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에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라는 경문을 외운 과정과 깨달음을 써내 수련생과 나누려고 한다. 부족한 곳은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정진요지3’ 중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라는 경문을 한 번 읽은 후 깊게 깨달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계속 다른 경문을 배우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런 깨달음은 갈수록 옅어지고 심지어 그런 정진하고 싶은 소원도 없어졌다. 이 경문을 외워야 인상이 깊어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어려워하는 마음이 나왔고 외우고 싶지 않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또 ‘외우고 싶지 않을수록 반드시 외워야 하고 법을 외우고 싶지 않은 관념과 집착을 법은 그것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할 수 있다. 법은 그것들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백방으로 방해하고 있으므로 수련에 확실히 어려움이 있어도 맞받아 올라가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은 수련 중에서 많은 관(關)을 넘어야 하는데, 원인은 사람이 출생한 이후 끊임없이 인류사회 인식 중에서 각종 각양의 관념이 생김으로써 이로부터 집착이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사회는 바로 고난(苦難)과 이익의 향수(享受)가 병행하는 세계이며, 당신이 아무리 돈이 많고, 어떠한 사회계층에 있든지 간에 인생은 바로 많은 고난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달프게 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사람은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고난에 대항하는데, 목적은 좀 행복하게 살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행복을 추구하는 중에서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피해(傷害)를 받지 않고 어떻게 잘 살며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공명을 성취하며 어떻게 더 많은 것을 얻고 어떻게 강자가 되겠는가 하는 등등이 형성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경험이 있는 동시에 또한 인생의 관념이 형성되었고 경험은 또 실천 중에서 관념으로 하여금 완고(頑固)하게 변하도록 하였다.”[1]
이 한 단락 법을 외운 후 제고를 느끼지 못했지만 법을 위해 법을 외워서는 안 되고 법에 용해되어야 하고 법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법에 대조하고 자신을 찾기 시작했고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나의 어떤 생각, 행동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인생의 관념일까? 천천히 기억나기 시작했다. 6월에 인테리어를 할 때 매우 많은 시간을 들여 인터넷에 접속해 모든 절차를 마땅히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를 찾아봤다. 목적은 일꾼에게 속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아는 것이 많으면 누구도 날 속이지 못하고 집을 더욱 완벽하게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속지 않으려는 생각에 귀한 수련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아이를 돌보다가 힘들면 ‘아예 친정집에 돌아갈까, 어른 셋이 아이 하나를 돌보면 퍽 수월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편안함을 위한 것이었다.
‘1대1로 가르쳐주는 것에 제한되어 있으면 안 된다. 한 개 반을 과외 수업해야 대단한 것이야. 그래야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라는 생각은 강자가 되고 싶고 유명해지고 돈도 많아져 더욱 많은 것을 얻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이다.
법을 외울 때마다 이런 체득이 있다. 한 단락 법을 좀 느리게 외워 며칠 동안 이 한 단락 법만 외우다보면 오히려 법을 배울 수 있었고 대법이 박대하고 심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복적으로 이 한 단락 법을 외우면서 사람의 후천적 관념의 형성과정을 체득했고, 어떤 생각이 머릿속에 나타나면 그것은 관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진짜 나와 관념을 갈라놓을 수 있게 됐다.
“이는 본래 이미 정법과 대법제자의 수련 후기(後期)의 표현이지만 아직도 소수의 수련생, 심지어 노(老)수련생마저 이때에 많든 적든 간에 도리어 소침(消沉)한 상태가 나타났고 정진(精進)의 의지가 해이해졌으며, 이 역시 정법시간(正法時間)에 대한 집착 혹은 부정확한 후천관념(後天觀念)의 교란으로 조성된 것임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구세력이 이전에 인류 공간 표층에 남겨놓은 교란요소와 사령(邪靈), 난귀(爛鬼)로 하여금 빈틈을 타게 했으며, 이러한 집착과 사람의 관념을 크고 강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런 소침한 상태를 조성하게 되었다.”[1]
“물론 이런 정황에 처한 다수의 제자로 말하면 사실은 애초에 자신의 경미(輕微)한 집착과 혹은 관념의 교란을 의식하지 못하여 사악에게 빈틈을 타게 했고 이러한 요소를 크게 한 데서 조성된 것이다.”[1]
수련상태가 소침해있을 때가 많다. 질투심도 아주 강렬하다. 중학교 때 양력새해에 3일 휴식하고 돌아왔는데 동창들은 3일 동안 많이 놀아 복습을 조금 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몰래 기뻐했다. 그들이 많이 복습하지 않아 나보다 시험을 잘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얻기 위해 나는 뜻밖에 동창들이 공부하기 싫어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이런 마음은 아주 왜곡된 것이다. 이번에 법을 외우고 강렬한 질투심은 나의 원래 것이 아니고 확대되고 강화된 후의 표현인데 확대되고 강화된 후의 집착을 자신의 집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없애기 어려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질투심을 제거하는데 신심이 생겼고 사실 그것이 아주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법을 얻은 지 오래됐지만 대법의 법리를 믿지 않고 눈으로 본 것이 확실하다는 관념과 무신론이 첫자리에 놓여있는 것 같았다. 법을 얻은 지금의 기연을 소중히 아끼지 않고 지금의 육신을 소중히 아끼지 않았다. 법을 얻어서부터 지금까지 연공한 총 횟수는 아주 적었다. 이번에 법을 외우면서 돌파했고 정진하는 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당신들이 명백해진 후에 재빨리 따라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들이 이 가장 위대한 신의 길에서 굽은 길(彎路)을 적게 걷고, 자신의 장래에 유감을 남기지 않으며, 층차의 거리를 벌어지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나와 당신들이나 당신들을 기대하는 중생들의 바람이다.”[1]
법을 읽을 때 ‘거리’를 나와 정진하는 수련생간의 격차로 봤다. 이렇게 깨달은 원인은 쟁투심이 아직 있고 언제나 수련생과 비교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법을 외우는 중 ‘거리’는 내가 수련할 수 있는 층차와 원래 자신의 층차와의 격차이기 때문에 정진해서 수련하지 않는다면 인간 세상에 내려오기 전의 층차로 돌아갈 수 없고 요행심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한편의 경문을 외우는 과정 중 포기하고 싶은 생각, 외울 수 없고 외우기 힘든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계속 법을 외우겠다는 마음을 확실히 한 후 외우는데 서두르지 않았고 통독했으며 어느 한 마디를 외우려면 먼저 한 번 또 한 번 읽었다. 법을 외우는 것과 속인의 문장과 본문을 외우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속인의 무엇을 기억하는 것은 이런 것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과정 중에서 속인의 요령을 사용할 수 있지만, 법을 외우는 것은 법을 외우는 과정 중 관념과 집착을 제거한 후 자연적으로 우리의 머릿속에 나타나는 것이다.
대법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박대하고 심오한 내포가 있다. 만약 같은 시간 내에 법을 외운 것이 법을 읽는 것보다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이건 또한 시급히 없애야 할 집착이 아니겠는가?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원문발표: 2018년 12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28/3790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