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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얻으러 온 아이 우리 함께 가자

글/ 쇼이(小益)

[밍후이왕] 첫 돌이 되어 젖을 금방 뗀 딸은 분명하게 “엄마, 나는 법을 얻으러 왔어요.”라고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신과 귀신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이상하게도 부모님은 모두 60년대 이공계 출신 대학생인데 이러한 무신론 가정환경에서 나는 뼛속 깊이 신과 귀신이 있다고 믿었으며 가끔 어렴풋이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거나 감수했지만 누구도 믿지 않았다.

대학교에 다닐 때 낮잠을 자면 늘 가위에 눌렸고 힘들게 깨어나면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나른했다. 어느 날 점심 홀로 집에서 잠을 자다 또 가위에 눌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방에서 들락날락 하면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지, 문을 다 잠갔는데 하면서 일어나려고 하였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때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오더니 두 손으로 나의 두 어깨를 누르면서 나를 일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놀라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다 벌떡 일어났다. 놀란 가슴이 가라앉지 않아 고개를 돌려 침대 위를 보니 또 하나의 내가 그곳에 누워있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졌는데 바로 신체로 돌아와 깨어났다.

이때 나는 온몸이 탈진되는 것을 느꼈다. 땀에 흠뻑 젖어 반시간 후에야 조금씩 기운을 찾았다. 그 후로 나는 낮에 사람 없는 환경에서 자지 않았다. 하지만 저녁에 바로 옆에서 사람의 숨소리를 똑똑히 듣게 되면 나는 놀라 식은땀을 흘리면서 꼼작도 못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어머니와 함께 자자고 하였다. 가족들은 내가 스스로 자신을 놀라게 한다면서 누구도 믿지 않았다. 더욱이 불규칙한 식사와 찬 것을 좋아하다보니 늘 위가 아파 땅에서 뒹굴었는데 기본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작은 병이 나고 한 달에 한 번씩 큰 병이 났었다. 이 기간에 나는 불경(佛經)을 보았고 기공반에도 참여하였지만 효과가 없었다. 1996년에 대법을 만난 후에야 나의 인생은 새로 시작되었다.

그해 마침 나는 결혼하고 외출하여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외지에 있던 언니는 나에게 《전법륜》을 전해줬다.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책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그때는 심오하다고 느끼면서 참으로 좋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디가 좋은지는 몰라도 너무 좋다고 느꼈다. 이때부터 수련에 들어왔다. 어머니와 함께 연공장에 가서 사부님 설법 비디오를 보고 단체 법공부와 연공에 참여하거나 집에서 홀로 책보고 연공하였다.

97년 딸아이가 태어난 후 나는 매일 출근하는 외의 기타 시간은 집에서 애를 돌보고 법공부하고 연공하였다. 딸은 어릴 적부터 보고 들어서 아직 말을 잘 하지 못할 때부터 《전법륜》겉표지에 있는 파룬(法輪)그림을 보면서 작은 손을 빙빙 돌리고 그리면서 돌고 돈다고 말하였다. 그때 나는 모든 어린애들이 다 회전하는 파룬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또 많은 어린애들이 책 표지에 있는 파룬을 보고 회전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얼마 후 어느 저녁에 잊지 못할 그 일이 있었다. 그날 나는 홀로 애를 돌보다 잠자려고 준비하였다. 침대에 누워 애를 안고 자기도 모르게 생각 없이 한마디 물었다. “옥아(아이 애칭)너는 무엇을 하러 왔니?” 어둠속에서 딸애는 똑똑하게 “엄마, 나는 법을 얻으러 왔습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때 나는 놀라 어떻게 표현할지를 몰랐다. 이것이 어찌 금방 말할 수 있는 한 살짜리 애가 할 수 있는 말인가? 이 애는 너무 총기가 있고 보통이 아니다. 나는 꼭 잘 이끌어 지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 후로 매번 법공부 할 때면 전과 마찬가지로 내가 침대에서 책을 읽으면 딸은 나의 옆에서 뛰논다. 내가 멈추면 그는 “엄마 빨리 책을 읽으세요”라고 말하고 내가 게을러서 책을 보지 않으려하면 그는 책을 나의 손에 쥐어주면서 빨리 읽으라고 독촉한다. 가끔 딸애는 갑자기 나에게 온 하늘에 모두 눈인데 너무 무섭다고 말하고, 가끔은 책에 많은 사람이 있다고 말하였다. 내가 가부좌할 때 다리가 아파 인상을 쓰면서 몸을 앞뒤로 흔들면, 딸애는 갑자기 자다가 일어나 눈을 비비며 다리를 올리고 나의 옆에 결인을 하고 앉아서 나를 동반하면서 나의 의지를 견정하게 해준다. 사실 나는 다른 공간을 보지 못하지만 사부님께서 이러한 방법으로 나를 격려하고 애를 통하여 모든 것이 진실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현현한다고 생각하였다.

애가 초등학교 다니기 전까지 이렇게 나와함께 법공부 하면서 《홍음(洪吟)》 한 권을 다 외웠다. 그때는 사악이 미친 듯이 날뛰면서 대법을 박해할 때인데 이러한 홍색공포를 겪지 못한 나는 일시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변에 많은 대법제자들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고 끌려와 불법 감금당하고 어떤 사람은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받고 어떤 사람은 불법으로 판결 받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속으로 애가 아직 이렇게 어린데 나는 베이징을 갈 수 없으니 현지에서 진상을 알리자고 생각하였다. 그때 어떠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지 몰라 손으로 작은 쪽지를 쓰자고 생각하였다. 위에는‘친구여 안녕하세요,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이고 사람을 착하게 가르치는 것이지 절대 방송에서 선전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누구도 생명 위험을 무릅쓰고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믿어주세요.’라고 썼는데 이러한 쪽지를 매번 차에서 내릴 때 기사에게 돈과 함께 건네주거나 문에 끼워 넣었다.

후에는 컴퓨터와 프린터기를 사서 많은 스티커를 출력하여 저녁에 애를 데리고 산책할 때 갖고 나갔다. 애도 나를 도와 전봇대, 벽, 문에 부착하였는데 크고 작은 골목에 우리 발자국을 남겼다.

그때 나는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생각하고 평소 법공부를 느슨히 하였다.사부님께서는 한 번 또 한 번 점화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중요시하지 못하였다. 2003년 사악은 틈을 탔다. 나는 현지 안전국경찰에 납치 되었고 그때 딸애는 5살 반이었다. 딸애는 집에 들이닥치고 내가 잡혀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어 그 어린 가슴에 두려움의 그늘을 남겼고 지우지 못하였다.

나는 불법으로 판결을 받아 수감되었는데 이렇게 8년 넘게 있었다. 그동안 남편은 딸애를 데리고 여러 차례 보러 왔다. 다른 애들은 오래 동안 헤어진 어머니를 만났을 때 울고 떼를 쓰는데 딸애는 매번 그렇지 않았다. 우리는 밥을 함께 먹고는 헤어졌다. 딸은 의지가 강하여 눈물을 쉽게 흘리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딸은 쉽게 울지 않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애는 점차 크면서 다시는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나는 어렴풋이 집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루는 꿈에서 똑똑하게 딸의 아빠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하였고 딸도 차갑게 내가 그의 엄마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수감생활을 마치고 떠나는 날 남편은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바로 그는 이유를 찾아 떠났다. 집은 오랜 시간 비워둔 듯하였다. 청소를 하였지만 장롱 문짝이 떨어지고 수돗물이 샜으며 주방은 전혀 밥을 한 흔적이 없었다. 과연 꿈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남편은 줄곧 다른 여자 집에서 지냈던 것이다. 딸은 나를 보고는 낯선 듯이 인사하고는 바로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갔다.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딸은 이 몇 년간 줄곧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생활하였고 아이 아빠는 전혀 관여치 않았다.

내가 몇 년간 집에 없었던 관계로 애는 줄곧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어릴 적부터 다른 애들은 엄마가 있는 것을 보면서 친구들과 엄마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감히 말하지 못하였으며 가끔 엄마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나의 시부모는 원래 엄청 착하셨다. 시아버지는 퇴직하기 전 현지 중학교 당위서기로 일하면서 세뇌를 당하였고, 시어머니는 가정 주부였는데 그들은 아들 가정의 갑작스런 변고를 보고 처음에는 공포에 떨다가 내가 불법 감금된 후 아들이 엉망진창인 생활과 직장에서 차별받고(나와 남편은 한 직장을 다녔었다) 개인 이익에서 억압을 받는 것은 내가 사당의 박해를 받아서 그의 발전과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문제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사당이 대법수련자와 파룬궁에 대한 박해이고 가족에게까지 이어진 정신과 물질상의 박해이며 사당이 수년간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숨김없이 더 심하게 대법제자들에게 시행한 것이다.

마지막에 시부모 가족들은 모든 공포와 원망을 나에 대한 증오로 바꿨다. 이 모든 고난과 원만했던 가족이 이렇게 된 것은 다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그들 일가족을 이렇게 해쳤다고 생각하였는데 내가 전에 집에서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다 잊었다. 최악의 상황은 그들은 이러한 관념을 나의 딸에게 주입하였고 딸이 나를 미워하고 대법을 미워하게 하였다.

그때 하늘을 뒤덮는 사악한 선전은 대법을 모욕하는 것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써 넣었는데 한 무리 또 한 무리 애들을 독해했다. 나의 딸은 이러한 가정과 학교 환경에,심지어 전 사회가 대법을 모독하고 비방하는 환경에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내가 집에 돌아올 때 딸은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막 3학년에 진학하여 중간고사를 준비할 때였다.

그때 딸의 나에 대한 태도는 멸시였다. 심지어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았으며 매번 나와 말하거나 하는 행동은 몹시 무례하였다. 매번 나는 조심스럽게 대해야 했고 심지어 비위를 맞춰야 했는데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외면하고 가버릴까 걱정했다.말할 기회조차 없는데 어찌 그가 진상을 알게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딸은 나와 함께 밥 먹으러 왔다. 집에 들어서자 그는 “오늘 어떤 나이든 여자가 길에서 나와 친구에게 파룬궁(法輪功)을 말하면서 우리에게 삼퇴하라고 하였는데 친구는 엄청 화났어요.나는 그녀의 뺨을 한 대 쳤어요.”라고 말하면서 득의양양해 하였다.

나는 듣고 깜짝 놀라 바로 꾸짖었다.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니? 다른 것은 다 막론하고 어른한테 그러면 안 되지.”딸은 듣지 않았다. 나는 급하고 화가 났으며 애가 이렇게 큰 업력을 지었는데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서 강제적이고 명령조로 사과하고 청년단과 소선대에서 탈퇴하라고 요구하였다. 딸은 받아들이지 않고 집 열쇠를 버리고 자전거타고 할머니 집으로 갔다. 그 뜻인즉 다시는 나의 집으로 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쫓아갔는데 한걸음에 할머니 집으로 달렸다. 집에 들어서자 시부모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애가 미술학원에 가자 탁자를 치면서 나에게 화를 냈고 내가 아이에게 다시 파룬궁을 말하면 다시는 아이를 볼 수 없게 하겠다고 했다.

화가 치밀어 있는 시부모를 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너무 괴로웠다.검은 소굴에서 8년 넘게 있으면서 법과 이탈됐고 정념이 없어졌다. 집에 오자 굶주린 것 마냥 법공부하고 연공을 하였지만 이러한 상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과연 아이는 나와 연락을 하지 않았고 남편은 점차 이혼을 요구하였다. 첫째는 그 여자가 죽겠다고 압박을 한 것이고,둘째는 나와 마음을 졸이는 생활을 하기 싫어서였다. 나의 시부모도 빨리 이혼할 것을 요구하였다.

내가 집에 돌아온 지 4개월 됐을 때 나의 어머니(수련인이다)는 갑자기 큰 병업 가상이 나타났다. 표현은 뇌경색으로 반신불수가 되었고 주의식이 똑바르지 않아 늘 이성 없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나는 남편의 배신, 아이의 멀리함과 어머니의 병업, 자신은 또 무일푼인 지경에 처하였다.(집에 있던 돈은 남편이 모두 가져갔다.)

특히 시부모는 친정어머니의 그 모습을 보고 그들에게 연루시킬까 두려워 우리가 이혼할 것을 더 급히 요구하였다. 법공부하면서 수련인은 이혼하면 안 된다는 이치를 알지만 그 겹겹의 압력과 핍박 하에 나는 아이와 시부모 일가를 더 돌볼 겨를이 없었고, 나는 전부 정력으로 어머니를 돌봐야 했기에 집에 돌아온 지 4개월이 되던 어느 날 오전 이혼 절차를 마쳤다. 오후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시고 언니와 함께 외지에 있는 언니 집에 갔다.

외지에 가서 한편으로 어머니를 돌보며 그를 도와 대법 중에서 바로 잡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법공부와 연공을 하면서세 가지 일을 하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딸을 걱정했다. 아이가 바로 중간고사를 쳐야하기에 핸드폰을 가족은 가져가 버렸다. 이리하여 나는 딸과 연락이 끊겼다. 별수 없이 나는 반년 또는 일 년 간격으로 한 번씩 돌아가 10일에서 보름씩 머무르면서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딸과 만날 기회를 달라고 빌었다. 매번 만났지만 만날 때마다 그의 가족은 시간을 정하였다. 딸은 나와 별로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고 매번 돈을 달라거나 물건을 사달라고 하였다. 나는 일자리가 없었기에 돈도 없었는데, 번번이 아버지가 돈을 조금씩 주어 내가 너무 난감하지 않게 하였다.

나는 지난번의 일을 거울로 삼아 자신의 쟁투심을 내려놓고 최대한의 인내심으로 딸과 그 몇 년간의 생활과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얘기하면서 아이의 희로애락을 맞춰주면서 나에 대한 경계심과 적대심을 적게 하였다. 나는 얼음같이 차가운 딸의 마음이 점차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물질적인 동력,돈으로 산 만남이지만 나는 매 한 순간을 아꼈다. 나는 대법의 위력 하에 딸의 마음속의 짙은 안개를 타파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딸은 판타지한 것을 좋아하였다. 나는 진실한 다른 공간에 대한 문장과 역사 예언을 찾아 이후 진상을 알리는 기초로 하였다.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닐 때 나는 또 한 번 돌아갔다.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옷을 사준 다음 대법에 대해 말하였고, 왜 중공의 당단대 조직을 탈퇴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였다. 내가 재차 탈퇴할 것을 요구하자 딸은 고개를 숙이고 말하지 않았다. 싫어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는데 나는 나의 자비가 부족하여 딸의 사당의 독해를 받은 그 두꺼운 껍데기를 움직이지 못했다고 생각하였다. 제한되어 있는 시간에 나는 손으로 딸 머리를 여러 번 어루만지면서 사부님께 ‘사부님 가지해 주세요. 딸 머릿속에 사당이 주입한 것들을 없애주세요.’라고 빌자 이 몇 초 만에 딸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엄마, 탈퇴할게요. 단대(團隊)에서.”라고 견정하게 말하였다. 나는 너무 기쁘고 감격에 겨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마음속에는 ‘사부님께서 바로 옆에 계신다. 사부님은 나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라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면서 법리에서 전에 있던 집착을 깨우치고 정념이 차츰 강해졌다. 그 후 법을 외웠는데 《전법륜》을 외우면서, 나는 직업이 없으면 돈이 없고, 아이가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아무리 깊은 감정이더라도 경제적 기초가 없다면 딸은 나를 외면할 것이고, 딸은 나를 소극적이고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여길 것이란 생각을 하였다. 사부님의 배치 하에 나는 순조롭게 일자리를 찾게 되었고 수입이 있게 되어 딸이 나를 다시 볼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렇게 4년간 왕복하면서 점차 딸과의 관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딸은 아직 철저하게 알지 못하였지만 그녀는 엄마가 수감생활로 좌절하지 않고 매일 활력차고 충실하게 생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5년 딸이 대학입학시험을 보게 될 때 나는 또 한 번 고향에 갔다.딸은 내가 휴가를 내고 그녀가 대학시험을 치는 것을 함께하자 엄청 기뻐하였다. 시험 후 그녀는 줄곧 나와 함께 하였다.우리는 함께 앉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자연히 화제는 파룬궁으로 돌아갔다. 그날 딸은 말문을 열었다. 끊임없이 그동안 있었던 어려움에 대해 말하였다.그녀는 아빠가 술만 마시면 그녀를 욕하고, 아이 아빠가 술주정을 부리면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욕하였고, 딸은 아빠와 감정이 상해 공부를 하기 싫어하고 자포자기 했다는 등…… 말하면서 울었고 상심하여 오열하면서 마음속 깊이 나에 대한 원망도 함께 말하였다.

딸은 단원과 소선대에서 탈퇴하였지만 수년간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고, 특히 그녀를 생각하지 않고 바보짓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이번에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말해주었다. 내가 어떻게 법을 얻고,법을 얻기 전에는 어찌하였는데 법을 얻고는 어찌하였으며, 법을 얻기 전에는 이치가 있으면 추호도 양보하지 않는 강한 여자고 화를 내면 누구든 다 무서워했고, 어릴 적부터 가위에 눌리고 위장병의 시달림으로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말하였다. 법을 얻고는 이 모든 것이 다 사라졌는데 직장에서 다들 인정하는 좋은 선생님이 되었고, 집에서는 모든 일을 맡아 하면서 작은 일에서도 아이 아빠랑 옳고 그름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고 하였다. 내가 불법으로 납치되었을 때 직장 상사와 동료들은 나를 보러 와서는 울었는데, 나를 납치한 경찰들을 경악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대법을 얻어 나는 환골탈태하여 좋은 사람이 되었는데 대법과 사부님께서 부정당한 대우를 받고 모욕당하고 비방을 받을 때 대법을 위해 바른 말을 해야 하지 않는지? 다른 사람에게 대법이 좋다고 알려야 하지 않겠는지? 생각해 보라, 너는 진상을 알고 좋은 미래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불구덩이에 있을 때 너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바라지 않을 것인지? 그후 역사 예언 중의 오늘에 대해 말하고 장자석(藏字石)과 우담바라에 대해 말하였으며, 왜 삼퇴를 하고 중공은 무엇인지와 딸이 어릴 때 각종 표현에 대해 말해주었다. 딸은 점차 울음을 그치고 조용히 들었다. 마지막에 고개를 들고 “엄마, 사람을 구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라고 말하였다.

이때에야 딸은 진정으로 모든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를 둘러싼 짙은 안개를 타파하였다. 그동안 딸은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았다.애 아빠와 이혼한 다음 애 아빠 가족들은 애 앞에서 나를 욕하였지만 나는 아이에게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를 잘 대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고 아이 아빠가 재혼하면서 부족한 물건이 있을 때 나의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다 갖고 가라고하는 것을 보았기에 딸은 마음속으로 대법이 좋다고 생각하고, 밍후이왕(明慧網)에 엄정성명을 발표하여 자신이 대법과 대법제자에 한 모든 좋지 못한 언행을 폐기하고 이후 행동으로 보완할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꼈다. 딸이 사당 조직에서 탈퇴하고 진상을 알았지만, 그녀가 수련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딸이첫돌 때 나와 한 말을 기억하고 그녀는 대법을 얻기 위해 내려온 생명이기에 딸이 수련에 들오게 해야 했다.

딸의 변화는 대법의 위력이다. 그녀는 복을 받아 학습에 자포자기한 상황에서 전국 중점 대학에 붙었다. 집을 떠나 학교에 갔고 나와 더 가까이 있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사부님의 배치였다. 매번 명절과 휴일에 딸은 나를 찾아왔다. 연분이 되었을까,대법책을 딸 손에 건네고 처음에는 내가 그에게 읽어줬지만, 후에 딸은 스스로 읽으면서 모르는 것은 읽으면서 질문하였다. 이때 나는 딸에게 책을 읽을 때 가부좌하라고 요구하였다. 딸은 근기가 좋아 바로 다리를 올렸다.

처음 이틀간 반시간 가부좌하고 책을 읽었다.세 번째 날에는 1시간 가부좌 하였다. 함께 법공부 하면서 나는 예전에 딸과 함께 법공부 할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면서 감개무량했고 사부님에 대한 고마움뿐이었다. 이 십악독세(十惡毒世)에 사당이 사람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각종 유혹 하에 오염되고 침식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사부님의 얼마마한 자비와 위력이 있어서인가.

이 기간 역시 나 자신의 승화와 수련하는 과정이었다. 딸의 각종 좋지 못한 행동과 대학교에 입학하여 수련한 다음 각종 모순이 발생하며 지금 젊은 애들이 좋지 못한 생각과 행동을 딸이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은 진일보로 수련하려는 그녀를 막는 큰 장애라 생각하였다. 내가 어떠한 방법으로 딸에게 이러면 안 되니 고치라고 요구하였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심지어 모순을 일으켰다. 분명히 다 바로잡았는데 왜 점점 나쁘게 되는지를 생각하였다. 가끔 딸은 법공부하는 것 마저 싫어하였다.늘 부여잡고 놓지 못하고 자신의 수련에 영향을 주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다시 한 번 점화해 주셨다.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1]

그렇다. 이렇게 오랜 시간 얼마나 많은 일에서 진정으로 먼저 자신을 찾았는가? 늘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 보는 심태는 사람을 교육하는 것과 같았는데 이것은 당문화였다. 아무리 기점이 좋더라고 타인의 마음은 진정으로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딸이 나의 마음을 찔렀던 일들을 생각하였다. 매번 마음이 움직였을 때 힘들었던 뿌리를 찾아 가슴을 도려내듯이 자신을 돌아보았다. 가끔 생각이 빨리 지나가면 다시 돌아와 계속 찾았는데 어려움 속에서 점차 자신의 좋지 못한 마음을 찾아냈다.

사실 예전에 자신의 이러한 집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늘 무의식적으로 나의 문제는 나의 문제고 아이 문제는 아이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아이가 법을 얻었으면 잘 정진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아이는 나의 거울과 같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나는 아이 수련을 도울 뿐만 아니라 아이도 나의 수련을 돕는다. 아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수련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식하고 다시 일에 부딪치면 법리에서 보는데 일목요연하였다.

예를 들면 딸은 말할 때 늘 반어법을 쓰는데 자극적이다. 잘 생각하니 지신의 쟁투심이 아직도 많았다. 딸이 갑자기 돈을 많이 쓰면서 물건을 사는데 돈을 달라 한다. 그러면 나의 돈과 이익에 대한 마음이 일어난다. 아이가 법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표현은 나 자신이 장기간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형식에만 그쳤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매일 핸드폰을 들고 쉬지 않고 이것저것을 보는 것은 나 자신이 틈만 나면 핸드폰을 보기 때문이 아닌가? 이러한 것들은 수두룩하였다.

지금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나와 딸, 이 법을 위해 온 생명은 함께 사부님을 따라 조사정법하는 길을 걷고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

 

원문발표: 2018년 10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0/20/3759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