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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 모두 교류 문장을 쓰기 바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 교류 문장은 내 수련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비록 매일 법 공부하지만, 간혹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빗나가기도 한다. 이를테면 구세력을 부정할 줄 모르면 구세력이 쉽게 빈틈을 타서 박해한다. 사부님의 설법을 공부하는 것 외에도 수련생이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한 문장을 많이 읽어 평소 수련하고 법을 실증하면서 어느 것이 구세력의 사유인지를 인식하고 그것을 철저히 부정했다.

또 예를 들면 나는 이전에 자신이 매우 정진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심혈을 기울여 세 가지 일을 했다. 나중에 밍후이왕에 실린 교류 문장에서 정진하는 수련생이 안으로 찾는 것을 보고 자신과 대조해 보니, 자신이 정진한다고 하는 것은 단지 해야 할 일인 것을 발견했다. 나는 천천히 안으로 찾는 것을 배웠다.

나는 밍후이 교류 플랫폼이 진수 제자에게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내심 인식하고, 수련생이 매일 세 가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시간을 내어 수련 중의 체득을 조건 없이 전 세계 대법제자와 공유한 것에 감동했다. 이때 나는 이 방면에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지 생각했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은 층차가 얼마나 높던지 법에서 높이면 그것은 바른 깨달음이고, 모두 사부님의 끝없는 감당으로 얻은 것이며, 법의 위대함을 실증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나는 좀 더 감당하지 못하고 법에서 깨달은 체득을 전 세계 대법제자와 교류하고 공유하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펜을 들었다.

처음 문장을 쓸 때는 순조롭지 않았다. 첫 번째 문장을 2개월간 썼다. 절반을 쓰고 분명히 저장했으나, 파일을 다시 열자 고친 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짜증이 나면서 쓰고 싶지 않았다. 오랫동안 속상해하며 앉아 있다가 ‘이것은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닌가? 제거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쓰자.’ 나는 저장하지 않은 부분을 다시 쓴 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만약 문장 쓰는 것을 포기했다면, 다시 쓰는 것이 번거로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그 마음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문장을 완성하였을 때 갑자기 컴퓨터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계속 재부팅 했지만, 안전시스템 설정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것은 이때까지 쓴 문장이 수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생각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상황이 나타났지? 이것도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 나타난 것인가?’ 나는 이것이 원인이 아닌 것을 발견했다. 나는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미 제거했다. 평소 어떤 일에 부딪혀도, 아무리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든지 막론하고 평온하고 진지하게 해냈다. 그것은 분명히 사악한 방해였고. 나는 이틀 동안 시스템을 계속 재부팅 한 후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한순간에 안전시스템에 들어갔다. 문장을 쓰겠다는 견정한 신념과 사부님에 대한 바른 믿음이 악의 교란을 해체한 것을 알았다.

문장 쓰는 시간이 길기에 간혹 매우 힘들었다. 대부분은 매일 법공부하고 세 가지 일을 다 한 다음 밤이 깊어서야 글을 썼다. 간혹 ‘만약 교류 문장을 쓰지 않으면 여유 시간이 많아 법공부를 많이 할 수 있어 수련상태가 더욱 좋아질 수 있다.’란 생각이 든다. 매번 사심으로 붓을 내려놓으려 하면 마음속에서 어떤 소리가 내게 알려준다. “이것은 아니다. 한 대법제자로서 자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심 없이 자신을 내려놓고 고생을 겪어야 하며 정체를 위해 감당할 줄 알아야 한다.” 이리하여 나는 펜을 놓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문장을 쓰는 동시에 밍후이 방송국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듣고 늘 수련생이 법에서 수련해 낸 사심 없고 위대한 경지에 감동한다. 첫 편의 문장을 전부 정리한 후 머릿속에 한 염두가 나타났다. ‘내가 수련한 것이 다른 수련생과의 차이가 이렇게 큰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쓰고 또 뻔뻔하게 투고하려고? 빨리 삭제하라!’ 이 염두는 매우 진실하였기에 나는 하마터면 문장을 전부 삭제해 사악이 목적을 달성하게 할 뻔했다. 이때 생각을 자세히 분석해보니 이것은 내가 진정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문장이 발표되는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며, 밍후이 수련생이 이 일을 한다. 더 나아가 말하자면 사부님께서 선택하시는 것이다. 이때 나는 이것은 사악의 교란이고 파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나는 원고를 투고했다.

위의 심경 변화는 최근 첫 편의 교류 문장을 쓸 때 머릿속에서 나타난 모든 염두다. 나는 다른 수련생도 그중 반영된 많은 사상 염두를 겪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원고를 쓰지 않으면 모르며 교류 문장을 쓸 때야 법을 실증하는 어떤 일이든지 막론하고 집에서 문장을 쓰는 것을 포함해 모두 강대한 정념이 있어야 사악의 교란을 배제할 수 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부터는 문장을 쓸 때 큰 교란이 없었다. 문장을 거의 단번에 쓴다. 아마 가로막던 요소가 제거되었을 것이다.

문장을 쓰면서 매우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법을 실증한 일을 회상하며 문장을 쓰다가 법에 대조하면 그동안 몰랐던 그 일의 부족한 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 심지어 문장을 쓸 때 어느 일이 당시 왜 효과가 좋지 않았는지를 생각하면 사부님께서 갑자기 점화해주셔서 어느 방면의 심성에 문제가 있어 그 일을 잘하지 못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았다. 이것은 당시의 심성관을 다시 한번 넘는 것과 같지만, 이번에는 법에서 깨달아 심성이 제고되고 당시의 부족을 보완한 것이다.

간혹 문장을 쓰다가 갑자기 더 쓸 수가 없었다. 컴퓨터가 고장이 났다. 그뿐만 아니라 수리도 안 되었다. 나는 안으로 찾았으나, 문제를 찾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문장이 전부 자신을 실증한 것을 발견했다. 만약 평소의 사상과 행위를 종이에 적지 않으면 미세한 곳에 자신을 실증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많은 사상과 행위는 습관이 되어 지나쳐버린다. 예를 들면 우리가 평소 다른 사람의 집착은 또렷이 보지만, 자신의 집착심은 왜 인식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방관자의 측면에서 보기 때문에 당연히 잘잘못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집착과 관념은 사상 중에 있기에 쉽게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자신의 당시 생각과 행위를 종이에 적으면 다른 사람의 일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집착을 한눈에 발견할 수 있다.

또 문장을 쓸 때,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법을 실증할 때, 나는 자신이 집에서 가사를 하든지 아니면 휴식을 해도 사부님께서는 법을 한 단락 한 단락 내 머릿속에 들어오게 하신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매 단락의 설법은 모두 내가 쓴 문장과 연관된 것이다. 이때 많은 법리를 깨달을 수 있다. 나는 나와 많은 수련생은 그런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불필요한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모두 사부님께서 하시기 때문이다. 나중에 매일 매 한 편의 문장 제목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다음은 문장의 소제목과 문장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사진처럼 머릿속에 나타난다. 내가 이 문장을 쓰는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내게 주신 임무이며 내가 할 일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것이다. 마치 수련생이 말한 것처럼 사람을 구하러 나가는 것과 같다. 사실 모두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자신은 단지 다리를 움직이고 입을 움직일 뿐이다. 진상을 말할 줄 모르면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신다.

많은 문장이 한 편 한 편 내 머릿속에 나타나는 것은 밍후이에 고품질의 교류 문장이 많이 부족해 사부님께서 매우 조급해하시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나는 계속 썼다. 간혹 사부님께서 맡기신 임무를 완성하지 못할 정도까지 이른다. 나는 수련생이 법에서 무엇을 깨달았을 때 팔을 들어 법의 위대함을 실증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곤란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법은 못 하는 것이 없다. 글자를 모르던 수련생이 매우 빨리 배워 알게 되었고 한평생 호미질을 하던 노년 수련생이 마우스를 잡았다. 무엇 때문인가? 법이 위대하고 법을 실증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진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이나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다. 문장을 쓰는 것도 대단할 것이 없다. 모두 수련체득을 쓰는 것이며 진수(真修)하는 사람은 모두 체험이 있다. 쓰는가? 쓰지 않는가? 하는 차이일 뿐이다. 쓰는 수련생과 보는 수련생은 모두 이성적으로 대하고 치켜세우지도 말고 얕보지도 말라. 수련체득은 모두 법에서 온 것이며 우리가 실증하는 것은 모두 법이다. 마음이 바르면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할 수 있다.

내가 처음에 교류 문장을 쓸 때는 2개월이 걸렸다. 나중에는 한 편을 쓰는 데 한 시간이 드는 것을 발견했다. 거의 쓰기만 하면 훌륭한 글이 나온다. 다 쓴 후 보면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잘 썼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때 나는 이것이 내가 쓴 것이 아니라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을 의식했다. 이전에 수련생이 쓴 문장을 보면 문장을 너무 잘 썼기에 자신은 쓸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사실 수련생이 쓸 때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이다. 그러면 전에 사부님께서 왜 나는 도와주지 않으셨는가? 그것은 내게 문장을 쓸 염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외출할 때 만약 당신에게 사람을 구할 바람이 있었다면 사부님께서는 인연 있는 사람을 당신 앞에 데려다주실 것이다. 만약 당신이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다면 인연 있는 사람을 곁에 데려다 놓는 것은 낭비가 아닌가?

훗날 ‘홍음2’를 공부하다가 “낡은 세력 법을 공경치 않으니 붓 휘둘러 사나운 파도 멸하노라”[1]를 배우게 되었다. 나는 갑자기 흠칫했다. 나는 한 편 한 편의 문장을 쓰는 동시에 관련되는 대량의 구세력이 소멸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또한, 교류 문장을 쓰는 과정에서 제고되는 것이 아주 많다. 이것은 사부님의 성은이며, 우리가 오직 조금만 대가를 치르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많고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나는 지금 만약 당신이 우연히 갑자기 한 편의 문장을 쓰고 싶다면 그것은 사부님께서 당신에게 쓰라고 점화하신 것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당신이 깨달은 법리가 전체 수련생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쓰지 않으면 그것은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어떤 수련생이 자신이 수련한 것이 그저 그렇다고 여기거나 혹은 정체(整體) 중의 일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것은 자기 일이다. 예를 들면 내 신변에 있는 한 수련생이 일곱 번이나 납치되었다가 일곱 번 모두 정념으로 나왔다. 그중 두 번은 세뇌반에 보내졌지만, 세뇌반에서 받지 않았다. 간혹 다른 수련생과 함께 납치된 적도 있다. 악은 다른 수련생을 보내 박해하고 그녀를 집에 보냈다. 한 번도 박해를 감당하고 나온 적이 없다. 모두 정념으로 박해를 해체했다. 수련생도 자신이 납치될 적의 수련 과정을 쓰겠다고 말했지만, 수년간 쓰지 않았다. 밍후이왕이 보도한 헤이룽장의 경우 100명이 넘는 수련생이 납치되어 박해받고 있다. 매주 많은 엄정성명을 보고, 어떤 수련생은 죄 없이 7, 8년의 형을 선고받은 것을 보면서 나는 이 수련생은 정체 중의 이런 일 역시 자기 일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자신의 인식이 다른 수련생에게 도움이 된다면 심득체험을 써내는 것은 거절할 수 없는 책임이다.

교류 문장을 쓴 약간의 깨달음이다. 부족한 곳이 있으면 수련생이 자비로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2-두려워 떨게 하다’

 

원문발표: 2018년 12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16/37844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