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들어 10여 년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이 있어, 글로 여러분과 나누려 한다. 그때 나는 수련에 아주 큰 문제가 있었지만 깨어있지 않고 이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어떤 위험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어느 날, 내가 사는 임대주택 마당에 사람이 가득 모여 있는 것을 본 나는 그 집을 떠났다. 한 수련생이 다른 지역에 빈집이 있어 피난처를 마련해 주었다. 마침 수련생의 며느리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나를 그 빈집까지 안내해줬다.
그 집은 주변 도로가 매우 복잡했고, 빼곡히 들어앉은 집들에 꼬불꼬불 골목길도 많았다. 수련생의 며느리는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당시 이미 날이 어두워져서 나는 그녀를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하려고 했다. 그녀는 이곳 골목길이 꼬불꼬불해서 처음 온 사람은 길을 잃어버리기가 쉽다며 만류했지만, 나는 길을 따라가며 표지에 따라 기억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수련생의 며느리를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하고, 기억한 표지에 따라 순조롭게 거의 집 근처까지 왔다. 그런데 집이 보이지 않았다. 잘못 왔나 싶어 다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표지를 따라 왔지만, 또 그 자리까지 와서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한두 시간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방법이 없어 수련생의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내가 있는 위치를 확인한 후 공중전화 부스 직원에게 부탁해 나에게 길을 알려주게 해서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원래 공중전화 부스를 마주하고 골목길이 여럿 있었는데 수련생의 집은 그중 한 골목에 있었고, 골목 입구에서 몇 집을 지난 위치였다. 공중전화 부스 쪽으로 골목에서 빠져나와 커브를 돌아가면 됐다. 그런데 나는 이 몇 미터 되는 커브 길을 기억하지 못해, 되돌아올 때 길을 찾지 못한 것이다.
당시 나는 이 일이 나에게 이것을 알려준다고 생각했었다. ‘비록 내가 집 앞까지 다 왔어도 그 몇 걸음 되지 않는 길을 찾지 못하면 집으로 갈 수 없다.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건, 표지를 기억했다 해도 ‘미궁’에 들어서면 모든 것이 헛수고이며,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 잃어버린 길을 나는 조언을 구해서야 찾을 수 있었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10여 년간 때로 이 일이 떠오르면서 인식되는 점이 있었지만, 아직 확실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수련에서 ‘이 마지막 한 단락 길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을 얻었는가? 여전히 그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몇 걸음 안 되는 ‘미궁’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지 않은가?
최근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안으로 찾는’ 법보가 바로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리키는 등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과거에 나는 ‘안으로 찾는’ 이것에 대해 진정으로 법에서 인식하지 못하고, 사람의 사상 관념에서 인식했다. 예를 들어 갈등 속에서 확실히 자신을 찾아보았는데, 그래도 자신이 한 것이 이치에 맞았고, 자기에게 잘못이 없었다. 그러면 나는 이미 안으로 찾은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너그럽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화가 났는데 그래도 자기가 수련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은 내가 수련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지만, 가정에서 어떤 일에도 모두 의견이 나뉘고, 갈등이 겹겹이었다. 최근 몇 년 전까지도 정말 해결할 방법이 없을 때 이르러서야 법 공부하고 수련하는 과정에 무조건 자신을 찾으려 했다. 다른 사람과 갈등이 있거나, 자신의 마음이 불편하고 다른 사람을 질책할 때 비록 자신은 떳떳하고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조건 ‘내가 틀렸다.’고 스스로 말했다. 마음속에서 울리는 ‘내가 틀렸다.’는 그 소리가 얼마나 미약하고, 얼마나 억울하건 이렇게 자신을 향해 말했는데 정말 뼛속까지 아팠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점차 마음이 불편한 것도 틀렸고, 다른 사람을 질책하는 것도 틀렸으며, ‘떳떳하게 어떤 잘못도 없다.’라는 상태도 틀린 것이고, 억울해하는 마음도 틀린 것으로, 확실히 나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후에도 항상 갈등이 생기면 불평하고, 다른 사람을 질책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무조건 자신을 향해 ‘내가 틀렸다.’고 말했는데, 여전히 뼈를 깎는 고통을 느꼈다.
또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점차 자신이 크고 작은 일, 어떤 일에서도 먼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습관은 이미 아주 몸에 배어서 나 자신마저 느끼지 못했으며, 마치 자기 손발인 것처럼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러다 또 갈등이 생기면 또 무조건 자신을 향해 ‘내가 틀렸다.’고 말했고, 또 여전히 뼈를 깎는 아픔을 느꼈지만, 이전보다 냉정하고 이지적이었다.
또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나는 과거 자신의 성질이 거칠고 급하여 늘 불만에 차서, 작은 일도 불씨가 되게 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수년간 수련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자신의 관념, 사람 마음, 습관 등이 건드려지면 곧 참지 못하고 불평이었다. 이것은 얼마나 큰 마성(魔性)이고 무서운 것이며,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
나는 몇 년간 시련 속에서 넘어지고 부딪히는 과정에서 줄곧 법 학습을 견지하면서 사부님 말씀에 따라 자신을 착실하게 수련하려고 했다. 사부님의 지도와 가호를 받아 뼈를 깎는 아픔을 견뎌냈는데, 사부님께서는 내가 집착하는 물질을 제거해주셨다.
나는 과거에 갖고 있던 ‘자기 수련이 괜찮다고 느끼는 자아 만족감’이 더는 없었다. 과거에 사악한 당(黨) 문화에 물들어 많은 나쁜 사람의 마음, 관념, 습관이 형성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스로 이런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사부님과 대법을 믿고 대법에 따라 자신을 수련하려고 했다. 사부님과 대법의 가지와 보호, 수련과정에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일체에 의해, 나는 많은 박해와 시련을 뚫고 지나올 수 있었다.
과거에 알아채지 못했던 몹시 나쁜 사람 마음, 관념, 습관 등등,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것을 수련해 없앨 수 없다. 그것은 계속 그곳에 있을 것이다. 대법 수련자에게 있어 그것은 가장 더럽고, 가장 나쁜 것이다. 아주 많은 것이 직접 사악한 당 문화와 연관이 있다. 그것은 마치 ‘미궁’처럼 우리를 미혹시키며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 어떻게 수련해도 더는 그 미궁에서 나오지 못한다.
나의 몇 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갈등 속에서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여겨질 때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라고 자신에게 말하고, 자신에게서 찾고, 자신을 수련한 것이 나의 수련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 몇 년간 시련을 통해 ‘안으로 찾는’ 것에 대한 나의 얕은 인식은 다음과 같다. 갈등 속에서 자신이 잘못이 없고, 억울하게 느껴질 때 무조건 자신에게 ‘내가 틀렸다.’고 자신에게 말하는 것은 겨우 ‘안으로 찾는’ 법의 가장자리에 닿은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갈등 속에서 확실히 자신을 찾아보니 자신에게 도리가 있고,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것을 이미 자신이 안으로 찾았다.’라고 생각한 것은, 모두 변이된 사람관념으로 ‘안으로 찾는’ 이 법을 곡해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사부님과 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안으로 찾는 법’에 부합되지 않는다.
수련 중에도 꾸준히, 무조건 자신에게서 찾고, 자신을 수련하면서 진정으로 대법의 표준에 부합되게 ‘안으로 찾기’에 노력한다면, 사부님과 대법이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모든 좋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게 하고, 그것을 수련하게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지 않게 한다!
비록 나의 아주 제한된 인식이지만 나의 절실한 체험이며, 또 여러 해 전의 일에 대한 나의 이해와 깨달음이다. 나의 인식의 제한으로 부족한 점이 있으면 수련생들이 바로 잡아주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12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14/3784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