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아내는 나의 거울이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아내 수련생에게 많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녀가 사람 마음이 많고 정이 중하며, 오성이 부족하고 일에 부딪히면 법리가 똑똑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신에게 아내 수련생을 깔보는 마음이 있는 것을 알지만, 이 사람 마음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시련이 오면 단지한때 억제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후 또다시 나오면 이처럼 반복되는데, 정말 시련이었다.

최근 자그마한 일이 발생했는데, 나는 심각하게 안으로 찾다가 마침내 이 사람 마음의 근원을 찾았다.

그날 오후 나는 방에서 법을 외우다가 갑자기 집이 조용한 것을 느꼈다. 거실에 나가보니 아내가 한창 테이블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어제 대법 수련에서 깨달은 교류문장 몇 편을 쓰겠다고 하더니 정말 쓰는구나. 정말 정진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조용히 다가가 보니 좀 이상했다. 그녀는 무언가 베끼고 있었고 무슨 ‘유치원’, ‘수업’ 등을 쓰고 있었다. 나는 단번에 알았다. 누군가를 도와 교안을 써주는 것이 아닌가?내 마음은 또 움직였으나 생각을 바꾸었다. ‘안 된다. 심성을 지켜야지. 화내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방금 법을 외운 것이 헛된 것이 아닌가? 떨어지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고 거실을 한 바퀴 돌며 한마디 했다. “자라지 못했다!” 사실 나는 ‘제구실을 못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방으로 돌아오자 마음이 평온하지 않았다. 내리누르면 또 올라오고 또 내리눌렀다……. 내게서 찾자. 수련생은 거울이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사실 이와 유사한 일이 여러 번 발생했고 한 번만 안으로 찾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와 유사한 일이 반복해서 나타나는가?내 어떤 마음이 조성한 것인가? 이번에 잘 찾아봐야겠다.

다시 생각해 보았다. 아내가 속인 친척을 위해 교안을 베껴 쓸 때 나의 첫 번째 일념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생각했다. ‘당신은 왜 이렇게 제구실을 못 하지? 그렇게 많이 말했지만 왜 기억을 못 하지? 평소 법공부를 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졸며 일주일에 주간 두 권을 보는 것도 힘들어하고 또 늘 시간이 부족하고 출근해 바쁘다고 하지. 바쁜가? 바쁘면 어찌 다른 사람을 대신해 거짓으로 꾸미고 남을 대신해 표절하는가? 이것은 무슨 마음인가? 수련생을 깔보는 마음, 군림하는 마음……이다.’

이어, 나는 또 어떻게 생각했나? ‘내가 법에서 반복해 당신과 소통해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고치려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다. 미련하고 고지식하다! 흥, 나는 지금 문장을 써 밍후이왕에 당신을 까발리겠다!’

이렇게 속이 좁은 것을 보라, 이것은 또 무슨 마음인가? 화내고 원망했다!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여기에서 나는 또 진일보로 찾았다. 밍후이왕에 문장이 발표되기를 바라는 명을 구하는 마음이다. ‘보라 내가 얼마나 잘 깨달았는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 밍후이왕에 문장을 발표할 수도 있다. 나는 매번 문장이 발표되면 비록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흐뭇하고 한동안 기분이 좋았다. 이 과시심, 환희심은 얼마나 강한가. 속인과 같은 자아가 부지불식간에 매우 팽창했다. 어쩐지 오랫동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고 수련생이 말하면 화를 터뜨린다 했지. 이 군림하는 마음이 어디 대법제자 같은가? 그야말로 속인보다 못하다.

수련을 정말 형편없이 했다. 그뿐만 아니라 밍후이왕을 이용해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변상적으로 사부님과 대법을 이용해 자신을 실증하려 했다. 얼마나 위험한 집착인가!

이외, 나는 이 일이 발생하기 하루 전에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것은 교란이 아닌가? 구세력은 틈만 있으면 파고든다. 그것은 정말 내가 한마음으로 법을 외우는지, 견정하고 끈기가 있는지 검증하고 아내수련생으로 나를 시험했다. 그것은 내 마음이 움직이는지, 조용한지 보려 하며 심지어 외우지 못하게 하고더구나 법을 외우는 목적을 포기하게 하려 한다.

그러면 근본을 찾아보자. 나는 무엇 때문에 사람 마음을 움직였는가? 이런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그날 저녁 법공부팀에서 법공부할 때 ‘심성제고’를 배우게 되었다. 사부님께선 문제의 관건을 나에게 점화해 주셨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자비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1] 정말 지혜를 주셔서 대법의 묘리를 깨닫게 하셨다.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본래 내가 아내수련생 행동에 마음이 움직인 것은 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부의 정, 수련생의 정, 총체적으로 정이다. 인간 세상에 정이 있다는 것은 필연코 이기적인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 중의 정과 이기적인 것이 있으면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선하지 않고 일 처리가 불공정하다. 어찌 자비심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선(善)을 수련하지 않았다. 그 기간에 화내지 않고 꾹 참으며 말하지 않았고 곁눈질하고 냉담하게 방관하며, 심지어 비꼬기까지 했다. 이것은 정말 ‘참음’인가? 대법제자는 반드시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해야 한다! 본래 내 문제점은 여기에서 나타난 것이구나! 정말 사부님께 면목이 없고 대법에 부끄럽다!

여기에서 사존의 자비로운 점화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8년 12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11/3781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