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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에서 기사를 쓴 약간의 체험

글/ 뉴욕 대법제자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2003년 법을 얻었고 2012년 따지웬 뉴욕신문에서 일하기 시작해 2017년부터 온라인 뉴스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저의 수련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왜 수련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으며, 제자는 미디어에서의 수련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래는 미디어에서 글을 쓰는 일을 통한 저의 수련 경험입니다.

1. 말로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것에서부터 타인을 위해 생각하기까지

저는 외동이며 가족으로 말하면 가장 중시받는 장녀입니다. 어릴 때 버릇이 잘못 들어 고집이 셌습니다.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말을 하면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수련이 아니었다면 저의 이기심을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1998년 학교를 졸업하며 우연히 저의 룸메이트의 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몰래 제가 그녀에게 상처준 말들을 적어놓았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나가는 말로 한 것들이 그녀에게 상처를 준 것도, 그녀가 그렇게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둘지도 몰랐던 것이죠.

나중에 제가 법을 얻고 나서 이것은 제 마음에 상처가 되어 늘 그녀에게 사과할 기회를 찾았습니다. 2012년 해외에 나와서야 마침내 전화를 했습니다.

제가 전화하자 룸메이트는 정말 반가워했습니다. 제가 진지하게 사과하자 그녀는 마치 그 모든 것을 잊은 듯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의 변화한 마음을 보시고 그 수준의 물질을 제거해 주신 것으로 압니다.

그 이후로 저는 속인들과 접촉할 때 제 말 때문에 어떤 부정적인 인상이 남지 않도록 매우 조심합니다.

제가 속인이었을 때 저는 늘 제가 하는 것이 낫다고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했습니다. 이제는 법에 따라 수련하면서 속인들에게 더 잘 대해 주어야 하고 저 자신에게 더 높은 표준으로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신문사에서 문화면 일을 하면서 판매고객과 접촉을 합니다. 만나거나 전화로 하거나, 그들의 입장을 고려할 때, 인터뷰 결과가 종종 더 잘 나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여러 해 동안 타이완 출신 취재원을 인터뷰할 때 그녀는 제가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저는 그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녀를 친구처럼 보고, 그녀를 존중하며, 그녀와 연결을 유지합니다. 올 때마다 그녀는 약간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저는 능력껏 그녀를 도와주며 조심성 없게 하지 않습니다. 그 일로 그녀는 저를 아주 신뢰합니다.

이제 그녀는 따지웬의 충실한 애독자입니다. 그리고 해마다 션윈을 봅니다. 그녀는 타이완에 있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프로그램이 좋다며 반드시 봐야 한다며 씬탕런을 보라고 추천합니다.

2. 진상을 통해 자비의 힘을 체험

얼마 전 우리는 중국인이 무역기밀을 훔쳤다는 뉴스를 번역하고 있었는데, 유죄판결 받은 인물의 친구가 우리에게 연락해 그에게 기회를 주기를 바라며 보도하지 말기를 원했습니다.

미디어로서 우리는 그러한 요구를 무시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더 좋은 선택을 찾아보겠다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이 독자는 중국인이고 우리가 중국어 미디어이기에 우리가 이해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미국 정부는 현재 중국 사람들과 갈등이 있으니 자신의 친구가 희생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의 일을 여기서 말하지 않겠지만, 전화한 사람은 혼란스러워하며 중국공산당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시야를 넓혀주기 위해 제 개인 경험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중국인에게 어떠한 나쁜 견해를 갖건 당신은 당신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녀는 바로 이해했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상황의 원인은 바로 중국 공산당입니다. 그들이 해외중국인과 그 나라 사람들 간에 균열을 만든 것입니다. 미래 세대는 이런 스캔들의 희생양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제가 담담하게 자신을 위해 생각하지 않고 그녀의 입장을 생각할 때 어떤 힘, 자비의 힘을 느꼈습니다. 아주 조화롭고 고요하지만 강한 힘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미국에 사는 중국인을 독자로 둔 미국 내 중국어 미디어는 중국공산당의 해외 침투와 그에 대한 상대국의 반격이 있는 환경에 있습니다. 중국인으로서는 그 영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바가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들에게 더 다가가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며 우리가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견해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동시에 우리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면 우리는 그들을 중국공산당의 선전 영향에서 구해낼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지(理智)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眞相)을 똑바로 알리며, 자비로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이것이 바로 각자(覺者)의 위덕을 세우는 것이다.”[1]

저는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능력이 법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잘 수련하고 집착을 없애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지혜와 이성을 지닐 수 있고, 그럴 때에만 우리가 한 일이 위덕을 갖출 수 있습니다.

3. 수련 중에서 기다릴 수 없고 건성으로 할 수 없다

최근 우리는 인원이 부족해 거의 일을 마무리할 수 없을 것처럼 업무 흐름에 지쳐있었습니다. 저는 일하는 것에 대한 강한 집착을 제거하지 않았고, 또 법을 잘 배우지 않아 자신을 수련자로 여기지 않고 안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심성이 떨어져 몸에는 피로현상이 나타났고 성격도 점점 까칠해졌습니다. 매일 억울하다고 느끼는 집착도 매우 강했습니다.

이것은 바른 수련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바로잡을 힘이 없었습니다. 특히 집착을 제거하고자 하는 강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런 집착과 나쁜 것들이 저를 통제하게 내버려두고 있었습니다.

한 작은 사건이 저를 깨웠습니다. 저는 2년 전에 운전면허를 땄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려움이 있어서 늘 운전을 무서워했습니다. 이제 저는 아이들을 태워줘야 해서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내가 운전 연습을 할 때마다 남편은 늘 제가 하는 실수를 많이 지적했습니다. 가끔 남편은 같은 실수를 여러 번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서 저는 이것이 듣기 싫었습니다. 저는 항상 “때가 되면 혼자서 운전할 거야.”라고 말하면서도 변명을 찾아서 스스로 운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정신 상태가 한 달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어느 날, 만약 코치 없이 운전하지 않는다면 일이 닥쳐도 분명 제가 운전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즉시 당신을 ‘삼화취정(三花聚頂)’에 도달하게 할 수 있지만, 당신이 문만 나서면 공은 곧 떨어진다. 그것은 당신 것이 아니며 당신이 수련해 낸 것이 아니어서 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의 心性(씬씽) 표준이 거기에 있지 않아 누가 더하려 해도 더할 수 없기 때문인데, 그것은 완전히 자신에 의거해 수련해 낸 것이며 자신의 그 마음을 수련한 것이다.”[2]

이 기회에 저는 수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수련에서 제고되지 않으면 공도 확실히 올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꾸준히 스스로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가 되면 층차와 심성을 제고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설사 누가 나에게 공을 더해준다 하더라도 저는 거기에 있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성으로 하는 이런 정신상태로는 안 됩니다. ‘때가 되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것은 사실 변명입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 하고 무언가를 하기 원하지 않는다는 변명일 뿐입니다. 변명일 뿐만 아니라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일입니다.

이것을 깨닫자 저는 제 생각을 바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문제들을 살펴보니 그것은 집착이었습니다.

더 깊이 파고들자 제 마음 속에 바르지 않은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련하면서 자신을 ‘중사’로 자리매김하고, ‘상사’의 자질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정도의 어려움을 겪을 수 없다고 여겼고, 그러니 잘 하고자 하는 강렬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은 오로지 자신이 수련하려 하고, 원만을 이루려는 이러한 소원이 있어야 하는 동시에 또한 수련하는 행동이 있어야 하는데, 이래야 비로소 수련이라고 한다.”[3]

다른 수련생들과 교류에서 그들은, 중사와 같은 정신상태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구세력은 당신을 느슨하게 하고 제고하지 못하게 하며, 이것은 사상업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수련 성취하려는 마음으로 사부님께 왔습니다.

제가 이런 종류의 사상을 이지적으로 접수하지 못한 것은 신사신법(信師信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법을 얻었지만 소중히 여기지 못했습니다. 저는 정념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행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정진요지’에서 “옛날 사람의 한마디가 있다. ‘아침에 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可死).’”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아침에 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옛사람의 말이 저에게는 절망 속의 한숨 같았고, 저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며 ‘자질이 없다’는 변명을 한 것입니다.

내가 한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모두 과거 일입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이제 깨달았으니 앞으로 더 잘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집착을 버리고 견정하게 수련하며 부정적인 사고와 사고방식을 버리며 법 중에서 자신을 귀정하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회 환경 중에서 자신의 범위가 있으며, 자신의 정서는 자신의 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4] “당신이 정념이 족할 수 있다면, 당신은 곧 당신의 범위 중에서 높고 크게 될 수 있고, 당신의 범위 중에서 좋지 못한 그런 것들을 내리누를 수 있을 것이다.”[4]

4. 기사쓰기는 자기 수련과 뗄 수 없다

1999년 이후 법을 얻은 수련자로서, 저는 세 가지 일 중 법 실증과 개인수련이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이 점이 점점 중요해집니다.

쓰는 과정에서 막히고 더 이상 진전이 없을 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파룬궁(法輪功) 진상에 관한 기사에서는 더욱 분명합니다.

또 한 가지 느낌은, 제가 변명거리를 찾아 기사를 미룰 때마다, 그 일이 돌아와 제가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치이니 그것을 지나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일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배치한 길이기에 관을 넘어야 하고, 버려야 할 집착은 버려야 합니다.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세뇌반에 관한 기사를 할당받았는데 저로서는 이런 주제를 처음 다루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울 것이라고 느꼈고, 다뤄야 할 뉴스가 많아서 결국 미루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데드라인이 다가오자 스트레스 때문에 상사가 적절하게 배치를 못했다고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을 힘들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네 번째 발정념 후 우리 집 옆의 큰 나무가 바람에 넘어지면서 전선을 건드려 정전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서야 ‘내가 잘못했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뉴스를 통해 진상을 알리는 그처럼 중요한 일을 하게 된 것이었는데 집착에 가로막혀있었던 것입니다. 저도 아주 놀랐습니다. 중국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에서의 박해상황에 대해 아주 분명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저의 근본적인 역할과 미디어의 원래 목적을 잊었다고 느꼈습니다. 이 일은 중국 수련생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 널리 알리는 일이라는 것을 잊었던 것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경험으로 보면 핵심은 기사를 쓸 때 고요한 마음과 정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사에 표현되는 말에 따르는 힘은 수련과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출판되는 모든 기사에는 신의 가지(加持)가 있습니다. 이는 일반인들의 매체 기사가 도달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흥미 있는 현상은 그리 규범적이지 않았거나 지적할 만한 문제가 있더라도 글이 공개되면 문제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기사에서의 문제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수련자이기에 기사에 대한 느낌은 다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집에 돌아가서 역시 두어 글자를 쓰면 글씨가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공이 있는 것이 아닌가!”[2]

그러나 우리는 진상을 알려야 하는 미디어이고 우리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으므로 더 높은 전문성을 요구해야 하며 느슨해져서는 안 됩니다.

뒤돌아보면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것이 많이 유감스럽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전문성 수준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지금부터라도 지금까지의 방식을 바꾸어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저는 더 전문성을 가지고 쓴다면 사부님의 가지를 받아 탁월한 기사가 될 것이라고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꿈 이야기로 교류를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일반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꿈을 가끔 꾸는데, 그들에게 대법의 경이로움을 말하지만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글로 합니다.

글을 쓰고 난 후 집으로 가는 기차표를 사야 하는데 ID카드가 없었습니다. 절망하고 있는데 기차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가까운 수련생이 달려와서 제게 ID를 주면서 “당신이 진상을 알린 사람들이 어디서나 대법이 좋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ID를 언급했어요.”라며 그래서 금방 가져올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계속 글을 써서 진상을 알리라고 저에게 점화해주시는 것입니다. 입으로 진상을 알리는 것과 결국 같으나, 외재적인 표현은 다릅니다.

층차의 제한이 있으니 부당한 점은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이성(理性)’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轉法輪 (전법륜)’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따지웬(大紀元)회의설법’

(2018 씬탕런과 따지웬 법회 발언고)

English Version: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8/11/14/173253.html

 

원문발표: 2018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13/3770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