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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히 여기고 책임을 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소중히 여기다’는 중국어에서 귀중히 여기어 중시하고 아낀다는 의미입니다. 희귀하여 얻기 어렵고 비할 바 없이 진귀하며 가치가 매우 높은 물건에 대해서만 사람들은 극히 중시하여 소중히 보존하며 귀중히 여김으로써,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극진하게 보호합니다. 사실, 소중함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하게 소유하고 진정하게 행복해집니다.

대법 수련자로 놓고 말하면 얻기가 쉽지 않고 소중히 여길 만한 것은 무엇일까요? 다음은 개인적인 깨달음입니다.

1. 얻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소중히 여기다

구도의 배가 없으면 맞은편 기슭까지 항해할 수 없으며 사람의 몸이 없으면 신불(神佛)로 수련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몸이 있어야만 수련할 자격이 있습니다. 사람의 몸이 없으면 눈으로 간절히 바라보기만 할 뿐 기회가 전혀 없습니다. 설령 진심으로 소원을 빌더라도 아마 천년을 고생스럽게 기다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신(神)의 후광을 내려놓고 주(主)의 영광을 포기하고 삼계에 왔는데 무엇을 위해서인가요? 오로지 사람의 몸을 얻기 위해서이고 조사정법(助師正法)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와 만여 가지의 부드러운 정(情)은 수련자로 놓고 말하면 사실 가물가물한 연기구름과 같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의 몸은 불과(佛果)를 이루어야 비로소 가치가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령 오래오래 백세까지 살더라도 단지 업만 지을 뿐입니다. 대법 실증에 몸을 헌신하고 중생을 일깨우는 일을 감당해야 사람 몸의 책임을 헛되이 하지 않게 됩니다.

2. 대법의 귀중함을 소중히 여기다

우주의 지고한 법전(法典)은 예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으며, 오직 이번 한 번만 널리 전해집니다. 사람의 몸이 대법과 만나는 것은 천 년의 긴 세월 동안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이며, 대법은 만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것으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대법이 극히 드문 진귀한 보물임을 알고 진심으로 법을 구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법 공부하며 글을 금과 같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진정한 법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아끼고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 법은 신령함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법의 진귀함을 알고 엄숙함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대법 책을 아끼고 잘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법의 신성함과 위엄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대법을 멸시할 때 법을 보호하는지 여부는 그 사람의 심성(心性)이 어떠한지를 말해줍니다.

3. 정법에 참여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다

정법에 참여하고 대법을 보호하는 책임을 지는 것은 온 우주를 재창조하는 신성함이며 천지개벽의 간난신고이기도 합니다. 여럿 중 고른 가장 좋은 대법제자, 미래 우주의 왕만이 정법에 참여할 자격이 있습니다.

2억 년의 역사 속에서 정법에 남겨준 시간이 만약 30년이라면 이미 20년 가까이 지나갔습니다. 설령 아직 10년이 남았다 하더라도 3천여 일에 불과하며 매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하루가 줄어듭니다. 그렇다면 정법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겠습니까?

정법 속에서 우리는 호법신의 책임을 이행해야 하며 매 정각 악을 제거할 때 순정한 정념을 내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진상을 잘 알려 생명이 정법 속에서 바로잡힐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4. 사부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을 소중히 여기다

말없이 보살펴주시고 사심 없이 주시며, 원망 없이 감당하시는 사부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모습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지옥에서 건져주시고 망망함 속에서 이끌어주시며, 넘어진 후에 격려해주시고 배반 후에 용서해주시는 사부님께서 소중히 여겨주시는 모습은 무궁무진합니다.

사부님께서 소중히 여기셨기에 우리는 난을 만나도 길조가 나타나고, 길을 잃었다가도 올바른 길로 되돌아오며, 욕화중생(浴火重生, 교정자 주: 불 속의 고통을 견디고 새로 태어남을 의미함)하고 정념으로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소중히 여겨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지옥에서 발버둥 치는 귀신이 되었을 것이며 고해(苦海)는 끝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부님의 불은(佛恩)과 고생스러운 제도를 소중히 여길 책임이 있습니다. 마음에 두고 한시도 잊지 않아야 울림이 있게 되고, 자중하고 자율적일 수 있으며,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 힘낼 수 있게 됩니다.

5. 수련생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다

천 년 동안 같은 배에서 만나 수련하고 만 년 동안 함께 베개를 베고 잠자며 수련했으므로 모든 만남은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큰 세상에서 많은 중생이 같은 마음으로 함께 올 수 있고 함께 한 법문을 수련하며, 함께 한 분의 사부님을 따르고 함께 한 지역의 중생을 구하는 것은 인연이 아름답고 법연도 성스럽습니다. 우리가 금생에 늘 함께 지내는 것은 은혜와 원한, 애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서로 돕고 이끌어주며 보완하고 수련하기 위함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대법제자의 대부분은 그러한 천체(天體)를 따라 왔고 사람마다 인연을 맺었다. 일단 원만을 이뤄 돌아간 후에는 당신들이 다시 만나고 싶어도 거의 모두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당신들의 이 한동안의 연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1]

오늘은 한자리에 모이고 내일 아침은 하늘가와 바다 끝 멀리 떨어지게 될 테니 다시 만나려면 기약도 없이 아득합니다. 사람마다 모두 주변 수련생들에게 우리의 온도를 느끼게 하고 불법(佛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로 인해 수련생들의 정념이 더욱 강화되고 자비도 더욱 많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욱이 원한을 해체하고 간격을 제거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며, 떠나지 않고 포기 없이 공동으로 정진합니다.

6. 걸어온 길을 소중히 여기다

수련의 길에서 수시로 구세력의 교란, 난귀의 방해, 사악한 공산당의 파괴, 세인의 가로막음이 있습니다. 곳곳마다 정사대결(正邪較量)이며, 흔히 안팎으로 궁지에 빠지고 종종 한 발짝도 내딛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사부님의 도움과 자신의 감당 그리고 수련생들의 격려에 기대어 걸어왔습니다.

과거를 중시하고 소중히 여겨야만 비로소 이후에 진중(珍重)할 수 있고 극단적이지 않으며, 맹목적이지 않고 비타협적으로 연마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살며 온건한 행보를 멈추지 말아야만 비로소 성숙을 향해 걸어갈 수 있습니다.

7.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는 세월을 소중히 여기다

인생은 짧은 시간에 준마처럼 빠르게 건너가고 생명은 오직 숨 쉬는 동안만 존재합니다. 시간은 무정한 것이고 정해진 것이니, 시간을 아껴서 수련하면 바로 생명을 연장하고 법에서 정진하며 원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쏜살같이 흐르며 짧은 순간도 천금 같기에, 옛사람들은 분초를 다투며 침식(寢食)을 잊고 나랏일에 열중했고, 밤낮없이 시간을 아끼며 부지런히 배우고 애써 연마했습니다. 역사적인 중요한 시기에 우주의 갈림길에서 지금의 매 순간은 모두 매우 중요하며 매 일 분을 모두 파악해야 합니다. 시간을 낭비하면 바로 자기 자신을 등한시하여 미래를 망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잠을 잘 때는 잠깐 죽은 것처럼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깨어날 때마다 사실 되살아난 것과 같이 진귀합니다. 세월은 잠깐 사이에 조금만 방심해도 지나가 버립니다. 시간을 다그쳐도 아쉬움이 가득한데 자신을 느슨히 하면 오직 회한만이 가득할 것입니다.

8. 소중히 여기는 것이 바로 책임지는 것이다

사람의 몸, 정법, 사부님, 수련생, 시간은 우리 앞에 놓여 있으며, 평범하고 신기할 것 없어 보이지만, 사실 기회를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를 놓치면 다시는 만회할 방법이 없으며, 한때를 놓쳐버리면 만고의 한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전히 소중히 여길 줄 모른다면 정말 제도 받을 수 없습니다.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법을 아껴야 글자마다 마음에 들어올 수 있으며, 대법을 소중히 여겨 중시해야 마음에 두고 한시도 잊지 않을 수 있고, 수련생을 소중히 여겨 중시해야 마음이 서로 통할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소중히 여겨야 전력을 다해 일에 임할 수 있고 열심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돌아오는 표가 없고 세상에는 후회에 대한 약이 없으니, 무심한 가운데 좋은 기회와 법연(法緣)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옛사람들은 순환이 되풀이된다고 말하지 말고, 가는 것만 있고 돌아오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법제자에게 시간은 결코 밤과 낮이 번갈아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회생을 위한 것으로, 우주 창궁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고 중생의 각성과 구도를 위한 것이며 우리의 성공적인 원만을 위한 것입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머물지 않으며 기다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우리가 주변의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고 매 한 걸음 온건하게 파악하며, 진심으로 감당하고 마음을 기울여 잘해야만 좀 더 기쁘고 위안이 되며 아쉬움을 좀 더 덜어낼 수 있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8년 9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9/21/3740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