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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의 늪에서 벗어나 확고하게 신의 길을 걷다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는데 큰딸이었고 밑에는 남동생 네 명과 여동생 두 명이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기에 아주 어릴 때부터 동생들을 돌봐야 했고 많은 집안일을 해야 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쉽게 정에 빠질 수 있으므로 나도 마찬가지로 늘 동생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동생들을 잘 보살피지 못하면 부모님께 혼이 나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 키가 작고 야위었지만, 반드시 가족을 위해 빨래를 해야 했다. 내 또래 친척은 내가 빨래하는 것을 보고 우습다면서 흉내를 내기도 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그때 너무 어렸고 힘이 없어서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

철이 들면서 나는 보살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천진스러운 환상을 했다. 왜냐하면,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고 고난에 처한 사람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릴 때 늘 고인(古人)의 말 ‘나는 하루에 여러 번 나 자신을 반성하다.’를 생각하면서 잠자기 전에 ‘자신이 잘 못 한 곳이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가?’를 생각했다. 나는 ‘사람은 모두 감정이 있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되며, 설령 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나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비록 행복에 대한 희망은 있었지만, 미혹 중에서 확실하게 볼 수 없었기에 정을 중히 여겼고 늘 애수에 잠겨 있었으며 감상적이었다. 나는 학생 시절에는 늘 괴롭힘을 당해 매우 고독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이상한 동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나는 그 동료의 고집과 이기적인 것을 받아 줄 수 있었다.

1. 대법을 얻다

1998년 5월, 작은 엄마가 홍콩에서 싱가포르까지 와서 엄마에게 파룬궁(法輪功)을 가르쳐 주셨다. 작은 엄마가 홍콩으로 돌아간 뒤 8월에 엄마에게 사부님께서 싱가포르로 오시니 법회 티켓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1998년 8월 22일, 23일은 위대하신 사존께서 싱가포르에 오셔서 설법하신 날이다. 나는 다행스럽게 법회에 참가하게 됐고, 사존을 만나게 되어 이때부터 대법제자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법회에 갔을 때 책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몰랐다. 많은 사람은 사부님을 뵙고 많이 울었고 그들이 울자 나도 모르게 따라 울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때는 감동했었다. 사부님의 키는 몹시 크시고 매우 성스러우시고 자비로운 모습이셨다. 사부님을 뵈니 친근감이 느껴졌고 마음이 기뻤다. 이튿날 사부님 설법을 들을 때 나는 다행히 세 번째 줄에 앉게 되었다. 사부님과의 거리가 매우 가까웠기에 사부님께서 나를 몇 번 보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가슴에 ‘탁’하고 뭔가가 터지는 것 같았다. 나는 자신의 업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부님만 나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반드시 수련의 길을 걸어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올해로 20년째 수련하고 있다. 1998년을 회상하면 사부님께서는 마치 싱가포르 제자들에게 서약을 실행하라고 일깨워 주신 것 같았다. 그때 만약 우리가 걸어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대법을 인식하고 자신을 실수(實修)하는 시기를 놓쳤을 것이다. 1999년, 중국공산당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시작됐고, 대륙의 대법제자들이 무고한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나와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중국 대법제자들이 받는 압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진상을 전 세계를 향해 널리 알려야 했다. 그때 사부님께서는 마치 ‘너희들은 빨리 깨어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2. 시련이 잇따르다

철들 때부터 나의 발은 몇 톤의 무게가 나가는 것 같았는데 연공도 하지 않고 단 5일간의 법공부로 몇 년 동안 아팠던 발바닥 통증이 사라졌다. 몸이 불편하면 가부좌만 하면 바로 좋아졌기 때문에 대법의 법력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처음 ‘전법륜(转法輪)’을 봤을 때 눈물을 흘렸고, 마음속으로는 ‘나는 알았다. 나는 반드시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친구가 나를 찾아와 다른 종교를 믿으라고 했지만 나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구세력(舊势力)은 쉽게 얻게 놔두지 않는다. 그것들은 한시도 지체함 없이 독한 방법으로 수련생에게 시련을 만들어 계속 이렇게 소중한 대법을 배울 것인가를 본다.

1998년 8월 24일은 바로 법회를 참가한 이튿날이다. 나의 딸은 이름도 모르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겨우 14살이었다. 중학교 2학년인 딸은 반장이었고 모두 딸에게 ‘재롱둥이’라고 불렀다. 딸은 귀엽고 활발해서 선생님과 친구들은 모두 좋아했다. 딸이 세상을 떠나자 친구들은 모두 아쉬워했고 선생님은 딸의 자리, 책상, 의자를 다른 사람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약 10년 동안 선생님은 늘 학생들을 데리고 딸을 추도하러 갔다.

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나는 고통, 초조함과 공포에 빠지게 되었는데 가족들이 세상을 떠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때는 막 수련을 시작했을 때이다. 너무 슬퍼서 연공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대법책을 봐도 눈물을 흘렸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꿈을 꾸는 것 같았고 정말 꿈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그때는 참아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막 대법과 인연을 맺고 법에 대한 깊은 인식이 없었을 때 이런 큰 시련을 겪게 됐다. 마음을 내려놓으려 해 보고, 수련생의 설득을 듣기도 했지만, 정서는 불안정했고, 가끔 딸 생각이 나서 남몰래 울기도 했다. 한번은 법공부할 때 머릿속에서 아주 또렷하게 몇 개 큰 글자…. ‘나는 당신의 눈물이 필요 없다.’가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다시 책을 보았지만, 책에는 이런 글자가 없었다. 나는 바로 깨닫고 사부님께 죄송하고 더는 이렇게 지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사람은 미혹 중에 있기 때문에 곧 이런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그의 자녀를 내려놓지 못하여 어떠어떠하게 좋았는데 그가 죽었다 하고; 그의 어머니가 어떠어떠하게 좋았는데 역시 죽었다고 그는 그지없이 비통해하는데, 그야말로 후반생에 마치 그것을 따라가려는 듯하다. 당신은 생각해 보지 않는데, 이것은 당신을 시달리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런 형식으로 당신을 편안히 지내지 못하게 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시련 중에서 걸어 나오지 못하고 자신이 자신에게 시련을 줬다는 것을 알고 슬픔을 정진의 동력으로 삼기로 했다. ‘중국 대법 제자들이 박해를 받는 것은 더 고통스러운데 이까짓 고생이 다 무엇인가? 세 가지 일을 되도록 잘해서 사부님께 보답해야겠다. 딸의 죽음은 원인이 있을 것이며 딸이 이미 세상을 떠났고, 인간 세상은 무상하고, 나는 이미 법을 얻었기에 반드시 끝까지 수련해야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다시는 울지 않았고 3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철저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대법 수련을 했기에 딸도 이익을 얻었다. 한 번은 여동생이 꿈에서 딸을 보았는데 딸이 여동생에게 아주 좋은 곳으로 갔다고 알려줬다고 했다. 또 아들도 꿈에서 여동생을 보았는데 여동생이 고대 복장을 하였고 고대 옷을 입은 많은 사람이 여동생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3. 난 중에서 연마하다

1999년 7월 박해가 발생한 후, 나는 마치 큰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매우 무거웠다. 우리는 동부의 한 식당에 가서 교류했다. 사부님께 죄를 뒤집어씌운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아 카펫은 눈물에 흠뻑 젖었다. 비록 천지를 뒤덮는 거짓말이 밀려왔지만, 대법에 대한 확고함은 나를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마음도 무겁고 많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예상치 못한 것은 아들이 급격히 하락하여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고, 그가 고의로 과격한 일을 해서 나는 그에게 실망했다. 아들의 문제는 두 번째의 생사관을 넘게 했다. 나는 마음이 괴로워 아들에게 “엄마는 엄청 힘들다. 네가 이렇게 하는 것은 상처에다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지 않으냐, 나의 마음은 더욱 무겁구나.”라고 말했다.

몇 년 전의 일을 회상해보면 아들의 문제가 발생한 것은 원인이 있다. 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아들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두 남매의 정은 아주 좋았고 딸은 아들의 말을 잘 들어주었고 아들이 무엇을 하든지 딸은 다 지지해 주었다. 딸의 죽음은 아들에게는 아주 큰 타격이었고 상처였다. 열 몇 살 되는 아이에게 여동생의 사망은 세상에 대한 견해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만약 그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매우 취약하게 변할 수 있다. 아들은 무엇이든 마음에 두고 있는 성격인데 나는 제때에 아들의 감정을 완화해주지 못했다. 아들이 군대에 복무하고 있을 때 책임을 다해 일했는데도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배척당했다. 속인 사회의 오염 속에서 옳지 않은 방향으로 아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주 아팠다.

나는 내심 고민스럽고 방황했지만, 아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사부님의 법이 늘 나의 머리에서 스쳤다. “사부가 있고 법이 있는 한 무엇이 두려운가?”[2]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나에게 시련을 직면하고 그것을 자신이 승화하는 계단으로 여기라고 격려해 주셨다. 법은 이미 얻었으니 끝까지 걸어갈 것이며 사부님께서 보고 계시니 한 걸음, 한 발자국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구세력은 수많은 미세한 것들을 배치했기에 ‘하나의 관, 하나의 시련’은 모두 이렇게 맹렬한데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는가? 걸어 나올 수 있는가?’를 본다.

나는 아들의 일거일동을 주시하면서 사람이 인간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하든지 모두 갚아야 하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정인군자(正人君子)가 되어야 하며 바른길을 걸어야 한다고 타일렀다. 매번 조금씩 아들에게 사부님 ‘전법륜(转法輪)’ 속의 법리를 알려줬다. 아들이 우리 집에 태어났는데 부모로서 아들을 바른길로 이끌어야하는 책임이 있고, 수련인으로서 정을 내려놓고 자비심으로 진정하게 이 생명을 위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도리는 알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사존께서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저는 반복적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읽고 끊임없이 정념을 확고히 했다.

아들은 차츰 변하면서 나에게 사과했다. 아들은 더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고 또 사람이 되는 도리를 듣기 좋아했다. 나의 마음은 이렇게 시련에서 거듭 연마하면서 몇 년이 되어서야 이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4. 정마(情魔)에서 벗어나다

사람들은 가정은 바람을 막을 수 있고 비를 가릴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가정은 도리어 질풍취우(疾风骤雨)를 겪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가정에서의 여러 가지 비바람이 점차 가라앉게 되자 2011년 9월 남편의 외도가 있었다.

정말로 “백 가지 고생이 한꺼번에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겠노라.”[3]였다. 평형 되지 않는 마음이 마구 휘젓게 되면서 질투심, 원망하는 마음,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열등감, 억울한 마음, 허영심 등등 마음을 보게 했고 매 사람 마음마다 극단적으로 부딪힐까 봐 두려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괴로울 때마다 법공부를 하고, 반복적으로 대법을 통독함으로써 기댈 수 있는 사부님께서 바로 옆에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업의 힘이 정말로 아주 크고 생생세세에 많은 빚을 졌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이 일세에서 빚을 다 갚고 빨리 제고해 올라오길 바라셨다.

나는 아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주기 위해 이혼할 생각이 없었고 또 남편과 크게 다투지도 않았다. 여전히 평온하게 집을 잘 돌보고 요리도 제때에 잘하면서 아내의 책임을 다했다. 또한, 남편을 데리고 션윈(神韵) 공연을 보러 갔었다.

“정(情)이란 버틸수록 조여드는 그물명리(名利)는 사람의 일생을 묶어놓네집착 중에 입은 상처 너무나 심한데무엇이 사람이 바라는 것인가사람은 다투고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거니위난(危難) 시 신이 난을 막아준다네금생에 창세의 주를 만나기 위해그대는 세세생생 찾아다니고 있었네”[4]

사부님의 시를 외우면서 반복적으로 자신을 대조하여 자식 정, 부부 정은 확실히 쟁취할수록 더욱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든 다 옅게 보고, 직면하고 받아들이며 최후에는 내려놓아야 한다. 사랑, 증오, 정, 원한은 어느 하나도 천국으로 가져갈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끌고 아래로 미끄러지게 한다.

나는 늘 내가 겪은 것을 대륙 수련생과 비교했다. 만약 그들의 시련이 나에게 주어졌다면 정말 넘어가지 못할 것이며 나의 시련은 그들과 비교하면 단지 ‘소아과’일 뿐이다. 눈길을 조금 더 멀리 두게 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일생에는 고생과 시련으로 가득하기에 수련을 하지 않더라도 이런 일에 부딪힐 수 있고 더욱 큰 시련에 부딪힐 수도 있는데 그럼 나는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사부님께서는 매 한고비와 시련을 넘는 것을 보고 계신다. 나는 반드시 이 세상에 헛되이 오지 않았으며 사부님께 미안함을 주지 않게 수련을 잘 할 것이다.

이 몇 년 동안 고비를 넘기면서 자신도 모르게 고통스러움도 지나갔고, 마음을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일체에 대해 자비심이 있어야 한다. 가끔 밖에서 걸을 때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은 정에 조정 당해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 같았다. 만약 뛰어넘지 못한다면 매우 고통스러운데 과연 누가 초월할 수 있겠는가? 오직 수련하는 사람, 대법제자만이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에는 늘 자신의 고통 속에 잠겨 있었지만, 지금은 중생들이 모두 고생스러워 보였다.

한번은 진상을 알리면서 인도(印度)계 부녀를 만났다. 그녀는 감동하면서 반짝이는 눈으로 “이날을 기다려왔어요, 진정한 신이 왔어요!”라고 말하면서 또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중생들이 모두 대법을 기다리고 구원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기뻤다.

20년간 수련하면서 매일 비할 바 없이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사부님께서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까지 걸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시간의 긴박함을 알고 사부님께서 중생을 위해 감당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매분 매초를 소중히 여기면서 세 가지 일을 잘하여 많은 사람을 구하고 서약을 실천하여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수련생들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시드니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마음 고생’
[4]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무엇이 그대의 바람인가’

 

원문발표: 2018년 12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4/3780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