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明慧법회| 마음을 다해 사람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법을 얻은 경위

저는 어려서부터 체질이 약해 유행성 감기는 빼놓지 않고 걸렸습니다. 결혼한 후에도 약은 더욱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2003년 봄, 놀라는 바람에 우울증에 걸려 저녁에 자지도 못하고 온종일 공포 속에 떨었습니다. 크고 작은 병원에 다녔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한 친한 친구가 제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전법륜(轉法輪)’을 가져다주고 5장 공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법을 얻어 반본귀진하는 수련의 길을 걸었습니다.

공을 배운 후 어느 날 이불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데 휙휙 하는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다른 공간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다른 공간에서 자유로이 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부터 나가고 싶을 때 눈을 감으면 제 왠선(元神)은 곧 나갔습니다. 한번은 다른 공간에서 한 여자아이를 만났는데 제 친척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이후에 반드시 수련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여자아이는 저를 쫓아 뛰었습니다. 저는 점점 높이 날았는데, 어떤 목소리가 줄곧 공중에서 메아리쳤습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서 말씀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현재 매우 뚜렷한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일부 수련생의 元神(왠선)이 몸을 떠났을 때, 어느 한 층 공간을 보고 접촉하여, 그곳이 너무나 아름답고 일체가 모두 진실한 존재라고 느껴, 돌아오려고 생각하지 않아 결국 육신의 사망을 조성해 그 한 경지 중에 남아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1] 저는 사부님께 “사부님, 저는 신불(神佛)의 존재를 믿고 사부님을 믿습니다. 나가지 않고 확고하게 잘 수련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元神(왠선)은 다른 공간에 가지 않았습니다.

법을 얻은 후 대량으로 법 공부하고 법을 외워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임이 중대하고 사람 구하는 것이 긴박합니다. 저는 스티커를 붙이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며, 대면하여 삼퇴(三退)를 권하고 전화를 하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중생을 구도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을 구한 일부 체험을 써내어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수련생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곳은 수련생들께서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고 고향 사람들을 구도하다

저의 고향은 산간지대인데 현재 사는 곳과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고 진상 자료가 전해지지 않은 곳입니다. ‘9평공산당(九評共產黨)’이 발표된 후 사당(邪黨)은 철도 안전검사를 매우 엄격하게 하여 진상 CD를 소지하기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2008년 조카딸이 결혼하러 차로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CD 수백 장과 진상 간행물 등 자료를 준비하여 큰 보따리 두 개를 쌌습니다. 이 기간에 두려운 마음이 끊임없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만 하면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저는 대량으로 법 공부하고 법을 외워 정념(正念)을 확고히 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의 이틀 저녁은 침대에 앉아서 지냈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공간의 교란도 매우 컸습니다. 두려운 물질이 전반 공간장에 가득 찬 것을 느끼고 발정념을 하고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요청했습니다. 제가 자료 두 보따리를 들고 아파트에서 내려와 조카딸의 집에 갔을 때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고, 1초 후에는 죽을 것 같았습니다. 강대한 정념을 내보냈습니다. ‘나는 대법제자이다.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법을 실증하여 중생을 구도한다. 누구도 교란하고 파괴할 자격이 없다.’ 가는 길에 사부님의 법을 외웠습니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2]

정념을 확고히 하자 대법의 초범성이 나타났습니다. 시시각각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큰 보따리 두 개를 메고 달려가서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에서 평온하게 인연 있는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조카딸의 집에 도착하자 다른 공간의 사악이 해체되고 두려운 마음이 전부 사라져 온밤 내내 잠을 잘 잤습니다.

이튿날 조카딸이 운전하여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조카가 저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고모, 여기 삼림 농장 곳곳에 감시카메라를 달아서 누가 와도 다 알아요. 도둑을 잡는 거예요.” 저는 두려운 마음이 또 올라왔습니다. 발정념하여 제거했습니다. ‘나는 도둑이 아니다. 나는 대법제자다.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을 구한다. 감시카메라든 뭐든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자료를 배포하고 사람을 구해야겠다.’ 저녁에 올케와 함께 나가서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올케는 손전등을 비추고 저는 집집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료를 다 배포하고 올케의 집에 돌아와 줄곧 발정념을 했습니다. ‘중생구도를 교란하는 일체 사악을 깨끗이 제거한다.’ 새벽 3시까지 발정념하고 연공했습니다. 온밤을 자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온 삼림 농장이 들끓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파룬궁(제자)이 왔는데 거리마다 파룬궁 자료가 넘쳤다고 했습니다. 형부가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처제, 이젠 배포하지 말아. 그들은 현(縣)에까지 신고했어. 공안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감시카메라를 확인한다고 했어.”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겐 사부님이 있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떠나기 전날 저녁 조금 남은 자료를 마저 배포하려는데 가족의 감시가 심했습니다. 몰래 자료를 가지고 거리에 나와 보니 감시카메라가 많이 보였습니다. 주저하는 마음이 조금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지? 이때 귓가에 제가 배포한 CD의 NTD TV 음악이 들려 왔는데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습니다. 그 감동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사부님의 격려였습니다. 중생이 모두 자료를 보고 있다고 저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저 없이 나머지 자료를 재빨리 배포했습니다. 이튿날 우리는 사부님의 보호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다해 사람을 구하다

처음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할 때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자주 만났습니다. 어떤 문제는 저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경험을 총괄하여 밍후이왕에서 관련 문장을 내려 받아 관련 자료를 찾았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찾고자 하는 답을 재빨리 찾았습니다. 다시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고 그를 구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진지하게 보았습니다. 수련생은 어떻게 말했는지, 좋은 방법은 메모하여 자신의 경험을 풍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법 공부를 통해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저의 지혜를 열어주셨기에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이 점점 순조롭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수련생과 함께 우체국을 지나가다가 80여 세의 할머니가 길옆에 앉아 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련생은 저에게 진상을 알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다가가서 할머니 옆에 앉아 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는 다닌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또 당・단・대(黨・團・隊)에 가입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즉시 불쾌해하면서 말했습니다. “공산당이 월급을 주는데 자네들은 정치를 하고 당을 반대하다니…….”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온통 공산당이 주입한 거짓말뿐이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할머니, 공산당이 할머니에게 월급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민의 세금이 그것을 먹여 살리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할머니가 신으신 신발이 백 위안이라 치면 공장에서 내는 세금과 판매업자가 내는 세금은 모두 이 신발의 가격에 포함된 것입니다. 결국 이 세금은 모두 할머니가 내신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제가 대법을 수련한 후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정이 화목하며 몸이 건강해진 일을 하나하나 알려드렸습니다. 파룬궁은 국민에게 백 가지 좋은 점만 있고 나쁜 점은 한 가지도 없으며, 공산당이 무신론을 펼쳐 윤리 도덕을 부패하게 하고 사람들이 진선인(眞善忍)을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지금의 사람들은 그저 가짜, 악, 투쟁만 믿으며, 위조품이 범람하고 독이 있는 음식도 있어 사람이 괴질에 걸리는 사례를 알려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들을수록 명백해졌습니다. 마지막에 저는 할머니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면 복을 받는다고 알려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일어서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중복해서 염했습니다.

또 한 번은 버스 정거장에서 한 대학생을 만났습니다. 그는 실습하러 간다고 하면서 이후에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지금의 사람은 윤리 도덕이 좋지 못하고 사귀기 힘들며 일이 어렵고 압력도 크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우선 그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해주고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받는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매우 듣기 좋아했고 단과 대(공산당 관련 조직인 공청단과 소선대)에서 탈퇴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말씀하신, 한신이 사타구니 밑을 기어나가는 치욕을 당했다는 그 단락의 설법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듣고 듣다가 기뻐서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으며 손뼉을 쳤습니다. 손뼉을 치면서 “당신들의 선생님께서 정말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우리 사부님께서는 매우 많은 설법을 하셨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흥분하여 좀 더 많이 얘기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그의 일행이 찾아와서 버스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몹시 아쉬워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기연이 있어 우리의 책 ‘전법륜(轉法輪)’을 보면 무궁한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행과 함께 가면서 계속 뒤돌아 손을 저었습니다.

정체에 협력하여 박해를 반대하다

1. 놀랐지만 위험은 없었다

2009년 5월 낮에 수련생과 향진(鄉鎮)에 가서 션윈 CD를 배포하다가 진상을 모르는 마을 주민에게 신고 당했습니다. 수련생 M은 제게 전화하여 얼른 떠나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큰길에 올라오자 수련생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수련생은 자료를 다 배포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얼른 가자고 말했습니다. 30m도 채 가지 못했는데 뒤에서 경찰차가 쫓아와 경적을 세게 울리면서 우리에게 멈춰 서라고 했습니다. 경찰차는 우리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이때 저는 한 수련생이 경찰차 뒷좌석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수련생은 납치된 것이었습니다.

이때 사악에 협조하면 안 된다는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습니다. 경찰이 아직 차에서 내리지 않았기에 저는 오토바이에서 내려 마을로 달아났습니다. 한 경찰이 쫓아오더니 커브에서 제가 메고 있던 가방을 붙잡고 큰길에 있는 경찰차로 끌고 갔습니다. 저는 협조하지 않고 그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 나쁜 일을 하지 않았는데 당신은 우리를 붙잡으면 안 됩니다. 이런 나쁜 일을 하지 마십시오.” 결국 그 경찰은 내 가방을 내던지며 힘없이 말했습니다. “가세요, 저는 전화할 겁니다.”

저는 한 마을 주민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이 집에는 노부인과 손자가 있었습니다. 저는 집에 들어가서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밖이 너무 더워서 아주머니네 집에서 더위도 좀 식히고 일행도 기다리고자 합니다.” 그녀는 그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와 한담을 하면서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불법(佛法)을 믿고 진선인(眞善忍)을 믿으며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처세한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흔쾌히 인정했습니다. 얼마 안 있어 그녀의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녀의 남편에게도 진상을 알렸습니다. 진상을 다 알리자 그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저 혼자 남아서 집에 있는 수련생에게 전화하여 이쪽에 일이 터졌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때 큰길에 있는 경찰들이 집집이 다니면서 대법제자를 수색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휴대폰 전원을 끄고 건전지를 분리한 다음 발정념에 전념했습니다. 저는 결심하고 자신을 사부님께 맡겼습니다. 노부인은 손자를 데리고 줄곧 문 앞에서 그네를 탔습니다. 경찰이 그녀에게 집에 파룬궁 자료가 있는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노부인은 집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두 시간 후 노부인은 집안에 들어와서 큰길을 따라가면 3리 떨어진 곳에 지샹툰(吉祥屯, 길상둔)이 있는데 거기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노부인에게 감사드리고 그 마을로 갔습니다. 사실 그곳은 진(鎮)이었으며 지샹툰도 아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사부님께서 위험이 해제됐다고 점오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달아난 후 경찰이 저를 쫓아왔을 때 경찰차에 붙잡혀 있던 수련생도 안전하게 도망갔다는 것을 집에 돌아온 후에야 알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따라 했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 가지(加持)해주시고 보호해주셨기에 우리는 놀랐지만, 위험 없이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경찰도 대법제자에게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2. 평화롭게 진상을 알리자 경찰이 사람을 석방하다

2009년 9월 M수련생의 남편이 시골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악인(惡人)에게 납치되었습니다. M수련생은 여러 번 파출소에 가서 진상을 알렸지만, 효과가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태도가 매우 나빴고 안건을 담당한 경찰도 못 만났다고 했습니다. 제가 함께 가서 진상을 알렸으면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이튿날 같이 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두려운 마음이 마구 올라왔습니다. 발정념하여 소멸해도 조금 있으면 또 올라 왔습니다. ‘어떻게 하지?’ 저는 사부님께 청을 드렸습니다. ‘사부님, 이 일을 제자가 당연히 해야 한다면 사부님께서 가지(加持)해 주시고 두려운 마음을 제거해 주셔서 사람을 구하러 가게 해주십시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홀가분하고 두려운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M수련생과 그녀의 딸과 함께 수련생의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발정념을 했습니다. 파출소에 가서 물어 보니 안건 담당자는 오후에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파출소에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나중에 소장의 사무실에 갔습니다. 소장은 오후에 담당 경찰을 찾으라고 온화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오후에 돌아온 담당 경찰은 우리에게 매우 사납게 대했고 태도도 매우 나빴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습니다.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정념은 세상 사람을 구하는도다”[3] 저는 미소를 지으면서 담당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직업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요. 위아래의 압력이 크고 매우 수고스럽지요. 그런데 보세요. 우리는 한 시내에 살면서 늘 마주치는데 만약 다른 성(省)에서 만나면 우리는 한 고향 사람입니다. 얼마나 가까워요?” 이 말을 듣자 그의 태도는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의 여동생은 집안이 어렵고 아이가 둘이며 셋집에 살고 있어요. 매부는 이전에 정당한 직업에 종사하지 않았고, 저의 여동생은 온몸에 병을 달고 있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어요. 그들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 여동생은 병이 다 나았고 매부도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가족을 부양할 줄 알게 되었어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

그 경찰은 자신도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을 접촉했고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진상을 알려주었고 그도 인정했습니다. 마지막에 저는 그에게 우리 이웃의 한 사람은 이제 44세인데 붙잡혀 들어가 3개월간 감금되어 박해로 사망했으며, 집에는 이제 중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정리해고 되었는데 정말 불쌍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 경찰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되지요. 내일 사람을 석방할 테니 당신들이 데리러 오십시오. 데리고 나오지 못하면 저를 찾아오세요.” 우리가 떠날 때 그 경찰은 대문 밖까지 배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후에는 안전에 주의하라고 당부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하면 증거가 없어서 당신들은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말도 해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서 우리는 사부님의 가지(加持)에 감사드렸습니다. 경찰이 진상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10여 명이 삼퇴하게 해주셨습니다. 이튿날 M수련생의 남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 가족과 협력하여 박해를 반대하다

2011년 9월 우리 지역의 수련생 7명이 납치되었습니다. 당시 사악은 매우 날뛰었습니다. 성도(省城)에 특별안건전담반을 설치하여 계속 사람을 체포하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국보대대에서는 석방을 요구하러 오는 사람은 모두 체포하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한때는 초목이 다 군사로 보였고 많은 수련생이 숨어버렸습니다. 교도소에 감금된 한 수련생의 집에 소식을 전하러 갔더니 수련생의 어머니는 초조해하고 속을 끓이다가 추간판탈출증이 재발해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그의 가족은 대법제자를 매우 원망했습니다.

추석이 가까워져 저와 수련생 2명은 상의 끝에 선물을 사서 이 수련생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게 추간판탈출증을 치료하는 수련생 의사를 찾아주었습니다. 며칠 후 그녀는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며, 박해를 반대하는 데에 협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국보대대에 가서 사람을 석방하라고 했습니다. 국보대대의 부대대장은 매우 오만하여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수련생들은 교류한 후 부대대장의 집으로 찾아가 전면적으로 진상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수련생들은 부대대장을 두 번 미행했지만 실패하고, 세 번째로 제가 사부님의 보호로 묘하게 그의 집 주소를 알아냈습니다. 그날 저녁 수련생들은 진상 스티커를 그의 집 문 앞과 근처에 붙였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은 그에게 진상 편지를 쓰고 전화하여 진상을 알렸습니다. 우리가 다시 국보대대에 찾아갔을 때 그의 날뛰던 기세는 없어지고 그들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던 전반 과정을 사실대로 자백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고만한 능력밖에 없으니 결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공안국에 가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공안국 부국장은 놀라서 대법제자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공안국 1층 로비에서 일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들은 110 경찰(한국의 112에 해당함)을 불러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수련생 가족과 협력하여 구청에 가서 팻말을 들고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 수련생의 어머니는 ‘내 아들을 돌려 달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여러 대의 차로 온 진압경찰이 마치 큰 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사람을 체포했습니다. 수련생과 가족은 신속히 흩어졌습니다. 40일 후 3명의 수련생은 석방되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가족과 협력하여 불법 감금된 4명의 수련생에게 변호사를 선임해주었습니다. 법정에서 불법 심문하기 전에 수련생들은 협력하여 여러 가지 방식으로 현지의 주민들에게 초대장을 보내 세인에게 진상을 널리 알리고 박해를 반대했습니다. 법정에서 변호사와 수련생들의 정념으로 재판은 하루 종일 진행되었습니다. 밖에 있는 수련생은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하여 공안, 검찰, 법원 관계자 등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게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보호로 두 번이나 국보대대 부대대장의 검문을 묘하게 피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제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정체에 협력하여 수련생 가족과 함께 박해를 반대한 지 반 년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제가 안을 향해 찾아 제고하고 승화하며 점차 성숙해지는 과정이었으며, 우리 정체가 협력하여 대법의 신비한 위력을 펼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전화로 사람을 구하는 일을 꾸준히 견지하다

2013년 전화로 삼퇴를 권하는 방법을 배워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범위를 넓혔습니다. 처음에 전화로 삼퇴를 권할 때 전화만 들면 긴장했고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요청하자 마음이 서서히 평온해졌으며 삼퇴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전화하는 과정에서 가급적 수량을 구하지 않고, 한 통 또 한 통 전화를 걸어 중생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어떤 때는 전화를 30~40통이나 걸어도 삼퇴하는 사람이 1명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마음을 다잡고 신사신법하여 견지했습니다. 왜냐하면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4]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매번 적으면 2, 3명, 많으면 20여 명씩 중생을 구도했습니다. 올해는 사악의 교란과 파괴로 휴대폰 카드가 압류되어 카드가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게 카드 3개만 있으면 전화로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수련생이 제게 압류된 카드 10장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 카드를 보면서 매우 괴로웠습니다. 본래 이 카드는 사람을 구하러 온 것인데 지금은 압류되었으니 정말 아까웠습니다. 이때 머릿속에 일념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압류된 휴대폰 카드 중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점검 결과 2장은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매우 기뻐 속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또 전화로 사람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휴대폰 카드가 부족하기에 전화할 때 계속 신경이 쓰였고 쓰기 아까웠습니다. 한번은 성도에 진상을 알리러 갔다가 한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휴대폰 카드 문제를 두 번 언급했더니 이 수련생은 재삼 숙고한 끝에 이 문제를 해결해주기로 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에 감사드립니다. 제게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걱정을 없애주시고 전화로 사람을 구하는 일에 전념하게 해주셨습니다.’

나의 법기(法器)

초기에 전화할 때 수련생이 제게 준 2대의 휴대폰 중에 한 대는 IMEI(고유식별번호)를 등록할 수 없다고 기술자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휴대폰을 받은 후 저는 휴대폰에게 우리 함께 사람을 구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IMEI를 등록해보니 성공이었습니다. 기술자 수련생은 깜짝 놀라며 매우 신기하다고 여겼습니다.

저와 함께 전화하는 한 수련생이 휴대폰이 부족해 저는 이 휴대폰을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대의 휴대폰은 계속 사용했습니다. 한번은 M수련생이 전화에 참여하고자 하는 수련생이 있는데 단말기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단말기에 IMEI를 등록하여 그 수련생에게 주려고 했지만 아무리 애써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단말기가 떠나기 싫어서 그런가?’라고 생각하고는 그것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가기 싫은 것이냐? 그런 것이라면 IMEI 등록에 성공해 보렴. 그럼 너를 보내지 않을게.” 그 결과 단번에 성공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사람을 구하는 법기는 영성(靈性)이 있는 것으로 그것도 사람을 구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소중히 여기고 그것이 작용을 발휘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 제게는 수련생이 사용하지 않는 단말기 10여 대가 있는데 방치하지 않고 교대로 사용하여 그것의 생명이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게 하고 있습니다.

십몇 년의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직 제게는 법에서 바로잡아야 할 부족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정법의 나날에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사람을 많이 구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명시’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정념정행’”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법정건곤’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밍후이왕 제15기 중국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18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밍후이대륙법회>제15기(2018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10/3764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