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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력을 부정하고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평소에 자신의 일사일념에 주의하여 자신을 수련할 수 있으나, 보름 전부터 단지 법공부만 하고 세 가지 일을 겉으로 하면서, 자신의 심성상의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루하루 그렇게 지나갔는데, 나는 자신의 수련상태가 이미 완전히 빗나간 것을 의식하게 됐다. 법공부에 노력하고 자신의 의식을 사상에 집중해 일사일념에서 찾으려 했으나 집중할 수 없었다. 단체 법공부와 수련생과의 교류를 통해, 그리고 자신의 문제 원인을 더듬어보니 한동안 발정념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었다.

그날 밤 12시 발정념을 하고 자신 공간의 사악이 나의 수련을 가로막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연속 장시간 발정념을 시작했다. 발정념을 시작할 때 매 일 분이 매우 고통스러웠고 사상 속에서 발정념을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지 않다는 이 염두는 바로 사악이 나의 사상 속에 넣은 것으로 나는 끊임없이 정념을 지켜 일 분 일 분 연속하여 발정념했다. 한 시간 뒤 발정념을 하고 싶지 않은 느낌은 없어졌으나, 사상 속에서 아직 깨끗이 청리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계속해 두 번째 한 시간 발정념을 했다. 두 시간 발정념을 끝낸 후 체내에 막혔던 물질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으며 그때는 이미 새벽 2시 경이었다. 나는 새벽 연공 시간까지 계속하여 발정념으로 그 패괴된 물질을 철저히 청리, 해체하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한 덩어리 한 덩어리의 물질이 뒤통수에서 청리돼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나는 왜 한동안 이렇게 어렵고 힘든 시간을 지냈는지, 왜 이렇게 많은 수련생이 병업의 박해 혹은 붙잡혀가는 박해를 당했는지 보았다. 바로 정법의 최후에 구세력이 전면적으로 소각당할 때, 그것들은 맞아 떨어지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대법제자를 붙잡고 놓지를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법제자가 집착하는 곳이 그것들이 유일하게 자신이 소각되는 것을 미룰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우리를 붙잡는 방법이 바로 우리의 집착을 죽기 살기로 붙잡고 그것을 강화해, 집착을 완고하게 변화시켜 쉽게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구세력은 소각되는 절망 속에서 박해를 가중해 수련생을 끌어내려 우리가 돌아갈 시간을 지체시켜 이로써 그것들이 소각되는 시간을 연장하려 한다.

3시간 발정념을 끝내니 머리가 매우 청성해졌으며 다섯 가지 공법 연마를 끝내고 한 시간 남짓 잠들었다. 꿈에 길을 가는데 갈수록 삐뚤어지더니 조심하지 않아 더러운 못에 빠졌다. 머리까지 잠겨 의식을 잃었다가 갑자기 물속에서 의식을 회복하고 일어섰다. 물은 가슴 높이여서 내가 질식할 수 있는 깊이가 아니었다. 그러나 매우 무거워서 나올 수 없었다. 살펴보니 솜이불을 몸에 감고 있어서 솜이불이 더러운 물을 가득 머금어 매우 무거웠다. 나는 솜이불을 제거하고 순조롭게 못가에 올라왔다. 계속하여 꿈에 밥 한 그릇을 먹고 살펴보니 밥에 몇 마리의 큰 바퀴벌레가 숨어 있었다. 매우 더러웠다. 그때 잠결에서 깨어났고 이는 사부님의 점화임을 깨달았다. 지금은 겨울이라 큰 솜이불은 바로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으로 이것에게 조금씩 길옆으로 끌려가다가 나중에 더러운 못에 빠진 것이었다. 더러운 물은 바로 사악이며 내가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이 그 자리에서 넘쳐나 나를 눌러 움직일 수 없게 했다. 밥 속에 바퀴벌레는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공간장에 벌레가 있음을 설명했다. 그날 밤 12시 발정념 후 자지 않아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의 통제를 받지 않고 솜이불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연속 3시간 발정념으로 그것을 해체했기에 꿈에서 내가 못가에 오를 수 있었다.

그 3시간의 발정념을 통해 단번에 수련상태가 다시 처음과 같이 회복된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매우 청성하게 자신의 사상 속 일념마다 법에 있는지 여부와 어느 것이 집착인지 의식할 수 있었으며, 모두 확고하게 그것을 배제할 수 있었다. 또한 사부님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확고하게 그런 완고한 집착을 배척할 때 사부님께서 나에게서 제거해주셨다.

그 외에 평소에 자신의 일사일념을 살피면서 자신의 사유에서 어느 것이 구세력이 강압적으로 가한 것이고, 어느 것이 자신의 집착인지, 어느 것이 법에 대해 확고하지 않은지를 분명하게 가려내 일일이 처리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일념을 움직일 때 나는 즉시 그것을 붙잡아 분석을 거친 후 만약 구세력이 강압적으로 가한 거라면 철저히 부정하고 해체했다. 만약 자신이 닦아버리지 못한 집착이면 절대 그것을 갖지 않겠다고 확고하게 배제했다. 만약 자신이 사부님에 대해 법에 대해 확고하지 않으면 나는 끊임없이 자신의 신사신법 정념을 강화했다.

예를 들면, 진상을 알리러 나갈 때 마음속에 미세한 두려움이 있으면 나는 그것을 방임하지 않고 안으로 찾아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살핀다. 붙잡히고 박해당하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붙잡히고 박해당하는 이것은 구세력의 배치로, 확고하게 부정하고 나에게 붙잡히고 박해당하는 염두를 준 배후의 구세력을 청리하고 해체했다. 두려워하는 자체는 하나의 집착심으로 나는 확고하게 그것을 다음과 같이 배척한다.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아니며 두려워하는 마음이며 나는 이 두려움이라는 집착심을 갖지 않겠다. 그럼 나는 어째서 자신이 붙잡힌다는 걱정을 할까? 이는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바로 나의 신변에서 나를 보호하고 계심을 믿지 않는 것으로 나는 곧 자신의 신사신법 정념을 강화한다. 또 다른 사례를 들겠다. 몸의 한 부위가 붓고 아팠는데 사상 속에 미세한 일념이 나타났다. 수련 전에 병이 또 나타난 것인가? 나는 즉시 그것을 붙잡는다. 나더러 이 병의 상태를 인정하게 하는 것은 구세력으로 나는 확고하게 인정하지 않고 발정념 구결을 염해 배후의 구세력을 해체했다. 나에게 몸에 병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집착이 있었단 말인가? 이 집착을 배제하자. 수련인은 병이 없으며 이는 가상이다. 모두 공이 몸에 반영된 좋은 일이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며 나는 대법제자이다. 무엇도 나를 움직일 수 없다.

물론 다른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사상 중에 자녀 혹은 남편이 나쁜 일에 봉착하지 않을까 라는 등등의 생각이 드는데, 그때마다 나는 이런 사상을 붙잡아 부정할 것은 부정하고 해체할 것은 해체하며, 버려야 할 집착이면 절대로 남기지 않고 신사신법에 있어서 절대로 절충하지 않는다. 이렇게 매우 빨리 이 상태를 지나갔다. 표면에서는 이런 상태를 지난 것이고,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실질적인 그 면에서는 구세력이 해체됐고 심성이 제고됐으며 사부님에 대한, 법에 대한 마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구세력을 부정함에 있어서 박해를 당할 때가 돼서야 부정할게 아니라 평소의 일사일념에서 자신의 염두를 분석해 그것을 분명하게 가려낸다면 구세력의 그림자를 볼 수 있으며 산을 쪼갤 수 있는 일념으로 확고하게 배후의 구세력을 깨끗이 제거하고 해체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만 그것에게 틈을 주지 않게 되며 그것들이 소각될 때 우리를 잡아당기지 못하고, 우리는 그것에게 끌려가지 않게 된다.

그 외에 구세력을 부정함에 있어서 시간상에서, 사상 중에서 끊임없이 부정해야하며 공간에서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지역에서, 정체에서도 그것을 부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구세력이 사람마다, 일사일념과 일마다, 가정에도 배치가 있고, 한 가정에 여러 명의 수련생이 언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할지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모두 배치가 있다. 구세력은 또 한 지역에서 누구에게 어떤 집착이 나타나고 어떤 상태가 나타나며 나중에 어떤 결과에 도달할지 모두 배치가 있다는 등등 일체의 일체를 모두 부정해야 한다. 전면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모두 대법제자이나 끊임없이 문제가 나타났다. 아마 이미 구세력의 그 한 세트의 기제 중에서 운행되었을 것이다. 반드시 그것을 부정해야 했으며 발정념으로 그것을 해체해야 했다. 한 지역에 대대적으로 붙잡혀 박해당하는 일이 나타났고, 끊임없이 억울하게 중형을 선고받는 일이 나타났고, 다른 한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병업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것도 아마 모두 구세력이 부동한 지역에 대한 배치일 것이다. 이때에는 반드시 정체의 입장에서 전면적으로 구세력이 자신의 지역에 대한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

이 문장을 쓰게 된 원인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나는 우리 지역의 많은 수련생이 단지 겉으로 일을 하고 법공부를 했지 마음을 수련할 줄 모르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마음을 수련할 줄 모르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다. 마치 나의 꿈에서처럼 이미 사악에게 끌려 내려간 것이다. 한 주를 지나면서 조금의 집착심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즉시 경계해야 하는 것으로, 이는 수련에 반드시 큰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시간이 길어지면 마비되고 정상으로 받아들인다.

둘째, 최근에 박해당한 수련생이 특별히 많은 것을 발견했다. 병업으로 사망했거나 붙잡혀간 것을 포함해서다. 그건 평소에 자신의 일사일념에 주의하지 않아 구세력이 참여했어도 의식하지 못해 우리의 염두로 반영돼 바로 묵인한 것으로 그것이 손을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붙잡히는 것을 두려워하고 혹은 병이 생길까 두려워하면 바로 그것을 승인한 것으로 그것들이 곧 손을 써서 박해한다.

셋째, 수련생이 발정념에 대한 중시가 부족한 것을 발견했다. 어떤 때는 4번의 정시 발정념으로 부족하며 발정념을 얼마 할지는 자신의 정황에 따라야 한다. 4번의 정시 발정념은 반드시 보장해야 하며 하지만 4번의 정시 발정념을 했다고 해서 표준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수련상태가 바르지 않으면 발정념 시간을 연장하고 발정념 횟수를 증가해 공간장의 사악이 깨끗이 청리될 때까지 해야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또 발정념을 할 줄 모르는 수련생이 있는데 허튼 생각과 잡념이 많아 얼떨떨해지거나 잠을 잔다. 혹은 정공을 연마할 때와 같게 한다. 발정념을 할 줄 모르는 수련생은 반드시 발정념을 어떻게 하는가의 관련 설법을 많이 공부해야 한다. 한 번으로 익히지 못하면 여러 번 공부하여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발정념을 해야 한다. 그래도 발정념 할 줄 모른다면 다시 더 공부하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서 해야 하며 발정념을 할 줄 알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 발정념은 매우 중요하며 반드시 발정념을 할 줄 알아야 하며 발정념을 중시해야 한다.

넷째, 하나의 염두가 지나갈 때 일부 수련생은 어떻게 자신을 수련해야 할지 모르며 어느 것이 구세력의 사유이고 어느 것이 집착인지 분별하지 못해, 구세력의 사유방식에 대해서도 즉시 부정할 줄 모르고 또 집착에 대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것은 한 번 또 한 번 우리의 머리에 반영시켜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통제한다. 더 완고한 집착, 예를 들면 두려워하는 마음, 색욕심, 질투심, 세 가지 일을 할 때 이기적인 마음 등등은 모두 매우 완고하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이 배척해도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느낌을 받더라도 확고하게 배척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명시하셨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 우리가 확고해지면 그 나쁜 물질은 사부님께서 제거해주신다. 그리고 사부님에 대해 법에 대해 확고하게 믿는지 여부도 역시 우리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나는 어떤 때 돌발적인 상황에 마주해 당황하여 정신 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표면상에서 아무리 당황하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신사신법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사부님이 계시기에 괜찮다고 자신에게 타일러 당황함에서 자신이 당황하지 않게 하고 자신을 통제해 자신이 자발적으로 점차 조금씩 신사신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하는 것이며 확고한 신사신법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명백히 말해서 믿지 않던 것에서 최종적으로 100% 완전히 진정으로 믿는 것 역시 하나의 수련 과정이다.

다섯째, 세 가지 일에서 법공부를 반드시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 사부님께서 “고층차의 법을 반드시 투철히 배워”[1]라고 말씀하셨으며 법을 투철하게 배워야 어떻게 수련하는지 알 수 있고 다른 몇 가지 일도 잘할 수 있다.

개인의 조그마한 수련체험으로 법에 있지 않는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2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2/7/3823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