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 기자 정위옌 타이완에서 보도) “왜 53세가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을까? 전반생을 헛되게 보낸 게 아닌가? 인생에서 이렇게 중요한 대사를!” 무신론자인 황스쿤은 ‘전법륜(轉法輪)’을 펼친 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그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읽어나가 2일 만에 ‘전법륜’ 한 권을 다 읽은 후 감개무량함을 금치 못했다.
타이완 국제기업 연흥방직공사 전 총지배인 황스쿤은 “파룬궁(法輪功)이 나와 아내를 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황스쿤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 친구 동료들이 모두 그가 젊어졌다고 말했다. 사진은 그가 수련하기 전후의 비교.
황스쿤은 타이완 국제기업 연흥방직공사 전 총지배인이다. 26년간 근무하면서 타이완, 멕시코, 니카라과, 레소토 등 전 세계에 카우보이 직물, 염색가공 공장을 세워 성공한 기업가인데, 그에게는 세심하게 내조하는 아내가 있다. 아내는 집안일은 물론 대소사를 도맡아 처리하며 힘든 기색을 내지 않고 정성으로 내조해, 남편이 오직 직장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한 현숙한 아내다.
인생 승리자들의 번뇌
황스쿤은 사업에서 성공했고 가정이 행복했지만, 건강 문제가 줄곧 그를 괴롭혔다. 양·한의원을 두루 찾아다니며 치료받았지만, 속수무책이었는데 의사가 말했다 “당신이 과로를 피할 수만 있다면, 나는 당신을 도와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금도 도와줄 수가 없다. 퇴직한 후 집에서 휴식하며 섭생을 잘한다면 70% 정도는 회복이 가능할 것이다.” 의사의 엄중한 경고를 듣고 그는 괴로웠다. ‘내 나이 겨우 50인데 퇴직하면 앞으로 내 인생은 뭐가 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금 2개국에 새로 공장을 세울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어찌할 것인가.’ 그는 이 사업계획은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나는 무책임하게 지금 퇴직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멕시코의 방직공장 준공을 한 후 그간의 과정을 되돌아보았다. 현지 조사, 주정부와의 계약 협상, 계약체결, 공장설계, 발주, 공장건설, 기계설비, 시운전, 원자재 투입, 생산설비, 회계법규, 세법, 노동법, 노조, 외국인 출입국관리, 세관, 구인, 급여 책정, 거래, 지급방법, 대리점 계약, 공장근로자 숙식 및 자녀 취학 등등 모든 문제를 조금도 차질 없이 수행해야 했기에, 그는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종전과 다름없이 회사 일에 전력투구했다.
주치의는 아내에게 남편의 심각한 건강상태를 말해주고, 휴식하도록 강력히 독려했다. “남편의 출국을 만류해요. 이번에 출국하면 다시는 남편을 볼 수 없을지도 몰라요.” 남편의 성격을 잘 아는 아내는 “내가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다.”고 힘없이 말했다. 의사가 다시 경고했다. “의사로서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남편이 이번에 출국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해요.”
파룬궁이 나와 아내를 구했습니다
지금 16년이 지났다. 황스쿤은 그때 예정대로 출국했고, 공장건립을 순조롭게 추진해서 2002년 니카라과, 2004년 레소토 등 2개국에 공장건설을 계획대로 완성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건강해져 심신이 편안하고 성품도 활달하며, 직장에서 왕성하게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퇴직 후에도 쉬지 않고 펑자대학에서 기업관리 강의를 하는 등 사회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강의는 풍부한 기업가의 경험을 전수할 뿐만 아니라. 올바른 인생관, 도덕심을 함양하여 국제사회에서 긍정적인 인물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는 활동 범위를 넓혀 타이완에 신기술회사를 설립해 자체로 운영하기도 하는데, 일련의 그의 이런 활동은 어찌 된 일인가? 그에게 어떤 기적이 발생한 것인가? 황스쿤, 그는 감격스러운 모습으로 말했다. “파룬궁이 나와 아내를 구했습니다!”
황스쿤(좌)은 대법을 수련한 후 예정대로 2004년 레소토에 공장을 세울 때 미국 바이어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황스쿤은 연흥방직에서 퇴직한 후 초빙교수로 대학에 출강하고, 신기술회사를 자체운영하고 있다.
황스쿤은 18세 때인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첫 월말고사 때 온몸에 알레르기 증상으로 피부가 벌겋게 부었다. 다음날 시험이 끝난 후 동급생이 점심시간에 ‘민간요법’ 약물을 복용하게 했다. 공복에 맑은 탕약을 먹고 나자, 차고 뜨거운 것을 함께 먹어서인지, 저녁이 되자 장이 비틀리는 듯이 고통스러워 음식물을 먹을 수도 배출할 수도 없었는데, 중·서의원을 찾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때부터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자습했고, 아픈 몸으로 겨우 연합고사에 참가할 수 있었다. 나중에 한의사가 위 냉증임을 진단해 다소 호전됐지만 완치되지 않았다. 위통과 알레르기가 동시에 발생하기 시작한 후 그 증세는 36년간 그를 괴롭힌 고질병이었다. 황스쿤은 말했다. “너무 고달팠습니다! 그런데 53세가 돼서야 파룬궁을 만날 수 있었고, 파룬궁 수련을 하자 금방 병이 사라졌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 건강을 위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헬스도 해보고, 무술도 배웠지만, 위장병은 여전했고, 수영, 태극권도 중단하지 않았다. 나중에 오직 기공만 했으므로 52kg 체중이 62kg이 되었고, 위장병도 다소 개선되는 듯했지만 완치되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기공을 연마할 때 지도자가 간단하게 기공 이름과 공리(功理)만 말해주었는데, 더 깊이 물어보면 대답하지 못했어요.” 어느 날 28세의 기공 조교가 황스쿤에게 말했다. “나는 더는 올라가지 못하겠어요. 그래서 나는 출가할 거예요.” 황스쿤은 당시 그가 말한 진정한 함의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전법륜’을 보고 대법을 수련한 후 그가 한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50세 되던 해, 멕시코 공장건설을 마치고 나서 체중이 다시 52kg으로 떨어졌는데, 의사는 원인을 찾지 못하고, 과로 때문이라며 즉시 직장을 퇴직하고 휴식을 당부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병원치료를 받으며 근무를 지속하다가 53세에 결국 절망상태에 빠졌다.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기공을 연마했다. 그러나 한의사는 펄쩍 뛰다시피 만류했다. “기공은 경맥을 보완하는 것인데, 당신처럼 허약한 사람은 기공으로 효과를 볼 수 없고,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절대 기공을 해서는 안 된다.” 그는 절망감에 빠졌다.
암흑 속의 생명을 구한 밝은 등
황스쿤의 눈앞이 캄캄할 때 운 좋게 밝은 등불이 켜졌다. 1999년 텔레비전에서 중국공산당이 무자비하게 파룬궁을 탄압했다는 보도가 생각났고, 리훙쯔(李洪志) 선생께서 미국공원에서 연공을 가르치던 화면이 머리에 떠올랐다. 황스쿤은 말했다. “나는 중국공산당은 속이고, 기만하고, 유괴하고, 은폐하고, 투쟁해서 정권을 탈취한 걸 잘 압니다. 그런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탄압한 것을 보면, 반드시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연마했을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파룬궁을 수련하겠다고 생각했다. ‘파룬궁이 타이완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는 이틀 후 대법을 얻었는데, 때는 2001년 초였다.
처음에는 혼자 파룬궁 연공을 자습으로 시작했으므로, 수련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신기한 현상이 나타났다. 아랫배에서 파룬(法輪)이 돌았고, 전신의 맥(百脈)이 뛰었으며, 연공할 때 각 부위의 말초신경과 경부(頸部)에 기가 들어와서 맥이 통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는 말했다. “그때 그것이 파룬이라는 걸 몰랐고, 신기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신체 표면에는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세월은 빨라 2002년이 되었다. 그는 출국 준비를 하던 중 우연히 아내와 함께 이웃에 사는 린을 만났는데 그도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화 중에 린이 “파룬궁은 수련이므로 법 공부를 중시하고, 마음을 닦는 것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했다. 황스쿤은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요.” 그는 자신은 파룬궁을 일반 기공처럼 여겨 진정하게 대법 수련에 들어서지 못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옆에 있던 아내도 그 중요한 말을 마음에 새겼다.
파룬궁의 신기함을 알게 되다
황의 아내도 몸이 좋지 않았다. 복부 팽창, 가슴 답답증, 무릎관절, 무릎 골다공증 등으로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들었다. 주일마다 한의사를 찾아가 발바닥과 전신 경맥을 지압했는데, 처음 지압할 때 지압사가 놀라며 “당신의 담과 경맥이 모두 막혔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살 수 있었습니까?”라고 했다. 황스쿤은 출국 전 아내에게 파룬궁의 다섯 가지 공법을 가르쳐주고 떠났다.
아내가 파룬궁을 배운 지 3개월 후 지압사를 찾아갔을 때, 지압사는 매우 놀라워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 당신의 간담 경맥이 전부 통해 있어요. 우리의 지압은 잠시 완화해줄 수는 있지만 이렇게 완전히 통하게 할 수는 없어요.” 황의 아내가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다고 하자, 지압사는 남편과 함께 연공장을 찾아가서 연공을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지압소 손님들이 모두 파룬궁 연마를 시작했다. 아내도 방학 기간에 두 아이에게 얼른 파룬궁을 연마하라고 했다.
황스쿤은 니카라과에서 공장건립 중에 아무리 바빠도 매일 새벽 연공, 저녁 법 공부를 견지하며 착실히 수련했다. 짧은 2, 3개월에 신체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 비염, 난청(왼쪽 귀), 치조골 잇몸 위축 치아 흔들림 및 손상, 안면 검버섯, 암내, 위통, 요추신경통(무술연마 시 제2요추 손상) 등등 모든 고질병이 다 사라졌다. 불가사의한 일은 그런 고질병이 사라진 것만이 아니라, 얼굴 주름살도 줄어들고 안색도 밝아져, 보는 사람마다 모두 젊어졌다고 했다.
황스쿤은 64세에 임플란트할 때 겪었던 일을 말했다. 6개월간의 치료 과정이 끝난 후 외국 주재 의사는 “나는 국내외에서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시술했지만, 당신 같이 치료효과가 빠른 사람은 처음이다. 보통 1년 반에서 2년은 걸리는데 당신의 재생능력은 매우 탁월하다. 살이 빨리 자라서 완전히 꽉 찼다. 당신은 30대의 체질과 같다.” 의사는 치과의로서 기적을 본 것이라고 하면서 말했다. “앞으로 나는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러 오는 손님에게, 먼저 파룬궁을 연마한 후 시술하라고 할 겁니다.”
사업 이익보다 파룬궁이 더 유익한 점
황스쿤은 말했다. “법을 얻어 수련한 후 생명의 참뜻을 알았다. 인생에 명확한 목표가 있어 매우 착실하게 할 수 있다.” 그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의 언행을 대조하며 성실하게 사람을 대하고 처신했으며, 그 속에서 선과 악,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을 찾았다. 계획과 결정을 신속하고 명확하게 했고, 위험에 닥쳤을 때는 당황하지 않고, 어떤 압력을 당할 때도 책임을 부하에게 미루지 않았다. 대법제자의 품위로 회사 분위기를 바르게 잡아 전체 근무환경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직원을 믿고 의심치 않았으며, 공을 다투거나 잘못을 전가하지 않았으므로 상하가 일체를 이루었다. 팀원들은 모두 자신감과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게 되어 모두 바쁜 속에서도 매일 새로운 기대감과 성취감이 있어서 회사는 생명력이 넘쳤다.
그는 말했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이 나처럼 대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업주에게 ‘함께 파룬궁을 배우자’고 권했습니다. 파룬궁 수련으로 받은 혜택은 사업으로 얻은 이익보다 더 크고 많습니다.” 그는 세인들이 모두 만고의 기연의 놓치지 말길 바랐다.
원문발표: 2018년 12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21/3786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