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18년 10월 9일, 밍후이왕에 수련생의 교류문장 ‘불법 체포당할 때의 표면 행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문장이 실렸다. 수련생은 이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사악의 납치 앞에서 두려운 마음이 있든 없든 나를 포함한 대다수 수련생들, 설사 아주 잘한 수련생들도 모두 하나의 똑같은 행동을 했다. 즉 표면상에서 불법 체포에 순종하여 따라오라면 따라갔고 경찰이 수갑을 채우려 하면 채우게 했다. 비록 속으로는 박해를 인정하지 않고 승인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이 층 이치로 볼 때 그들이 사람이 많아 자신이 벗어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묵인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념, 이 문제에서 인식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어느 정도 돌파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한 견해와 깨달음을 수련생들이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후 나는 밍후이왕에서 며칠 동안 계속 윗글과 관련된 몇 편의 교류문장이 게재된 것을 보았다. 서로 다른 문장에서 수련생들은 이 상황에서 자신의 정념정행을 말했는데 매우 소중하여 우리에게 매우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여기에서 근본적으로 박해를 부정하는 인식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무의식중에 박해를 불러오는 일념을 경계하다
다년간 실천 속에서 나는 수련생들이 관건적인 시각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였는지를 보았다. 그것은 그 자신의 수련상태가 결정하고, 그것은 착실하게 수련하는 중에서 튼튼한 기초를 다져, 다른 사람들이 모방할 수 없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상태와 마음가짐을 가진 수련인이 같은 방법을 하여도 얻는 효과는 모두 같지 않다. 어떤 수련생은 이런 상황에서 정념으로 악인(惡人)을 멈추게 할 수 있어 태연히 벗어났다. 또 어떤 수련생은 정념으로 악인에게 당장에서 현세현보(現世現報)하게 하여 악인이 놀라 간담이 서늘하여 도망가도록 하였다. 또 어떤 수련생들은 위험에 직면하여도 놀라지 않고, 자비로 진상을 알려 악인을 구하여 박해를 제거하였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진상도 알리고 반항도 하였지만 여전히 악인에게 강제로 체포되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여전히 혹형을 당하거나 중형을 선고받고 심지어 참혹하게 박해를 받아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감옥에서 어떤 수련생은 단식을 통해 혹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쳐 아주 빨리 풀려났고, 어떤 수련생은 똑같은 방법을 하였으나 도리어 박해가 가중되었다…….
대법제자가 많고, 각종 다른 상태가 너무 많아 배후의 요소도 매우 복잡하다. 수련인 1만 명에 1만개의 서로 다른 정법 수련의 길이 있을 수 있으므로 수련은 확실히 고정된 패턴이 없고, 본보기도 없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특히 중국 대륙의 대법제자는, 마난의 박해 중에서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모두 아주 관건적이다. 당신이 잘하고 못하고, 당신이 박해를 받고 안 받고, 당신이 바르게 하고 못하고, 박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두 당신 자신이 걷는 길, 당신의 사상이 생각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1]
여기에서 내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만약 우리가 수련생의 잘한 부분을 보고 모방하고 싶어, 나도 사악이 와서 체포할 때 그 수련생처럼 그렇게 하고 싶다는 일념이 머릿속에서 나오면, 이 일념은 사악이 박해하는 핑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체포될 때 어떻게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는가? 좋다, 당신에게 이 조건을 만들어주어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그리하면 박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다년간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너무 많이 보았다. 어떤 수련생은 자신이 체포될 때 사악과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과 체포되었다. 어떤 수련생은 죽더라도 전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결과 박해로 세상을 떠났다. 어떤 수련생은 자신의 월급을 다 삭감해도 자신은 대법을 확고히 수련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결과 정말로 사악이 월급을 삭감했다…….
우리가 쉽게 느끼지 못하는 일념의 배후에 누락이 숨겨져 있는 경우도 있다. 사악의 박해가 발생하는 것을 허용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서 그중에서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 등등, 사악에게 약점을 잡혀 무심코 박해를 승인했다. 우리는 왜 철저하게 박해를 부정하는 일념을 내보내지 않는가? ‘혹시라도 박해가 발생하면 나는 어떻게 하지?’라는 그 생각조차 모두 철저하게 없애버려야 한다.
2003년쯤, 이른바 ‘사스’시기에 밍후이왕에서 한 수련생이 쓴 한 검문소의 이야기를 본적이 있었는데 10년이 지났지만 인상이 아직도 매우 깊다. 이야기 중에 수련생의 전후 사상과정이 사건의 발전 과정을 결정하였다. 이야기의 대략적인 경과는 이렇다. 한 수련생이 진상자료를 가지고 한 지역을 지나가는데 악당 요원이 설치한 검문소를 발견하였다. 가방을 뒤지며 검사하는데 분위기가 매우 긴장되었다. 수련생은 발견되면 어쩌지? 하고 생각하다가 어떻게 확고하게, 그들에게 무슨 진상을 알릴 것인가를 생각했다. 후에 일념이 바뀌어 그들이 자신을 검사하고, 대법제자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을 근본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 일념으로 수련생은 검문소를 지날 때 악당 요원들이 정말로 그를 검사하지 않았다. 검문소를 지난 후 수련생은 다음번에 올 때에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또 인식이 제고되어 사악이 무슨 근거로 재차 ‘고험’해야 하는가? 사악은 대법제자를 고험할 자격이 없고, 그 사악의 검문소도 다시 존재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수련생이 다음번에 거기를 지날 때에 검문소는 정말로 없어졌다…….
전반과정에서 수련생들이 법에서 정념정행(正念正行)하여 가져온 것은 바로 사람을 감탄하게 하는 기적이다. 수련생들이 전후로 끊임없이 승화된 일사일념(一思一念)의 변화는 대법, 대법제자와 중생의 관계를 바로 잡았다. 수련생들의 그 순정한 일념은 근본적으로 박해를 부정하였다. 이로부터 보면 ‘확실하게 존재’하는 박해 앞에서 근본적으로 박해를 부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일사일념과 정말로 관계가 있다.
우리가 마땅히 있어야 할 정념은 체포될 때 순순히 경찰을 따른다거나, 수갑을 차고 차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이런 체포 등 박해가 발생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자신이 박해를 ‘동의’하지 않으면 사악은 감히 강제로 박해하지 않는다
중국대륙에서 사악의 박해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매일 밍후이왕에서 각 지역의 교란, 납치, 불법 판결에 관한 보도를 볼 수 있다. 그럼 이 박해가 멈추지 않으면 사악의 체포 같은 것을 피할 수 없단 말인가?
다년간의 수련 실천 중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여태껏 이 박해를 승인하지 않으셨고, 체포되고, 구타당하고, 형을 선고받는 등 이와 같은 것을 더욱 우리에게 배치하지 않으셨고, 모든 배치는 모두 구세력이 배치했다는 것을 인식했다. 사부님께서 박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이 모든 것을 역이용하여 대법제자를 성취하게 하셨다. 대법제자가 한때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지 못해 체포되고, 감옥에 감금되더라도 사부님께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두 대법제자를 보호하셨다. 사부님께서는 그러한 환경 중에서도 대법제자가 세 가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하여 대법제자를 성취하게 하셨고, 중생을 구도하게 하셨다. 하지만 그런 박해는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악당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초기에 우리 많은 사람들은 무슨 예언 중에서 ‘감옥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모두 법리가 분명하지 못해 많은 대법제자는 모두 이 말에 대해 다소 묵인했다. 하지만 후에 그것은 구세력의 배치라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다. 다년간 실천 중에서 수많은 대법제자들이 이루어냈는데 대법제자는 법에 서서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철저하게 제거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정법 수련은 과거와는 다른 것이다. 사람이 그를 구한 신(神)을 박해하는 일은, 그것은 낡은 우주가 파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표현으로, 정법과 새로운 우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오늘 대법제자가 체포 등으로 박해받는 이유는 매우 많아 아주 복잡하다. 하지만 나는 그중에 아주 큰 이유는 우리 자신이 박해를 승인하고, ‘동의’하였다는 것을 보았다. ‘동의’를 말하면, 아마 어떤 수련생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찌 동의 할 수 있겠는가? 누가 박해를 원하겠는가?”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 ‘동의’가 두 가지 방면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1. 사전(史前)에 구세력과 협약을 맺고, 언제 이런 상태와 이런 상황이 나타나면 이렇게 가기로 동의했다. 물론 사람 이 층차의 표현은 이 층차의 이치에 부합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구세력이 배치한 한 방면의 강렬한 사람마음의 집착은 제거할 수 없기에 이런 사람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려면 체포, 감금, 감옥의 소굴에 들어가 강제로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2. 위에서 말한 상황처럼 사악의 각종 박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승인하는 조건에서 자신이 그중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생각하거나, 늘 박해가 일어날 수 있다고 가정하면 그것은 박해를 구하고 ‘동의’하는 것과 같다. 다만 이런 ‘동의’는 무의식중에 한 것이고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이 우주 중에는 이런 이치가 있다: 당신 자신이 구하는 것은 누구도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 자신이 가지려 하면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3] “당신 자신이 가지려 한 것이기에 法輪(파룬)도 상관하지 않고, 나의 법신도 상관하지 않는데, 보증코 이러하다.”[3]
정념으로 박해를 주동적으로 부정하고 해체해야 한다.
몇 년이래, 우리는 일부 수련생들이 입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지만 박해는 왜 아직도 발생하는가?
실천 중에서 나는 아주 큰 원인을 보았다. 입으로 구세력이 배치한 박해를 부정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말로 부정한다고 해서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일념은 아니다. 입으로는 부정하지만 실제 행위는 오히려 승인하고 있다. 박해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만 박해를 앞두고 생각하지 못한다. 수련 중에서 우리가 직면한 어떠한 압력도 사실 모두 우리가 근본적으로 법에 대해 확고부동한지를 고험하는 것이다. 박해가 다가올 압박감을 느낄 때 안으로 찾지 않고, 두려워하는 마음과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 등이 지배하고 심지어 또 사부님을 원망한다.
우리는 정념으로 박해를 주동적으로 해체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여기에서 정념은 두 가지 방면이 포함된다.
1. 법에 부합되는 생각으로 법을 배우고 착실하게 수련하는 중에서 안으로 찾고, 사람마음의 집착을 버리면 사부님께 대한 바른 믿음이 나와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을 가게 되고, 다른 배치를 승인하지 않게 된다. 또한 항상 생사를 내려놓을 생각이 있어야 한다. 박해의 압박 앞에서 사부님을 생각하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정념을 얻을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2]
나의 이해로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2]이라고 요구하신 말씀은 바로 우리가 말로만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이 아니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우리도 따라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착실한 수련을 통해 자신의 사람마음 집착을 찾아 자신이 한 잘못된 일에 과감히 맞서고, 저지른 잘못을 제때에 진심으로 시정하고 보충하여야 법에서 정념이 떠올라 자신을 사부님께 맡길 수 있다. 진정으로 하는 것과 입으로만 말하는 그 효과는 다르다.
2. 중생을 구도하고 타인을 위하는 각도에 서서 주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발정념하여 중생을 파멸하는 사악과 그 배치를 해체해서 어떠한 생명도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해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자신이 수련이 잘 되었든, 잘 되지 않았든지를 막론하고 한때 잘못하였더라도 자포자기해서는 안 되며, 심리적으로 자신을 사악의 배치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 또한 더욱 힘들고, 더욱 부끄럽더라도 자신을 사부님께 맡기고 자신을 대법제자로 여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악은 우리의 과도한 자책과 죄책감을 강화시켜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어 더 큰 손실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사실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한 모든 생명은 모두 죄를 범하는 것이다. 구 우주 중에 누구든지, 자신이 어떻게 대단하다고 느끼든지,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한 생명은 모두 재난을 피하기 어렵다. 아무리 품행이 떨어지는 대법제자를 박해해도 예외가 아니다. 왜냐하면 대법제자는 사부님만 관여하시고, 다른 어떠한 생명은 모두 관여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응당 명석하게 인식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박해를 부정하고 제지하는 것은 세인들이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해 죄를 짓지 말고, 중생들이 사악에 의해 파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지, 겁먹거나 고생을 두려워하거나 혹은 세간의 안일과 이익을 잃어버릴까봐 그러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사부님의 가지(加持)를 얻을 수 있어 정념도 반드시 강대해진다.
잘하지 못하면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관념을 우리는 반드시 버려야 한다. 자신의 이전의 부족함을 보고, 다시 한 번 박해를 받으면 박해 중에서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응당 사부님께서 배치한 세 가지 일 중에서 보완해야 한다.
외부 형세가 아무리 준엄하다 해도, 그것을 크게 보지 않고, 피할 수 없다고 여겨야 한다. 또한 마음에 새겨두지 말고 바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고, 안으로 찾고, 발정념을 많이 하여 그것을 부정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아무리 큰 일이 발생하더라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평소대로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당신들이 걷는 길이며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남겨놓는 위덕이다.”[4]
“그런 배후의 요소를 해결해야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형세를 변하게 할 수 있으며, 비로소 사람에게 변화가 생기게 할 수 있다.”[5]
“나는 리훙쯔(李洪志)의 제자이다. 다른 배치는 다 필요 없고,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 그러면 그것들은 감히 하지 못하므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 할 수 있다면,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할 수 있다면 사부는 반드시 당신을 위해 처리해 줄 것이다. 게다가 사부 주위에는 또 많은 호법(護法)이 있고 많은 불(佛), 도(道), 신(神)이 있으며 또한 더욱 큰 생명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참여할 것이다. 왜냐하면 승인 받지 못하고 강제로 박해하는 것은 법을 범하는 것으로 우주의 구 이치 역시 허용하지 않으며 무리한 박해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세력도 감히 하지 못한다. 가능한 한 여러분들이 올바르게 걷도록 하라.”[2]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2004년 워싱턴DC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20년 설법’
원문발표: 2018년 10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0/26/3762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