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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닦다

글/ 산둥(山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은 아는가?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환경, 어떤 상황 하에서든지 부닥칠 수 있는 그 어떤 시끄러움과 좋지 않은 일, 나아가 당신들이 대법(大法) 일을 위해 더없이 좋고 더없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일까지도, 나는 모두 당신들의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고 당신들의 마성을 폭로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데 이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제고만이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1]

최근 컴퓨터를 수리하는 기술 수련생과 만나는 과정에서 저의 집착심이 크게 폭로되었습니다.

인연이 닿아 저는 현지의 기술이 뛰어나고 열정적인 한 노년수련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먼 거리를 극복하고 와서 저의 기계를 수리해주었습니다. 사유가 민첩하고 성격이 어린 아이처럼 활발하고 귀여워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한 번, 나는 미안해서 그에게 물건을 좀 주었는데, 뜻밖에 다음번에 만날 때 그는 아주 불쾌해했습니다. 마치 그에게 물건을 준 행위가 그에게는 일종 ‘모욕’과 같다는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저도 사람 마음이 올라왔고, 오해 때문에 생긴 상처 때문에 각종 사람 마음이 움직였고 다쳤습니다. 저는 아무런 해석도 하기 싫었기에, 결국 둘 다 상대방을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일이 지난 지 며칠 되었지만, 늘 머릿속에 떠올랐고, 이런 결과는 정말 초심과 완전히 어긋났습니다. 몇 년 동안 현지의 익숙한 수련생들은 서로 물건을 주고받았는데 여기에는 생활조건이 좋은 수련생도 있고, 일반적인 수련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 기분이 좋고 만족했으며, 누구도 이런 행위를 남을 얕잡아 보거나 과시한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왜 이렇게 됐는지?

수련자로서 모순이 온 것은 크게 좋은 일이고 반드시 제고해야 할 요소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대체 문제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발정념을 한 후 마음을 고요히 하고 일의 자초지종을 정리해보았습니다. 그제야 놀랍게도 처음부터 모두 제 잘못이라는 것을 발견했고, 다만 어떤 사람 마음과 관념은 이미 자연스럽게 되어, 저조차 찾아내지 못했던 것뿐이었습니다.

이전에 저와 기술 수련생은 서로 잘 알지 못했고, 물건을 줄 때에도 그가 당장 떠나려고 할 때, 받지 않으려고 할 때, 억지로 밀어 넣은 것이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제대로 소통하지 못해 일어난 오해였지만, 그건 가상에 불과했고, 분명 사람 마음이 사람 마음을 불러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깊이 찾아서야 문제의 본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수련생의 생활 조건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얼핏 알고는 있었지만, 아버지 세대의 사람들은 모두 저의 아버지처럼 평생 검소하게 사시고, 돈이 있어도 쓰지 않는 ‘골동품’이라고 여겼습니다. 저의 이러한 관념을 진일보 해석하면, 저는 아버지의 이런 ‘골동(古董)’식 소비관념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잠재의식 중에 그럭저럭 기계를 사용할 수만 있으면 계속 수리해 쓰고, 버리기 아까워하는 수련생의 행위를 대법 자원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 여기기는커녕 못마땅하게 여기며, 노인들은 정말 바보 같고 왜 귀찮은 일을 스스로 사서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당시 기술 수련생이 떠나갈 때도 저는 이런 관념을 갖고 곧 명절이 오기에 본인이 돈 주고 사지 않을 물건을 주려고 했습니다. 비록 스스로는 고마움을 표시한다고 생각했지만, 과정 중에서 노인들이 돈 쓰기 아까워하고 생활할 줄 모르는 행위 관념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제가 생활할 줄 알고 사는 게 소탈하다고 여기는 등 잘난 체 하는 요소들이 자기도 모르게 드러났습니다. 이런 것들은 깊이 찾아보지 않으면 저조차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수련자들은 모두 민감하기에 쉽게 불순한 일부 요소들을 느껴 당신의 행위에 대해 거부감이나 반감을 느끼는데 이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이것이 어디 오해인가요? 분명히 적나라하게 상처를 준 것이었습니다.

수련생이 불만을 표시할 때, 저는 해석하여 형성된 오해를 없애고 그에 대한 상처를 줄인 것이 아니라, 해석하기 싫어하는 성격에 이끌러, 어떻게 생각하든 상대방 마음대로 하라고 여겼습니다. 억울한 마음,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마음, 쟁투심 및 쟁투심으로 인한 과시심 등 마음이 다 올라왔습니다. 또한 저에게 여전히 아주 강한 관념과 정(情)이 있어 수련생을 백퍼센트 신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 여기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비록 그의 본체가 아주 잘 전화(轉化) 되어 정신 상태든 물질 신체든 전혀 이 연령대 특유의 늙은 기색이 없었지만, ‘예로부터 칠십 인생은 드물다’는 관념에 지배되어 그가 대가 없이 고생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이런 사심 없는 도움은 그 어떤 물질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뭔가를 표시해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이것 역시 선물 행위를 초래한 원인이었습니다. 저는 정상적인 만남이라면 선물을 줘도 괜찮지만, 관념을 섞지 말고 정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또 하나는 저는 줄곧 마음대로 행동했고, 세속의 구속을 받기 싫어하는 성격이기에 남과 만날 때 높고 낮음의 차이가 없고, 사람 속의 권위와 상사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해서도 공경하게 대하지 않았고, 일을 처리할 때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남의 감수를 거의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수련한 후에도 이 방면에 큰 변화가 없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는 지극히 자아(自我)를 고집하는 일종의 표현이었고 법이 요구한 “두터운 德(더)를 갖추었을 뿐더러 그 마음이 착하고, 큰 뜻을 품고서도 작은 일에 소홀하지 않다(懷大志而拘小節)”[2]와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이것 역시 함께 있을 때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낀 원인이었습니다.

사람 마음은 민감하고 미묘하며 또 여려, 갑자기 어떤 환경에서 뛰쳐나올지 모릅니다. 수련자로서 평소 어떠한 상황에서든 모두 주의해 심성을 지키고 심성 중의 약한 고리를 더욱더 주의해야 합니다. 이래야만 모순이 온 순간에 뛰어나온 그 사람 마음을 붙잡고, 이끌리지 않으며, 심지어 그것을 지배하고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번의 심성고비는 제가 남을 얕잡아보는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점으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매번 고비를 넘을 때, 뿌리가 결국 모두 질투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간사하고 겉으로는 그럴듯한 모습을 하든, 모습을 바꾸어 위장을 하든, 층층의 베일을 벗겨내고 흉악한 몰골을 똑똑히 보면 또 그것이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 저는 질투심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그건 완전히 착각이었고 자기도 모르고 그것을 수호하고 키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3]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질투심이 낡은 우주 생명의 위사위아(唯私唯我)한 특성의 한 개 뿌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뿌리에서 다른 사람 마음이 파생되어 나오고,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질투심이 나오면 다른 사람 마음들도 억제되지 못하고 자연히 떠오릅니다. 이 마음을 닦아버리려면 뿌리부터 ‘이기심(私)’을 개변해 선타후아(先他後我)하고 시시각각 상대방의 입장과 각도에서 생각해야 하며, 평소 노력해 생명 본성의 일면이 자신의 일사일념, 일언일행을 주도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홍대(洪大)한 관용(寬容)이고, 생명에 대한 자비이며, 일체를 모두 선의(善意)로 이해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인간의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4] 우리가 늘 이렇게 무사무아(無私無我)하게 법의 표준에 따라 할 때 질투심도 차츰 생존할 수 있는 토양을 잃어 사라질 것입니다.

수련은 지극히 엄숙하고 법에는 엄격한 표준이 있습니다. 누구도 그 어떤 사람 마음을 갖고 사부님을 따라 집에 갈 수 없고, 조사정법의 일을 조금 더 많이 했다고 하여 너그러이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되돌아보니 기계를 수리하는 과정은 더욱더 마음을 닦는 과정으로서 만약 주의해 심성을 닦지 않는다면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아깝게 낭비해버리게 됩니다. 저의 마성(魔性)을 폭로해주시고 닦아버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재인식’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성자’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2-2002년 보스턴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1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24/3771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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