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정리
[밍후이왕] “나는 법(法)을 전하고 공(功)을 전하는 모든 과정 중에서, 사회에 대해 책임지고, 수련생에 대해 책임짐에 따라 거둔 효과가 좋았으며,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도 비교적 좋았다.”
이것은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전법륜’ ‘제1강’에서 말씀하신 첫 번째 문장이다. 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고, 또 이렇게 하셨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널리 전했던 모든 땅에서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신분이 높거나 낮은 것에 관계없이 모든 수련자가 심신의 혜택을 보았고, 사람마음이 진정으로 선해지고 가정이 화목해졌으며, 사회가 안정되었다.
청두의 퇴직한 부주임 의사, 불치병이 나아 건강을 회복하다
예츙화(葉瓊華) 여성은 청두 전자과학기술대학병원의 전 중의 부주임 의사였다.
50세 때 예츙화 씨는 여러 가지 병에 걸렸다. 류머티즘, 경동맥염, 갑상선 기능 항진증, 아급성 갑상샘염, 위궤양, 심계 항진, 전도차단, 메니에르 증후군…… 류머티즘은 관절이 변형되고 뻣뻣해져 통증이 심하며, 이것은 만성암과 같은 불치병으로서 암, 백혈병,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속칭 루게릭병), 에이즈와 함께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세계 5대 불치병에 속한다. 이런 병들 때문에 예츙화 씨는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했고, 각 병마다 성(省)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 교수를 찾아 치료했지만 장기간 치료해도 호전되지 않았다. 고급 직함을 가진 의사로서 자신의 각종 고질병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고, 그녀는 무능함과 무기력함을 느껴 마음의 고통과 절망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온갖 방법에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무렵 1996년 4월 예츙화 씨는 파룬따파를 만났다.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모든 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예츙화 씨의 남편은 실증과학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내의 정황을 보고 그는 조금도 믿지 않고 말했다. “당신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지 병이 정말 다 나은 것은 아닐 거야……” 그녀에게 반드시 성에 있는 제일 권위 있는 병원으로 가서 검사하여 지표가 정상인가를 보자고 했다. 예츙화 씨는 남편을 동반하여 재차 이전에 류머티즘을 봐주었던 그 전문가를 찾아가 보여 주고, 전문가는 진단서를 작성하며 그녀를 보며 말했다. “안색이 괜찮으신데요. 오랫동안 오지 않으셨는데 어디에서 약 처방을 받았나요?” 예츙화 씨는 말했다. “저는 오랫동안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는 의심하는 눈길로 그녀를 보며 딱 잘라 말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환자분보다 지표가 높지 않아도 평생 약(호르몬)을 복용해야 합니다.” 예츙화 씨는 진지하고도 성실하게 말했다. “정말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는 여전히 믿지 않으며 말했다. “환자분이 정말 약을 먹지 않았다면 그건 정말 세계의 기적입니다!” 최종 검사결과 예츙화씨의 모든 지표가 정상이었다. 전문가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진실로 ‘세계의 기적’을 창조한 것이다!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예츙화 씨의 병은 재발하지 않았고, 더 이상 약도 먹지 않았다! 그녀는 진정으로 건강한 신체를 가지게 되었다!
허난 샹청농업기계 국장 고향에서 효도를 칭찬하다
우쯔샹(吳子祥) 씨는 전 허난 샹청시 농기계국 국장이다.
중국공산당의 ‘작은 관원은 크게 탐오하고 큰 관원은 거대하게 탐오하며, 탐오하지 않는 관원은 없다’는 이런 체제 내에서도 우쯔샹 씨는 보기 드믄 청렴한 공무원으로 좋은 사람이다. 그는 청렴하고 공정했으며,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면서 효도했고, 겸손하고 온화했다. 평소 선행을 행하는 것을 기쁘게 여겼으며, 직장, 고향, 이웃, 전우들 사이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음에 법륜불법(法輪佛法)에 대한 깊은 이해와 확고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쯔샹(吳子祥) 씨는 1952년 샹청 변두리 향의 우잉촌의 한 농가에서 태어나, 형 하나, 남동생 둘, 여동생 셋의 7남매가 있다. 우쯔샹 씨는 16살에 군대에 입대하고 헤이룽장 모 부대에서 자동차 병역 복무를 했다. 인품이 좋고 기술이 좋았으며,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을 잘하여 순조롭게 간부로 발탁되었다. 부대에서 제대하여 원래의 본적인 샹청으로 돌아온 후, 그는 연이어 물자국(物資局) 등 국위원회 부국장을 맡았고, 마지막으로 농기계국 국장을 맡았다.
우쯔샹 씨는 일이 순조롭고 가정이 화목했지만 불행하게도 간염에 걸려 결국 말기 간경화로 발전하였다. 밥을 먹지 못 하고, 잠을 자지 못했고, 얼굴색은 검푸른 빛이었으며, 두 다리는 붓고, 사지가 무기력했으며, 외출할 때 승용차에 오를 때 다리도 올리지 못했다. 많은 명의를 보았고, 몇 가지 몸이 건강해지는 기공을 연마했지만 병세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96년 그는 정저우의 한 부속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고, 한 명의가 그에게 “길어봤자 3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이는 40대 초반의 우쯔샹 씨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고통 받고 절망 속에 있을 때 1996년 우쯔샹 씨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만나 고난 속에서 광명을 보았다. ‘전법륜(轉法輪)’을 읽은 후 그는 인생의 참뜻을 알았고, 그때부터 열심히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마음을 닦았다. 승진을 추구하던 마음이 없어졌고, 직장에서 이익을 점(占)하려던 것이 없어졌으며, 선물을 주어도 받지 않았다. 병이 없어지자 근심걱정이 없어지고 홀가분했다. 그는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1999년 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이 미친 듯이 날뛰며 파룬궁을 박해한 후 샹청 국내안전보위국에서는 병이 있는 팔순의 어머니 앞에서 그를 납치하여 한 여관에 구금하고 고문하여 자백을 강요했고, 보름 후에야 석방했다. 이 일로 그는 두려워 감히 연공을 하지 못했다. 얼마 되지 않아 그의 간염이 재발하여 통증과 식욕부진, 불면증, 부어오르는 등의 증세가 모두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막다른 지경에 몰려 우쯔샹 씨는 다시 파룬따파 서적을 들고 법 공부를 시작하고 연공을 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또 병이 없는 몸이 가벼운 상태에 도달했다. 얼마 후 그는 신중하게 고려하여 자발적으로 국장직을 사퇴했다.
2009년 88세의 우쯔샹 씨의 어머니가 담도결석에 걸렸고,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저우커우 중심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우쯔샹 씨와 여동생이 정성 들여 간호하여 노인은 매우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여 곧 퇴원했다.
당시 우쯔샹 씨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여러 해가 되었고, 어머니는 고향의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홀로 사셨다. 퇴원 후 어머니가 고독할 것 같아 4형제는 한 사람이 한 달씩 어머니를 모시자고 상의하여 네 사람은 모두 시간을 잘 지키며 효도했다. 노인은 마음속으로 만족해하며, 사람들을 만나면 늘 아들 칭찬하기를 좋아했다. 노인에게 가장 좋아하고 위안을 느끼는 자녀는 둘째 아들 우쯔샹 씨였다. 삼형제 중에 어떤 이는 교사이고, 어떤 이는 장사를 하여 모두 비교적 바쁘므로 우쯔샹 씨는 그들을 이해하여 낮에만 모시게 하고, 저녁에는 돌아가게 하여 저녁이면 우쯔샹 씨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모든 일상생활을 돌봐드렸다.
2013년 노인은 92세 고령으로 조용히 별세했다. 4년 동안 우쯔샹 씨는 매일 밤마다 비바람이나 흐리고 맑음에 관계없이, 엄동설한이든 혹서(酷暑)든 상관없이 4년을 하루같이 어머니를 모시며 돌봐드렸다. 그리고 집 안팎을 깨끗하게 청소했으며, 어머니 생활을 주도면밀하게 꾸렸다. 현 사회에서 일반인은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우잉 및 기타 부근 향촌의 남녀노소 모두 우쯔샹이라는 효자가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이웃들은 그를 후대를 교육하는 ‘본보기’로 삼았다.
이발사 부부의 선량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저우창썬(周昌森), 자오스팡(趙時芳) 부부는 충칭시 위베이구 룽시진 쑹스즈로 51호에 살고 있으며, 이발소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아내 자오스팡 씨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했고, 도처에서 고객을 위해 생각했다.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열정적이고, 세심하게 근무하여 새로운 고객과 단골고객에게 한결같은 호평을 받았다. 고객이 그녀를 칭찬할 때 그녀는 늘 미소 지으며 고객에게 알려주었다. “예전에 저는 성격이 조급하고 몸이 좋지 않았는데 파룬궁을 수련한 후 성격이 좋아지고, 몸도 건강해졌어요. 이발소도 잘 되고 있어요.”
남편 저우창썬 씨는 예전에 몸이 좋지 않아 여러 번 위 대출혈로 병원 입원 치료를 받았고, 매번 지병이 재발하면 여러 번 피를 토해냈다. 한 번은 피를 반대야 넘게 토한 적이 있다. 오랫동안 병고로 시달리다 그의 얼굴색은 누렇게 변했고, 얼굴 모습이 초췌하여 마흔도 안 되어 사람들은 그를 벌써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는 아내의 수련 변화를 보고, 병고의 더해짐과 장기간의 시달림, 고액의 약비, 입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2005년 그는 마침내 파룬따파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얼마 되지 않아 대법의 신기함이 그의 몸에도 나타났다. 병고가 사라지고, 얼굴이 희고 깨끗해졌으며, 등도 곧게 펴지고 기력이 넘쳐 보였다. 사람도 점점 젊어져 40대인 그를 고객들은 ‘젊은이’라고 불렀다.
부부는 서로 비학비수(比學比修)하면서 다투어 좋은 사람이 되어 화기애애했다. 이른 아침이면 그들은 항상 그들을 기다리는 이발소 고객을 맞이하며 출근했다. 이발을 해주면서 고객에게 파룬궁의 아름다움과 수련의 신기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련했기에 나타난 자비로움, 선량함, 열정, 세심함으로 매일 이발소에 와서 이발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항상 이발소 안은 사람이 가득 차 밖에도 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며, 점심때는 늘 바삐 보내다 2시 넘어야 부랴부랴 몇 술 먹고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원망도 없이 항상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이발소에는 온종일 즐거운 웃음소리로 가득했고, 별다른 일 없이 평온하게 보내고 있다.
그들은 엄격하게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좋은 사람이 되었다. 요 몇 해 적지 않은 고객들이 그들의 사심 없는 도움을 받았다.
어느 날 한 거지가 이발소 앞에 와서 이발해달라고 하며, 본인은 돈이 없다고 말했다. 자오스팡씨는 그의 더러운 머리카락과 더러운 얼굴, 낡고 더러운 옷을 보면서 그를 싫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측은한 생각이 들어 열정적으로 그에게 들어오게 하여 이발을 해주었다. 이발을 다 한 후 거지는 매우 감격하며 얼마 안 되는 돈을 모두 꺼내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자오스팡씨는 그의 돈을 받지 않고 오히려 몇 위안을 그에게 주면서 꼭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신신당부하며, 그러면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거지는 알아들은 후 한 걸음 걸어가 뒤돌아보고는 떠났다.
또 한 번은 한 여성고객이 이발 중에 갑자기 쓰러졌으며, 얼굴색이 창백했다. 자오스팡 씨는 곧 마음을 안정시키고 한편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서 한편으로는 그녀를 부축하여 똑바로 앉혔다. 그녀를 붙잡고 있는 동안, 그녀는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렸다가 그녀와 함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웠다. 고객은 완전히 깨어난 후 조금 당황해하고 괴로워했다. 자오스팡 씨는 즉시 그녀를 부축하여 근처 국수집으로 가서 국수 한 그릇을 시켜 그녀에게 먹였다. 고객은 잠시 휴식하고 여러 번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돌아갔다.
한 여성고객은 자오스팡 씨에게 그녀의 남편은 반신불수로 13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냈고, 여러 해 동안의 입원으로 그들의 모든 저축을 다 썼으며, 지금은 매달 치료를 유지하고 간호용품 사는 데만 해도 2천 위안(약 34만원)이 든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말투로 다년간 간호하고 희망이 없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심신의 피로함을 나타냈고, 동시에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듯이 여겼다. 자오스팡 씨는 듣고 한편으로 이발하면서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이발이 끝난 후 자오스팡 씨는 대법 진상 CD를 꺼내 그녀에게 주면서 가지고 가서 남편에게 반복해서 보여주고, 내용을 보고 알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 여성고객이 즐거워하며 자오스팡 씨에게 말했다. “나에게 준 CD를 남편에게 보여주었어요. 그는 연속 보름 동안 계속 보았고, 놓아두기 아쉬워했어요. 지금 반신불수 13년이 된 남편은 스스로 밥을 먹고, 바닥에 내려와서 부축하여 걸을 수 있어요.” 그녀는 말하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자오스팡 씨는 환자가 대법의 진상을 알았기에 대법의 신기함이 그의 몸에서도 나타난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
하루는 한 노인이 자오스팡 씨를 보러 왔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나는 장암에 걸렸는데 이미 말기여서 병원에서도 받아주지 않았어요. 우리는 돈이 없어서 병원조차 갈 수 없어 나는 집에서 죽기만을 기다렸고, 가족은 수의까지 다 준비했어요. 그때 나는 매일 아파서 침대에서 뒹굴었고, 하루빨리 목숨이 끊어지길 기다릴 뿐이었지요. 샤오자오가 이 일을 알고 즉시 우리 집으로 와서 나에게 진상을 알리고 반복해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가르쳤어요. 내가 노래를 부르면서 외워도 되냐고 물었는데, 샤오자오는 된다고 했어요. 이렇게 나는 매일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노래 불렀고, 얼마 되지 않아 아픔이 눈에 띄게 줄어 밥을 먹을 수 있었고, 바닥에 내려서 길을 걸을 수 있었어요. 보세요.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이곳에 샤오자오를 보러 온 겁니다!”
가전 상가 사장 심사숙고 후 내린 선택
주징윈(朱景雲) 씨는 지린성 융지현 사람이다. 본래 한 가전제품 상가 매니저였다.
주징윈 씨는 대법 수련에 들어선 경과가 비교적 특별하다. 그는 중국공산당이 파룬궁(法輪功)을 미친 듯이 박해한 후 언론에서 모함하고 비방하는 선전을 듣고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그것은 1999년 7월의 어느 날로 그는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예전처럼 텔레비전을 켜고 그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런데 연이어 몇 개 채널을 바꾸어도 모두 파룬궁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1년 넘는 사이 모든 매체에서 특히 ‘뉴스 연합보도’, ‘초점 취재’에서 모두 일방적으로 파룬궁을 모함하고 비방했다. 그러나 이런 매체 선전에서 주징윈 씨의 주목을 끈 것은 많은 각 분야의 전문가, 교수, 박사, 석사, 고급지식인, 국가간부가 있었고, 더 불가사의한 것은 많은 중국공산당 당원들도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게 했다.
거듭된 심사숙고 끝에 주징윈 씨는 모든 매체 선전 보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파룬궁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며, 고위층의 어느 지도자의 민감한 신경을 건드린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당시 문화대혁명시기 류사오치(劉少奇) 씨가 하룻밤 사이에 반역자, 내부의 적, 노동 귀족으로 당적에서 영구 제명된 것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파룬궁도 크게 억울하게 된 사건이라고 여겼다. 다시 더 깊게 생각해보니 파룬궁이 1992년 5월부터 전해지기 시작하여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탄압한 후 짧은 7년 사이에 전국 더 나아가 세계 곳곳에 널리 전해졌고, 또한 정부 당국에서도 1억 명이 수련하고, 전파 속도가 빠르며, 사회적 차원의 종래로 없었던 범위라고 보도했다. 이것은 병을 제거하고 건강해지는 효과 및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정도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파룬궁에 관해 깊은 관심이 생겼고,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심오한 법리에 깊이 매료되어 그도 행운으로 대법제자의 일원이 되었다.
수련하기 전 그는 가족으로부터 유전된 여러 가지 질병이 있었다. 심장병, 간 질환, 위병, 경추병, 디스크 등으로 장기간 약을 복용했다. 그의 남동생, 여동생도 같은 질병으로 남동생은 30살 되던 해에 갑자기 심장병이 돌발하여 세상 떠났고, 여동생은 이미 간경화 말기여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러나 주징윈 씨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모든 질병이 다 사라졌고, 다년간의 약병도 버렸다.
심신의 거대한 변화에서 주징윈 씨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파룬따파가 진정한 고덕대법(高德大法)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모든 언어를 다 써보아도 리훙쯔 사부님에 대한 감격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파룬따파를 알게 되기를 희망했고, 중국대륙에서 하루빨리 파룬따파의 결백과 리훙쯔 은사님의 결백을 돌려주어 더욱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파룬따파를 통해 직접 혜택을 보고 재난을 멀리하길 희망했다.
파룬궁(法輪功)은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부른다.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1992년 5월에 전하기 시작한 불가(佛家)의 상승(上乘) 수련대법으로 우주 최고특성 ‘진선인(眞善忍)’을 근본지도로 삼으며 간단하고 우아한 다섯 가지 공법을 보조로 수련인이 짧은 시간 내에 심신이 정화되고 도덕성이 향상될 수 있게 하였다. 1999년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 중국대륙의 정부 측 통계에 따르면 1억 명의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했다. 중국공산당이 전면적으로 박해한 후 근 20년 동안 파룬궁은 중국공산당에게 탄압 당해도 쓰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 백여 개 나라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다. 파룬따파의 주요 서적 ‘전법륜’은 39개 언어 문자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공개 발행되었다. 현재 세계 모든 주요 나라와 지역에는 파룬궁 연공장이 모두 있고, 파룬궁 수련생들의 단체 연공과 파룬궁을 널리 선양하는 아름답고 훌륭한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
원문발표: 2018년 10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0/19/3757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