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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결점이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를 가볍게 말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몇 년 전에 현지의 어떤 한 수련생이 문장 몇 편을 써서 수련생의 결점을 폭로했다. 예를 들면, 천목이 열린 어떤 수련생이 함부로 한다거나 어떤 수련생은 남달리 특별한 주장을 내세워 난법한다거나 개별적인 수련생은 마음이 중해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거나다. 후에 이 수련생은 이 방면의 문장을 아주 적게 썼다. 왜인가?

한 번은 교류를 하는 중에 이 수련생이 “압력이 심합니다. 문장이 발표되면 적잖은 사람이 보자마자 현지 일인 걸 알고 암암리에 서로 누가 썼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찾고 찾다가 저를 의심했습니다. 어떤 이는 직접적으로 ‘그 문장 당신이 썼어요?’라고 물어봤습니다. 나중에 어떤 수련생은 저를 경계하기 시작했고, 무슨 일에 대해 교류를 할 때 제가 그 자리에 있으면 ‘저에 대해 인터넷에 글을 올리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본래 부족함을 폭로하는 것은 정체 수련에 좋은 점이 있지만 최후에 저는 사람들이 경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문장을 쓰는 수련생에 대해 말하자면, 어떤 풍설을 듣더라도 마땅히 의연히 자신을 길을 걸어야 한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이것은 수련이기 때문이다. 속인은 처세술을 부리거나 인정에 따라 달콤한 말을 할 수 있지만 대법제자가 이럴 필요가 있는가? 문장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고 과장이 없기만 하면 마땅히 대담하게 쓰면 된다. 이것이 조사정법으로서 사부님께서 당신에게 신필을 하사하신 것이다. 당신이 한 것은 가장 신성한 일이므로 미움을 살까봐 두려워하지 말라. 옛날의 충신은 황상에게 간언을 올릴 때, 관직을 잃거나 목숨을 잃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대법제자가 그래 뒷얘기를 두려워한단 말인가? 이 자체가 바로 하나의 관이다.

그 외에 비난에 직면하면 역시 자신을 찾아야 한다. 문장 내용이 실제와 오차가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마땅히 상대방에게 사과해야 하고, 다음에 쓸 때 주의하여 대조하고 검토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문장의 풍격이 당문화(党文化)의 적대적인 정서가 심하지는 않은지? 글을 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지? 만약 문장의 어감이 평화롭고 자비롭다면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반감이 일지 않을 것이다.

동수(同修)로 말하자면 듣기 좋은 말만 해서는 안 된다. 잘 수련한 수련생일수록 부정적인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우리는 연공인(炼功人)으로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며,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1] 그것은 수련인의 최저한도의 경지 요구인데, 비록 우리는 이런 일을 아주 적게 만나지만 귀에 거슬리는 말은 역시 자신을 제고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억울함을 당할 때 한 번 웃고 넘어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더욱 높은 경지의 표현이다.

내 주위에 어떤 수련생이 있는데, 한 번은 교류할 때, 그가 자신에게 결점 하나가 있다고 말했다. 다 말한 후에 “이 일은 정말 창피한 일이에요. 당신 한 사람한테만 말했어요.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당신은 이 일을 인터넷에 써서 폭로해서 다른 사람에게 교훈으로 삼도록 해야 합니다. 정체제고에 아주 좋은 일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는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잘 쓸 줄 몰라요. 당신이 대신 써주세요! 당신 말이 옳아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점이 있다면 당신이 얼마든지 쓰세요. 저는 체면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매우 감동했다. 이것이야말로 무사(無私)다. 그때 나는 내가 수련한 것이 그보다 못한 것을 보았다.

또 어떤 수련생은 나에게 “우리 법공부팀에서 교류할 때, 모두 서로 결점을 지적했어요. 얼굴에 대고 말했고 아주 신랄했어요. 어떤 이는 꾸짖음을 당해 땀까지 흘렸어요. 그러나 누구도 화내지 않았어요. 그 광경은 정말로 감동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대법제자의 정토(淨土)다.

결점을 폭로하는 과정 역시 제고하는 과정으로서, 자신이 묵묵히 바꾸든 다른 사람이 지적하든 모두 자신을 깨끗하게 씻는 것이다. 구우주의 생명은 위사(爲私)한 것이다. 만약 수련생의 결점을 보고도 감히 말하지 못하면 그것이 구우주의 생명과 구별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수련을 형편없이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부님께서 “사람으로서 어찌 잘못이 없겠는가? 수련하는 이는 사람인데 어찌 잘못이 없겠는가? 그러나 오히려 당신이 착오를 승인한 것을 본 적이 없다. (뭇사람 웃음) 당신 이것은 누락이 아닌가? 당신은 수련 중에 누락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앞으로 누가 착오를 승인할 수 있는지 보겠다. (뭇사람 웃음, 박수) 누가 착오를 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착오가 다 무엇인가? 우리가 잘하면 그만인데,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관건은 바로 당신의 그 마음이다. 사람 마음을 닦아 없애는 것이 아닌가? 당신이 늘 숨고 늘 가로막고 늘 제거하려 하지 않으려는 것이야말로 큰 문제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로스앤젤레스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11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1/3/3766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