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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속에서 인체를 이용해 수련함을 깨닫다

글/ 베이징 대법제자 퉁화(童話)

[밍후이왕] 저는 올해 56세인 남성으로 수련하기 전에 국가1급 학술간행물 편집을 맡았습니다. 1996년에 대법수련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22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15~16살 때, 머릿속에 늘 사람이 왜 살아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시간은 늘 흐르고 7일이면 일주일, 1년에 12개월, 사람이 50여년, 60여년, 심지어 80년이나 더 오래 산다고 해도 결국 똑같은 도착지인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럼 죽음은 또 무엇인지? 그러면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아닌지? 눈을 감고 생각, 심지어 꿈마저 없는 느낌을 체험해보니 마치 깜깜하고 끝없이 깊은 동굴에 떨어진 것처럼 공포감이 몰려왔습니다…

그럼 사람은 왜 살아있는지? 당시 중국은 ‘문화대혁명’ 말기였고 전통문화가 이미 파괴되었기에, 사회적으로 선전하고 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것으로 어찌 답안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에 관해 3일 동안 밤잠을 자지 않으며 생각했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사람 속의 이른바 행복이란 무엇인지? 여기에 관해서도 생각해보았는데, 다만 한 가지 느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땡볕에 사막을 걷는 목마른 사람이 시원한 물을 마시게 되면 그에게 행복이라 할 수 있지만 시원한 방에서 똑같은 물을 마신 사람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그러한 시원함과 편안함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이로써 행복은 다만 한 가지 느낌으로 사람 신체와 상관이 없고, 빈부·지위와 관계없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고통 역시 이러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생각했던 이러한 문제들은 제가 법을 얻고 수련하여 도(道)를 깨닫도록 사부님께서 준비해주신 것이었습니다…

1. 고덕대법 ‘전법륜’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다

1) 법을 얻다: 사부님께서 수많은 것을 넣어주시다

법을 얻기 며칠 전, 잠잘 때 늘 펼쳐진 책 한 권이 눈앞에 나타났고 안에 글씨도 아주 똑똑했지만 자세히 보면 또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도 어찌된 일인지 몰랐습니다.

1996년 8월 4일, 베이징의 한 책가게에서 책 한권을 보았는데 이름이 ‘전법륜(轉法輪)’이었습니다. 생각 없이 펼치니 ‘논어’가 보였고 말씀이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구매하지 않고 머리를 돌려 열 몇 걸음 멀리 떠나갔을 때 갑자기 무슨 힘이 저를 잡아당겨 되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논어’를 펼쳐보니 다른 곳에서 종래로 본 것 같지 않았고 왜 이렇게 잘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를 돌려 또 열 몇 걸음 걸으니 또 한 갈래 힘이 가지 못하게 저를 잡아당겼습니다. 그래서 책을 청해 집에 갖고 왔습니다.

책을 읽은 후 너무 좋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고 15~16살 때 생각했던 문제와 명백히 알지 못했던 수많은 인생문제, 또한 사람이 왜 살아있는지, 인생의 의의 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루 저녁 8시간을 들여 단번에 다 읽었고 너무 격동되었습니다. 그때 복부에 무슨 물건이 회전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사부님께서 저에게 ‘파룬(法輪)’을 내려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법륜’ 보서에서 말씀하신 수많은 법리와 현상들은 저에게서 진실하고 거짓이 없이 표현되었습니다.

방금 법을 얻어 수련할 때, 길을 걷으면 홀가분하고 온몸에 무게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자신의 생각만 있었습니다. 그 후 며칠 뒤, 온몸 안부터 밖까지 온통 파룬이 회전하고 있음을 느꼈는데 그건 신체를 조절해주는 파룬이었습니다. 자오주천(子午周天), 묘유주천(卯酉周天)이 모두 순환했고 에너지흐름은 약 두 손가락 너비의 크기였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건 머리, 얼굴, 혀, 콧등, 눈 홍채, 귀에 있는 파룬이었는데 이런 파룬들은 커졌다 작아졌다 했습니다. 좁쌀보다 클 때 그것의 회전을 느낄 수 있었고, 더 작아지면 마치 바늘에 찔린 것처럼 살짝 아팠습니다. 혓바닥에도 고리와 같은 것이 움직였습니다.

비록 천목이 열리지 않았지만 ‘전법륜’에서 언급하신 천목에 관한 일부 현상들을 저는 모두 체험했습니다. 방금 가부좌를 하기 시작할 때(그때 방금 책을 다 보고 연공동작을 배우지 못했음) 천목 통로 위치에 흰색 동그라미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달 같았습니다. 그건 다른 공간의 큰 눈으로 본 것이었습니다. 그 눈이 얼마나 큰지는 우리 이 공간의 개념으로 말할 때 3~4미터 크기이고 맑고 예뻤습니다. 두 눈의 통로가 모두 뚫렸고 사부님께서 막아놓으셨지만 꽁꽁 막힌 것이 아니기에 에너지흐름이 안구에서 회전할 때 눈초리에 태양의 흰빛이 새어나갔습니다.

후에 수련과정 중,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숙명통공능을 얘기하실 때 이마부위에 TV와 같은 형광판이 있다는 것에 관해 영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모두 보았습니다.

3~4개월 연공했을 때 어느 한 번 가부좌 중에 정수리위에 한 가닥 흰색투명의 기둥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정수리위에 회전하는 흰색 꽃이 있고 기둥과 꽃의 직경은 머리만큼 두꺼웠습니다.

2) 사람이 연공하지 않고 법이 사람을 연마한다

저의 말초신경이 아주 민감하기에 후에 발생한 일에서 진정으로 무엇이 ‘환골탈태’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몸에서 무엇인가 움직여 아주 불편하고, 심성을 제고해야 했지만 한동안 제고해 올라오지 못했을 때 신체 말초신경이 날마다 아팠습니다.(병적 상태의 업력이 아니었음) 가끔은 천만 마리 개미가 뼈에서부터 밖으로 갉아먹는 것 같아 아픔이 안에서 밖까지 한 바퀴 한 바퀴 확산되었습니다. 주천이 회전할 때 시시각각 사람 속의 물질을 충격했고, 사람 속의 물질이 고에너지물질로 전화될 때 아픔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가끔 하루 종일 책상다리로 가부좌할 때 마지막 5분처럼 여기저기 아팠습니다. 하지만 다리를 펴면 아프지 않았는데 그때는 아직 다리를 올리지도 못했습니다. 아프다가 가부좌할 때의 마지막 5분 상태가 되고, 좀 나아지면 또 가부좌할 때의 마지막 5분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온몸이 업력으로 가득 찬 사람, 평범한 속세의 신체가 금빛으로 반짝이는 신의 몸으로 전화(轉化)할 때 어찌 전혀 감당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이건 사부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크나큰 업력을 감당해주신 후 우리의 수련 제고를 위해 조금만 남겨주신 것뿐입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습관이 되었고 신체 내의 팽창, 마비, 아픔에 익숙해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온몸이 마치 전기가 통한 것 같고, 차갑고, 뜨겁고, 저리고, 무겁고, 돌아가는 등등의 상태가 너무나도 많다. 감각상 모두 당신의 신체로 하여금 아주 괴롭게 한다.”[1]

또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당신이 연공(煉功)하지 못할 때에 공(功)이 당신을 연마(煉)하고, 당신이 연공할 때에도 공은 여전히 당신을 연마하고 있다. 당신은, 식사하거나, 잠을 자거나, 출근해도 모두 공의 연화 중에 있다.”[2]는 부분이 저에게서 증명되었습니다.

3) 사부님께서 관정(灌頂)해주시다

심성이 제고되거나 혹은 한 층의 법리를 깨달았을 때 사부님께서는 저를 관정해주셨는데, 크나큰 에너지가 머리 정수리에서 내려와 온몸에 흘렀습니다. 뼈가 나른해지고 온몸이 녹는 것 같았는데 세인들은 영원히 이러한 행복을 모를 것이고 저 역시 하염없이 행복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때 신체가 텅 빈 것 같고 길을 걸을 때 무게를 느끼지 못했으며 팔과 다리, 머리가 없고 신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으며, 오직 저의 사유만 이 도시의 길에 떠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행복하고 자유자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주 빨리 이러한 상태가 사라졌는데 사부님께서는 수련이 잘 된 부분을 분리해주시고 좋은 물건을 숨겨주셨습니다. 그러자 주천이 회전하는 느낌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4) 주천의 회전

방금 연공을 시작할 때, 두 손가락 너비의 주천을 느꼈습니다. 수련에서 제고함에 따라 이 자오주천, 묘유주천은 갈수록 넓어져 이미 구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즉 신체의 에너지가 에너지띠(能量帶) 형식으로 흘렀는데 가끔 저는 재미로 그것의 회전방향을 마음대로 제어하기도 했습니다.

수련 시간이 길어지자 신체표면에서 에너지는 음면(陰面)에서 양면(陽面) 또는 양면(陽面)에서 음면(陰面)까지 전체 면이 회전했습니다. 또한 신체가 마치 액체로 가득 찬 용기 같았는데 이 액체는 표면을 따라 전반적으로 회전했습니다. 이렇게 밖에 형용할 수 없는데 이 액체가 바로 에너지체(能量體)입니다.

상태가 아주 좋을 때, 에너지가 신체 안에서 천천히 움직였는데 마치 바람이 없고 물살도 없이 고요히 흐르는 강물 같았습니다. 혀는 마치 움직이는 실체 접시(實體盤, 방금 법을 얻었을 때에는 회전하는 고리 같았음), 머리는 왼쪽에서 오른쪽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회전하는 속이 꽉 찬 기둥 같았습니다. 머리의 회전과 혀의 회전은 동시에 진행되었고 위의 이빨과 아래 이빨에 각각 에너지흐름이 회전해 이빨이 팽창하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 이때 회전 방향을 제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에너지흐름이 족심에서 발등까지 전면으로 회전할 때 발가락 안의 에너지 흐름이 아주 강하고 방향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는데 손가락 안의 에너지흐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각 부위의 에너지흐름이 어떻게 회전하든 그것들과 전반 신체의 큰 순환은 모두 같았고 방향 역시 일치했습니다.

사람 마음(업력)이 올라올 때 강이 좁아지고 물의 흐름이 더 빨라지며 에너지가 흐르는 속도도 더 빨라집니다. 사람마음이 더 강해지면 신체 내의 에너지 흐름이 마치 바람이 분 것처럼 험난한 여울이 있고 암초가 있으며 순조롭게 흐르지 못해 물보라가 일고 환류가 있었습니다. 에너지흐름이 이런 부위를 흘러지나갈 때 콸콸 흐르는 소리가 났는데 정말 가로막고 있었습니다.(저 혼자만 들을 수 있음) 이때 표면 신체의 이러한 부위는 불편하고 시큰시큰 쑤시며 아프고 피로함을 느끼며, 남과 모순이 생기면 발정념, 진상을 알리는 효과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수련생과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신체는 이미 아주 초상적이고 다만 당신이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신체 어디가 불편할 때 전혀 ‘병’이 아니라 모두 업력으로서 그것이 전화(轉化)하려 하고 공이 자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안으로 닦고 안으로 찾아 사람 마음을 닦아버리는 것이 근본입니다.

최근 밍후이왕에서 79세 수련생이 쓴 한 편의 문장 ‘신사신법하고 분발하여 바싹 따라잡다’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수련생의 관점에 아주 동의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련생들이 병업 고비라 하는데 저는 그게 아니라 심성 고비라 생각합니다.”

5) 사부님께서 저로 하여금 사람 속에 있지 않는 상태와 주왠선(主元神)이 공을 얻는 것을 체험하게 하시다

길을 걸을 때 온 몸이 홀가분하고 전혀 무게가 없는 느낌이 들었는데, 마치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오직 자신의 생각만 있었습니다. 방금 법을 얻었을 때 왁자지껄한 거리와 오고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 모든 것이 비록 저 앞에 있지만 아주 멀리 떨어지고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눈에 들어오지만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고, 비록 사람이 여기 있지만 마음은 여기에 없었는데 이건 막 법을 얻었을 때의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시간장(時間場) 속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한 번, 걷다가 머릿속이 하얘지고 주위의 객관존재가 모두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평소 빠른 걸음으로 15분 걸어야 할 길을 이번에는 다만 5분만 걸려 평소보다 10분 덜 걸렸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다른 공간장에 들어가게 해주셨습니다.

주왠선이 공을 얻는데 관해 어느 한 번 집에서 가부좌할 때 방금 입정하자 저의 신체가 갑자가 계속해 커지고 있음을 느꼈고 갑자기 좀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이때 저와 똑같이 생긴 제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같은 옷을 입고 제 앞에 같은 방향으로 앉아 있어 뒷모습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보기에 가부좌한 제 다리 높이만큼 작았습니다. 그것이 저의 푸왠선(副元神)이고 사부님께서 공을 모두 저의 주왠선에게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갑자기 신체가 다시 작아지더니 심장 안에 들어가 하나의 작은 점이 됐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또 불안하고 두려워졌으며 출정(出定)하니 이 공간의 신체 심장부위가 가려웠습니다.

6) 사부님의 보호 하에 머리가 무쇠 열에너지 도관을 통과하여 지나가다

어느 한 번, 고층주택 지하실에 자전거를 세운 후 밖으로 걸어 나갔고 머리가 텅 비었습니다. 갑자기 ‘퉁’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극심하게 아팠는데 철편에 긁힌 것 같았습니다. 동시에 머리에서 ‘부지직’하는 소리가 나 되돌아보니 정말 불가사의했습니다. 평소 여기를 통과할 때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 지나갈 수 있었는데, 그건 직경이 20센티미터인 무쇠 열에너지 도관이 앞길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날은 주의하지 않았는데 머리를 만져보니 상처가 전혀 없어 목숨 빚을 하나 갚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사부님께서 제 신체를 구성한 가장 큰 분자입자를 무쇠의 분자입자보다 더 작게 변화시켜 제 머리가 무쇠 열에너지 도관을 통과하여 지나가게 만드신 것입니다.

7) 베개를 베자마자 잠이 들다

저는 인생의 진정한 도리를 탐구하기 위해 대법수련에 들어섰고 당시 34살이었습니다. 신체에 별 탈이 없었지만 유독 잠들 때 한참을 누워있어야 잠들 수 있었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베개에 눕기만 하면 잠들었고 그 후 8분, 10분이면 한 잠을 잘 수 있는데 그것도 아주 달게 말입니다. 깨어난 후 흔히 2시간 잔 것 같아 정말 신기했습니다!

8) 성명쌍수

우리 이 공법은 성명쌍수 공법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젊어지게 하고, 신체가 고에너지물질로 가득 찼기에 속인의 세포를 억제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성명쌍수란 바로 心性(씬씽)을 수련하는 동시에 또 명(命)을 닦는 것으로서, 다시 말하면 本體(번티)를 개변하는 것이다. 개변하는 과정 중에 사람의 세포가 점차적으로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될 때 노쇠를 늦출 수 있다. 신체는 젊은 사람 방향으로 되돌아감이 나타나며, 점차적으로 되돌아가고, 점차적으로 전화(轉化)하여 최후에 완전히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되었을 때면, 이 사람의 신체는 이미 다른 물질신체로 완전히 전화된 것이다.”[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체 내에 흐르는 에너지가 바로 속인의 세포를 억제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 마음이 적을수록 본체의 전화(轉化)가 더 빠른데 사람들에게 제 실제나이를 알려주면 다들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서른 몇 살, 어떤 사람은 마흔 몇 살 같다고 하고 길에서 어떤 할머니는 저를 젊은이라 부릅니다.

위에 언급한 저의 자그마한 수련 과정들은 무엇을 설명할까요? 보서 ‘전법륜’의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진실한 것이기에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부디 소중히 여기기 바랍니다.

저는 혼자서 수련하고 사부님을 뵌 적도 없습니다. 책 한 권으로 이렇게 많은 것을 얻었고 이 책은 18년 동안 지속된 사악의 박해를 넘어갈 수 있도록 저를 지탱해주었습니다. 전에 저는 우월한 직장환경, 편안한 생활, 주류사회 엘리트였지만 사람들이 추구하고 부러워하는 지위와 돈, 이른바 행복을 잃으면서도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자체가 바로 책 한 권의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여, 기회가 있다면 마음을 고요히 하고 이 책을 보시기 바랍니다.

1996년 8월 4일에 법을 얻어서 지금까지 2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법을 얻은 그날부터 신체 내 에너지흐름은 하루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구치소, 감옥에서 박해를 받을 때에도, 수련하면서 넘어지고 굽은 길을 걷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도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항상 곁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셨으며 종래로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수련생 여러분, 어떠한 상황에서든, 얼마나 큰 시련 앞에서든 모두 정념을 잃지 말고, 사부님을 견정하게 믿고 대법을 견정하게 믿는 이 일념만 지킵시다!

2. 인체수련, 정념정행에 관한 자그마한 이해

법속에서 우리는 우주의 구조가 아주 완벽하고 하나의 순환계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체는 하나의 작은 우주입니다. 인체는 부동한 층차 공간의 생명들이 모두 사람의 행위를 통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약 행위가 서로 다른 관념 또는 업력에 좌우지 당했다면 그것을 강화할 것입니다. 이건 ‘서유기’에서 각종 요귀들이 서로 앞다투어 당승(唐僧)의 고기를 먹어 장수하려는 원인 중 하나일 것입니다.

1) 안으로 닦고 찾는 것과 수련자의 표준

법리에서 우리는 안으로 닦지 않고 찾지 않는다면 제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 각도에서 저는 모순이 발생하든, 신체가 불편하든 모두 우리 신체 내 요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공간장이 바르지 않거나 업력이 다시 올라온 것으로, 이때는 마침 경지를 제고하고 자신을 깨끗이 하는 좋은 기회입니다. 표준에 도달하고 수련을 잘 한 부분은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모두 분리해주셨기에 사람의 일면에는 늘 우리가 닦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 몸 이외의 일체 환경은 우리에게 있어 모두 하나의 거울로서 우리 사람 마음의 표현입니다. 천목에서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하게 물건을 보고 한 사람을 보며 한 물체가 존재하는 형식을 보는 것은 사람의 대뇌에서 상을 형성하는 것이다. 즉 사람의 눈을 통해 보고, 다시 시신경(視神經)을 통해 대뇌 후반부의 송과체(松果體)에 전도(傳導)하여 이 한 구역 중에서 그것이 영상으로 반영되어 나오게 한다.”[2] 우리가 세상에서 부딪치고 보고 들은 실제 일과 사물들은 모두 시신경을 지나가고 모두 사람 마음이 본 것입니다. 그럼 모순이 발생하면 마침 사람마음을 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나쁜 관념, 업력으로 구성된 하나하나의 가짜 나(假我)는 기회만 있으면 이 인체의 ‘통제권’을 장악하려 합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에게 주었으면 곧 당신의 것이므로 당신 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당신이 가지려는 것은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데, 이것이 이 우주의 이치다.”[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수련이 잘 된 부분은 이 신체를 지배하지 못하기에 오직 시시각각 법으로 생각과 언행을 가늠하고 법에 부합되지 않는 생각을 버리며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해야만 이쪽 신체가 차츰 대법에 동화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나쁜 관념과 업력으로 구성된 하나하나의 나쁜 자아를 똑똑히 인식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자신을 잘 파악해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층차에 서로 다른 표준이 있기에 우리는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합니다. 수련에는 본보기가 없기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이 무엇인지는 오직 안으로 닦고 안으로 찾으며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고 법 공부를 할 때 법의 내포가 우리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2) 자아를 내려놓다

수련과정 중 오랫동안 자신이 하나의 ‘원(圈)’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느꼈습니다. 바로 ‘나(我)’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건 입으로 말하는 ‘내’가 아니라 세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나’였습니다. 이 ‘나’가 세간에서의 표현은 신체의 감각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세간에서, 그는 단지 생명의 과정을 향수(享受)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과거에 사람은 아주 가련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람은 이 세간에서 그는 단지 생활과정 중에 사람에게 가져다 준 감수를 향수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이 표현은 비교적 정확하다.”[3]

나쁜 관념, 업력으로 구성된 하나하나의 거짓 자아가 세간에서의 표현은 인체 감각에 대한 집착입니다. 인체 감각에 대한 집착은 이기적인 것이고, 일체 집착은 결국 인체의 감각에서 표현됩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살려면 이 신체가 있어야 합니다. 시각(눈), 청각(귀), 후각(코), 미각(혀), 촉각(말초신경)으로 이 세계를 느끼고 체험하며 사람 속의 이른바 행복과 고통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각종 집착하는 이익이 만족되었을 때 이 신체는 편안하고 아니면 고통을 느낍니다. 수련을 포함한 어떤 일이든,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에서도 이 신체에 흥분, 고통, 억압, 화나고 기뻐하는 등 감각이 나온 것은 모두 사람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느낌과 감지(感知), 감각들은 서로 다른 관념과 경험을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이러한 관념과 경험들은 대법이 새로 바꾼 후의 생명에게는 모두 위사위아(爲私爲我)한 것이고, 모두 새로운 우주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기에 우리가 모두 개변하거나 닦아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이런 위사위아한 관념과 업력들은 가끔 아주 간사합니다. 제가 수련한 이래, ‘심성 제고’, ‘법 공부를 잘 하다’, ‘조사정법’, ‘세 가지 일을 잘하다’에 줄곧 붙어있었는데, 이런 것들은 낡은 우주의 부동한 층차의 생명들이 보기에는 금빛이 번쩍이는 라벨로 떳떳하게 제 신체 내——정법홍세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공간에 생존하고 있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그것들의 이기적인 특징에 따라, 제 신체를 지휘하고 행사하여 그것들을 강화하고, 그들의 생존 공간을 확대하는 목적에 도달하려 합니다. 표현 형식은 구하는 마음을 갖고 법 공부를 하거나, 수련생과 잘 협조하지 못하거나, 자신을실증하거나 남을 위해 잘 생각하지 못하는 등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자신을 내려놓아야만 무조건 대법에 동화할 수 있습니다.

세간의 일체 집착과 사람 마음을 버리면 인체 감각에 대한 일체 집착을 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쁨이 없고 위안(欣慰)이 없으며 근심이 없고 고독함이 없이 자비만 있게 됩니다. 사람 표면을 유지하도록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가장 기본적인 생존조건(사람의 생각) 외에는 무슨 물건에 대해 크게 또는 많이 흥미를 가지거나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 고에너지물질은 미시적인 부분에서 표면까지 우리의 온몸에 가득 찰 것입니다.

3) 착실한 수련의 중요성

인체는 얻기 어렵고, 수련자에게 있어 한걸음씩 착실한 수련은 정말 아주 중요합니다.

수련자의 행위는 사실 아주 중요합니다. 생각이 바르고 행위가 발라야 하는데, 즉 다시 말해 생각이 발라야 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직 근본적으로 사람의 관념과 각종 집착을 버려야만 더욱 잘 정념정행할 수 있고, 거꾸로 행위가 바르면 나쁜 생각, 업력, 나쁜 관념과 외래 교란들이 생존할 공간을 잃게 됩니다.

무술기공에서 기를 연마해 내려면 사지(肢體)를 휘둘러야 하고 공능이 나오게 하려면 끊임없이 연마해야 차츰 나올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그 고에너지물질인 그것은 다른 공간에 있으며 그것이 우리 이 공간에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의 시간은 우리보다 빠르다. 당신이 만약 다른 사람을 격타하려고 할 때, 다시 운기하거나 다시 생각할 필요 없이 그 공은 이미 거기에 가 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쳐서 당신이 막을 때면 그 공 역시 이미 거기에 가 있다. 당신이 아무리 손을 빨리 써도 그것은 당신보다 더 빠른데, 양쪽의 시간개념은 같지 않다.”[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수련인의 행위가 아주 중요함을 설명한다고 저는 이해합니다. 만약 우리가 늘 연공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한다면, 정념이 갈수록 강해져 일에 부딪치면 더 이상 많이 생각할 필요 없이 정념이 바로 나올 것입니다. 정념은 바로 하나의 강대한 에너지로서 이건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부여한 능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법리로는 무엇이든 다 알지만 책을 내려놓고 행동할 때 여전히 속인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쁜 생각이 여전히 존재하기에 착실히 수련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인간 속에서 생활함에 필요한 일부 사람의 것들을 남겨주셨기에, 우리는 한편으로 생활하고 한편으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층차의 법에 부합되지 않는 생각들은 인체에서 반영되는 외, 사람의 육신 자체가 감각 기관을 통해 실현하는 집착과 욕망들은 우리 생명(주왠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이 점을 인식한 후 시시각각 그것의 교란을 배제한다면 이 육신의 생명에게 지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인체가 차츰 대법에 동화하고 우리의 주왠선이 이 신체를 지배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원만입니다.

4) 사명을 완성하는 법기인 인체를 잘 지키자

낡은 생명이 볼 때, 인체는 보배로서 수련할 수 있고, 생명을 깨끗이 씻어내며 순정하지 못한 생각과 업력을 개변시키는 좋은 도구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법제자에게 있어 우리의 목적은 개인수련이 아니라,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 우리가 인간세상에서 내려온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대법제자의 정념으로 볼 때, 인체는 보배로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며 법을 실증하고 사명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체는 우리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법기’로서 오직 대법으로 생각을 순정하게 하며, 더욱 빨리 더욱 잘 본체를 전화(轉化)해야만 중생을 더욱 잘 구도해 우리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우리 대법제자 개인을 놓고 볼 때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 것도 없이 오직 사명만 있습니다(겉으로 볼 때에는 뭐든지 다 있을 수 있음). 대법제자, 당신 자체가 바로 대법의 자원으로서 당신이 세상에서 갖고 있는 일체 자원을 포함해서입니다. 당신의 재부(財富)는 대법자원이고, 당신의 신체는 대법이 사명을 완성하도록 당신에게 부여한 ‘법기(法器)’입니다. 표면의 기본적인 생존을 유지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외에 또 뭘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사명을 완성할 수 있는 법기(신체)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아끼겠습니까? 바로 법 공부를 많이 하고 법으로 대뇌를 충실히 하며, 연공을 많이 하여 빨리 고에너지물질로 육신을 대체해야 이 법기를 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속인TV나 책을 보지 않고 속인의 라디오방송을 듣지 않습니다(업무에 반드시 필요할 때에는 사부님께서 오염될까봐 가리개를 씌워주심). 휴대폰은 생활에 필요한 기능(전화, 메시지, 계좌이체, 비용 지불)만 사용합니다. 겉으로 볼 때 전통문화 같은 내용도 있지만 그것의 출처는 어디인지? 배후의 요소가 무엇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대법 사이트 외에모두 보지 않습니다.

편폭의 제한으로 마지막에 수련생들과 함께 서로 격려하고자 합니다. 당신이 지금 깨달은 법리에 집착하지 말고, 당신이 현재의 감수와 감각,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거나 고통스럽든 집착하지 말며, 당신의 과거를 내려놓고 당신의 미래도 내려놓기 바랍니다. 자신을 금방 입문한 경건한 파룬궁 수련자로 여기면서 심신을 대법 ‘전법륜’에 용해시켜 ‘세 가지 일’을 잘 하고 대법에 동화하는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기 바랍니다!

본문은 개인 인식으로 법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휴스턴 법회 설법’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원문발표: 2018년 11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8/3768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