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정념정행하고 절대 사마를 키우지 말아야 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정법은 이미 최후의 최후 시기에 이르렀고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시간은 매우 소중하다. 대법제자는 속인사회의 수련환경에 따라 최대한도로 속인과 같음을 유지하고 직장, 가정 및 이웃 간의 관계를 평형하고 또 매분, 매초를 다그쳐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 사마(邪魔)가 빈틈을 타 교란하고 법을 실증하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어떻게 정념정행 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나는 법을 실증한 일부 깨달음을 써내어 수련생과 교류해 공동으로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려 한다.

1. 제일 강한 주의력으로 집중해 대법을 통독하면 정념이 법에서 생긴다

나는 비록 다른 공간을 보지 못하지만 ‘전법륜(轉法輪)’ 매 글자의 배후는 모두 층층이 불도신(佛道神)과 사존의 법신이라는 것을 견정하게 믿는다. 이 때문에 대법을 통독할 때면 나는 머릿속에 절대 한 가닥의 잡념도 나타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제일 강한 주의력으로 집중해 대법을 통독해 글자마다 마음에 들어오게 한다. 간혹 나는 마치 몸이 고정된 것 같고 온몸에 열이 나고 에너지가 매우 강하다.

매일 이렇게 대법을 2~3강 통독하면 발정념을 하든, 진상을 알리든, 정념정행 중에서 정념이 갈수록 견정(堅定)하고 갈수록 강해진다.

2. 속인의 사유를 철저히 개변하고 절대로 사마를 키우지 않는다

속인의 사유는 관성이 형성되면 완고하고 또한 즉시 느끼지 못한다. 때문에 대법제자가 주의하지 않으면 파괴력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마(邪魔)를 키워 빈틈을 타 교란과 파괴를 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셨다. “장기간 대법(大法) 중의 중생, 특히 제자는 법에 대해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방면에서 일종 부동한 층차의 오해가 줄곧 존재하였다. 매번 마난(魔難)이 닥쳐올 때, 본성(本性)의 일면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완전히 사람의 일면으로 이해한다. 그럼 사악한 마(邪魔)는 이 점을 이용하여 끝없이 교란하고 파괴함으로써, 수련생으로 하여금 장기간 마난 속에 빠지게 한다.”[1]

법은 심성을 제고하는 방면에서 끝없는 법력을 구비하고 또한 장엄하고 신성하다. 어떠한 심태로 직면하는가는 특히 중요하며 이것은 우리가 속인의 사유습성을 철저히 개변해 강대한 정념으로 대체할 것을 필요로 한다. 속인의 천백년이래 형성된 사유관성은 바람이 풀잎에 스치기만 해도 흔들거린다. 머릿속에서 통제받지 않고 앞뒤를 생각하며, 심지어 법공부 중, 연공 중, 발정념 중에서 발생한다. 간혹 이런 생각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듯하다. 특히 마난 중에는 더욱 돌출하고 완고하다.

대법제자의 일사일념은 모두 강대한 에너지를 구비하고 있기에 산생된 검은 물질은 사마를 키울 뿐만 아니라 사마가 대법제자를 끝없이 교란하고 파괴하는 필연이 되었다. 정법의 후기에 사마는 이것으로 박해를 가중할 약점으로 삼았다. 사존의 법신과 바른 신은 모두 어찌할 도리가 없다. 왜냐하면, 대법제자 본신이 ‘요구’한 것이거나 혹은 키운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도(大道)는 지극히 간단하고 쉽다. 우리는 통제받지 않고 나타난 이런 일사일념을 대법으로 가늠하고, 법의 요구에 부합되는지 보면 된다. 예를 들면 발정념할 때 사존께서는 우리에게 강대한 염력을 집중하고 순정한 심태를 유지하라고 요구하셨다. 그러면 발정념할 때 나타나는 어떠한 염두든 바로 교란과 파괴다. 그러면 법공부하고 연공할 때 역시 이렇지 않겠는가? 명백해진 후 즉시 자신의 정념을 강화해 강대한 정념으로 이런 사유와 염두를 제압하고 배척했다. 흔히 이러할 때 나는 전신에 열이 나고 에너지 마당이 강대한 것을 느낀다. 사마는 해체되거나 혹은 달아날 몫만 남았다.

어느 날 정오, 퇴근하고 집으로 가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사존의 경문 ‘도법’을 외웠다. 아파트 단지 길목에 도착했을 때 경찰차 한 대가 보행도로에서 나를 향해 천천히 오는 것을 보았다.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두려운 염두가 나타났다. 이 순간 나는 이것은 나의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즉시 정념을 강화하고 강대한 정념으로 사유를 통제했고 웃음 띤 얼굴로 걸어갔다. 경찰차는 멈추지 않고 몸을 스칠 듯이 지나갔다.

이튿날 정오, 나는 주방 창문으로 그 경찰차가 아파트 아래에 멈춘 것을 보았다. 나는 여전히 강대한 정념으로 자신의 사유를 통제했다. 정오에 나는 침대에 누워 마음속으로 사존의 경문 ‘도법’을 외웠다.

출근할 때 아내(파룬궁을 수련하지 않는다.)와 외출했다. 아내는 경찰차를 보고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강대한 정념으로 자신의 사유를 통제하고 상화한 미소를 지으며 아내 앞에서 정정당당하게 경찰차를 보면서 걸었다. 이때 극적인 장면이 나타났다. 경찰차는 갑자기 액셀을 밟으며 도망갔고 차 안의 사람은 마치 매우 무서운 광경을 본 것 같았다. 나는 웃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보았나요, 일정압백사(一正压百邪)!”

3. ‘청정심’을 유지하고 사람의 상태를 벗어나다

사부님께서는 이런 한 단락 법을 말씀하셨다. “언젠가 한번 나는 나의 사상을 층차가 극히 높은 네댓 명 대각자(大覺者)ㆍ대도(大道)와 한데로 연결했다. 그 높음을 말하자면 속인이 볼 때는 그야말로 높아서 놀랄 정도다. 그들은 내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알려고 했다. 나는 수련을 이렇게 오랫동안 했으므로, 다른 사람이 나의 사상을 알고자 함은 아예 불가능한 것이며 다른 사람의 공능은 전혀 들어올 수 없다. 누구도 나를 알아낼 수 없으며, 누구도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낼 수 없다. 그들이 나의 사상활동을 요해(了解)하고자 했기에, 그들은 나의 동의를 거쳐서, 어느 한 단계 나의 사상을 그들과 연결했다. 연결한 후 나는 좀 견뎌내기 어려웠다. 나의 층차가 얼마나 높든지 또 나의 층차가 얼마나 낮든지 간에 나는 속인 중에 있고, 나는 아직 유위(有爲)적인 일, 사람을 제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마음은 사람을 제도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그 마음은 어느 정도로 고요한가? 고요하기가 두려울 정도까지 이르렀다. 당신 한 사람이 이런 정도로 고요하다면 그래도 괜찮은데, 네댓 사람이 거기에 앉아 모두 그런 정도로 고요하고, 마치 깊은 못의 고인 물(一潭死水)과도 같이 아무것도 없어, 내가 그들을 감수(感受)하려고 해도 감수할 수가 없었다. 그 며칠 동안 나는 정말 마음속으로 아주 괴로운, 그런 기분을 느꼈다. 우리 일반인은 상상하지 못하며 감각할 수 없는 것으로서, 완전히 무위(無爲)이며 텅 빈 것이었다.”[2]

매번 ‘전법륜(轉法輪)’을 통독하며 이 단락 법을 읽을 때 나는 늘 ‘고요한’ 상태에 나타나는 거대한 법력이 마음을 울렸다! 우리는 정념정행 중,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서 사상 중에 시시각각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면 아마 우리가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을 잘하는데 더욱 유리할 것이다.

간혹 무엇을 준비할 때, 진상을 알릴 때, 어떻게 진상을 알려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상황이 나타나면 어떻게 대응하겠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법공부할 때, 발정념할 때도 오후에 누구에게 진상 알리는 일을 생각한다. 그러나 진상을 알릴 때 이런 생각의 교란을 받아 정념이 부족하고 사람을 구하는 효과를 일으키지 못했다.

후에 법공부하면서 명백해졌다. 이것은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며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인식한 후 나는 시시각각 정념으로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고 진상을 알리자 정념이 충족하고 말투가 자연적으로 온화하게 변했다. 법에서 온 지혜는 상대방의 선한 염두를 계발하고 도리는 사람을 충심으로 기쁘고 탄복하게 했다.

사부님께서 명시하셨다. “주의하라. 나는 당신들에게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당신들이 법리(法理)를 알게끔 할 뿐이다. 이 방면의 인식이 똑똑해야 한다. 사실 대법(大法)은 단지 사람만 제도하는 것이 아니다. 역시 각계 중생에게 말해 주는 것으로, 깨달은 본성은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것이다. 당신들 사람의 이 일면을 애호(愛護)함은 당신들에게 법에서 깨우치게 하는 데 있다.”[1]

때문에, 우리는 인위적으로 어떠어떠하게 하겠다는 상태를 철저히 개변하고 시시각각 하나의 ‘청정심’을 유지하고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야 하며, 정념정행, 착실히 수련하는 중에서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람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인의 체득과 깨달음이며 타당하지 않은 곳은 자비로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정진요지-도법(道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8년 12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5/3780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