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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이불 속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겨울이 왔다. 날씨가 몹시 춥다. 사람들은 모두 난로를 둘러싸고 앉아서 불을 쬐며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카드놀이를 하거나 혹은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서 아예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속인이다. 하지만 수련하는 사람을 놓고 말하면 적지 않은 시련이기도 하다.

따뜻한 이불 속은 “마”가 아니지만, 그것은 악마보다 더한 역할로 당신을 파괴한다. 당신이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날씨가 추우니까,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한번 ‘따뜻한 이불 속’에 미련을 두게 된다. 그래서 번번이 새벽 연공 시간을 놓치고, 동시에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일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 자신을 설득한다. 그리하여 하루하루 방심하게 되고 자신의 마성인 ‘게으름’을 단속하지 못한다.

때론 이를 악물고 일어나 새벽 연공을 하고 또 끝나면 바로 가서 자고 한 번 깨었다가 다시 잠을 잔다. 이것이 마보다 더한 것 아닌가? 그 마는 당신의 의지를 약화하고 당신의 바른 믿음을 동요시켜 당신을 장기간 이런 ‘마난’중에 빠져 있게 하는데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기에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왜 이것이 아무것도 아닐까요? 수련이란 천천히 수련하여 올라가야 하며 단번에 ‘입지 성불’한 것은 아니다. 동시에 이것도 하나의 태도이다. 자신에 대해 엄격하게 요구하는가 요구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이며 또 수련을 중시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이다.

나도 일찍이 이런 실수를 반복적으로 저질렀다. 연공이 끝나면 즉시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마침내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생각하고 돌파하려 했는데, 따뜻한 이불 속은 거대한 자기장 같았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뿌듯하고 아주 만족했다. 너무 편안하다! 바로 그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마에게 덜미를 잡혀 그것을 이용해 자신을 끊임없이 제한하고 통제했다. 항상 나에게 이런 편안한 느낌을 누리게 해서 스스로 빠져나갈 수 없게 했다. 나는 그것을 이기는 많은 방법을 생각했지만 때로는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했다.

나중에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요만한 일도 돌파하지 못하고 그래 내가 수련인인가? 같은 사부님의 법을 배우면서 다른 사람은 제시간에 아침 연공을 할 수 있는데 어째서 나만 특별한가? 다시 말해서 같은 시간에 동수들은 모두 연공 하는데 넌 도리어 여기서 늦잠을 자다니…. 만약 이때 단체로 백일비승 한다면 너 정말 어떻게 할 건데? 아직도 감옥에서 박해당하고 있는 동수들을 생각해 봐라. 잠도 못 자고, 어떤 동수는 아직도 고문을 받고 있다. 연공을 하려면 심지어 생명의 대가까지 치러야 한다. 나는 도리어 여기서 단체 연공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있다. 산속의 그 수도하는 사람들을 생각 봐라. 일 년 내내 거기 앉아 있고 이불도 없는데 어디에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겠는가?’ 이런 것을 생각하면 나는 정말 부끄러워진다.

말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절대 다시는 자신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이때부터 나는 일어나 이불을 개고 따뜻한 이불 속 보금자리를 마련해 놓지 않았다. 사상 중에 더는 따뜻한 이불 보금자리가 생각나지 않았고 이불을 급하게 펴거나 파고들어 가지 않았다. 계속 발정념으로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나서 바로 법공부 했다. 이때부터 좋은 습관이 형성되어 지금까지 다시는 따뜻한 이불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 글을 써 내어 ‘따뜻한 이불’에 연연하는 동수들이 각성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 많은 동수가 아직도 이 일로 고민하고 있다. 지금 마땅히 힘을 다해 정진해야 할 때이다. 이런 집착을 빨리 제거하라! 동수들! 우리 함께 노력합시다!

 

원문발표: 2019년 1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3/3799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