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를 깨닫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를 즐겨 보았다. 다양한 유형의 드라마 속에 심하게 이끌려 드라마에 푹 빠졌다. 따라서 극의 변화에 따라 기쁘거나 슬프거나 울거나 웃거나 등등 사람 마음을 심하게 흡인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이 방면에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이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늘 보고 싶은 마음이 자꾸 되살아나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했다. 특히 요즘 한 시기 드라마를 보고 싶은 집착이 유달리 강렬했는데 보기만 하면 머릿속에 쏙 들어와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갔다. 당시에는 정념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의해 통제당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느낌은 이전에 수련 중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예전에도 집착했지만 바로 관을 돌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한동안 자신이 미친 듯이 통제를 잃고 보게 되었는데 그게 진짜 내가 아님을 잘 알면서도 헤어나기 힘들었다.

동수들과 교류하고 나서 많은 집착심을 찾은 후 매일 법을 암송하고 오랜 시간을 이용해 발정념으로 집착심을 제거했다. 그러나 효과는 그리 뚜렷하지 않았다. 설령 드라마를 보지 않더라도 다른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보고 나서 때로는 지나치게 자책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자책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도 ‘자연(自然)’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필연(必然)’이란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자연’이란 사람이 우주에 대하여, 생명에 대하여, 물질의 현상에 대하여 해석하지 못한 나머지 무책임하게 스스로 그럴듯하게 하는 말이다. 그들 역시 그 ‘자연’이란 자체가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의식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당신들은 이 일체 마난(魔難)이 모두 필연적이고 바로 이러하다고 인정하므로, 일종 어찌할 수 없는 소극적인 상태가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당신들 사람의 일면은 명백해야 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법을 얻은 그 일면이 똑똑해야 한다는 것이다.”[1]

나는 나 자신이 소극적이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집착의 뿌리를 깊이 파야 한다는 것을 의식했다. 내가 TV를 보게 된 배후에 가장 큰 집착심은 호기심인 것을 찾았다. 그것이 자신의 주의식이 정념의 작용을 발휘하는 것을 억제한 것이다. 이런 마음의 통제 하에 늘 드라마 극의 후속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특히 궁금했고 자신이 주목한 주인공에 대해 그들이 경험한 이런 일들을 어떻게 겪었는지, 어떻게 직면할 것인지,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사실 우리는 대법 수련을 통해 모두 알고 있다. 사람의 일생은 고급 생명이 모든 사람의 업력의 크기에 따라 다르게 배치되는 것이며,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도 도무지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드라마 속에 속인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구체적인 일들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 것이 자기도 모르게 매우 우스꽝스럽게 느꼈다.

그걸 깨닫고 나서 며칠 동안은 드라마를 보려는 집착심이 조금 내려진 것 같았다. 그러나 때때로 예능 프로그램들을 훑어보기도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이 집착심을 반드시 제거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할 수 없지만 자책하지도 않고 될 수 있는 한 나는 TV를 보지 않도록 억제하고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다시 브라우저를 열었을 때, 이전에 관심 있었던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전혀 보고 싶지 않았다.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자연스럽게 브라우저에서 탈퇴하고 휴대전화를 꺼버렸다. 이때 나는 다른 공간에서 TV를 보고 싶어서 하는 나쁜 물질을 사부님께서 청리해 주신 것을 똑똑히 실감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흥미가 없었다. 표면상에서 얕은 법리에 대한 인식으로, 그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감동되어 울기 직전이었다.

그 후로 TV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속인 중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처리할 수 있었고 성급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2] 이 법리에 깊은 내포를 깨닫게 되었다. 수련인으로 놓고 말하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의 길을 바꾸어 준 것이고, 이후에 수련의 길을 새로 배치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오직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따라 끊임없이 마음을 닦고 집착심을 제거해야하며, 오직 우리 마음이 법속에만 있다면 설령 한꺼번에 할 수는 없고 한동안 못하더라도 지나친 자책은 하지 말고 당연히 자기를 방임하지 말고 우리가 자신의 집착을 인식하고 제거할 결심을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꾸준히 수련하기만 하면 된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무엇이든지 우리를 도와주시며 나머지 일은 모두 사부님께서 하고 계신다.

사실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오로지 마음을 닦고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상관할 필요가 없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배치해 주신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형식을 주장하지 않으며, 당신이 수련하기만 하면 곧 우리 이 한 문(門) 중의 사람이다. 나의 법신은 무엇이나 다 알고 있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는 다 알고 있으며, 무엇이나 그는 다 할 수 있다. 당신이 수련하지 않으면 그는 당신을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이 수련하면 끝까지 돕는다.”[2]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도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4/3806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