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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끊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어서 바로 쉽게 화를 낸다. 수련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조금은 고쳐졌지만 20여 년을 수련한 노제자로서 일에 부딪히면 여전히 주의하지 않아 폭발하는 바람에 자신도 너무 형편없이 수련했다고 느꼈다.

어떻게 해야만 이 ‘화’를 제거할 수 있는가? 사부님의 설법을 반복적으로 통독하자 나는 점차 깨달았다. 성질이 나쁜 것은 심성문제에 그 본질이 있으므로, ‘화’를 끊으려면 마음을 닦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지 않고, 화를 강제로 억누르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제고함으로써 내재적으로 거대한 본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힘에 의거하고 외재적인 강대한 요소의 도움을 빌린다면, 이는 영원히 당신 사람의 본질을 불성(佛性)으로 전변시킬 수 없다.”[1] 사부님은 ‘전법륜(轉法輪)’ 마지막에 또 우리에게 신신당부하셨다. “여러분은 금후 수련 중에서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간주하여 진정하게 수련해 나가기를 희망한다. 나는 신, 노(新老) 수련생이 모두 대법(大法) 중에서 수련할 수 있고, 모두 공성원만(功成圓滿)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여러분이 돌아가서 시간을 다그쳐 착실히 수련하기를 희망한다.”[2] 나는 실제생활 속에서 항상 어디든지 자신을 잘 수련하기로 결심했다.

1. 원래는 집착심이 장난친 것이다

올해 새해 전에 나는 노년 서화회에 한 폭의 글씨를 제출했는데 스스로 좋다고 여기고 틀림없이 전람회에 전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준비팀 팀장이 나에게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작품은 괜찮은데 아쉽게도 틀린 글씨가 있어 선정할 때 떨어졌어요.” 그래서 나는 “틀리면 고쳐 쓰면 되는데 왜 나에게 고치라고 알려주지 않았나요?”라고 말했다. 매우 열성적인 팀장은 주동적으로 나에게 담당자를 연락해 주었다. 담당자는 “선택된 작품들은 평가된 이튿날에 이미 표구를 포장해서 부쳤거든요. 시간이 촉박해서 당신에게 미처 통지하지 못했는데 당신의 작품은 지금 고쳐도 이미 늦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듣고 나서 마음속으로 ‘화’가 났다. 예전에 내가 책임질 때에는 심사에서 불합격 작품은 모두 작가에게 통지하여 수정하거나 다시 써서 추가한 다음 표구를 포장해서 함께 부쳤다. 옆에 있는 한 회원은 나를 대신해 불공평함을 호소했다. “당신의 글씨는 내가 특히 좋아해서 매번 전람회에서 핸드폰으로 당신의 글씨를 찍어가지고 천천히 감상하거든요. 내가 당신을 대신해 회장님을 찾아갈 거예요!” 그 회원은 상무 부회장을 찾아갔는데 그 회장은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담당자에게 다시 표구를 나에게 보낸 다음 고치고 와서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에 참가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저녁이 되자 나의 마음이 차분해졌다. 연공인은 무슨 일에 부딪혀도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했다. 방금 내가 왜 화를 냈을까? 한차례 서예 작품을 전시할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왜 서예작품을 전시할 기회를 잃으면 마음속으로 편치 않는가? 자신이 글씨를 잘 쓴 만큼 떨어지면 안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세히 분석하자 비로소 스스로 발견하였다. 안에는 명리심, 과시심, 허영심 등 집착심이 감추어져 있었다! 자신이 연공인인데 어찌 이런 것을 추구할 수 있는가? 나는 급히 전화기를 들고 상무 부회장에게 작품을 고쳐서 전시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그의 호의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매우 뜻밖이라면서 “다른 사람들은 전시할 때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놓아도 모두 의견이 있는데 당신은 오히려 담당자의 부주의로 전시 기회를 포기하셔요? 왜요?”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기에 명리를 추구하지 않고 또 늘 다른 사람을 고려해야 하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면서 다른 작품을 이미 다 부친이상 나 때문에 그 회원에게 다시 걱정을 끼쳐드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회장은 듣고 나서 나에게 도량이 넓다고 칭찬하였다. 다른 회원들도 알고 나서 감탄하며 말했다. “모든 사람들은 모두 명리를 위하는데 파룬궁을 연마하는 당신들은 그렇지 않네요!”

2. 사람의 관념에서 벗어나다

나의 큰딸은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을 하였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늘 가정모순이 끊이지 않아 우리가 아무리 설명해도 통하지 않았다. 특히 1999년 7‧20 중공이 대법을 파괴한 후 밖에서 파룬궁에 대해 부정적인 소식이 있기만 하면 그들 가족은 두려워서 딸에게 수련하지 말라고 권했다. 하지만 딸은 수련을 하겠다고 고집하여 그들은 우리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면서 파룬궁은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가르치는가를 말하면서 나의 딸은 대법의 요구에 따라 욕심을 부리지 않고, 속이지도 않고, 도박도 하지 않고, 시부모님께 효도하고, 남편을 돕고 아이를 가르치는데 왜 나쁜가 라고 말했다. 그들도 내 딸이 좋다고 인정하지만 수련은 안 된다고 하며, 아무리 말해도 통하지 않았다.

어느 한 번, 큰 사위는 갑자기 친지 모임에서 난리를 피웠다. 내가 큰딸을 나쁘게 가르쳤다고 하면서 그들 가족에게 하루라도 편한 날이 없게 만들었다고 했다……. 기세 사납게 너무 갑작스레 말하는데 내가 어찌 이런 화를 넘길 수 있겠는가? 대뜸 ‘화’가 일어나 얼굴 붉히며 “자네는 양심이 없네!”라고 고함쳤다. 큰 사위는 멍해져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친지들도 조용해지더니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졌다.

일이 벌어진 후 나는 매우 낙심했다. 왜 심성을 지키지 않고 또 화를 냈을까, 어디에 잘못이 있을까? 표면적으로 보면 자신이 대법을 수호하고, 큰딸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대법이 이렇게 좋고, 대법을 수련하는 딸이 이렇게 좋은데 당신들은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이렇게 나와 딸을 대하다니, 마음속으로 몹시 불공평하여 ‘화’도 폭발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역시 ‘사심(私心)’인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2] 정말로 그렇다. 모순 중에서 자신의 집착을 찾았을 때 심성이 제고되고, 사람의 시비 관념 중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비한 마음으로 문제를 볼 때에는 다시 사위 가족을 대면해도 원망과 불평이 없어져, 그들을 중공의 거짓말 속임수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자 사위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빙그레 웃으며 나와 인사했다.

3. 어린 외손녀도 나의 수련을 도와주다

나의 네 살배기 어린 외손녀가 막 우리 집에 왔을 때, 아내는 그가 밥을 늦게 먹는 것을 보고, 또 그가 배불리 먹지 못할까봐 바로 먹여 주었다. 겨우 몇 번 먹여주었더니 이 아이는 의존심이 생겨 매번 먹여 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 나중에는 더 발전하여 놀면서 먹는 바람에 한번 먹여주는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내는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어린 손녀를 응석받이로 키웠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에게 그를 가르쳐서 그가 혼자 밥을 먹게 도와달라고 했다.

처음엔 내가 그에게 밥을 갖다 주면서 혼자 밥을 먹으라고 했을 때 그는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에게 이치를 말하면 그는 울고불고 하다가 밥을 먹었다. 두 번째에 그는 또 말을 듣지 않고 울고불고 하면서 이치를 말해도 듣지 않고 기어코 먹여달라고 했다. 이전에는 벌써 화가 나서 손이 올라가고 또 때리고 욕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3] 나는 연공인이기에 ‘인(忍)’을 닦아야 하고 심성을 제고해야 한다. 나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20분쯤 지나서 다시 그에게 권하자 그는 마지못해 먹었지만 불복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문뜩 생각났다. 이 어린 외손녀가 나에게 이러는 것은 바로 내가 참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려고 나를 고험하는 것이다. 나는 ‘인’과 심성제고에 관한 사부님의 경문을 찾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이런 법리에 대해 더욱 깊이 깨달았다.

과연, 세 번째에 그에게 혼자 밥을 먹으라고 했을 때 그는 목이 쉬도록 계속 울고불고 하였는데 어떻게 말해도 듣지 않았다. 그의 울음소리에 나는 짜증이 나서 가슴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고 화를 내지 않았다.

이때 맞은편에 앉아있던 며느리가 갑자기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 “또 그에게 양보해요! 만약 나의 딸이라면 오늘 진작 집밖으로 끌어내서 한바탕 때렸을 것이에요.”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즉시 나와 한바탕 크게 싸울 태세였다. 이것은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내가 화를 내고 싶어 무심결에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순간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우리 연공인(煉功人)에게는 모순이 갑자기 생길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이 평소 늘 자비로운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2] 이상하게도 바로 그 순간에 나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이전에 성질이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깨달았네. 아이를 교육할 때 때리고 욕해서는 안 되며 방법을 강구해야 하네. 내가 어떻게 고치는가 보게!”

이렇게 곧 일어날 것 같은 풍파가 가라앉았다. 어린 외손녀도 울지 않고 떠들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이것, 저것을 보면서 혼자 밥그릇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나의 이 ‘화’가 마침내 제거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화를 끊는’ 것은 사실 바로 심성 수련이고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법공부하고 마음을 닦아 끊임없이 제고함에 따라 나의 심리상태도 점점 평온해지고, 심경도 점점 청정해졌다. 또 갑작스런 심리 충격과 심각한 심성 교란에 직면하여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

최근의 한차례 동료 모임에서 한 옛 동료는 참지 못하고 감탄하며 말했다. “현재 당신의 심리상태는 너무 좋아요!”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동료의 입을 빌려 나를 격려해주신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수련의 길에서 나와 정진하는 그런 수련생들과 비교하면 아직도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을 더욱 잘 안다. 하지만 나는 절대 나태해지지 않고 끝까지 수련하여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고하는 말(警言)’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법해’

 

원문발표: 2018년 12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4/3777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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