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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원은 선한 마음으로 도전을 대해야 한다

글/ 스위스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사랑하는 수련생 안녕하십니까?

나는 2년 전부터 우리 지역의 보도원을 맡았습니다. 그동안 나의 집착심과 부족한 면이 폭로됐습니다. 이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많은 집착심이 보였습니다. 수련생의 도움으로 일부 난관을 잘 지나왔고 자신의 문제를 안으로 깊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청성’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늘 말했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대법(大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作風)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불복하고 겉으로만 복종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보지 않을 때는 여전히 자기 뜻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다.”

수련생과 이야기를 나눌 때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법이 나를 계속 지도해 주었습니다. 나는 사부님께서 정하신 표준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항목 때문에 압력이 생기거나 혹은 무엇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때 나의 어투는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부족한 점도 즉시 반영되었는바, 그 표현 형식은 수련생이 거절하거나 비평하거나 혹은 나와 함께 일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반드시 자신의 언어와 일사 일념에 주의해야 하며, 마음가짐이 평온할 때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법에 대해, 사부님에 대해, 수련생에 대해 믿음이 강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보도원으로서 수련생에 대해 편견이 있어서는 안 되며, 도움이 필요하면 다가가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비평을 받아들이고 참을성을 닦다

나는 사실 내성적인 사람으로, 뒤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보도원이 되면 반드시 많은 수련생 앞에서 말해야 하고 지휘해야 합니다. 그 외에도 전에는 하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합니다. 나는 보도원이 되었던 초기에 마치 유리장에 있는 것 같았으며, 모든 사람들이 나를 관찰하고 내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 보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 후 나는 이것은 두려운 마음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고 타인에게 비평을 듣는 것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나는 일반 수련생의 선의적인 일깨움을 받아들이지만, 내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평이거나 내가 지금 하는 일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마음속으로 불평이 생깁니다.

사부님의 ‘정진요지-어떻게 보도할 것인가’의 한 단락 설법을 볼 때마다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보도원의 일거일동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 수련생은 모두 대법(大法)에 대조하여 가늠할 것이며 아주 똑똑히 보아낼 것이다. 자신을 높이려는 생각이 있기만 하면 수련생은 당신의 心性(씬씽)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므로 겸허(謙虛)해야 하며 그래야만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성망(聲望)은 법 학습을 잘함으로써 수립되는 것이다.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잘못이 없을 수 있겠는가?”

부딪히는 문제는 모두 간단하지만, 나는 반복해서 빠져듭니다. 나는 같은 문제에 부딪힐 때 한걸음 물러서서 안으로 찾습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자만으로 스스로 상처를 받고 고정관념을 지닌 것을 발견합니다. 나는 수련생이 나의 기대에 따라 일하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가? 깊이 안으로 자신의 문제를 찾아보면 안일을 구하는 마음과 고집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왜 나를 강력히 질책하는지를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불편해지고 그리고 때때로 편안하게 잘 수 없습니다.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일마다 안으로 찾으면 매번 부딪히는 문제는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집착심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예를 들면 원망하는 마음과 인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부딪히지 않으면 어찌 자신의 집착심을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법을 자주 외우면 나의 고정적인 관념과 일정 거리를 지킬 수 있게 됩니다. 나는 문제를 멀리 떨어져서 살펴봅니다. 이렇게 하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더 자상해집니다. 문제에 부딪히면 마음에 두지 않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줄곧 나의 장애가 되었습니다. 나는 반드시 이 관을 넘겨야 합니다. 관을 넘기면 심성이 바로 제고되고 마음도 홀가분해집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이러한 향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

제시: 스스로 잘해야 한다

한번은 우리가 함께 연공할 때 한 수련생이 선의로, 보도원의 연공 자세는 다른 수련생이 모두 따라 하기에 반드시 정확해야 한다고 일깨워줬습니다. 그 후 나는 자신이 더 잘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나는 현재 자신의 언행을 더 중요시하고 법 공부할 때 되도록 가부좌합니다. 현재 다른 수련생도 법 공부할 때 가부좌합니다. ‘전법륜(轉法輪)’에 존경을 표하는데 이것은 전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이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고 행동이 가장 좋은 사례입니다.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고 수련생을 믿다

한번은 우리가 대형 활동을 기획했습니다, 그런데 한 수련생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전화해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 나는 그녀에게서 활동 배치 진전에 대한 회답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일이 지나간 후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교란받지 않고 항목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 일로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그녀를 찾지 못했던 기간에 그녀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의심은 대법 활동에 좋은 점이 없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이제는 무슨 문제를 해명하려면 되도록 상대방과 직접 교류하고 오해를 피합니다.

법을 외우다

한동안 나는 법 공부할 때 정신이 집중되지 않아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법을 외우니 법리가 더욱더 또렷해지고 잘 이해되었습니다. 때로는 한 단락 법에서 전에는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법을 외우니 법에 대해 더욱 깊이 알게 됐고 새로운 한 층의 법이 보였습니다. 제가 쓴 심득교류 문장이 다른 수련생의 수련 경험 쓰기를 격려하기를 바라며, 더욱더 많은 법리를 깨닫고 집착심을 제거하기를 바랍니다.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심에 감사하고, 수련의 길에서 수련생이 제게 해주신 지적에 감사합니다.

(2019년 독일 파룬따파 심득교류회 원고)

 

원문발표: 2019년 1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해외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1/3806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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