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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문장을 읽은 소감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의 아버지’라는 문장을 다 읽은 후 나는 마음속으로 감동하여 눈시울이 약간 촉촉했다. 원래 대법제자는 가정교육 방면에서 진정으로 대법에 따라 말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면 그렇게 감동적이다. 글 속에서 그 반항아는 아버지의 선한 힘에 감동된 것이다. 이로부터 나는 약간의 소감을 적어서 여러분과 나누려 한다.

2018년 12월 말, 나는 일이 있어 한 노년 수련생 집에 갔다. 이 수련생의 남편과 아들은 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여러 번 중공(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받았다. 날씨가 유달리 추운 그 날 밤,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은 함께 그녀의 집에 갔다. 우리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손녀는 우리를 열정적으로 맞이하면서, 와서 따뜻하게 불을 쬐라고 했다. 내가 처음으로 그녀의 집에 갔기에, 이 여자아이와 초면인데도 구면 같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이 아이는 이따금 “정법이 거의 끝나가요”라는 등의 말을 하여 나는 이 아이가 보통 가정의 아이들과는 역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한 사람의 부적절한 행위를 묘사했을 때 이 아이는 저도 모르게 ‘정신병’이라는 말을 해 나를 또 매우 놀라게 했다. 원래 이 아이의 주변 친구들은 모두 욕하는 듯한 이런 말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또 나와 이런 한 가지 일을 말했다. 지금 그의 주변 친구들은 서로 간에 “감사합니다”라는 예절 용어를 쓰지 않는다면서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빌려 쓰고 돌려줄 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다른 친구들이 비웃는다고 말했다. 나는 왜냐고 물었더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너무 고상해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언니의 각도에서 이 아이에게 되도록 법 공부를 많이 하여 잘하도록 격려해주면서 진흙에 물들지 않는 깨끗한 연꽃처럼 남과 다른 사람이 되라고 조언해 주었다.

‘나의 아버지’ 글 속의 아버지는 바로 진정으로 아이를 책임지는 각도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아이가 법공부하고 수련하도록 이끌었다. 이 과정은 매우 쉽지 않은 것이다. 글에서 나는 이 아버지의 지혜를 보았다. 나의 주변에 나와 나이가 비슷한 수련생 몇 명이 있었는데 그들의 부모는 모두 진정하게 법에서 그들이 착실하게 수련하도록 이끌지 못했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로 학교 다닐 때는 내가 법공부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고, 여태껏 진정으로 나를 수련생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사실 내 마음은 매우 괴로웠다. 나의 마음속에서, 우선 나는 우리 가족 수련생 중의 ‘수련생’이고, 그다음에야 비로소 ‘아이’라고 했다. 나는 대법을 얻기 위해 이 험한 인간 세상으로 온 것이지 인간의 쾌락을 탐내려고 온 것이 아니다.

‘나의 아버지’ 글 속의 아버지는 거칠지도 않고, 자신의 의견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실 거칠지 않고 포용적인 사람은 종종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긍정적으로 더 잘 전달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내가 직접 겪은 일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의 가정은 비교적 특수하다. 이런 특수한 가정 속에서 자란 나의 마음속에는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우리 어머니에 대한 원한인데, 이 문제는 줄곧 나를 괴롭혔다. 나의 어머니는 항상 어머니의 각도에서 나와 거리를 두고 나를 꾸짖었으며, 심지어 말로 나를 자극했다. 어머니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교류할 때마다 한바탕 말다툼했다. 또 한 번은 한 할머니(수련생)도 나에게 “자네는 이 가족뿐이네”라는 등 속인의 각도에서 나에게 말했다. 그때 나는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은 끊임없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의 이 문제에 대해 한 좋은 친구는 웃으면서 ‘지뢰밭’이라고 불렀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아마 누구도 나를 동요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작년 8월 여름 방학 때, 나는 한 아저씨와 교류했다. 당시 나는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나의 원망심은 산처럼 높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아주 차분하게 다 듣고 나서 “그럼 자네는 원만하지 못할 것이네.”라고 말했다. 평범한 이 한마디 말은 마치 천둥이 치는 것처럼 이 문제에 관한 나의 부정적인 생각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이어서 그는 또 순(舜)임금이 계모에게 효도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이 문제에서 착실하게 수련을 잘하라고 격려해주었다. 당시 나는 이 문제를 잘 돌파해서 진정으로 대법의 표준에 따라 잘 하기로 했다.

그런 후 나는 아저씨가 어떻게 나를 쉽게 이해시켰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우선 대법의 각도에서 문제를 분석하였다. 내 가족은 나에게 내가 속인의 표준에도 도달하지 못하는데, 어찌 대법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했다. 사실 우리 대법제자가 부딪힌 문제는 아마 전생의 인연이 많을 수도 있다. 오직 대법만이 우리와 갈등이 있는 상대방 마음의 문을 열어 모든 것을 선화(善化)시킬 수 있다. 사실 속인의 각도에서 나는 우리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대법의 각도에서 내가 대법의 표준에 따라 원망하는 마음을 내려놓기 바랐다. 아저씨의 말투는 매우 차분했으며 조금도 거칠지 않았다. 그의 이런 평온한 상태는 오히려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착실하게 잘 수련하기를 바라는 그의 메시지를 알아듣게 해 주었다.

이 아저씨는 나의 수련과정 중에 나에게 아주 큰 도움을 준 수련생이다. 내가 그를 처음 알았을 때 그가 나에게 법을 외우라고 건의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당시 나는 놀기를 너무 좋아했고 게다가 사상업이 너무 심해 외우지 않았다. 현재 나는 정말로 너무 후회된다. 내가 아저씨와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하면 아저씨는 모두 제시간에 도착하곤 했다. 때로는 내가 도착하지 않아도 나를 책망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지난번,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와서 NTD TV 접시형 안테나를 살펴보다가 구이용 새장을 열어놓고 계속 잠그지 않는 것을 보고 “일을 할 때 좀 세심하게 하게.”라고 차분하게 나에게 말했다. 이 평범한 한마디 말에 나는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의식했다. 나는 정말로 이 아저씨에게 매우 감사했다. 그의 몸에서 나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많이 보고, 천천히 나의 그런 거친 면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내가 비교적 거친 것은 나의 가정과 직업에도 약간의 관계가 있다. 최근 나는 다른 사람과 의견을 교류할 때 자신의 옳고 그름을 강조하기보다 자신의 자세를 낮추고, 자신을 상대방 아래에 놓자 종종 예상치 못한 수확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나의 아버지’ 글 속의 아이처럼 모두 아이의 단계부터 천천히 성인의 이 단계로 걸어왔다. 나 자신도 글쓴이의 첫머리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한번은 한 수련생 집에 갔는데 이 수련생은 딸아이 앞에서 딸의 결점을 계속 늘어놓아 이 여자아이가 우는 것을 보았다. 당시 나는 이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이렇게 꾸짖으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나중에 다른 수련생의 말을 들으니 이 수련생의 아들딸은 모두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의 문제에 대해 어른 수련생들은 깨우쳐주어야 하는데, 관건은 자신의 방식이 대법의 요구에 부합되는지에 있다.

아이는 다행히 대법제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떤 수련생은 “우선 법을 얻은 수련생이고, 그다음에야 혈육 관계를 맺은 자녀이다. 만약 이 관계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속인의 정과 사적인 요소의 교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아이를 가르치는 출발점이 순수하고 바르지 못하게 되고, 하는 일도 순수하지 못해, 아이를 가르치는 효과가 없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수련생의 이 관점에 대해 나는 매우 찬성한다.

나는 우리 대법제자가 대법 속에 뿌리가 깊이 박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을 포함해 어떤 일이든지 속인의 그런 방식이 아니라 법에서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오직 우리가 대법 속에 뿌리가 깊이 박혀 있을 때만이 우리의 언행이 비로소 위력을 나타낼 수 있다.

 

원문발표: 2018년 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교류>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1/3802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