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녁에 사부님께서 지으신 가사의 한 구절 ‘우린 누굴 위해 풍찬노숙(風餐露宿)하는가’[1]를 읽다가 2000년 7·20 당시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했던 일이 저도 모르게 떠올랐다.
나는 웨이팡(濰坊)에서 성내(省内) 장거리 버스를 타고 출발해 구간 구간 차를 타고 베이징에 갔는데 왜냐하면 도중에 검문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직행을 타지 않고 또 터미널에도 들어가지 않았으며 역을 지나기 전에 내렸다. 이렇게 하자 우이현(無棣縣)에 도착하기 전에 저녁 무렵이 됐다. 차에서 내리자 타고 갈 차가 없었기에 나는 부득이 걸었고 우이현을 우회했다.(우이현에 검문소가 있기 때문)
한밤중에 길을 걸었다. 나는 남자지만 어려서부터 담이 작아 혼자서는 어둠을 무서워했다. 하필 그런 상황에서 한참 수련했다. 길에는 사람 그림자도 없었고 양쪽엔 사람 키 높이의 농작물뿐이었지만 나는 무서워 머리가 쭈뼛쭈뼛 섰다. 마음속으로 계속 사부님의 홍음(洪吟) 중의 위덕(威德)을 묵독했다.
위덕(威德)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에 眞善忍(쩐싼런) 있네
세간의 대나한(大羅漢)
신도 귀신도 몹시 두려워하네.
날이 밝을 무렵 나는 정말 피곤했으며 영업하지 않는 한 식당 앞에 걸터앉아 잠깐 눈을 붙였다.
그런 다음 다시 걸었다. 차량 한 대를 만났는데 평상복을 한 젊은이 4명이 차에서 내려서는 공안(경찰)인 것처럼 굴었다. 사실은 불량배였는데 내게서 돈을 빼앗아 갔고 푼돈 18위안(한화 2940원)만 남겨주었다. 보니 베이징에 갈 차비도 안 되고 가지러 되돌아가기에도 부족했는데 마침 중간 위치에 있었다. 갑자기 한 수련생이 걸어서 베이징에 가 법을 실증한 일이 생각났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는 분명 걸어서 가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남은 돈은 음식 사 먹는 데만 쓸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기쁜 마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아침과 오전에는 그래도 좀 서늘했지만 한낮에는 무척 더웠다. 가다가 다리를 만나면 다리 아래 내려가 좀 쉬고 큰 나무를 만나면 그늘에서 잠깐 잤다. 막 보수공사를 시작한 구간을 만났는데 2∼3리 정도의 길에 나무 한 그루도 없었다. 마침 한낮이었고 나는 걷고 걸었다. 갑자기 힘이 조금도 없음을 느꼈고 그늘에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뒤에 모두 나무도 사람도 없었다. 발을 뗄 수 없었고 쓰러질 것 같았으며 넘어져 열사병으로 죽을 것 같았다.
도랑을 한번 보니 남이 버린, 속이 하얀 덜 익은 수박 반쪽이 보였는데 위에는 파리 몇 마리가 앉아 있었다. 가서 파리를 쫓아버리고 아주 맛있게 먹었다. 다 먹고 나자 기운이 솟았고 그 길을 단숨에 지나갈 수 있었다.
걷다가 오후 반나절쯤 됐을 때 베이징으로 가는 수련생 한 분을 만났다. 마침 우리 둘은 길동무가 됐고 밤에도 무섭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 혼자서 어떻게 어렵게 지나갈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는 웨이팡(濰坊)시 창이구(昌邑區) 사람으로 막 출발했을 때 두려움이란 시험을 겪었었다.
밤이면 우리 두 사람은 어떤 때는 맨땅에서 자고 어떤 때는 농민이 밀을 치고 난 자리에서 잤다. 밤엔 이슬이 내리는데 아침에 깨어나면 옷이 축축하게 젖어 정말 불편하다. 정말이지 ‘풍찬노숙(風餐露宿)’을 나는 절실히 체험했다.
이튿날 내 발에 물집이 생겼다. 걸을수록 더 아팠고 물집도 점점 커졌다. 한쪽 발에 대추보다 큰 물집이 3개가 생겼다. 도로가 딱딱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며 발을 땅에 디딜 수 없었다. 아예 길가의 풀이 난 곳으로 걸었으며 그것도 아주 천천히 디뎌야 했다. 발을 절름절름 앞으로 옮겨야 했고 하루에 얼마 가지도 못했다. 그 동료는 빨리 걸었는데 그가 먼저 앞질러 가서 휴식할만한 곳을 찾아 나를 기다렸다. 가는 도중에 그는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가 가진 돈도 많지 않았지만 음식을 살 때면 그는 항상 서둘러 돈을 지불하며 누구의 돈을 써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우리 돈을 균등하게 나누려고 생각했으나 그는 동의하지 않으며 “어쨌든 우린 함께이니 누가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이후에 베이징에 도착할 무렵 우리는 흩어지게 됐다. 원인은 아마 그가 먼저 내 앞에 가서 함께 만나 쉴 자리를 찾았기 때문일 것인데 내가 걷는 속도를 빠르게 해서 그를 지나쳐버렸을 수도 있다. 그는 아직 내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이미 허베이와 베이징 경계에 도달했었다.
기억하기로는 나 혼자 2일 밤을 보낸 이후 셋째 날 오후 4∼5시경 나는 청원사무실 소재지에 도착했다. 접수하지 않고 앞으로 가서 청원사무실을 탐문하자 문 앞의 군인이 내게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다. 나는 파룬궁 수련자이며 청원사무실을 찾아 청원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군인은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할지 묻고는 나를 가지 못하게 하고 먼저 파출소에 데려갔다. 파출소에서 다시 베이징 주재 웨이팡 사무실에 통지하자 그곳에서 사람이 와서 나를 거기로 데리고 갔다.
그 수련생과 헤어진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줄곧 그를 보지 못한 데다 그의 이름이나 성도 모른다. 지금 회상해 보면 당시 마땅히 돈은 나누어 가졌어야 했는데 내게 남은 돈이 훨씬 많았었다. 마지막 날 아침까지도 내게는 돈이 몇 마오(毛: 0.1위안)가 남아 대추만한 찐빵 몇 개를 살 수 있었지만 그는 틀림없이 돈이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베이징에는 언제 왔으며 또 이후론 어떻게 됐는지 전혀 모른다.
어느덧 18년 세월이 지나 세세한 많은 것들이 기억은 희미하지만 우리가 함께 들판에서 노숙하고, 밀밭에서 노숙하며 함께 걸었던 정경은 눈에 선하다. 그가 지금 어떠한지 모른다. 그의 이름도 모르고 다만 창이구 사람이라는 것만 알 뿐이니 알아볼 방도도 없다. 만약 그가 이 글을 본다면 틀림없이 알 것이다.
우리 서로 연락이 닿지는 않지만 우리가 지난 날과 다름없이 정진실수(精進實修)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며 조사정법하고 세상 사람을 구도하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꼭 상봉하게 될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3-그대에게 희망의 길을’
원문발표: 2018년 10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0/10/375523.html