생은 어찌하여 일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내 생각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외에 이것은 사악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사악이 ‘유용한’ 정보를 들을 수 있는 통로라고 판단한다면 공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기에 기뻐할 것이다. 그럼 당연히 이렇게 하지 않겠는가? 때문에 이런 수련생을 잠시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안전하게 보이지만 다른 수련생과 정체에는 안전한가? 여기서 누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한 수련생들은 앞으로 주의하고 다 같이 잘해서 법을 위해 손실을 줄이길 바란다.
2) 귀찮아하고 편리함을 도모하다
예를 들면 수련생들과 법에서 교류하거나 단체로 법공부를 할 때 휴대폰을 끄거나 배터리를 뽑았는지 물었을 때 아니라고 대답하고 전화기를 끄면 가족(속인)들이 어떻게 연락하느냐고 한다. 만약에 정말로 집에 중요한 일이 있어 휴대폰을 켜놓아야 한다면 안전한 곳에서 수련생들과 이야기하고 혹은 장소를 바꾸어 단체 법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나 보통은 중요한 일이 아니라 누구누구가 놀러 온다든가 누가 밥을 산다든가 등등이다. 이런 작은 일을 수련생의 안전보다 더 중요하게 보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장기적으로 견지하지 못하거나 확실하게 하지 않는다. 수련생이 오면 휴대폰을 문과 마주 보게 놓고 문을 닫으면 그만이다. 그리고는 단체 법공부가 끝나고 이야기한다. 모모는 언제 나에게 얼마나 되는 전단지를 주었고, 모모는 얼마나 되는 디스크를 주었으며, 모모는 어떻게 수련을 잘했다, 모모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는 등이다. 수련생이 휴대폰을 끄거나 배터리를 뽑으라고 하면 반감을 품고 귀찮아한다. 몇 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없었는데 헛일만 한다고 한다. 혹은 조금만 이야기하는데 사악이 공교롭게 들을 수 있겠는가, 누가 24시간 감시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이 배후에는 안일과 요행심이 작용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전자 설비를 통해 도청하는 것은 쉬운 일이 됐다. 민감한 단어를 설정해 여과하는 형식으로 사악이 듣고 싶은 문장을 선택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도청한다고 할 때 이번에 발각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다음에는 발각될 수 있다. 누적되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제공하게 되겠는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 도청할 수 있는 휴대폰이 아니라 대법제자를 감시하는 나쁜 경찰이 옆이나 옆방에 있는데 문이 닫혔다 해도 수련생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슨 일이나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안일심은 안전 지식에 관한 기술지식을 배우기 싫어하는 데서도 나타난다. 수련생이 밍후이왕에서 편집한 휴대폰 안전방면에 관한 책자를 한 번도 보지 않고 물으면 사람을 구하느라 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혹은 자신은 휴대폰을 이용해 사람을 구하지 않기에 볼 필요가 없다고 한다. 휴대폰의 안전 원리에 대하여 모르기에 여전히 다른 수련생들과 휴대폰으로 연락하고 중요한 일을 말하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여긴다. 또 어떤 수련생들은 지식이 낮아 기술에 관한 책자를 보아도 모른다고 여기면서 휴대폰을 끄거나 배터리를 빼라고 하면 응하지 않는다.
자신의 안전을 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수련생들의 안전을 위해 책임져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안전에 주의하지 않아 다른 수련생들이 박해를 받는다면 그 수련생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기울여야 되겠는가? 만약 그 박해받은 수련생이 수련을 포기하고 사오(邪悟, 전향)한다면 이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수련생이 박해받음으로 인해 이 수련생과 정체적으로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 영향을 미치고 차질을 불러온다면 어떻게 손실을 보완하겠는가?
3) 안전에 주의하는 것과 사람을 구하는 것을 대립시켜
어떤 수련생은 만약 이토록 안전에 주의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현재는 온 거리에 다 감시카메라가 있는데 안전을 위한다면 나가서 사람도 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극단적인사유방식이라고 본다. 휴대폰은 감시하지만 중요한 일에 부딪혔을 때 전화기를 끄거나 배터리를 제거하고 이후에 다시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혹은 수련생들과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때 핸드폰을 갖고 가지 않으면 되고 감시카메라는 사람의 행위나 얼굴을 스캔하는 것이기에 적당히 피하고 모자를 쓰거나 옷차림에 주의하면 막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거리에 나가 사람을 구하는데 영향 주지 않는 것이 아닌가?
4) 어쩔 수 없다는 심리
어떤 수련생은 사악이 도처에서 다 감시해 막을 수 없다고 여겨 아예 신경 쓰지 않는다. 감시하려면 하라, 나는 나대로 하겠다. 이러면서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번거로움을 회피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표현이다. 사악의 감시는 어디나 다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 막을 수 있는 것도 하지 않으면 손실만 더욱 커진다. 자신이 모르거나 알지만 능력의 제한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사부님께서 자비로 도와주실 것이다. 이 방면에는 내가 직접 체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사부님의 보호가 있다고 해서 고의로 안전에 주의하지 않고 모두 사부님께 맡겨드리면 안 된다. 하나라도 사부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도 사부님을 존경하는 표현이다.
2. 휴대폰 도청기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다
1) 대부분 수련생은 휴대폰을 철로 만든 통이나 이불 안, 궤짝 안에 넣고 문을 몇 겹으로 닫으면 사당이 도청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밍후이왕의 2018년 12월 17일 대륙 각지 간추린 소식 및 교류문장을 보면 ‘휴대폰 안전문제에 중시할 것을 수련생에게 재차 부탁하다’에서 “휴대폰 도청에 관해 중국이동통신 엔지니어에게 알아봤는데 현재 기술로 휴대폰의 신호를 완벽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많은 휴대폰은 배터리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서 더욱 불가능하다고 했다.
때문에 배터리를 분리할 수 있는 것은 분리해야 하고 철통이나 이불 안, 혹은 문을 닫는 것은 사람이 듣지 못하지만 도청 수단으로도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휴대폰 전원을 끄는 것이 효과적이다(전원을 끄고 배터리 분리). 배터리가 분리되지 않는 것은 분리되는 노인용 휴대폰으로 교체해야 한다. 새로 나온 전화기는 배터리를 분리해도 전화기 자체에 배터리가 들어있을 수 있기에 도청을 완벽히 차단할 수 없다. 배터리가 분리되지 않는 것은 전화기와 거리를 두고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배터리 분리 시 반드시 정상적으로 전원을 끄고 분리한다.)
2) 어떤 수련생은 줄곧 배터리를 분리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분리하면 사악의 주의를 끄는 것이며 자신을 폭로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한다.
사실은 이것도 도청 수단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휴대폰이 도청된다고 가정하면 전화기를 철통 안에 넣었을 때 도청하는 사람은 소리가 명확히 감소되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신호를 수백 배 혹은 그 이상 확대하면 계속해 도청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청을 방지할 수 없다. 그 외에 사당이 휴대폰을 도청하고 집 전화를 도청하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대법제자는 자신과 다른 수련생들의 개인 정보를 보호할 권리가 있으므로 정정당당하게 배터리를 분리하고 도청이 효력을 잃게 하면 된다.
3) 신분이 폭로된 어떤 수련생은 자신의 휴대폰으로 한 번도 다른 수련생과 연락하지 않고 가족들과만 연락했기에 절대로 안전하다고 여긴다.
사실은 신분이 폭로된 수련생은 박해 전에 그와 가족들의 집 전화가 도청당했고 나중에 갖고 있는 휴대폰도 집 전화와 연계만 시키면 도청될 수 있다. 최근 전화번호 실명제가 도입되고 나서 전화기를 바꿔도(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등록) 가족들과 연락하면 다시 사악에게 도청될 수 있으므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 중국에서 신분이 폭로된 수련생, 협조인 역할을 하는 수련생들은 휴대폰 안전문제에 더 주의해야 한다.
3. 법리에 대한 인식 부족
1) 어떤 수련생은 안전에 주의하는 것을 감시 박해의 존재를 승인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전화를 도청하는데 전화선을 분리한다거나 휴대폰 배터리를 분리하는 것은 사악의 도청 박해를 승인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당시에 ‘구세력의 안배를 승인하지 않는다’라는 법리에서 이해가 부족해 이런 말은 법에서 정념이 강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두려움이 작용해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것은 이지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사악의 박해 수단(감시 포함)에 대해 보고도 못 본 체하는 것은 두려움이 없어졌거나 제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사악의 감시수단이 자동으로 효과를 잃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한 결과는 사악을 방임하고 사마(邪魔)를 키운 것이다.
2) 어떤 수련생은 ‘나는 신이고 이미 삼계 내에 있지 않기에 감시카메라와 도청기는 모두 나에게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대법은 업력으로 가득한 한 사람을 구해 신으로 만들 수 있고 진정으로 수련하는 수련생에게 일체 불법신통이 나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으며 확실히 그런 수련생이 그 일보까지 수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도 굳게 믿는다. 만약 그러한 상태에 도달한 수련생이 단독으로 그렇게 한다면 나는 문제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다른 수련생들과 협조해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한다면 정체를 고려해주기 바란다. 수련생마다 모두 그러한 상태에 도달한 것이 아니므로 사악이 틈을 타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일보까지 수련하지 못한 수련생은 단순히 모방하거나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고 속으로 미심쩍게 생각해서는 안 되며 분명히 심성이 도달하지 못했는데 사람의 용기로 억지로 ‘필사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쉽게 일이 생길 수 있다. 이 방면의 교훈은 아주 많다.
3) 오직 휴대폰 도청을 겨냥해 발정념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표면적인 안전조치는 불필요하다고 여기다
개인적으로 발정념은 공능을 운용해 사악을 제거하는 것이고 공능의 강약은 심성에 관계된다고 생각한다. 대법제자는 사람이 삼계 내에서 수련하는 것이고 수련과정 중에 있기에 이 관은 넘고 저 관은 넘지 못하는 문제가 존재하고 이번에는 심성을 잘 지켰지만 다음번에는 심성을 지키지 못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법의 표준에 가까워지게 수련했을 때 정념이 강해지고 일단 법을 떠나면 정념이 약해지고 불안정한 상태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원만에 도달하기 전에는 정념의 강약이 항상 일정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기에 어느 한 차례의 정념정행이 박해를 부정했다고 해서 표면적인 안전에 주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수련생의 수련 상태가 그러할지라도 여러 수련생의 수련 상태는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하겠는가? 때문에 겉으로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공능을 활용해 사악을 제거함에 대한 보충이고 대법제자의 순정한 정념에 안전에 주의하는 속인의 이치를 가하면 안전 방면에 누락이 없을 것이다.
4) 안전에 주의하는 것을 두려움, 정념이 강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다
중국에서 휴대폰 위챗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면서 안전에 주의하지 않았거나 혹은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아서 중대한 납치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기 전에 나는 이 항목에 참여하는 수련생을 만났다. 그 수련생은 휴대폰 안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비록 위조카드(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만든 카드)로 위챗을 보냈지만 자신이 늘 사용하던 네트워크를 사용했기에 그 본인의 신분이 노출된 것이다. 내가 그에게 천지행 논평의 진상 휴대폰에 대한 요구를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당시 그 항목을 추진하고 있던 수련생은 그 항목을 하려면 정념이 강해야 한다고만 말한 다음 그를 도와 애플 휴대폰(추진하는 수련생은 애플 휴대폰이 안전하다면서 아무런 안전장치도 해주지 않았음)을 구매하고 위챗 사용방법을 가르쳐주고는 끝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은 휴대폰 안전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있다고 일깨워주었으나 상대방은 그렇게 하는 수련생이 많지만 일이 생기지 않았고 사람을 구하는 효과가 크고 좋다면서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에 천지행 논평에서 보았는데 그 항목에서 다른 수련생들이 위챗으로 어떤 진상 항목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던 어느 한 수련생이 붙잡힌 후에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모든 사람에 대해 말해서 손실이 극심했다는 것을 보게 됐다.
그 일은 나에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념정행’ 등 이유로 기술안전에 주의하지 않고 겉으로 떠들썩한 것이 법의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념정행’에 부합되는지 생각하게 했다. 만약 법에 부합된다면 반드시 어떠한 환경에서도 사악에게 협조하지 말아야 하고 반드시 사악의 높은 압력과 혹형 박해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잃더라도 다른 수련생들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만 옳은 것이다.
일을 적극적이고 줄기차게 하고 ‘정념정행’을 줄곧 말하지만 안전에 주의하지 않고 보기에는 정진하는 수련생이 박해를 받은 후에 전향되거나 부정적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을 따라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는 수련생에게 아주 큰 미혹과 오해를 가져오는데 수년간 이런 상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은 안전과 두려움 방면의 법리 인식이 심각하게 편파적이어서 조성된 것으로 생각한다. 두려움이 있는지는 표면적으로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행위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안전에 주의하면 두려움이 있고 안전에 주의하지 않으면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안전에 주의하면 두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왕왕 두려움은 또한 극단적으로 안전에 주의하는 데서 표현되기도 한다. 때문에 안전에 주의하는 것으로 두려움을 판단할 수 없고 그것으로 옳고 아니고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는 현재 안전에 주의하는 것과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은 두 가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개인 층차에서 깨달은 것은 두려움도 집착심의 일종이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법공부를 제대로 한 후 사람의 마음, 관념, 집착심 등에 대해 똑똑하게 깨달은 후에 착실하게 수련하는 과정에서 두려움의 각종 표현 및 배후에 있는 집착의 근원을 발견하고 제거해야만 표준에 부합되는 두려워하지 않음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안전에 주의하는 일을 하거나 혹은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일을 해서 그 마음을 제거하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안전에 주의하는 것으로 두려움을 감추는 것도 안 되지만 두려움을 수련해 제거하기 위해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사악의 박해가 끝나기 전에는 반드시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 사악이 박해하는 환경에서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 것은 사악에게 감시 박해를 하게 편리함을 제공해주는 것이지 정념의 표현이 아니다.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박해를 반대하고 감시를 반대하는 행위이고 구세력의 감시 배치를 제거하는 일부분이며 정법 수련의 수요다. 안전에 주의하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순리롭게 진행하는 것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으며 사악의 박해로부터 손실을 감소할 수 있다. 때문에 안전에 주의하는 것은 정법시기 대법 수련이 여러 제자들에게 부여한 이지(理智)와 지혜다. 개인적으로 깨달은 바로는 정법, 정각수련자의 두려워하지 않음은 사심 없이 타인을 위하고, 법, 신우주, 수련생, 중생의 안전을 위해 책임지는 데서 체현되고 그것은 지혜롭고 원용불파한 것으로 생각한다.
4. 개인적인 몇 가지 건의
1) 관련 기술지식 학습
중국 수련생들에 대해 말하자면 사악한 공산당 통치 환경에서 이번 박해는 구세력이 오래전에 이미 배치한 것이고 고속으로 발전한 현대 과학기술 감시수단도 사악한 공산당에게 이용당해 대법을 박해하고 대법 수련자 및 구원을 기다리는 중생을 박해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생활하는 수련생들은 생활 중에서 만약 휴대폰을 이용하는 환경이라면 휴대폰이 왜 안전하지 않은지, 어떻게 해야 그런 안전하지 못함을 교묘하게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 ‘손자병법’에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말했다. 사악의 감시수단에 대해 똑똑히 이해하고 전면적으로 파악할수록 감시를 부정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조건이 되거나 능력 있는 수련생은 반드시 밍후이왕 ‘자료점마당’과 천지행논평을 마땅히 봐야 한다. 안전기술 방면에서 권위가 높으므로 깊이 알지 못하는 수련생에게 잘못 인도되지 않고 중국 수련생들의 안전을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데 수련생마다 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공부할 시간과 여력이 없는 수련생들은 무조건 안전방면의 조치를 따라야 한다.
2) 휴대폰 도청에 주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휴대폰 안전에만 주의하는 것만으로도 아직 멀었다.
오직 휴대폰이라면 전화카드를 설치하거나 안 하거나 전원을 끄지 않았다면 도청하고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카메라 렌즈가 있는 휴대폰은 운영자 모드에서 몰래 카메라 렌즈를 작동시켜 녹화기와 녹음기로 변하게 할 수 있기에 렌즈를 수련생 혹은 자료 등에 비추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가족들의 휴대폰도 수련생들과 멀리 하게 해야 한다.
스마트폰(안드로이드 시스템)은 이상의 기능을 제외하고도 또 얼굴 스캔, 지문 수집, 음성, 홍채인식(망막), 통신기록 수집, 위챗, QQ, 메시지 내용, 인터넷쇼핑 기록 및 기타 은행카드 비밀번호 등을 알아낼 수 있다.
사악한 공산당은 감시를 위해 벌써 휴대폰뿐만 아니라 ‘빛나는 공정’처럼 많은 전자기기에 모두 도청기를 설치하고 기술이 있는 비전문가에게 감별하게 했기에 중대한 일은 가장 좋기는 집에서 상의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구매한 신형 전자제품에 이런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다.
여기서 중점적으로 휴대폰 안전에 대해 말했는데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것처럼 수련생 여러분께서 더 좋은 안전조치가 있다면 보충해주기 바란다. 본인 층차의 제한으로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지적해 바로잡고 보충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9년 2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2/7/38187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