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장애인이 대법을 수련해 다시 살아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종합보도) 파룬따파(파룬궁이라고도 함)는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로 사람을 지도하며, 진정하게 성(性)과 명(命)을 함께 닦는 불가의 수련 대법이다. 간단하고 아름다운 5장 공법이 보조해 수련자의 심신을 건강하게 하고, 도덕을 회복시키며, 지혜를 열어 인생과 우주의 깊고 신비한 경지를 통찰하게 한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파룬따파(파룬궁)는 중원 대지에 널리 전해졌으며,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로 1억 수련자의 심신을 정화하고 도덕을 승화시켰다. 1995년 3월, 리훙쯔 선생님은 프랑스로 초청을 받아 공법을 전하시면서 파룬따파의 해외 전파를 시작하셨다. 현재 파룬따파는 이미 세계 백여 개 국가와 지역에 전해졌다.

파룬궁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방면에서 보편적으로 신기한 효과를 냈다. 1998년,중국 의학계는 이에 대해 다섯 차례에 걸친 의학 조사를 실시했고, 이후 북미와 대만 의학계 관계자도 관련 건강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파룬궁의 건강증진 효과가 최고 98%에 이르는 것이 밝혀졌다.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있어 파룬따파의 신기한 효과는 수많은 사례로 증명되었고, 일반인에게 불가사의해 보이는 기적이 수없이 출현했다. 아래에 열거하는 장애인들은 고질병과 불치병을 앓다가 다양한 인연으로 파룬따파 수련을 만난 후에 모두 구사일생으로 심신의 건강을 얻었다.

1.1급 상이군인의 전설적 인생

이것은 1급 상이군인이 직접 겪은 진실한 이야기를 밝힌 것이다. 죽었다 다시 살아나 폐인이 되고, 폐인이 좋은 사람이 되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다.

이것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폐인이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으로 살게 된다는 즉, 1급 상이군인이 좋은 사람이 된다는 자신의 진실한 이야기를 밝힌 체험담이다.

1) 전사자가 부활해 폐인이 되다.

내 이름은 스푸(가명)다. 나는 1976년에 징집되어 입대했다. 1976년 중월전쟁이 일어났고, 나는 전쟁 중에 세 차례 부상을 입으면서 영예롭게도 3등 전공을 세우고, 8차례 표창을 받았다. 앞의 두 차례 부상은 허리에 총상을 입고 발에 폭탄을 맞은 것이었는데, 나는 건강을 회복한 후 계속 참전했다. 특히 마지막에는 기적적으로 생환했는데, 내막을 아는 사람은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고, 이구동성으로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 하늘이 구한 것이라고 했다.

1983년 어느 날, 나는 명령에 따라 탄약을 운반하다 길에서 적의 습격을 받고 차와 함께 ‘죽음의 협곡’으로 불리는 골짜기로 떨어졌다. 전우들이 나를 찾아 부대의 병원으로 이송했을 때 병원에서는 머리에서 발까지 많은 곳이 부러져 이미 죽었다고 했다.

과거에 노인들은 말했다. 생사는 명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고. 당시 전화가 빗발치는 작전 지역에 현지의 한 화교 의사가 와서는 전사(戰死)한 나를 살펴보았다. 부대 간부들이 그 화교 의사를 영안실에 데려왔을 때는 깊은 밤이었다. 죽은 지 열몇 시간이 지난 나의 팔이 경미한 경련을 일으키자 화교 의사는 마땅히 구해야 하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수술실로 보내졌다. 그 화교 의사는 직업의식을 발휘해 직접 뇌 수술을 집도했다. 그렇게 40여 일 후에 다시 나는 살아 돌아왔다.

내가 깨어나니 눈은 보이지 않았고 귀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소리와 빛, 시간 개념이 없는 세계 속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부대 병원에서 2년 동안 치료받은 후 나의 왼쪽 눈은 완전히 실명했고, 오른쪽 눈은 0.1의 시력을 회복했다. 왼쪽 귀도 천공으로 완전히 청력을 잃었다. 머리에는 감각이 없었고, 정수리의 수술 자리는 피가 흘러내리며 아물지를 않았다. 머리는 종일 어지럽고 아픈 데다 제 기능을 못했고, 늘 쇼크를 일으켰다. 발과 다리도 말을 듣지 않아 일어서면 넘어지고, 팔도 펴지지 않았다. 나는 1급 장애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2) 15년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갈구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내는 나의 간호원이 되어 종일 눈물을 머금고 곁에서 나를 돌보았다. 그때부터 우리 온 가족은 피눈물 나는 인생의 길에 올랐고,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해 죽고만 싶었던 15년을 보냈다.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바로 “큰 난에 죽지 않으면 반드시 늦복이 있다”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를 본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나를 축복했고, 나도 그 한 가닥 희망을 잡고 사방에서 의사와 약을 구했다. 나중에는 부처에게 향을 올리고 절을 하면서 대성통곡하며 말년의 복을 염원했다. 어떤 사람은 감탄하면서 영웅은 영웅이라며, 내가 그런 고난의 날들을 보내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랬다! 남자가 가벼이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은 덕행이다. 그러나 나의 눈물은 오직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아내가 알고, 내가 알 뿐이었다. 나의 눈물은 천지신명 앞에서 일찍이 말라버렸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아이가 아직 어리고, 아내가 젊었는데, 아내가 늘 나를 격려하며 말했다. “당신은 절대 믿음을 잃지 말아요. 아이를 위해, 이 집안을 위해. 사람들이 모두 당신에게 늦복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날이 반드시 올 거예요.” 나는 아내의 진심에 감동을 받았고, 그렇게 힘들게 80년대를 보냈다.

재앙은 홀로 오지 않고, 새는 지붕에 밤새 비가 내린다. 무거운 부담으로 인해 부지런하고 선량했던 아내가 더 이상 망가진 집안을 이끌 수 없게 되었다. 누적된 피로로 병을 얻었는데, 심한 류머티스, 위염, 요추 디스크 등 여러 질병으로 계속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밥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심할 때는 밥도 침대에 누워서 먹었고, 딸과 아들이 얼굴 씻는 것을 도왔다. 그때 두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 경제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친척, 친구 집의 돈은 모두 빌렸고, 모두가 우리 집을 걱정했다.

나는 생활을 돌아보고 절망에 빠져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도 무너졌고, 우리는 살아갈 방도가 없어요. 우리 쥐약을 사서 만두나 빚어 먹어버립시다.” 아내가 상심해서 말했다. “당신은 어쨌든 우리의 정신적 지주에요.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를 성인으로 키워야 해요. 그때가 돼서 우리 함께 죽어요. 우리가 세상에서 고통을 있는 대로 받았고, 세태의 인정과 차가움을 간파했으니 저승에 가면 우리에게 지전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쪽에 가도 편치 않을 거예요.” 나는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70여 세인 장인과 장모가 와서 보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장모는 할 수 없이 남아서 세탁과 요리 등 집안일을 도왔다. 아내가 아프니 우리의 기분은 더욱 가라앉았고, 낫지 않은 지병에다 새로운 병이 생겼다. 왠지 모르게 나의 손은 늙어 소나무 껍질처럼 변했는데, 온통 갈라지고 아물지 않아 일 년 내내 피가 고였다. 손톱은 빠지고, 손가락을 굽힐 수 없어 서로 맞댈 수 없는 데다 밥그릇을 드는 것조차 문제가 되었다.

그 몇 년 동안 나는 양의에게 보였다가 낫지 않아 중의를 찾았고, 중의에게 보여도 낫지 않아 사방으로 민간요법을 수소문했다. 민간요법으로도 낫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이 말했다. “당신 집의 풍수가 나쁜 건 아닐까요?” 그래서 사람에게 부탁해 풍수 보는 사람을 불렀는데, 그래도 낫지 않았다. 그 몇 년 동안 도대체 얼마나 많은 부탁을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찾았는지는 나 자신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어느 해 설날을 앞두고 구 씨 성을 가진 현장(縣長)이 우리 집에 위문을 와서는 영상을 촬영하고 돌아갔다. 나는 그것이 우리 집에 가져올 ‘희망’을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결국 어느 날 마을 간부들이 왔다. 나는 마을의 지도자가 너무 바빠서 일을 맡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촌 간부가 입을 열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집에서 올해 수입세와 여러 비용을 아직 안 냈는데, 내야죠.” 나는 멍해졌다. 처음부터 나의 곤란을 해결해주러 온 것이 아니었다. 한껏 달아올랐던 나의 마음은 단번에 얼음 구덩이로 떨어졌다. 결국 마을에서는 내가 받던 재활금 지급을 중단했다.

나는 허공에 대고 물었다. “하늘이시여, 이게 바로 저의 늦복인가요? 저의 고생은 어느 때가 돼서야 그칠까요?”

3) 대법을 얻어 폐인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좋은 사람이 되다

내가 하늘을 불러도 대답이 없고, 땅을 불러도 소용이 없고, 생을 구해도 얻지 못하고, 사를 구해도 안 되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애써 발버둥 치고 있을 때 우리 온 가족의 운명이 바뀌었다….

98년 어느 날, 이웃 마을의 한 파룬궁 수련생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자신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 겪은 신기한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도 한번 수련해 보세요. 틀림없이 당신에게도 백 가지 이로움은 있어도 한 가지 해로움이 없을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다. 내가 물었다. “정말 그렇게 좋은 일이 생겨요?” 그녀가 말했다. “정말이에요. 저희 사부님은 우리한테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라고 하셨어요. 우리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어요.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당신을 속여서 뭘 하겠어요?” 내가 말했다. “돈을 얼마나 내야 배울 수 있어요? 어디에 가서 배워요?” 그녀가 말했다. “돈은 한 푼도 필요 없고, 우리가 열과 성을 다해서 무료로 공을 가르쳐 드려요. 이후에 당신이 배우고 이익을 얻어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도 비용을 받을 수 없어요.”

그 파룬궁 수련생이 돌아간 후에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어쩐지 내가 오늘 아침에 까치 두 마리가 우리 대문 앞 나무에서 재잘거리며 우는 걸 봤는데, 우리에게 감동한 하늘이 우리를 구하라고 신선을 보낸 것이 아닐까?” 아내가 말했다. “정말 그래요. 나도 따라서 머리를 조아렸어요.” 내가 말했다. “당신이 먼저 가서 보고 배워서 나를 가르치면 내가 배울게요.” 그날 아내는 나가서 알아보고 연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기적이 나타났다. 아내는 병이 깊은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며 사람들을 따라 3일을 배웠는데, 아직 완전히 배우기도 전에 다리가 아프지 않았고, 팔도 아프지 않았다. 아내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던 요통도 많이 나아졌고, 집안일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도 대단히 신기하게 생각했다. 1주일 후 아내의 몸은 뜻밖에도 건강을 회복했다.

나는 아내의 거대한 변화를 보고 진심으로 감동을 받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배우기 시작했다. 나의 신체 조건이 너무나 나빴으므로 연공인들은 흔쾌히 우리 집으로 찾아와 자원해서 공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들의 선념과 순진함에 감동을 받았다. 내가 말했다. “여러분이 돈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 집에서 식사라도 하세요.” 그들은 사양하면서 말했다. “당신이 대법 수련을 견지할 수 있기만 바라요. 그것이 가장 좋은 보답이에요.”

나는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넓고도 심오한 법리에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이틀의 시간을 들여 단번에 사부님의 설법을 모두 들었고, 바로 쓰러져 꼬박 4일 밤낮을 잠에 빠졌다. 식구들이 나에게 문제가 생겼다며 걱정하자 함께 수련하는 사람들은 내가 코를 골며 달콤하게 자는 것을 보고 말했다. “아마 그의 업력이 커서 사부님께서 그의 신체를 조정해 주시는 것 같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깨어난 뒤, 기적이 나타났다. 나는 감격스럽게도 나의 신체가 활력을 회복해 뛰고, 달리고, 노래 부를 수 있을 것 같았고, 눈도 갑자기 밝아지기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나는 흥분하여 말했다. “여보, 큰 난에 죽지 않으면 반드시 늦복이 있다고 했는데, 이게 바로 우리의 늦복이겠지?”

내가 아내를 자세히 보니 50세가 됐는데, 여태껏 나는 아내를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아내는 늙고, 백발이 되었다. 아내는 이 집안을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감당했다. 아내는 웃다가 울었다.

나의 눈에도 물기가 고였다. 사부님, 당신께서 저희를 구하셨네요. 그래서 나는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전거를 타고 현에 갔다. 과거에는 자전거를 밀며 지팡이로 썼지만, 오늘 내가 올라타고 문을 나서니 그 기쁜 심정은 정말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40여 리를 왕복해도 힘든 느낌이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대법을 굳게 수련하겠다는 한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날마다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다. 신체는 신속하게 건강을 회복했다.

5개월 후, 많은 약과 돈을 쓰고도 어떻게 치료할지를 몰랐던, 핏자국으로 얼룩얼룩하던 소나무 껍질 같은 나의 두 손도 허물을 벗고 새로운 손이 되었다. 15년 동안 핏물이 흘러내리던 정수리의 수술 자국도 아물었다. 나는 집에 있던 약을 모두 버렸다.

현재의 나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다. 나를 본 사람은 모두 내가 예전에 1급 장애인이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현재는 정상인과 같다. 나의 머리에서는 검은 머리카락이 짙게 자라났다. 펴지지 않던 팔, 모아지지 않던 손, 말을 듣지 않던 발과 다리, 그리고 실명했던 눈이 모두 완전히 회복되었고, 청력도 많이 회복되었다. 사람들이 믿기 힘든 이 일체의 사실이 모두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나의 신체에서 발생했다.

지금 우리는 비닐하우스 두 채를 지었고, 나는 자전거에 채소 90~95kg을 싣고 시장으로 배달한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진 빚을 2년 동안에 모두 갚았는데, 온몸에 늘 힘이 남아도는 것을 느꼈다.

나는 파룬궁 수련을 통해 대법의 순정한 아름다움과 뛰어나고 신기함을 목격했다. 특히 대법은 수련자에게 마음을 닦아 선을 지향하며 도덕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먼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자신을 버리는 정신 경지를 요구해 나의 영혼을 정화시켰다. 수련 전의 그런 장애, 고통, 열등감, 퇴폐, 자포자기로 종일 자살을 생각하던 나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파룬따파는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얻게 했고, 산산조각 났던 우리 집을 환성과 우스갯소리가 넘치는 따뜻한 집으로 변화시켰다.

나의 특별하고 거대한 변화로 인해 파룬따파의 신기함과 위엄이 증명되었고, 주변의 친척과 친구 백여 명이 나를 따라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수련을 하지 않는 사람도 나의 변화를 보고는 파룬따파가 좋다고 하지 않는 이가 없다.

2. 대법 수련으로 기사회생한 쿤밍 장애인 양쑤훙이 박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다

양쑤훙, 여성, 24세, 집은 윈난성 쿤밍시 시산리 마제 사무소 지산 구역에 있다. 그녀는 키가 겨우 120cm에 체중은 23kg인 지체장애인이었다.

양쑤훙도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려서는 똑똑하고 영리해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당시에는 집안의 경제사정이 아주 좋아 부모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유년 시절에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고 즐거워 마을의 같은 또래 아이들이 모두 그녀를 몹시 부러워했다.

그러나 양쑤훙은 여덟 살 때부터 병에 걸려 설사, 복부 팽만, 복통에 시달리며 점점 야위어갔다. 부모는 그녀를 데리고 사방으로 의사와 약을 찾으며 쿤밍의 큰 병원을 찾아다녔다. 병원에서는 그녀에게 ‘결핵성 복막염’, ‘백혈병’ 등의 진단을 내렸다. 그녀는 네 차례 입원 중에 두 차례 위급한 상황을 맞았다. 치료를 위해 온갖 양약, 중약, 민간약, 비방을 쓰면서 집안의 저축을 모두 썼고, 집까지 날렸지만, 그래도 그녀의 병은 호전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주사와 약을 쓰는 바람에 그녀의 몸은 자라지 않았고, 열여덟 살이 되어도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았다.

부모는 그녀에 대한 희망이 깨지자 나중에 어린 남동생을 낳았는데, 집안의 경제도 갈수록 나빠져 그녀는 학업을 그만두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정과 양쑤훙에 대한 무거운 부담으로 인해 성격이 갈수록 나빠져 늘 술을 마신 후에 아내와 싸웠다. 결국 그녀의 부모는 헤어져 그녀의 생활에 곤란을 가중시켰다. 그녀는 여러 차례 가출했고, 여러 차례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 생각했다.

1998년에는 설상가상으로 쿤밍 종양병원에서 ‘뇌암말기’ 진단을 받았고, 가장 많아도 몇 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 생의 마지막 희망이 깨지자 양쑤훙은 그저 시간을 소모하면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었다. 1999년 2월의 어느 날, 그녀는 친척 집에 갔다가 아는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는데, 그녀도 과거에 여러 질병에 걸려 길을 걸을 때 숨을 헐떡였고, 종일 약 항아리에 빠져있던 환자였다. 이번에 만난 그녀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40여 세인 아주머니가 서른 살 정도로 보였고 피부가 희고도 부드럽고, 이전보다 활력이 넘쳤다.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자신이 파룬궁 수련 후에 변화됐다고 알려주었다. 양쑤훙은 아주머니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하자 아주머니가 말했다. “병원이나 약물은 너를 구할 수 없고, 어떤 사람도 도와주지 못해. 오직 리 선생님만 너를 구할 수 있어.” 그녀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정말이예요? 저같이 불치병에 걸린 사람도 파룬궁을 수련할 수 있나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돼. 파룬궁은 성과 명을 동시에 수련하는 불가의 수련 공법이야. 누구든 연마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어. 리 선생님은 표면을 중시하지 않고 마음만 보시는데, 마음만 진실하면 돼.” 양쑤훙은 아주머니의 파룬궁 소개를 모두 들은 후 마음이 몹시 격동되었고, 생명에 대한 희망이 솟아났다.

파룬궁 수련 후, 그녀는 매일 아침 5시에 연공장에 나가 연공을 했고, 사람들과 함께 리 선생님의 책을 읽었다. 일체의 시간을 다잡고 책을 봤으며, 리 선생님께서 책에 쓰신 ‘진선인(眞善忍)’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했다. 모순을 만나면 안을 향해 찾았고, 일을 함에 먼저 다른 사람을 고려했다. 양쑤훙의 몸에 있던 각종 병증은 점점 사라졌고, 십여 년 동안 병마에 시달렸던 양쑤훙은 약 단지를 버렸다. 그녀는 병이 없고 가벼운 몸을 느꼈으며, 먼 길을 걸어도 피곤한 줄을 몰랐고, 전신에 힘이 넘치는 것을 느꼈다.

연공인들의 도움 속에 생활도 조금씩 안정되어 즐거운 웃음이 다시 양쑤훙의 얼굴에 나타났다. 부모님도 딸의 변화를 보고 몹시 기뻐했고, 주변 이웃들도 그녀의 변화를 보고 놀라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파룬궁 수련의 행렬로 들어섰다.

그러나 양쑤훙이 병마를 떨치고 다시 생활에 재미를 얻었을 때, 1999년 7월 20일,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시작됐다. 재난은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게도 닥쳐왔다.

1999년 ‘7·20’ 후, 수련과 진리를 견지하던 양쑤훙은 여러 차례 사악한 무리로부터 불법 가산 몰수, 심문, 수감 등등의 괴롭힘과 박해를 당했다.

2004년 11월 30일, 양쑤훙은 쿤밍시 시산구 국보 대대 경찰에 속아 납치되어 다반 챠오의 윈난성 여자 노교소에 수감됐다. 양쑤훙은 판결문 서명을 거절하고, 이른바 ‘전화(轉化)’를 거절했다.

노교소에 있던 반 년 동안 양쑤훙은 정상인과 똑같은 가혹한 육체노동에 투입됐고, 법공부, 연공을 금지당했다. 그녀는 학대를 당해 피골이 상접하고 숨이 멎기 직전에 이르러 2005년 5월, 집으로 돌아왔고, 약 한 달 만인 단오절 오후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3. 뇌 위축(腦萎縮) 서화가가 말하는 신기한 수련 이야기

나는 서화가로, 일정 범위 내에서 어느 정도 명성과 영예를 누리고 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명인이라 칭하지만, 사실 나는 눈에 띄지 않는 일반인이며, 진정하게 수련하는 파룬궁 수련생이다. 20여 년 동안 단체 서화 활동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고, 명리의 유혹 앞에서 서화의 부패와 난잡함이 사람을 놀라게 하는 지금, 일체의 잡념을 포기한 채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깨닫고, 대법이 부여한 서예 기술로 삼퇴를 권하며 중생을 구도한다.

1) 뇌 위축 등 여러 고질병에 시달려 죽고만 싶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많은 병치레를 했고, 7, 8세가 됐을 때 가파른 비탈에서 놀다가 깊이가 약 10m인 계곡으로 떨어졌다. 머리가 바위에 부딪혀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났는데, 심각한 뇌진탕 후유증이 남았다. 열몇 살 때는 장티푸스에 걸렸고, 연속 3년 동안 발병하여 계절만 되면 고열이 멈추지 않았다. 추울 때는 온몸을 떨었고, 이불을 덮어도 추웠다. 두통으로 머리가 갈라지는 듯했고, 울음소리를 그치지 않았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못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열과 한기로 뇌세포가 상하여 죽게 되었고, 지능 저하가 나타났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수학, 물리, 화학은 나와 인연이 없었고, 들어도 모르고 기억하지 못해 스스로 선천적인 부족을 탓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숙명적으로 나의 서화 솜씨가 뛰어나 어디에 가든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나는 농촌의 빈곤한 아이에서 비 농민이 되는 것을 경험했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의 대열 속에 휩쓸리면서 피로가 쌓여 병에 걸렸다. 특히 뇌 위축은 나를 일 년 내내 현기증, 이명, 반응 지연, 거친 성격, 전면적인 지능 저하에 시달리게 했다. 책을 보면 5분도 넘지 않아 기진맥진해지고, 어지럽고, 갑갑해 견딜 수가 없었고, 늘 머리로 애를 썼는데, 물구나무를 서면 잠시 동안 고통이 완화되었다. 저녁에 잠들기 전에는 아내에게 주먹으로 나의 정수리를 반시간 동안 힘껏 때리게 한 후에야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견딜 수 없을 때는 뒤통수를 벽에 힘껏 부딪혔고, 누울 때는 머리를 침대 머리맡에 힘껏 부딪히거나 손으로 목을 쥐고 주먹으로 머리를 힘껏 때렸다. 그 밖에도 요추 디스크, 위궤양, 비염, 기관지염, 심장병 등에 시달리며 끔찍한 고통을 받아 죽고만 싶었다.

2) 운 좋게 대법을 만나 수련해 건강을 얻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잊을 수 없는 1996년 6월, 나의 생명에 희망이 비쳤다. 직장의 한 책임자가 나에게 보서 ‘전법륜’과 ‘전법륜2’를 주면서 파룬궁을 소개했다. 나는 이것이 생명을 구하는 보서임을 알고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나는 뇌 위축으로 이미 여러 해 동안 책을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책 두 권을 3일 만에 모두 단숨에 읽었다! 그것은 평생 처음으로 자신을 극복한 것이었으니 정말 신기했다. 그것은 수련의 책이었고, 나는 즉시 “나는 수련을 하겠다”라고 결정했다.

이어서 나는 단체 법공부와 연공에 참가했다. 1개월 안에 사부님께서는 연속 세 차례 나의 신체를 정화해 주시고 업력을 없애 주셨다. 몇 달 후에는 수 년 된 고질병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나의 신체에 병이 없고 가벼운 상태가 출현했으며, 마음과 심성이 함께 아주 빨리 승화되고 제고되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많고도 거대한 업력을 감당하신 것을 깊이 자각했다. 나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대법의 구도가 없었다면 나의 일체가 없고,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를 정화해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까지 살지 못했다.

나는 자신을 잘 수련할 것이며, 수련해서 나온 관대한 도량과 자비로 법을 실증하겠다고 결심했다. 매 차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할 때 일정한 작용을 발휘했다. 한 번은 현장에서 40여 폭의 글을 썼는데, 내용은 모두 현장에서 직접 지은 글이었다. 시종일관 서서 글을 썼지만, 몸이 가벼워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글을 쓰는 것을 본 사람이 기진맥진해졌다. 나는 침착하고 냉정했으며,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않았고, 마르지 않는 힘을 느꼈다. 과연 많은 사람이 말했다. “선생은 곧 70세인데, 50세로 보여요.” 나는 그들에게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며, 사부님께서 나의 신체를 정화해 주셨다고 알려주었다. 뇌 위축으로 아무런 생존 능력이 없는 반 장애인이었던 나는 대법 속에서 수련해 병이 없고 가벼운 신체를 얻은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대법 수련 전, 나는 보통 사람의 속세에 떨어졌고, 모르는 사이에 현대의 서예풍에 빠져 ‘유행’하는 추한 글씨를 추구했는데, 도덕을 망치고도 스스로 벗어나지 못했다. 수련 후, 나는 법을 사부로 삼아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았고, 특히 사부님께서 <음악과 미술 창작회 설법>을 발표하신 이후, 나는 사상의 장애를 배제하고, 대법의 ‘진선인(眞善忍)’을 표준으로 삼으며, 스스로 쓴 약 100폭의 초서와 추한 작품을 소각했다. 보관하고 있던 중국공산당 내용의 명인 서화 한 더미도 깨끗이 제거했으며, 개인 서화전으로 중생을 구도한다는 잘못된 판단을 떨치고, 자신의 서예 기술에서 벗어나 대면하여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는 길로 들어섰다.

내가 진상을 알리는 방법을 개괄하면 세 가지다. 하나는 초청을 받아 외지에 가서 글을 쓰며 진상을 알리는 것이고, 둘째는 글을 원하는 사람을 집으로 초대해 진상을 알리는 것이다. 셋째는 세인이 만든 연회 자리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한 지급시(地級市, 성과 현 사이의 행정 단위)의 지도자가 나에게 글을 부탁했는데, 정오에 아주 커다란 원탁에서 연회를 열었다. 참석자는 대부분 국장급 1, 2인자와 사장, 신문기자, 서예가 등으로 14명이었다. 당시 나는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해 주실 것을 청한 다음, 인연 있는 이 중생들을 구도하기 위해 연회를 주관한 국장과 상의하며 말했다. “제가 여러분에게 몇 마디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국장은 기뻐하며 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나는 파룬궁 진상을 알렸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남김없이 ‘삼퇴’를 하게 했으며, 다른 사람들도 차례대로 가명을 지어 ‘삼퇴’시켰다.

한 번은 내가 개인 미술관에 초대받아 글을 썼는데, 소식을 물으러 와서 글을 청하는 사람이 비교적 많았다. 공안 두 명과 사복 보안요원 두 명도 소식을 물으러 와서 글을 청했다. 물론 나는 긴장하지 않았다. 온 사람은 모두 친구였고, 인연 있는 사람과 구도 받기를 기다리는 중생이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진상을 알렸는데, 전체 장은 사부님의 가지 하에 정기가 상화했다. 그때 대륙에서 미술관 관장을 겸임하고 있는 한 대만 사람은 현지에서 유명한 기업 사장이었는데,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 그가 휴대폰을 이용해 NTDTV가 방송으로 폭로한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수련생 생체 장기적출과 전 세계가 기소한 장쩌민을 성토하자 현장에 있던 사람 대부분이 장쩌민이 조만간 심판을 받고 응보를 받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대법과 ‘삼퇴’하여 평안을 보전하는 것을 인정했다. 그중에 기골이 장대한 사복 공안은 초등학생처럼 만면에 미소를 짓고 탈당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저는 벌써 오랫동안 불면증에 걸려서 제 심신을 안정시켜줄 훌륭한 글씨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즉석에서 덕이 있고 도량 있는 내용의 자작시를 쓴 다음 말했다. “공안 일을 하면서 사람을 선량하게 대하고, 늘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외우세요. 만약에 당신이 할 수 있다면 불면증이 없어질 겁니다.” 그 경찰은 기뻐하면서 연달아 머리를 숙이며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는 글씨를 가지고 만족스러워하며 갔다.

나는 글을 구하러 왔다가 진상을 들은 인연 있는 사람들을 귀빈으로 대우했고, 그 상황과 요구에 맞는 시를 지어 눈앞에서 글을 쓰고 탈퇴를 권했다. 나는 깨달았다. 글씨 한 폭은 별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진상을 아는 것은 바로 중생 생명의 구도이며, 이런 사람을 더욱 소중히 대해야 하지 않겠는가? 선을 닦음에 따라 에너지장도 끊임없이 밖으로 확장됐고, 자비의 힘도 확대됐다.

바로 이렇게 하나에서 열로, 열에서 백으로 갈수록 널리, 갈수록 똑똑하게 전했고, 수많은 사람, 각 업종에서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는 서예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돈을 받지 않고 따진 적이 없으니 스스로 찾아와 ‘삼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주: 이 원고는 밍후이왕 2017년 11월 25일 자 <자신의 진상 알리기 길을 걷다> 중에서 발췌한 것임.)

4. 대법 수련으로 새로운 삶을 얻은 장애인들

1) 지린성 지린시의 하지가 망가진 장애 여공 장아이민이 대법 수련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다

나는 장아이민이며, 42세(주: 2004년)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중국 철도부 선양 철로국 지린 분국 지린 서역에서 화물을 담당하는 하체가 없는 장애 여공이다.

1997년 6월 14일, 나는 생명을 가볍게 여겨 자살을 하려다가 우연히 녹음테이프 4개를 듣게 됐다. ‘진선인(眞善忍)’이 내가 갈구하던 것이란 생각만 들었고, 오랜만에 듣는 친근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때부터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접고 한번 배워보기로 결심했다.

단지 연공하고, 가부좌하고, 책을 보면서 매일 잠자고, TV 보는 한가한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3개월도 안 되어 의심하기 좋아하고 원망하는 마음과 심장병, B형 간염, 췌장염, 편두통(왼쪽), 요통, 생리통, 경추 디스크, 오십견, 양손 엄지부터 세 손가락으로 연필을 잡으면 마비되어 감각이 없어지는 것과 동상, 어른이 되어 뒷등이 꺼지고 차갑고 쑤시는 것, 환절기만 되면 3일 전부터 양 다리 끝에 쥐가 나는 것, 화가 나면 밤낮으로 밖에서 돌아다니는 등의 고질병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믿지 않고 자신 만을 믿던 내가 건성으로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도 직접 수많은 대법의 신기한 현상을 겪었으며, 이것이야말로 금생의 목적임을 알았다.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은 모두 정말이며, 파룬따파의 ‘진선인(眞善忍)’이야말로 진정한 진리다.

2) 허난성 신샹시 장애 여성 마쑤즈가 대법 수련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다

나는 마쑤즈이며, 마쑤전으로도 불린다. 이건 문화혁명 시기에 정부가 내 호적에 이름을 잘못 적어 생긴 일이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1961년 1월 3일에 태어났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예방주사를 잘못 맞아 하체가 마비됐다. 집안이 가난한 데다 정말 설상가상이 되었고, 제때에 치료하지 않아 일어설 수는 있었지만, 결국 왼쪽 다리 장애라는 후유증이 남았다.

당시 의사가 예방주사 부작용 때문이라고 했지만, 이런 나쁜 결과에 대해 정부로부터는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어려서 길을 갈 때 항상 넘어져 양쪽 무릎에는 늘 오래된 상처 위에 새 상처가 있었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의 놀림을 수없이 받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또 급성 이질과 신장염에 걸렸는데, 내가 1997년 대법을 수련하기 전까지 두 병이 남긴 후유증(만성 장염과 요통)은 줄곧 20여 년 동안 나를 괴롭혔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병세는 갈수록 나빠졌고, 항상 불면증, 두통, 난소 낭종, 그리고 심장 우방실에 혈류가 막히는 고통 등에 시달리면서 너무나 괴로워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화를 잘 내며, 모순이 많았고, 부부 사이의 다툼은 갈수록 격렬해졌다.

1997년 여름, 나는 운 좋게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진선인(眞善忍)’으로 자신을 단속하려 노력했고, 사부님께서는 나의 몸에 있는 각종 불치병을 뿌리째 청리해 주셨다. 이전에 내가 건물에 올라갈 때는 오른쪽 다리만 사용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지만, 현재 나는 양쪽 다리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 1997년 법을 얻고부터 원고를 쓰는 지금까지 십몇 년 동안 나는 병원에 간 적이 없고 약을 먹은 적이 없다. 다섯 살 남짓한 어린 외손자까지 감화되어 똑똑하고 건강하며 지금까지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은 적이 없다.

한 사람이 수련하면 온 가족이 이익을 얻는다는 말은 정말 빈말이 아니었다. 우리 집에는 또 대법 속에서 이익을 얻은 신기한 이야기가 아주 많은데, 참으로 천만 언어로도 사부님의 은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나는 이전에 시어머니(이미 돌아가심)와 모순이 있었는데,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대법을 배운 후에 달라진 것을 보시고 말했다. “얘야. 누구도 너를 잘 가르치지 못했는데, 너희 사부님(리훙쯔 대사님을 지칭)께서 너를 잘 가르치셨구나.” 대법 수련을 통해 나는 신체가 건강하고, 가정이 화목하며, 직장에서도 더 이상 병이나 일로 휴가를 내지 않는다. (이전에는 늘 병가를 냈다.)

3) 산둥성 기상국의 오른팔 마비 장애인 노동자 레이훙이 대법 수련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다

나는 장애인인데, 생후 6개월에 영아 반신불수에 걸려 오른팔 전체가 마비됐다. 학교에 가고, 글을 쓰고, 빨래하고, 바느질하고, 아이를 돌보고, 업무를 보는 등 모든 일에 왼팔 하나를 사용했다. 30여 세가 넘어서는 왼팔의 피로가 더욱 심해졌는데, 빈 그릇도 못 들고 왼팔을 탁자에 놓았다가 아예 들어 올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불이 미끄러져 내려가면 춥고 아팠는데 발로 조금씩 쓸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전화 교환대 당번이 되면 단지 서서 팔로 조작을 하면서도 동료에게 말하지 못했고,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워했다. 나는 또 기관지염, 심장병, 위통을 앓았다. 중년이 되어서는 웃어른이 있고 아이(딸은 열 살, 아들은 겨우 몇 살)가 있었다. 양팔이 힘을 잃는 것을 보면서 지금까지 자립을 위해 애쓰던 나에게 떨칠 수 없는 자살 충동이 일어났다.

1996년 12월, 나는 ‘전법륜’ 한 권을 얻었고, 1997년 상반기에 국(局)에 있는 연공장에서 연공을 했다. 파룬따파 수련을 통해 나는 더욱 선량하고 너그럽고 성실해졌으며,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일에 대해 원망하지 않고,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더 이상 지각과 조퇴를 하지 않고, 따지지 않았다. 법을 배운 후에는 스스로 엄격하게 요구한다. 이전에는 노인이 나를 돌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수련 후에는 될수록 노인의 재물을 바라지 않고, 노인을 더욱 공경한다. 그들은 늘 철이 들었다며 나를 칭찬한다. 나는 오락 장소에 전혀 가지 않으며, 부부간에 다투고 신경 쓰며 힘들게 살던 생활을 끝내고 화목하고 따뜻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고부터 나는 심신에 커다란 이익을 얻었고, 사람이 단지 물질 이익을 얻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을 위하고 자신을 수련하고 정확한 관념과 품행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자기 단속 능력을 얻었고, 생활 태도도 아주 신중해졌다. 신체는 건강하고 가벼우며, 십여 년 동안 약을 한 알도 먹지 않았고, 한 번도 병원에 간 적이 없다. 사상이 맑고 깨끗하며, 생활이 평안하다. 이 모든 것이 장애인인 나에게는 바로 살길을 얻은 것이며,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이다. 나는 구도해 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린다.

5. 허베이 장애인 정룽창이 대법 수련으로 건강을 얻다

정룽창, 허베이성 리현 청관진 왕좐촌 사람이며 1998년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는데, 연공 전에 여러 질병을 앓았다. 오른 눈 속눈썹이 반대로 휘어져 두 차례 수술을 받았고, 나중에 녹내장에 걸렸는데, 발작을 하면 삼차신경과 얼굴 반쪽 통증이 따랐고, 목이 경직되어 두통을 참기 어려웠고, 구역질과 구토가 나타났다. 급격한 시력 저하로 물체가 똑똑히 보이지 않아 책, 영화, TV를 볼 수 없었고, 강한 빛의 자극을 무서워하는 등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 그는 또 치루와 요로 감염 등의 질병을 앓았으며 자주 발작을 일으켜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 감기에 자주 걸리고 엉덩이에 치료받지 않는 만성 좌골 창이 생겼다. 가난 때문에 치료할 돈이 없어 상처에서 고름이 흘러내렸는데, 좋았다 나빴다 하면서 오랫동안 낫지 않았다. 그는 또 왼쪽 종아리 경골에 만성 골수염 후유증이 있어 왼쪽 다리의 움직임에 제약이 있었다. 걸터앉지 못하고, 무릎을 구부리지 못하고, 허리를 굽히지 못하고,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면 아파서 불편했고, 오랫동안 서 있으면 넓적다리에서 통증을 참을 수 없어, 걸을 때는 절뚝거렸다.

이렇게 여러 질병을 앓고, 노동 능력을 거의 상실했던 사람이 그래도 집안의 주요한 일꾼이었다. 그의 아내는 정신이 완전하지 못한 사람으로, 딸이 어렸을 때 집안일, 밭일 등 모든 일을 그 혼자서 해야 했다. 이렇게 고질병을 앓는 사람에게 인생의 쓴맛과 고생은 배가되었고,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정룽창은 몇 가지 기공을 연마했지만, 모두 효과를 보지 못하고 많은 돈을 썼다.

정룽창은 파룬궁을 수련한 후, 몸에 있던 모든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몸이 나른하고 기운이 없었는데 지금은 정력이 넘치고 정신이 맑아서 무슨 일을 해도 힘들지 않다. 어떤 일을 하든 피로를 모르고, 생활에 대한 믿음과 활력이 가득하다. 이런 거대한 변화는 그로 하여금 사부님과 대법에 충심 어린 감사를 드리게 했다. 그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하며, 일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도덕성이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수련을 하면서 정창룽은 끊임없이 ‘진선인(眞善忍)’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자신의 결점과 잘못을 바로잡았다. 예전에는 이익 앞에서 늘 다른 사람과 다투었고, 모순 앞에서 자기를 안으로 찾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고, 남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특히 이전에 그는 아내를 좋지 않게 대하면서 늘 아내의 무능하고 무기력함을 원망했으며, 그녀를 대신해서 집안일을 꾸릴 수 없다는 등 늘 그녀에게 화를 내고 욕을 했다. 수련 후, 그는 아내를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일을 저질러도 그녀를 용서하고 가엾게 여겨 참아내며 다시는 그녀에게 화내고 욕하지 않았다. 이는 모두 그가 대법을 수련한 후에 나타난 거대한 변화다. 그는 대법을 끝까지 굳게 수련하고, 스스로 엄격하게 요구하며, 자신을 더욱 순수하고, 더욱 선량하며, 더욱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6. 대만 타이둥의 소아마비 환자 천펑메이가 들려주는 수련 심득 이야기

나는 천펑 메이이며 타이둥에서 왔고, 47세(2005년 현재)다. 직업은 재봉사이며 법을 얻은 지 여러 해가 되었다. 여러분들은 내가 반드시 지팡이를 짚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을 보았는데, 사실 나의 심신은 자유롭고 행동이 자유자재며 외적인 신체의 제한을 전혀 받지 않는다. 이는 모두 파룬따파를 배운 후 심신에 이익을 얻은 결과다. 다음은 내가 여러분에게 보고하는 나의 수련 심득 체험이다.

1) 세 살 때 병에 걸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다

세 살이 되었을 때 한차례 고열이 나타난 후 소아마비에 걸렸다. 그때부터 움직일 때는 지팡이가 필요했고, 행동이 불편했으므로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더 이상 진학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특기를 가지고 장래에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재봉을 배우게 했다. 4년의 견습생과 20여 년의 재봉사 생활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지나가 버렸다. 비록 행동은 불편하지만, 전문적인 솜씨는 나에게 안정적인 수입과 의식이 부족하지 않은 안정된 생활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생활은 조용해 보여도 나는 누구를 위해 사는지, 왜 사는지가 늘 당혹스러웠다.

당시 나는 장애인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종교집단과 접촉해 영혼의 위로를 구했다. 하지만 늘 보이지 않는 간격이 있어 나로 하여금 도저히 들어갈 수 없게 하고, 생활도 예전처럼 막연하고 곤혹스러운 속에 있었다.

2) 기쁘게 대법을 얻어 안개 걷힌 푸른 하늘을 보다

기억으로는 2001년 1월이었는데, 오빠가 먼저 파룬궁과 접촉한 다음에 나에게 ‘전법륜’을 보라고 소개했다. 나는 1주일 안에 굶주린 사람처럼 한 번을 모두 읽었고, 마음속으로 이것이 바로 내가 기대하던 것임을 홀연히 깨달았다. 이런 느낌은 많은 수련생이 깊이 체험했을 것이라 믿는다. 그때부터 내 수련의 길이 시작됐다.

수련에는 법공부, 마음 닦기, 그리고 연공이 요구된다. 나는 법의 진귀함을 알았고, 나에게 법공부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비록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책을 한 번 한 번 읽으니 한 층 한 층의 베일이 벗겨지는 것 같았고, 법리가 한 차례, 또 한 차례 나의 명백한 일면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연공은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연공 비디오를 보고 스스로 배운 데다 지팡이 없이는 일어설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소파의 팔걸이에 기대어 연공을 연마하려 했다. 처음 연공을 배울 때는 연공 중에 사부님의 영상을 보며 정확한 동작을 배웠다. 얼마 동안 연공한 후 한 번은 포륜을 하는데, 뜻밖에도 손 안에 연꽃과 파룬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깊이 절감했다. 또 한 번은 연공을 하는데 다른 공간의 내가 지팡이 없이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이 보였다. 나는 격동되어 눈물을 흘렸는데,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하시는 것이므로 더욱 견정하고 실속 있게 수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3) 마음을 고쳐먹고 의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장애를 보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지팡이 짚는 것을 배웠고, 부모님은 나를 다른 아이와 똑같이 대하면서 학교에 보냈고 가사를 분담하게 했다. 나는 장애 때문에 잘 하지 못하자 부모님을 원망했다. 그러나 철이 든 후 친구들이 모두 깡충깡충 뛸 수 있는데, 나는 행동이 불편한 것을 보고 하늘의 불공평을 원망하는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특히 뜻대로 되지 않고, 못마땅할 때 그런 마음이 더욱 강렬했다.

대법을 배운 후 사부님의 말씀을 들었다. “우리 인류가 오늘날 이런 정도로 발전하기까지는, 사람마다 거의 모두 업이 구르고 굴러서 온 것이며, 사람의 몸에는 모두 상당히 큰 업력이 있다.”[1] 나는 내가 이런 방식으로 이전에 빚진 업력을 갚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담담하게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더욱 성실하고 착실하게 자신을 잘 닦으며 시간을 보냈다.

한 번은 오빠가 인터넷에서 수련생이 적은 심득 체험 한 편을 찾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대륙 동북의 한 장애인이 법을 얻고 수련한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정진하며 실속 있게 수련하고, 진상을 알려 박해를 저지했다. 대법은 그의 몸에도 신기한 위력을 펼쳐 보였다. 이 문장은 나에게 상당히 큰 감동을 주었고, 내가 이 대법을 얻은 것이 커다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사람이 나처럼 기연으로 법을 얻기를 희망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12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신수련생마당>병을 고친 이야기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8/12/3/377928.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