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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크나큰 은혜, 불운의 사람이 대법을 얻어 새 생명을 얻다

글/ 지린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산둥의 한 가난한 산간마을에서 태어났다. 올해 70인데 인간 세상의 풍상고초를 다 겪었다. 1999년 1월 기쁘게도 대법을 얻고 보름이 지나 나를 죽지 못해 살아가도록 괴롭히던 고혈압, 노이로제, 기능성 자궁출혈, 위 냉증, 좌골신경통, 류머티즘 등 고질병이 다 나았다. 정말 병이 없으니 온몸이 가벼웠다.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한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1. 생사를 헤매며 고해(苦海)에서 오르락내리락하다

우리 집은 자매 다섯인데 나는 막내다. 어릴 때부터 집이 가난하여 밥을 먹지 못했다. 할머니는 손자가 없어 종일 어머니를 욕했다. 듣기 싫은 말을 다 하여 어머니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홧김에 큰 돌담 밖에 있는 무덤에 나를 내던졌다. 나는 당시 11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그곳의 들풀은 사람 키 높이만 했다. 내가 몇 번 울더니 소리가 들리지 않자 어머니는 내가 떨어져 죽은 줄 알았다. 저녁에 둘째 언니가 밥을 빌려 나갔다 집에 돌아와 나를 찾았는데 어머니는 돌담 밖에 있는 무덤에 던진 지 하루 됐으니 벌써 죽었을 거라고 말했다. 둘째 언니는 믿지 않고 울면서 나를 찾으러 나왔다.

당시 보름달이 풀숲을 밝게 비추었다. 내가 그곳에 누워 솜이불 속에서 잠든 것 같은 걸 보고 둘째 언니는 기뻐서 울지 않았다. 나의 몸과 얼굴에는 모기, 개미가 가득 기어 다녔다. 둘째 언니는 나를 안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언니가 나를 돌보고 밥을 빌어 먹일 것이니 다시는 작은 동생을 던지지 말라고 빌었다.

둘째 언니는 나의 운명 중의 귀인이었다. 나보다 10살이나 위인데 둘째 언니의 보호로 나는 4살까지 자랐다. 하루는 둘째 언니를 따라 물 길으러 갔다가 언니가 몸을 돌릴 때 뒤를 따라가던 나는 멜대에 맞아 우물에 빠졌다. 10여 미터 깊이였는데 당시 나는 물을 몇 모금 먹었고 머리만 내밀고 바닥까지 가라앉지 않았다. 둘째 언니가 사람 살리라고 외쳐 이웃집 큰오빠가 듣고 달려 나와 우물 안에 내려와 나를 구해 올라왔다. 나는 이미 이가 닫히고 입술은 파랬으며, 몸이 한기로 움츠러들어 있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나에게 주사(朱砂)를 조금 물에 타 이를 벌리고 나에게 넣어주어 사흘 후에야 나는 깨어났는데 어머니는 나에게 왜 죽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둘째 언니는 “어머니는 왜 작은 여동생에게 그렇게 모지냐!”고 말했다. 어머니는 모진 게 아니라 사는 게 얼마나 힘드냐고 말했다.

이렇게 죽지 못해 여섯 살까지 자라면서 매일 둘째 언니와 밥 빌려 나갔고 밭에 나가 일을 했다. 하루는 밥 빌어먹는 할머니가 왔는데 더러웠고 머리는 하얗게 되었으며 절뚝거리며 지팡이를 짚었다. 어머니는 둘째 언니가 집에 없는 틈에 나에게 할머니가 사탕을 사줄 것이라고 속였다. 나는 어릴 때 사탕을 먹은 적이 없어 정말인 줄로 알았다. 어머니는 나에게 새 옷을 갈아입혔다. 나는 깡충깡충 뛰면서 할머니 손을 잡고 단번에 1~1.5㎞를 갔다. 나는 힘들어 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너의 엄마가 너를 나에게 주었다면서 나에게 너를 키우라고 말했다고 했다. 나는 두려워 울면서 그녀 손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녀는 나를 꼭 잡았다. 이때 둘째 언니가 쫓아와 그녀와 반나절이나 실랑이를 벌이다가 나의 관절이 빠져 내가 아파 비명을 질러서야 그녀는 나의 손을 놓아주었다. 둘째 언니는 상처 입은 나를 안고 끊임없이 울어 코, 입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렀다. 이번에 어머니는 놀라 다시는 나를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겠다며 죽어도 같이 죽자고 했다. 우리 세 사람은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그 후 몇 년 초등학교에 다녔다. 1959년 대기근 때 마을에는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우리 집은 삼촌을 따라 기근으로 인하여 살던 곳을 버리고 동북에 가 지린의 한 작은 산촌에 자리 잡았다. 그때 산에 가 들나물을 캐고 나무 껍데기를 벗겨 요기하면서 굶주림에 허덕였다. 언니들은 커서 잇따라 시집가 살길을 찾았지만 나와 둘째 언니만 부모의 독단으로 데릴사위를 맞아들였다. 후에 부모는 모두 늙은 데다 중병에 걸려 둘째 언니가 어머니를 모시고 내가 아버지를 모셨다. 둘째 형부는 매일 둘째 언니를 때리고 욕해 어머니는 참지 못하고 66세에 목메 죽었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도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 나는 매우 비통하여 낮에 집안일 농사일을 다 하면 저녁에 베개가 흠뻑 젖도록 울었다. 자면 악몽을 꿨으며 머리가 없는 괴물이 나를 끌고 가는 꿈을 꾸어 놀라 여러 번 깨어났다. 나는 점차 병마(病魔)에 시달리게 됐다.

남편은 집에서 맏이이고 아래에 남동생 일곱에 여동생 한 명이 있었다. 매일 일은 하지 않고 술을 많이 마셨으며 바람을 피우고 집에 돌아와 나를 때리고 욕했다. 딸이 일곱 살, 아들이 다섯 살 때 나는 견디기 어려워 산에 가 목을 맸지만, 다람쥐가 꼬리로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또 나를 구했다. 두 아이가 쫓아와 땅에 누워 있는 나를 안고 크게 울며 말했다. “엄마 죽으면 안 돼요. 엄마가 죽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요…….”

아들딸이 클 때까지 고생스럽게 산 나는 이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두 지쳤고 온몸에 병이 들었다.

2. 대법을 수련하여 새 생명을 얻다

1999년의 어느 날, 딸이 책 한 권을 가지고 와 말했다. “이 책을 보세요. 파룬궁을 연마하는 책이에요. 우리 시어머니가 이 공을 연마하여 몸에 병이 다 나았어요.” 나는 가져다 손닿는 대로 한 번 펼쳤는데 수련이라는 두 글자를 보고 놀랐다. “야, 이건 무슨 책이지?” 이 두 글자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무엇이 수련인지 모르기에 잘 봐야겠다. 나는 밥도 먹지 않고 단번에 ‘전법륜’을 다 보고 즉시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하고 시달림을 받으면서 몇 번 큰 난에도 죽지 않은 것은 이 수련을 기다리기 위한 것이구나. 격동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때부터 수련의 길을 걸었다.

수련한 후 심신이 건강해지고 모든 병이 다 나았으며 이 세상의 고난의 근원이 생생세세 지은 업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사부님께서 벌써 나를 보호하고 계셨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 인생에 대한 막연함, 인정의 억울함이 모두 선해(善解)되어 마음에 창문을 연 것처럼 확 트였다.

인생의 참뜻을 깨달았고 병이 없이 온몸이 가벼운 미묘함을 체험했으며 매일 사부님의 크나큰 은혜에 젖어있었다. 이때 사부님에 대한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대법 수련의 표준에 따라 했고 정진하면서 착실히 수련하는 것이 사부님의 구원에 보답하는 것이다. 나는 마을에서 법을 널리 알리고 사람을 만나면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해 1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대법에 들어섰고 대법의 복음이 우리 이 작은 산간마을에 널리 전해졌다.

3. 노동교화소에서 인연 있는 사람을 구하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이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발동한 후 우리는 반박해(反迫害) 했다. 현지에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했으며 거짓에 속은 세인을 구했다. 2005년 11월 나는 납치되어 불법으로 노동 교화 1년 3개월을 받았다. 헤이쭈이쯔 노동교화소에서 고문을 받았다. 경찰은 전기곤봉으로 민감한 부위에 전기충격을 가했고 발로 나의 배를 힘껏 찼으며 머리를 끄집어 당겨 벽에 부딪히게 했다.

나는 대법을 견정하게 수련하여 노동교화소에서 나온 후 또 세뇌반에 보내졌다. 몇십 명이 소위 ‘전향’되었지만, 마지막에 나만 남아 그들은 나쁜 수단을 썼다. 촌 부녀주임을 보내서 나를 속였다. 남편이 심한 병에 걸렸다며 호흡이 곤란하다고 했다. 나는 정에 빠져 마음을 어기고 회개서를 썼다. 당시 법리가 똑똑하지 않았고 정념이 없어 대법과 사부님의 고심한 구원을 배반하고 수련의 길에 오점을 남겼다. 집에 돌아온 후 여러 번 사존께 참회하고 눈물을 흘리며 목 놓아 울었다. 수련생의 도움으로 진정하게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나는 세 가지 일을 잘하기에 노력했다. 마을 사람들은 90%가 진상을 알고 삼퇴했으며 나머지 사람들도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2009년 4월 17일 국내안정보유국(국보)에서 또 나를 납치하여 헤이쭈이쯔 노동교화소에 보내고 불법적으로 1년 3개월을 가뒀다. 이 기간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대법에서 수련해낸 선과 자비로 인연 있는 사람을 구했다.

장 모라는 마약 중독자가 있었는데 누가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든 아는 체하지 않았다. 한번은 그녀가 다리를 다쳐 내가 그녀를 도와 싸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녀에게 말했다. “장 모는 이렇게 예쁜데 왜 이런 것(마약 흡연을 가리킴)을 합니까? 장 모를 이 정도로 해쳤잖아요?” 그녀는 감동했다. 나는 더 진상을 알리고 톈안먼 가짜분신 자살사건을 말하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했으며 내가 어떻게 수련했고 대법에서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를 말했다. 마지막에 그녀는 말했다. “아주머니가 한 말을 나는 다 믿습니다. 본명으로 내가 가입했던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를 탈퇴시켜주세요.”

또 다른 20살대 마약범은 매일 목욕할 때면 나에게 이걸 가져다 달라 저걸 가져다 달라고 했다. 어떤 수련생은 나를 너무 천하다면서 대법제자는 존엄이 있어야지 그녀의 심부름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녀를 중생으로 여기고 잘 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 달이 지나 내가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집에 돌아가야 해. 스스로 자신을 잘 돌보게.” 그녀는 크게 울며 말했다. “아주머니 나는 아주머니를 보내기 아쉬워요. 본명으로 나를 삼퇴시켜주세요. 나는 둥 모모라고 합니다.”

이번에 남편은 나를 검은 소굴에서 데려갔다. 사당 악인(邪黨惡徒)들은 나를 가만두지 않고 매일 몇몇 경찰이 우리 집에 ‘출근’해서 아침 8시부터 5시까지 포커를 쳤다. 나는 저녁에 연공하고 법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발정념을 하여 그들 배후의 악을 제거했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자 그들이 갔다.

4. 문 두드리기 행동을 해체

2018년 8월 6일 3명의 경찰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나는 평온하게 그들을 들어오라 하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아직도 연마하는지 하지 않는지 보러 왔습니다.” 나는 말했다. “정말 나를 아는구먼. 당연히 연마하지. 이렇게 좋은 공법을 왜 연마하지 않겠습니까? 연공 하지 않으면 나는 벌써 이 세상에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많은 병이 연마하여 다 나았는데.”

다른 한 사람이 나의 딸이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를 아는 체하지 않고 이어서 그들에게 덕은 닦은 데로 가고 죄는 지은 데로 간다는 천리, 진상을 알면 복을 받는 사례와 좋은 사람을 박해하면 응보를 받고 가족에게도 잘못하는 이치를 말했다. 50여 살 되는 경찰이 듣고 놀라워했다. 그는 아마 610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말했다. “아주머니 좋으면 집에서 연마하세요. 우린 가겠습니다.” 나는 그들을 만류하여 삼퇴를 시키려고 했는데 그들은 재빨리 가버려 쫓아갈 수도 없었다.

이만큼 말하겠다. 적절하지 않은 점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위대한 사존께 머리 조아려 인사드립니다. 수련생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19년 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4/3807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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