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위안치
[밍후이왕] 나는 1995년에 대법을 만났다. 처음에는 법리에 어두웠지만 좋다는 건 알았다. 주변의 유혹이 매우 많았지만, 줄곧 가족과 함께 연마했다. 다양한 홍법 활동에 참여하고 무료로 공을 가르쳤다. 적극적으로 9일 학습반에 참가하여 신 수련생을 수련으로 이끌었다. 비바람 속에서도 끊임없이 수련생들과 법 공부하고 연공 했다. 주변의 동창과 친구들이 잇따라 수련에 들어왔다.
20여 년간, 처음엔 정진하다가 박해당한 후 자아를 포기하고 속인처럼 살았다. 후에 사부님의 인도하에 새로 수련으로 돌아왔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과 뼈아픈 뉘우침, 돌아온 후의 감동과 희열은 매번 지난 일을 회상할 때마다 사부님의 크나큰 자비를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었고 우주 불법(佛法)은 광대하고 끝이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1. 인생을 바꾸다
법을 얻기 전 나는 이해득실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가정환경이 평범해 과학을 열심히 공부해 운명을 바꾸려 했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겉으로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성적도 우수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성공에 대한 갈망이 가득 했고 성적이 좋은 다른 학생에 대한 질투심이 매우 강했다. 학교에 그렇게 오래 있었지만 내심에서는 옥신각신하는 사념이 깊이 숨어 있었다. 정말로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1] 일단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면 불평하고 잇따른 노력은 상대를 초월하여 자아 만족을 얻으려는 것으로 변한다.
갓 법을 얻었을 때는 비록 법리에 대한 이해가 깊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길은 자고로 신이 배치한다는 이치를 점차 알게 됐다.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심하게 쟁투하는 마음을 내려놓자 마음도 온화해졌다. 마음속에 법이 있으니 늘 유쾌하고 너그럽게 일을 하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러자 성적이 오히려 점점 좋아졌다. 후에 대학입시든 연구생 공부를 하든, 직장을 찾든 모두 사부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배치해 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 머릿속에 인생을 설계한다거나 또는 분투 목표를 계획한다거나 하는 개념이 완전히 없어졌다. 다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하려고 노력할 뿐이었는데 속인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최고의 전문, 고액 연봉, 심지어 외국의 유명대학 통지서도 왔다. 후에야 알게 됐지만, 이 일체는 모두 내가 미래에 사람을 구하기 위해 기반을 다진 것이었다.
2. 선택에 직면하다
1999년 7월 파룬따파(法輪大法)에 대한 박해가 하늘땅을 뒤엎는 기세로 닥쳤다. 한순간, 과거 대법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들은 혹은 중국 공산 사당을 따라 반면으로 가고(走向反面), 혹은 대법제자를 동정하지만 함구무언을 선택했다. 연루될까 봐 두려웠다. 당시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대학교 중국공산당 서기는 당시 학생회 부주석에 사당 당원인 나와 상담을 약속했다. 파룬따파와 사당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했다. 학교에서 내 가족에게도 위협과 회유를 했다. 만약 내가 계속 대법을 선택하면 해고 또는 체포되는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고.
당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유감스럽게도 당시 나는 대법과 개인 이익 사이에서 일생 중 가장 고통스러운 선택을 했다. 소위 ‘보증서’를 쓰고 학교에서 학우와 교수 앞에서 반성을 강요당했다. 당시 가슴에 큰 돌을 올려놓은 것처럼 온종일 답답하고 우울했다. 대법이 박해당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자신이 잘못된 결정을 한 것에 대한 깊은 뉘우침도 있었다. 사부님과 대법을 대할 면목이 없고 더 희망이 없는 것 같았다.
사부님께서 이미 나를 포기하셨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많은 대학생이 교외에서 자취하면서 연구생 시험을 준비했다. 나도 교외에서 자취했다. 어느 날 가열기로 물을 끓일 때 보온병 안에 물이 없는 줄 모르고(보온병 안에 물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가열기를 꽂아야 한다) 가열했다. 한참 지나자 보온병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어찌 된 일인가 싶어서 가열기를 꺼내 보았다. 뜨거운 가열기는 냉기를 만나자 폭발했다. 그 속에 있던 유리모래(玻璃砂 글라스 모래)가 나의 얼굴에, 눈에 가득 박혔다. 하지만 통증은 없었다. 겨우 남은 시력으로 거울을 보니 곰보처럼 됐다. 모래 유리가 살 속에 박혀 들었고 안구에도 모래 유리가 빼곡했다.
당시 학우들이 나를 병원으로 보냈다. 얼굴과 눈 속의 유리모래를 처치한 후 눈을 촘촘하게 붕대로 감았다. 집에 돌아오니 가족들은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수련인의 표준으로 대하라고 격려했다. 당시 나는 매우 아득했다. 수련 초기에는 신체가 불편한 것은 소업(消業)하는 것이고 사부님께서 관여하신 것을 알았지만 현재의 나는 그렇게 큰 잘못을 했는데 사부님께서 여전히 나를 책임지실까? 마음속으로 안정되지 않았다. 어느 날 몰래 거리에 나가서 병원으로 향했다. 몇 걸음 걷고 돌아오고, 또 몇 걸음 걷고 또 돌아오고. 내심 고민했다. 마지막에 마음을 크게 먹고 ‘나는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을 거야’라고 말했다. 돌아와 얼마 안 되어 다 나았다. 사존께서 못난 제자를 제도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후에 나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보증서’를 폐기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실명으로 중국 공산 사당 조직에서 탈퇴했다.
3. 미로에 빠졌다가 다시 돌아오다
내가 수련을 포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회 압력이 너무 높고 두려운 마음이 컸다. 법 공부도 여전히 하고 있고, 가끔 나가서 세 가지 일도 하지만 정진하지 않았다. 법 공부를 많이 할 때는 상태가 좀 좋다가도 어떤 때는 또 주변의 압력에 교란당해 기복이 매우 심해 견지하지 못했다. 어느 우연한 기회에 유학신청을 했다. 해외에서 가족 수련생의 독촉이 없어 더욱 철저히 자신이 방종했다. 완전히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 기간에 사람 인(人)자에도 미안한 색욕을 범하는 일을 저질렀고 신체는 병업 상태에 처했다.
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아내도 수련의 문으로 이끌었다. 나는 더 타락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만 수련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쳐 수련할 수 있는 다른 한 사람마저 바르게 걸을 수 없게 할 것 같아, 나는 결심을 내리고 내 자리를 다시 바로 잡기로 했다. 본격적인 대법수련의 길을 걷고, 가족이 함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했다.
후에 깨달았는데 지금의 아내는 바로 애초에 사부님을 따라 내려오기 전에 함께 조사 정법 하여 중생을 구도하자고 나와 약속했다. 사부님께서 자신의 거대한 감당으로 또 한 번 나를 구세력의 치명적인 배치 중에서 끌어내 주셨다. 비록 상태는 여전히 기복이 있지만, 우리 부부는 서로 격려하여 세 가지 일을 하면서 오늘날까지 걸어왔다.
4. 명리의 고비를 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젊은 사람은 자신을 파악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당신이 보라. 그는 평소 아주 좋으며, 속인 사회 중에서 무슨 능력이 없을 때, 그의 명리심은 아주 담담하다. 일단 사람이 두각을 나타낼 때면, 흔히 명리적인 교란을 받기 쉬운데, 그는 남은 생애에 아직 먼 길이 있다고 느껴, 더욱 보람차게 해보려 하며, 한번 분투하여 속인의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한다.”[2] 여기까지 읽을 때마다 내가 괜찮게 했다고 말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비록 완전히 명리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지만, 마음을 매우 담담하게 내려놓기는 했다.
결과는 내가 생각한 것과 완전히 달랐다. 외국에서 공부한 후 금융계통에 들어갔다. 가끔 회사에서 e메일을 써서 사장에게 보내려고 할 때, ‘내가 이렇게 잘하면 승진하고 임금을 올려주지 않을까? 메일에 나를 표현하는 능력이 돋보일까?’ 메일의 어휘 사용을 반복적으로 수정할 때가 많았다. 마음이 매우 피곤했다. 동시에 공교로운 것은 직속상관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 모두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었다. 일은 잘 하지 못하면서 연봉은 오히려 많이 받는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연말에 평가 실적을 평가해 성과급을 많이 받지 못할 때는 원망을 품는다. 한편으로 사부님의 법을 읽으면서 이 강렬한 집착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회사가 나의 업적에 상응한 대가를 주지 않았다고 화를 냈다. 한편으로는 부처 수련을 하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의 것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속으로 매우 고통스러웠다. 마치 나의 생사관(生死關) 같았다.
어느 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오랫동안 이익에 대한 마음이 이렇게 무겁고 아무리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지 못하는가? 갑자기 또 생각했다. 나는 정말로 ‘내려놓으려 했는가?’ 아니다. 말로만 내려놓으려 하고 속으로는 여전히 이익이 좋다고 생각했다. 돈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 은근히 마음이 흐뭇했다. 이익에 대한 마음은 매우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못 하고 뼈에 사무치게 내려놓으려는 결심이 없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배치해 주신 직업도 임금이 평균수준을 훨씬 웃돌았다. 기본 생활비 외에 나머지는 모두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 사용하라는 것이며 모두 대법 자원이다.
이 이치를 깨닫자 갑자기 마음속에 있던 집착의 물질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사부님께서 제거해주신 것이다. 이때부터 회사에서 일하면 순조로움에 따를 수 있었다. 근본 득실을 따지지 않았다. 메일을 쓸 때도 사람의 마음으로 단어를 선택하지 않고 오히려 간단명료하게 썼고 다 쓰고 나면 한번 읽는다. 무릇 자신을 과시하고 자신이 상처 입을까 봐 걱정되어 자아를 보호하는 마음으로 써낸 글귀는 모두 삭제하고 객관적으로 간단명료하게 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나를 교란하던 마음을 드디어 제거해 버릴 수 있었다.
5. 기능을 연마하여 업무 중에서 사람을 구하다
해외에서 근무하면 기본적으로 영어를 사용한다. 접촉하는 사람 대다수는 고수입, 고 계층의 외국인이고 소수가 중국인이다. 회사에 몇천 명이 있는데 내가 평소에 접촉할 수 있는 사람만도 백 명이 넘는다. 사부님께서 내게 배치해 주신 업무시간은 비교적 탄력적이고 말로 업무를 볼 때가 매우 많다. 나는 동료와 소통할 모든 기회를 이용하여 진상을 알렸다.
일을 얘기하고 나머지 시간에 파룬궁의 기본 진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중국 공산 사당이 대법을 박해한 원인과 수단, 대법제자의 장기를 생체적출한 사실 및 선악에 인과응보가 있다는 자연의 이치로 이어나갔다. 표면의 경제번영으로 자원을 독점한 것을 포함하여 아직도 중국에서 잔인하게 진압하며 국제사회를 기만한 사실을 말했다. 이 말에 동료들은 거의 다 놀랬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더욱 많은 정보를 검색하고 가족, 친구와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한번은 중국 동료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그녀는 다 듣고 대법제자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나의 공유에 거듭 감사하다고 했다.
출국하기 전에 나는 영어를 진지하게 배우지 않았었다. 출국한 후 영어로 논문을 써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영어 보충수업에 공을 들였다. 후에 영어로 진상 알리는 데에 튼튼한 기초를 다져 놓았다. 한동안 정념이 매우 족할 때 분명히 느낄 수 있는데 뜬금없이 영어가 모국어처럼 유창하고 진상을 알릴 때 심지어 평소에 모르는 표현방식도 매우 많이 사용할 수 있으며 더욱 완전하고 확실하게 나의 뜻을 표현할 수 있었다. 나는 안다. 내 마음이 위치에 도달하자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나의 능력을 가지(加持)해 주셔서 중생을 더욱 잘 구도하게 하신 것이다.
영문을 단련하기 위해 영어 밍후이왕도 중시해 보았다. 일부 전문 단어와 짧은 글을 메모하여 나의 진상 내용을 더욱 정확하게 했다. 평소에도 일부 상업에 관련해 영문으로 된 신문 잡지를 중점으로 보았다. 주류 영문의 언어 사용기교를 배우고 매일 진상 알리는 데에 응용했다. 지금 나는 능숙하게 영어로 진상을 알린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어떤 각도에서 착안해 이야기해야 하는지 즉시 알 수 있고 심지어 상대방의 말씨와 언어 습관에 맞춰 지혜롭게 진상을 알려 상대방이 더욱 쉽게 받아들이게 한다. 나의 언어능력은 사부님께서 주신 법기(法器)로서 내가 잘 하지 못하면 안 된다.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는 이곳의 중생이 구도 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알려주신 이상, 내가 이 회사에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금융권의 넘쳐흐르는 물욕 가운데서 이익을 다투는 마음을 폭로해 냄으로써 심성을 높일 수 있고, 대법제자의 바른 요소와 자신의 영향력으로 바르지 않은 모든 행위에 영향 주고 그것을 바로 잡는 동시에 인연 있는 중생을 구도할 수도 있다.
나는 속으로 맹세했다. 왔으면 곧 사람을 구해야 한다. 업무 관계로 접촉할 수 있는 모든 사람과 접촉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업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여도 조건을 만들어 접촉했다. 목적은 그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리기 위해서이다. 그 와중에 회사의 인턴이 자주 바뀌어 의아해하기도 했다. 주변의 동료도 빈번히 직업을 바꾸고 또 새로운 동료가 끊임없이 들어 왔다. 겉으로 보기에, 속인들은 근래 회사의 업적이 좋지 않아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사람을 배치하여 진상을 듣게 하신 것이다.
어떤 때는 상태가 좋지 않거나 진상을 오늘 알리나 내일 알리나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진상을 아직 알리지 않았는데 동료가 갑자기 회사를 떠나거나 심지어 갑자기 중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일이 발생한다. 놀란 나머지 반드시 시간을 다그쳐 빨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본래 구도 될 수 있는 사람이 구세력에게 끌려가는 일이 내 주변에서 더 발생하게 할 수 없었다. 이 회사를 떠날 때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은 진상을 다 알았다. 대다수 중국인도 삼퇴를 했다. 유감은 그래도 매우 많았다. 왜냐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를 교훈 삼아 다음 직장에서 더욱 잘 하겠다고 결심했다.
맺는말
내가 법을 얻은 지 20여 년이 됐다. 중간에 반복하여 심하게 떨어졌다가 몇 번이나 일어나 정체(整體)에 들어가서 세 가지 일을 잘 하겠다고 결심하였다. 이러한 것을 제하고 나면 자신이 진수(真修)한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매번 고비를 넘지 못하고, 특히 이익과 색(色)의 고비를 잘 넘지 못했을 때 늘 가슴을 치며 자신의 의지가 박약함을 원망했다. 다년간 사존의 자비로운 가호가 없었다면 나는 근본 걸어 지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사존의 설법을 배우면서 구세력은 세밀하게 이 방면의 소위 난을 배치하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층층이 아래로 내려오는 중에 나에게 이 방면의 물질을 강화해 놓았다. 사부님께서는 구세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시며, 우리에게도 잘하지 못한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얼른 일어나 정진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나는 자신을 신 수련생으로 여기고 착실하게 사부님의 매 한 편의 설법을 마음속에 담겠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배우고 외우기 시작했다. 서서히 집착을 제거하기 쉬워졌다. 안을 향해 찾는 이 법보(法寶)도 습관이 되어서 갔고 아무리 큰일이라도 정념으로 문제를 사고하려고 노력했다.
가야 할 길이 얼마가 남았든지 나는 자신을 정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일체 물질을 돌파하고 구 우주의 층층의 질곡(桎梏)에서 벗어나 스스로 대법에 동화하고 모든 정력(精力)을 세 가지 일을 잘 하는데 놓으며 중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 지금 마지막 모든 정력을 쏟아부어 사부님께서 만족하실만한 답안지를 내겠다. 사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잘 할 수 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곳은 수련생들께서 자비로 바로잡아 주십시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 요지 – 경지(境界)’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12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15/3737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