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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수련해 환골탈태하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다

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6년 나는 파룬궁을 수련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늘날까지 오게 된 데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이 있어서였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1]는 내가 몸소 겪은 대법의 신기하고 아름다운 경험이다.

대법을 수련해 환골탈태하다

수련하기 전 나는 성격이 난폭하고 이치가 있다면 쉽게 용서하지 않았으며 쟁투심이 강했다. 결혼 생활은 불행했고 심지어 하늘이 공평하지 않다고 원망했는데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편한 곳은 하나도 없었으며 특히 배추에 시금치국만 먹어도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기도 전에 바지에 실수하곤 하는데 병원에 가서 침을 맞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다.

당시 집안은 몹시 힘들었다. 어머니는 정신 상태가 좋지 않으셨고 아버지는 무거운 가정 부담으로 허리가 휘었으며 남동생은 막 결혼하고 빚을 진 상황이었으며 나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서 생활했는데 참으로 다난한 인생길이었다.

2006년 아이는 파룬궁 진상자료를 집으로 가져왔는데 나에게 보라고 건넸다. 선양 쑤자툰 생체 장기적출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후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과 접하게 됐고 그들이 모두 선하다고 느꼈으며 파룬궁 진상을 알고 ‘전법륜’을 달라고 했다.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됐고 생활에서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은 환골탈태의 변화가 일어났다. 병이 없으니 온몸은 가벼웠고 채소를 먹거나 찬물을 마셔도 괜찮았으며 체중이 점차 늘었다. 가족들도 직접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법공부가 점차 깊어지면서 수련인으로서 10여 년 수련 중에서 생활 속의 각종 일에서 심성관을 넘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오직 한 마음을 굳게 먹고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에서 속인 중의 각종 추구와 욕망을 버리며 마음에 대법을 간직하고 사회의 흐름에 따라가지 않고 명예, 이익, 정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와 함께 친정에서 생활하면서 좋지 않은 가정형편과 복잡한 환경 속에서 생활은 기구하고 고생스러웠다. 그동안 나는 사부님과 대법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환경을 개척했다.

우리 가족을 변화시킨 대법

연공으로 건강해지자 나는 집 안팎의 일을 모두 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틈만 나면 부업을 하면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했다. 그때 아버지는 걱정만 하셨다. 어머니는 정신 상태가 좋지 않으셨고 남동생 결혼으로 수천 위안의 빚도 지게 됐으니 말이다. 내가 수련을 한 후부터 집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계속됐는데 우리는 얼마 되지 않아 빚을 다 갚았다. 신기한 것은 그해 솜 농사를 했는데 나는 400평 정도 심었고 올케는 800평을 심었지만, 우리 두 집이 솜을 팔아 남은 돈은 비슷했다. 많은 속인은 200평 땅에서 150kg의 솜이 났지만 나는 200평에서 320kg의 솜을 수확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집안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10여 년간 어머니는 비록 수련하지 않으셨지만, 정신 상태가 점차 좋아져 빨래와 밥을 하실 수 있게 됐으며 바느질도 조금씩 하면서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됐다. 아버지는 내가 진상을 알리는 것을 적극 지지하셨는데 건강은 날로 좋아져 72세 나이에 밀가루 한 가마를 혼자 나르고 운반하셨다. 사람들은 그에게 어떻게 건강이 이렇게 좋은지 물으면 아버지는 “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法輪大法好, 眞善忍好: 파룬따파는 좋고, 진선인은 좋다)”를 읽는다고 말씀하신다. 아버지는 늘 타인에게 양보하고 심성을 제고하는 것도 알고 계셨다.

우리 아이도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믿기에 속인 아이들과 달랐다. 대학 입시를 한 주 앞두고 이유 없이 다른 반 남학생에게 맞아 입을 다쳤는데 일곱 바늘을 꿰맸다. 내가 걱정할까 봐 병원에 있으면서 알리지 않았다. 다음날 집에 올 때 나는 정거장에 마중하러 갔는데 그제야 아들은 “집에 가서 천천히 말씀드릴게요”라고 했다. 아들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때린 학생을 잡고 때리려 하자 아들은 막아서면서 때리지 못하게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학교에서 처리하도록 보고하려 했지만, 아들은 대법의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치를 알았고 모순이 있을 때 한 걸음 물러서면 더없이 넓은 세상인 것을 알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학 입시시험 당시라 학교에서 그 학생을 처분하면 형사책임을 묻고 감금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은 원한을 쌓지 않고 그의 장래를 망치지 않기 위해 혼자 평화롭게 해결했다. 그 학생은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는데 아들은 고통을 참고 그에게 앞으로 이렇게 충동적으로 괜히 사람을 때리지 말고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고 기억하라고 했다. 이 학생도 자신을 원망하면서 잘못했다고 후회했으며 아들에게 감탄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집에서 빨래하고 밥을 했으며 밭일도 했는데 모든 일을 전부 도와서 했다. 명절 때면 아들은 우리에게 몇 가지 먹어보지도 못한 반찬을 해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드렸다. 우리 집 친척은 현 소재지에서 몇 번 결혼 음식을 먹었는데 한 번도 이렇게 맛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지금 아들은 직장을 찾을 때 아버지가 뇌물을 보내지 못하게 했으며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고 집에 물건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좋은 일자리를 찾았다. 이 모든 것은 다 파룬따파의 덕이며 파룬따파는 우리 가족을 모두 개변시켜 줬으며 가족에게 아름다움과 광명을 선사했다.

진상을 알리고 수련의 길을 걷다

나는 정법 홍류 속으로 뛰어들어 자료를 나눠주고 진상을 알렸으며 삼퇴를 권했다. 이 10여 년간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는 어떠한 사람들도 다 만났는데 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잡고 심성을 지켰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함을 찾았는데 얻은 것은 많았고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고 복을 받았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중년 남성을 만났는데 그는 며칠 전에 냉면을 먹었는데 배가 아팠다. 즉시 ‘파룬따파는 좋다’를 외웠는데 나아졌다. 또 어느 날 그 집 가스레인지와 호스에 불이 났다. 위급한 상황에서 그는 ‘파룬따파는 좋다’를 읽었는데 불이 스스로 꺼졌다. 참으로 신기했다. 그는 그가 일하러 가는데 진상자료를 자신에게 주면 더욱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겠다고 했다.

또 한 중학교에 근무하는 의사는 덕이 높아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찾아 치료했고 기념 깃발이 방안에 한가득 걸려있었다. 그날 나는 진상지폐를 바꾸러 그를 찾아갔었다. 그는 환자들에게 내가 대법의 복을 받고 대법의 덕을 입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은 마음속으로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믿고 삼퇴하라면 삼퇴했으며 장쩌민을 고발하라면 고발했다. 내가 걷고 지나가면 사람들은 “파룬궁(제자)이 왔네. 파룬궁 진상은 모두 정말이고 보면 볼수록 좋아. 나는 이 당에서 탈퇴해야 하고 공산당은 망신스러운 일만 해서 국제사회에서는 나쁜 소문만 퍼지는데 국민만 해치지”라고 소리쳤다.

어떤 진상을 하는 사람들은 나를 그의 집에 가서 물이라도 마시라고 하면서 고마워했다. 어떤 사람은 진상은 먼 곳까지 알리겠다고 했다. 물론 나쁜 사람도 있었고 욕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동생은 아버지에게 내가 파룬궁을 한다고 난리를 쳤다. 그때 나는 안으로 찾을 줄 몰랐다. 그냥 확고하게 나의 목숨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사부님께서 누명을 쓰고 있는데 나는 악을 폭로해 사부님의 결백을 밝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해 허난(河南)성에는 밀을 수확하러 많은 콤바인이 와있었다. 나는 이렇게 사람을 구도하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밀 수확을 마치면 콤바인은 돌아가는데 콤바인 운전자들은 우리 집 가장자리에 모여 점심을 먹는데 나는 그들에게 천안문 분신 사건은 사기극이며 공산당이 왜 파룬궁을 박해하고 파룬궁이 무엇인지 말해줬다. 그 몇 사람은 모두 감탄했으며 진상자료를 요구했다. 남동생도 옆에 서 들으면서 반대하지 않았다. 나는 남동생에게 집에서 진상 CD를 가져다 그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남동생은 기뻐하면서 돌아왔다. 그 몇 사람들은 연락처를 남겼는데 내년에도 이곳에 올 거라고 했다. 그 후 남동생은 복을 받아서 신기하게도 상하이에 있는 큰 회사에 남게 됐다.

남동생은 외지에서 근무하게 됐고 그때 조카딸은 한 돌이었다. 몇 년 후 작은 조카도 태어났다. 집에 밭일은 늘어만 갔다. 나는 곳곳에서 올케 일을 도와 왔지만, 올케는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나를 욕했는데 심지어 나에게 내가 아이들을 돌봐주지만 조금도 고맙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웃음으로 넘겼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모순 속에서 안으로 찾고 모든 일에서 자신을 찾으라고 하셨기에 이러한 일들은 자연적으로 지나갔고 내심으로 원망하지 않았으며 어떠한 이익에서도 다투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남동생과 올케는 파룬따파를 마음속으로 탄복했다.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로 평소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 늦게 돌아오면 아버지는 길목에서 두리번거리며 두려움에 떨고 계셨다. 2015년 장쩌민 고소로 나는 현 공안국에 납치돼 15일간 불법 구류됐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는 통곡하시면서 그때부터 나를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지 못하게 하셨으나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대법에서 나는 이것은 가족에 대한 정이 나를 끌어내리려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바르게 아버지에게 알려야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처음 대법을 배우기 전에 제 상태가 어떠했는지 아버지는 잘 아시죠. 제 목숨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인데 제가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제 생명은 위험합니다. 아버지는 제 생명을 보증하실 수 있나요?”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조금 생각하시더니 머리를 흔들면서 “그래, 사부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좋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들은 성(省) 소재지에서 공부하다 여름방학에 돌아왔을 때도 내가 계속해 진상을 알리러 나가자 그는 삐지면서 “엄마, 내가 돌아왔는데 계속 나갈 거예요?”라고 했다. 나는 “너는 집에 잘 있어. 사람을 구하는 일이 급해. 나는 나가봐야겠어”라고 했다. 아들은 웃으면서 “그래요. 다녀오세요”라고 했다. 집에 돌아오니 아들은 저녁 식사를 다 차려놓았는데 나에게 부채질을 해주면서 “엄마, 괜찮아요?”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나는 내가 맞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 중국공산당은 악독한 세력을 소탕한다고 했다. 진상을 알릴 때 촌서기는 나에게 조심하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웃으면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눈을 잘 닦고 선과 악, 정과 사, 좋음과 나쁨을 가리고 탈당해 자신을 구하고 뒷길을 남겨야 하는데 당신께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이란 책을 드릴게요”라고 말하자 촌서기는 바로 받아가면서 탈당에 동의했다. 오늘도 길에서 촌서기를 만났는데 그는 향정부에 회의를 하러 가는 길이라 했다.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고 진상 소책자를 그에게 줬는데 그는 흔쾌히 탈당했고 연신 감사하다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당신같이 이렇게 진심으로 제 안위를 걱정해주는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은 너무 대단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사부님께서 또 한 번 나를 격려해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수련생 여러분, 진상하러 나오세요. 어떠한 상황과 환경이든 오직 우리 마음에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이라도 광명이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정진해 매 걸음을 잘 걸어야 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12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교류>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19/3786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