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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 정부 관리, 사부님 은혜에 감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17년 봄에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한 신 수련생이다. 수련 전후의 일부 체험을 적어내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한다.

정부에서 일해 큰 피해를 보다

나는 정치학을 전공하여 온 머리에 마르크스 레닌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그릇된 사상을 주입했지만, 그러나 그때는 세상의 진리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교사가 되어 학생들에게도 이런 것을 가르쳤다. 이런 것 외에 다른 과목도 가르쳤기에 동료들은 나를 팔방미인이라고 했다.

몇 년 후 나는 정부 부처로 전근되었다. 그때는 당을 매우 사랑했고 직업에도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히 일했다. 사람은 마땅히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여 1989년에 중국공산당 조직에 가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6.4학생 운동’의 비참한 결말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올바르다”라고 자신을 선전해온 이 당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이 말하는 것과 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과 거짓과 사악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공산당이 이러하다고 생각만 할 뿐 감히 말하지는 못했다.

다음 해 나는 선전업무를 맡았다. 일이라기보다는 당을 칭송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내용을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반감이 생겨 상사가 거짓 선전물을 만들라고 하는 언행이 역겨웠다. 그러나 이것도 매일 반복되니 습관이 되어, 무엇을 쓰라고 하거나 무엇을 선전하라고 해도 온통 거짓말임에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고 원래 이런 것이라고 여겨졌다. 나는 밖에서 교제하면 처세가 원만하여 남들과 잘 지냈다. 나는 또 흡연, 음주 등 많은 악습이 생겼다. 집에서는 성격이 난폭한 남성 우월주의자였으며 내가 말한 대로 해야 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모양새 날지 몰라도 나는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었다.

90년대 초, 남방에 시찰하러 갔다가 홍콩, 마카오에도 다녀와 견문을 넓히게 되었다. 나는 생각에 변화가 왔다. 내가 연구했던 ‘마르크스 레닌주의’, ‘모택동 사상’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으며, 내가 우롱당한 것이었다. 그 순간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수련할 기회를 한번 놓치다

1997년, 한동안 아내가 매일 시간이 되면 나가기에 어디 가는지 물으니 공을 배우러 간다고 했다. 내가 “무슨 공이지? 이름이 뭐지? 당신한테 무슨 좋은 점이 있지?”라고 묻자 아내는 “파룬궁, 이 공은 좋아요. 병을 고칠 수 있어요. 사람을 향상시킬 수 있어요.”라고 했다. 아내는 내게 ‘전법륜(轉法輪)’을 주었다.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밤새워 다 보면서 두 눈에서 붉은빛이 나가는 것을 느꼈다.

책은 정말 좋았다. 사람의 지력을 계발해주고 사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나는 당원이다. 책에서 말한 것은 공산당의 이론과 다르다. 나는 책에서 말한 대로 할 수 없고, 매일 나가서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도 없다. 남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는가?’ 나는 이렇게 대법을 스쳐 지나가며 수련할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대법을 배척하지는 않았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은 파룬궁을 전면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나는 악당의 거짓말에 속아, 특히 장쩌민 집단이 연출한 ‘천안문 분신’ 조작 사건의 영향으로 대법을 적대시했다. 게다가 대법을 모함하는 데 참여해 많은 죄업을 지었다.

아내는 대법을 포기하지 않고 가끔 나갔다. 뭘 하러 가는지 짐작은 했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잡히더라도 내가 공안국 사람을 다 아니 빼내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게 되었다. “저 사람은 파룬궁을 탄압하는가 봐. 그런데 그의 아내가 파룬궁(제자)이래.” 나는 몇 년 전에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아내와 크게 싸우고 이혼하자는 말까지 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나는 정부에서 선전업무를 하는 사람인데, 이혼했다는 소문이 나면 좋지 않을 것 같아 이혼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아내는 의기양양하게 꼭 이혼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이혼해 주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이혼하지 않았다.

대법이 두 번째 생명을 주다

2016년 나는 뇌출혈로 입원했다. 첫날에 머리 왼쪽을 수술하고 나니 이튿날 오른쪽에서 또 출혈했다. 의사는 즉시 두 번째 수술을 해주었고, 여러 번 위급하다고 알려주었다.

사흗날 아내는 응급실에 들어가 내게 말할 것이 있다고 하며 의사에게 사정했다. 그때 나는 혼수상태였다. 아내는 내 귀를 잡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꼭 외우라고 하였으며, 파룬따파 진상 호신부를 걸어주며 사부님께 나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동료들은 내가 죽을 줄 알고 모두 나를 보러 왔다. 하지만 아내는 대법을 확고하게 믿었으며, 대법은 초상(超常) 적이라고 믿었다. 9일 후 아내는 나를 일반 병실로 옮기고 사부님의 설법을 들려주었다. 나는 나날이 좋아져 눈도 보이기 시작했고 사람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으며, 가끔 일어나기도 했다. 그래도 몸의 반은 움직이지 못했으며, 대변은 알았으나, 소변은 알지 못했다.

가족들의 상의를 거쳐 나는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고, 서서히 건강을 회복했다. 아내는 출근하느라 바빠 파룬궁 수련생을 도우미로 들였다. 그녀는 매일 내게 대법 진상 동영상을 틀어주었다. 나는 보기도 하고 듣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조금씩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고 소변도 느낌이 왔다.

1개월 후 어느 날, 아내가 내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외우라고 했다. 아이를 타이르듯 따라 읽으라고 하며 백 번을 따라 읽으면 식당에 가서 물만두를 사주겠다고 했다. 백 번을 따라 읽을 때까지 아내가 세면서 다 읽고 나서, 우리 둘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만두집에 갔다.

만두를 다 먹고 나서 아내는 “택시 타고 집에 가요.”라고 했다. 나는 “그럴 필요 없어요. 난 힘들지 않아요. 걸어갑시다.”라고 했다. 나는 7리(3,500m) 길을 걸었다. 아내가 또 “힘들지 않아요?”라고 묻자 나는 “힘들지 않아요. 계속 걸어갑시다.”라고 했다. 퇴원하고 처음으로 이렇게 먼 길을 걸었다. 대법은 정말 신기했다. 그때부터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자주 외웠다.

나중에 파룬궁수련생 도우미가 떠나자 아내는 또 속인을 고용해 나를 돌보게 했다. 1개월 후 그 속인 도우미도 갔다. 친척과 친구 그리고 딸이 아내에게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받으면 더 빨리 회복된다고 계속 설득했다. 아내는 부담감이 큰 데다 내가 진정으로 대법 수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여겨, 치료받지 않으면 속인이 이해하지 못할까 봐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하고 약물치료와 물리치료를 받게 했다. 4일 후 나는 아침을 먹으러가다가 갑자기 뇌출혈 후유증이 나타나 발작을 일으키며 길에 넘어졌다. 아는 사람이 보고 구급대를 부르라고 했다. 아내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빌며 구급대가 나를 데려가지 못하게 하려고 아는 사람에게 좀 나아졌다고 말했다. 아내는 계속 사부님께 빌며 아는 사람에게 “또 좀 나아졌습니다.”라고 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깨어났다.

그 후 다섯 번 재발했다. 약물치료와 물리치료를 받기 전에는 한 번도 후유증이 나타난 적이 없는데, 지금은 오히려 혈압이 높고, 혈압을 내리는 약도 듣지 않고 있다. 아내는 이런 상황을 보고 약을 먹지 말라고 했다. “사부님만이 당신을 구하실 수 있어요. 우리는 그래도 신사신법해야 해요.” 나는 매일 아내의 직장에 따라가 ‘9평 공산당’ 책을 보았다. 내 몸은 뚜렷한 변화가 생겨 길을 걸어도 힘들지 않고 아주 가벼워졌다.

수련으로 들어와 인생을 깨닫다

하루는 아내가 법공부하러 가는 데 따라갔다. 이렇게 하여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들고 법공부하기 시작했다. 반년 후에는 연공을 시작하여 오래지 않아 온몸의 여러 증상이 다 나았다. 예전에는 생각이 많아 불면증에 자주 시달렸으나, 지금은 잘 잔다. 2007년 심장 스텐트 시술을 한 후부터 약물로 장기간 유지하고 있어 위가 나빠졌다. 부추를 조금만 먹어도 며칠씩 괴로웠으나, 지금은 약물로 유지할 필요가 없다. 심한 손발톱사상균증으로 발톱이 잿빛이었으나, 지금은 두 발의 발톱이 모두 새로 자라났다. 여하튼 현재는 온몸이 가벼워졌다.

나는 끊임없이 법공부함에 따라 희망이 생기고 머리가 트였으며, 인생에 정확한 목표가 생겨 더는 흐리멍덩하게 살지 않고 있다. 예전에는 성격이 난폭하였기에 아내는 감히 나를 건들지 못했다. 지금은 내가 수련하고 있으니 거꾸로 되어 아내가 가끔 내게 화를 내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심성을 닦을 때이다. 수련인은 참음을 해내야 한다. 예전에 무신론을 주입받아 사람은 이 한 생만 있다고 생각해 좋은 것을 먹고, 마시며 마음껏 누렸다. 지금은 좋은 것을 먹든 좋지 않은 것을 먹든 개의치 않고, 문제에 부딪혀도 대법을 생각하며 될 수 있는 대로 법의 요구에 따라 한다.

위층 이웃이 벌써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화장실에서 여전히 물이 새어 내려온다. 그 누구도 수리하지 않았다. 아내가 지금 이웃에게도 가서 말했다. 하루는 아내가 복도에서 윗집 안주인을 만나 화장실이 아직 샌다고 알려주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윗집 안주인이 우리 집 문을 두드리고 문 앞에 서서 좋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많이 했다. 뜻은 물이 새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기세를 보니 내가 말을 하면 싸움이라도 할 것 같았다. 대법을 수련하니 그녀와 같아서는 안 될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뇌출혈을 앓기 전에 직장의 퇴직 동료가 수십만 위안을 빌려달라고 하며 2년 후에 갚겠다고 했다. 사업개발비가 급히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평소 그녀와 사이가 좋았기에 집에 돈이 없어도 친지들에게 빌려서 차용증도 없이 주었다. 나중에 그녀를 찾을 수 없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했다. 많은 방법을 생각하며 그녀를 잡아서 어떻게 하겠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아내가 길에서 그녀를 만나 돈 얘기를 하니, 그렇게 많은 액수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숨어버릴까 봐 겁이 났다. 또 한 번 그녀를 만났으나, 여전히 돈을 갚을 생각이 없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빌린 돈은 내가 조금씩 갚아 이제는 다 갚았다. 2년이 넘었는데도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대법의 법리에 따라 이 일을 마음에서 내려놓았다.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돈이란 몸 밖의 물건이라고 하였다.”[1]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2] 나는 사부님의 제자이니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아내는 매일 나가서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한다. 나도 따라가서 발정념도 하고 스티커도 붙이고 벽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쓰기도 한다. 나는 정부 부처에서 여러 해 일했기에 지역의 많은 사람이 나를 안다. 아내가 진상을 알리면 나는 옆에서 두어 마디 거든다. 나는 내 머리를 가리키며 “원래 이곳에 문제가 많았는데 대법을 배워 목숨도 지켜내고 몸도 건강해졌습니다. 주사도 맞지 않고 약도 먹지 않으니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말한다. 내가 직접 말하니 더 설득력이 있다.

하루는 아내가 나를 놀렸다. “당신, 대법을 배우고 나서 대법에 돈을 얼마나 썼어요?” 내가 “한 푼도 쓰지 않았지요.”라고 하자 아내는 “그런데 예전에 왜 제가 돈을 대법에 다 갖다 주었다고 했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내가 허튼소리 했네요.”라고 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해서 정말 행복하다. 마음속에서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모든 것은 법을 배우면 책 속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어서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제 나는 대법을 떠날 수 없고 누가 배우지 말라고 하여도 소용없다.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대법에 감사드린다. 나는 수련을 잘해서 사부님의 구도가 헛되지 않게 할 것이다.

제자는 사부님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부이유덕(富而有德)’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8년 11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23/3765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